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의 의사를 투영해내지 못하는 정치구조







최근 업무가 있어서 부산에 다녀 왔습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마침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안정의석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면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이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생각한 것은 우리의 정치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주권자의 의사를 왜곡하거나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문은 형식적이거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은 정치꾼들의 이익에 반하는 주권자의 의사는 번번히 좌절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권자의 의사를 이렇게 왜곡하는 것일까요?

 

주권행사를 방해하는 것들.

 

첫째, 지역구도의 문제입니다. 박정희 정권시절 이효상씨의 ‘보리문둥이 단결론’을 시작으로 여러번의 계기가 지역구도를 강화시켜 왔습니다. 특히 양김의 분열로 87년 대선패배를 피하지 못했고, 곧 이어 김영삼의 삼당합당으로 호남왕따 현상이 극에 달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정치세력도 지역주의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더더욱 지역구도의 폐해는 증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회가 전혀 서로를 견제하지 못하고 함께 협잡하여 이권을 나눠먹는 것은 주민의 이익에 반하는 것입니다. 주권자의 이익이 침해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지역주의와 그로 인하여 만들어진 지역구도의 정치입니다.

 

둘째, 언론의 문제입니다. 일부 수구언론들의 왜곡과 여론조작은 주권자의 눈을 가리고 판단력을 흐리는 데 거듭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주권자가 잘못된 정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그런 정보를 근거로 주권을 행사하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정한 정치세력의 잘못을 철저히 덮고, 반대편의 경우 모든 것을 왜곡해서 전달하여 비난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일부 메이저 신문사의 문제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여론시장의 70%를 독점하다 보니 다른 신문사들도 독자의 외면을 피하기 위해서 여론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여론시장의 90%를 메이저 신문이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권자의 주권행사가 정확한 정보에 의하여 적절히 행사되지 못하는 한 정치는 주권자를 괴롭히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셋째, 정치인들의 문제입니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주권자의 눈치를 살피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대가로 표를 받습니다. 그래서 당선되면 또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은 세금으로 그들의 봉사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도 사람입니다. 항상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국민을 속이고 자신의 사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구도가 작동하면 그 것을 극복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순응하여 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언론의 왜곡과 여론조작이 성행하면 그것을 막으려 하기 보다는 영합하여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려 합니다. 주권자의 판단을 흐리고 옳바른 주권행사를 방해하는 일에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마는 것입니다. 주권자의 이익에 봉사하고 표를 받고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를 속이고 눙치며 더 많은 것을 받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넷째, 선택의 대안이 부족합니다. 국민의 선택은 이기적인 동기라고 하더라도 존중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물론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선택이라면 더욱 좋겠으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은 주권자입니다. 말하자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했다고 위임받은 권력자가 그 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해서 만든 법질서를 위배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마땅히 선택할 대안이 충분치 않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없이는 자신의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는 계층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럭저럭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기득권을 이미 보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 계층의 정치적 선택은 전혀 다릅니다.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이기적 동기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선거구호에는 서민이 있지만 막상 정책의 입안과 시행의 과정에서는 서민이 없습니다. 마땅히 선택할 대안이 없어서 항상 차선이나 차악 또는 차차악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계층이 다양한만큼 정치에 있어서도 다양한 선택의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지역구도, 정치인들의 이기심, 언론의 왜곡등이 이러한 선택대안의 부재를 낳은 것이기도 합니다만 대안의 부재는 주권행사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제도적 문제입니다. 특히 정치를 주도하는 의회의 구성에 있어서 제도적 문제점은 심각합니다. 소선거구 제도는 지역구도를 확연히 강화하고 확대하는 도구입니다. 메이저 언론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히 작동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이 지역구도와 메이저 언론의 영향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게 됩니다. 수 많은 사표를 발생시키고 주권자를 대세에 추종하도록 강압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다양한 대안이 등장할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입니다.

 

총 299명의 국회의원중 240명이상이 소선거구의 산물입니다. 비례대표는 불과 50여명에 불과합니다. 극단적으로 50.1%를 득표한 자는 국회의원이 되고, 49.9%를 득표한 자는 낙선합니다. 즉 주권자 절반의 뜻이 버려지고 사장되는 구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 사표를 줄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정치권에 다양한 대안이 등장하고 주권자의 선택이 훨씬 정치에 정교하게 반영될 수 있습니다. 지역구도나 여론조작의 위력도 약해질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가 없어질 것입니다.

 

여섯째, 정치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사실 모든 제도들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도록 작동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많이 향상된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정치권에 진입장벽은 무척 높습니다. 후보자 등록시 거액을 예치해야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각 정당이 공천헌금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특별당비도 부담해야 합니다. 선거비용도 일정한 비율 이상을 득표해야 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정치 신인들이 진입할 틈이 별로 없습니다.

 

주권자가 자신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장벽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주권이 일부 침해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돈이 없어도 직접 정치에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나서지 못하게 막는 장벽은 근본적으로 기성 정치인에게만 유리한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발달된 서구의 선진국에서 말단 지역의 당원이 점차 당원들의 지지를 확보하여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과정은 우리에게는 무척 부러운 일입니다. 민주노동당,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등이 하려던 상향식 정치는 그러한 진입수단으로 의미가 큰 것입니다.

 

주권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다양한 문제점들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는 서민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거때마다 열심히 투표를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국민의 주권이 투영되지 못하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정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일부 절차를 완성하였으나,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곳에 서 있습니다. 시민주권 운동이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찌보면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입니다. 또 뭘 하더라도 그리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서 타인의 노력에 의하여 발전되기를 바라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는 스스로 자신의 주권을 찾아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아무도 거저 주권을 확보해주지 않습니다. 찾아보면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첫째, 유권자 각성운동이 필요합니다. 사실 유권자가 각성하지 않고는 원하는 정치를 하지 못합니다. 지역구도에 함몰돼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합니다. 언론의 왜곡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정치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신의 권리를 정치인의 이익에 헌상하고 맙니다. 구조적 문제점을 각성하지 못하면 좋은 제도를 도입할 수 없습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각성하며 그렇게 얻어진 것을 서로 공유하며 연대하는 것이 가장 지름길입니다.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길입니다.

 

둘째, 지역주의의 망령을 벗어나야 합니다. 지역마다 특별한 정서가 있을 수 있고, 각기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일종의 애향심같은 것보차 지역주의라고 비난해선 안될 것입니다. 문제는 더 중요한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지역주의에 의한 지지나 반대를 표명하는 일입니다. 특히 자신의 이익에 조차 반하는 선택을 하는 일은 반드시 지양되어야할 악입니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간 교류의 기회를 넓히고 기초자치 단체단위의 결연등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편견에 사로잡혀서 상대지역을 무작정 혐오하는 감정을 해소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셋째, 대안언론 운동이 필요합니다.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발달한 나라에서 종이신문의 횡포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각 지역이나 관심부문별로 대안언론들을 만들어서 담론을 형성하고 그것을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거대언론의 왜곡과 여론조작에 대하여 반론과 견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안별로 조목조목 반증을 제시하고 왜곡된 여론을 바로잡는 인터넷 언론등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특히 그러한 대안언론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금전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넷째, 정치인들에 대한 검증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합니다. 지역구도에 의지하는 정치인, 이리저리 소신을 바꾸는 철새 정치인, 국민을 현혹하고 속이는 거짓말 정치인을 선별하여 응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데이타를 시민사회가 스스로 수집하고 분석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어떤 의안을 발의했고, 어떤 의안에 찬성 또는 반대를 했는지 모두 자료를 수집하고 축적해서 선거때마다 유권자가 평가할 수 있도록 자료를 공개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미 선진국의 시민사회가 잘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다섯째, 제도개선을 촉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지속적인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권자의 강력한 압박이 없다면 정치인들은 지금의 제도적 틀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치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개선은 유권자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압박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소선거구제 폐지운동 같은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구조의 변화를 위한 시금석입니다.

 

여섯째, 시민사회가 좋은 정치신인을 발굴하고 지원해서 제도권 정치에 진입시켜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정치권에 진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기성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시민의 힘으로 당선시킨, 시군구의원, 시장,군수, 시도의원,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 이라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시민의 힘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함부러 무시하거나 배신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상향식으로 시민의 주권을 정치에 반영하는 길입니다.

 

일곱때, 각 지역의 시민사회 활동을 활성화 시켜서 점차 연대해야 합니다. 지역마다 시민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참여도가 낮아서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갖는 생활정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점차 역량을 키운 뒤 점점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연대를 맺어 나가야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시작부터 거창한 중앙정치의 담론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지역현안들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특별한 사안이 없다면 기초단체의 예결산을 감시하는 활동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출발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각각의 지역에서 주민들의 관심사항을 가지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 참여가 늘어가면 주변지역과의 연대를 시작하고 연대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대하여 주권자의 뜻을 왜곡하는 정치지형을 하나씩 타파해 나가야 합니다. 연대의 범위를 넓혀 나가면 정치는 물론 환경보호의 문제, 지역주의, 언론의 여론조작, 정치의 제도변화 까지 힘을 모아서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을 정치인, 정당, 메이저 언론에게 강탈당하고 앉아서 신세한탄만하는 사람은 결코 민주국가의 주권자가 아닙니다. 주권을 가진 시민이 아닙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점차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어나가려면 담론도 만들고, 연대의 폭도 넓혀 나가는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누구나 즐겁게 참여하고 당장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서 많은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주권자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피동적인 유권자의 개념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주인으로서 주체적 참여가 필수적 입니다.

 

먼 후일 시민사회의 각성과 노력으로 우리 후손들이 좀 더 공정하고 따스한 정이 흐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깃발을 들면 우루루 몰려다녀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각각의 각성과 각성한 자들의 연대 그리고 확신에 찬 전파가 당장의 과제입니다. 주권자인 시민이 능동적 주권행사에 소극적인 사회는 그 무엇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공동체 의식과 따스한 연대가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신다면 능동적으로 참여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jkj

비토세력@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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