신비의 천재 라마누잔

受心子님의 글을 보니 제게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별안간 생각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 수학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로운 천재일 것입니다.




라마누잔은 1887년 남인도의 정통 브라만 계급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대학을 마칠 때 까지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벵갈 만에 있는 항만국의 서기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상사의 지원으로 마음껏 수학 연구를 했고, 드디어는 그가 천재라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자기들 능력으로는 이 천재를 평가할 방법이 없자, 라마누잔 주변의 사람들은 라마누잔의 연구 결과를 당시 종주국이던 영국의 수학자에게 편지로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공식들이 줄줄이 쓰여진 그 편지를 무시했으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교수 하디 (Hardy)는 라마누잔의 기괴한 연구내용이 담긴 편지를 그냥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디는 뉴튼 이후 100 여 년 동안 유명 수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던 영국 수학의 희망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과 능력이 있는 수학자였고, 라마누잔의 연구내용과 직접 관련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으나 그 조차도 라마누잔의 연구결과의 진위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디는 그의 동료 수학자 리틀우드 (Littlewood)와 함께 라마누잔의 연구내용이 담긴 편지를 정밀하게 검토했습니다.




몇 시간의 검토 끝에 방을 나온 두 수학자가 내린 결론은 라마누잔이 제 2의 뉴튼이라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천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식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적같이 믿기지 않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기꾼이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사람은 틀림없는 진짜 천재이다”




하디와 리틀우드는 곧바로 천재 라마누잔을 케임브리지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라마누잔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브라만의 계율을 어겨야 하고, 자신의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기에 한참을 망설였으나, 결국 수학 선진국에서 최선의 연구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영국으로 향했고, 영국에 도착 후 케임브리지 기숙사에 살면서 하디와 공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라마누잔을 직접 만나본 하디는 두 차례의 편지에 써있던 120개의 정리와 공식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깨달았고, 라마누잔이 새로 제시한 정리와 공식에 가치를 부여하고 엄밀한 증명을 완성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식으로 그 두 사람은 10여 편의 공동논문을 저술했습니다. 하디와의 공동연구와는 완전히 별개로 라마누잔은 정수론에 관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직관과 천재성이 담긴 자신의 정리와 공식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증명 없이 이를 노트에 적었습니다.




라마누잔이 만든 대부분의 공식은 그 독창성과 난해함에 있어서 일반인은 물론 수학자들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게다가 라마누잔이 어떻게 그런 공식들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는 현재까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라마누잔의 공식에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위대한 결과들이 갖는 역사적/이론적 필연성이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 라마누잔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남긴 수천개의 공식들은 오늘날까지 아니 어쩌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 거라고 많은 수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힌두교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힌두교 신자들은 파괴의 신인 시바 또는 선(善)의 신 비슈누 중 한쪽을 믿는데 라마누잔은 비슈누파였습니다. 비슈누의 배우자가 나미기리 여신입니다. 라마누잔은 자신의 공식을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얻었느냐는 수학자들의 질문에 꿈속에서 나마기리 여신이 보여줬다는 답변을 자주 했습니다. 과학 역사에서 자신의 위대한 발견이 여신이 힘이었다고 밝힌 경우는 라마누잔 밖에 없습니다. 하디를 비롯한 당시의 수학자들 뿐 아니라 현대의 수학자들조차 라마누잔이 남긴 공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를 유럽 수학계에 소개시킨 하디는 수학사에서 아주 많은 일화를 남긴 특이한 개성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디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해서 집에 거울을 두지 않아 면도조차 거울 없이 했고, 호텔 투숙 시에도 제일 먼저 모든 거울을 수건으로 가리던 분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매우 미남입니다.) 그는 스포츠에도 만능이었고, 테니스와 크리켓에는 선수 급이었습니다. 또한 하디는 악명 높은 무신론자였는데, 얼만큼 지독한 무신론자였는지 그의 무신론적 사고는 거의 광신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의 평생 세 번째 소원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첫 번째 소원과 두 번째 소원은 신과 관계되는데, 그의 첫 번째 소원은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수학자가 그렇듯이) 리만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코펜하겐에 보어 (닐스 보어의 동생인 수학자 헤롤드 보어) 교수를 방문하고 영국에 오던 중, 북해의 풍랑이 거칠고 그가 타고 갈 보트는 너무 작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낀 하디는 보어에게 급히 한줄 짜리 엽서를 보냈습니다. “리만 가설을 증명했음. G.H. 하디로부터” 하디가 그 엽서를 보낸 이유는 항해 중에 배가 침몰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하디가 리만 가설을 증명했다고 믿게 될 텐데, 신은 무신론자인 하디에게 그런 영광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하디는 그 엽서 때문에 영국에 돌아와서 곤욕을 치뤘습니다.)




하디의 두 번째 소원은 크리켓 경기에서 연타석 출루 기록을 세우는 것이었는데, 크리켓 경기가 있을 때마다 우산과 수학논문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이 존재한다면 하디가 날씨가 흐려서 논문을 검토할 시간이 생기길 바라는 걸로 착각하게 만들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신은 자기에게 그런 기회를 절대 안줄 것이므로 맑은 날씨에 크리켓을 하게 되리라는 목적이었답니다.




다시 라마누잔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놀라운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는 것과 반대로 영국에 머문지 3년이 지날 무렵 라마누잔은 병으로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고, 브라만 이외의 사람이 만든 요리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춥고 우울한 날씨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고, 혼자 기거하면서 고독감과 소외감에 심신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하루는 하디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라마누잔에게 병문안을 왔습니다. 하루종일 흐린 날이었는데, 하디가 말하길




“날씨도 그렇지만 내가 탄 택시의 번호도 1729였어. (1729=13*133 으로 불길한 13이 계속 나옵니다.) 오늘은 별로 안좋은 날이야”


라마누잔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1729는 재미있는 숫자입니다. 1729 = 12³ + 1³ = 10³ + 9³ 처럼 세제곱의 합으로서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숫자 중에 가장 작은 거니까요”




1919년 병든 라마누잔은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영국생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인도로 귀국합니다. 귀국 후 그는 인도의 수학계뿐 아니라 전체 국민들로부터 영웅처럼 환영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병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그 다음해 33살의 나이로 라마누잔은 세상을 뜹니다. 그는 1976년에 발견된 소위 lost notebook 를 포함하여 각각 수백 페이지의 온갖 놀랍고 희한한 공식들로 가득 찬 네 권의 노트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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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께서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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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신비의 천재 라마누잔

  1. 글에서도 썼듯이 라마누잔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인간이군요.
    인도에서 저를 안내한 기사도 라마누잔을 기억하던데 라마누잔이 결핵으로 요절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2. 한국무신론자협회가 탄생했습니다

    국내 무신론정보
    해외 무신론정보
    종교특혜반대
    유일신종교반대
    칼럼 등 다양한 정보를 갖추고 있으며

    국제무신론자연맹(AAI)와도 연대중이며
    세계 무신론 석학들이 모여
    세미나, 토론회를 국내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많은 참여 바랍니다.

    한국무신론자협회
    http://www.atheism.or.kr

  3. 참고로 덧붙이자면 라마누잔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60년 이상을 혼자 살다가 2001년에 94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라마누잔의 사후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되어 각국의 수학자나 과학자들은 그의 이름을 빌어서 단체를 만들고, 저널을 만들고, 책을 발간하고 각종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라마누잔 기금을 만들고 그의 동상, 흉상을 세우고, 그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수없이 개최했지만 정작 라마누잔의 미망인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국인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라마누잔의 미망인은 남편의 사후 가난과 고독속에 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삸바느질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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