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란 테르본의 “변증법 그 후” 요약

매직리얼리즘에서 소쉬르까지 이어지는 토론의 과정에서 등장한 문서에 대한 번역 요약본입니다.

원본은 파일로 첨부합니다. gk040000000000.pdf
이 문서를 작성하신 궤네깃또님의 현재 근황은…

너무 많은 것을 알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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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네깃또 :

제목에서 밝혔다시피 무쟈게 장문텔허이오니 단문알바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매직리얼리즘 쓰레드에 댓글로 올리려다가…
넘후 길어서 암후도 안볼 수도 있고…그러면 소기의 텔허목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판단과…또 댓글로 쓰면 댓글작성 화면이 좁아서 글쓰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고려에 입각하여 본쓰레드로 올리게되었습니다요.^^
 
단문알바들도 소위 좌파라는 넘들은 뭔짓거리를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심심할 때 한번쯤 일독을 권합니다.
 
* 숱한 인명과 업적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자세히 알고 싶은 알바는 원문을 읽어보셈. (내용이 넘 많아서 패쓰)
 
* 그리고 이 봉다리를 쓰게된 단초를 제공하신 심송팬횽에게 텔허의 모든 책임을 돌리오며,  굳이 요약을 부탁하신 드림횽께서는 필히 독후감과 최고급 데낄라를 제출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텔허를 한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나 ~ 룰룰랄라 ~ 꺄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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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DIALECTICS]

– Post-Communist World에 있어서의 급진사회이론 – GÖRAN THERBORN 2007.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근대정치사상의 중심이었지만, 구 중에서도 20세기에 지적매력과 대중의 지원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사회주의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주의의 밀물은 빠져버리고, 신자유주의라는 쓰나미가 덥쳤다.
 
우선 신자유주의에 대한 좌파의 대응을 요약하기 전에, 좌파내에서 변화중인 변수들에 대한 밑그림을 먼저 그려보기로 하자.
 
 
 
A. 근대성의 전환.
 
 
1980년대와 90년대에 사회주의에 발생한 사건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힘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법의 약속과는 달리 노동계급이나 반자본주의 운동의 강화는 없었고,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향하는 움직임도 없이 자본의 새로운 압력만이 볼 수 있을 뿐이다.
 
즉, 맑시즘이 예언한 자본주의의 변증법은 부서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은 약해졌고,대안의 싹은 부서지거나 변방으로 밀려났다. 좌파정치의 패패와 붕괴는 20세기의 마지막 20년간 전세계적으로 극에 달했다.
 
부유한 자본주의국가에서의 탈산업화 경향과 1970년대 발생한 대량실업,인플레이션 사태에 대한 중도좌파의 잘못된 대응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복수를 위한 길을 닦은 셈이 된 것이다.
 
소련이 정치적 자유주의를 진정시키기 위해 경제를 포기하다시피한 것은 자멸적이었으며, 중국과 베트남은 ‘자유시장’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세계는 자유주의가 완전히 안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급진세력이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1. 맑시즘의 부서진 삼각형.
 
 
맑시즘은 세가지 측면의 기둥을 가지는데…. a.사회과학  b.철학  c.정치양식으로서의 맑시즘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의 기둥이 맑시즘을 지탱한 삼각형인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맑시즘의 정치양식인 사회주의는 붕괴되었고, 사회과학적 기둥, 철학적 기둥도 회복할 수 없게 깨져버렸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선함은 여전히 사회사상의 고전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맑시즘은 계속
재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어떤 주의(ism)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2. 탈근대성의 도전.
 
 
탈근대성은 정치적 맑시즘의 쇠퇴기에 근대성의 거부로서 나타났는데 그 기원은 두가지다.
 
a. 미학적인 것 – 아방가르드의 근대적 계승에서 돌연변이한 것.
b. 사회철학 – 전직 좌파들의 고갈감과 환멸의 표명.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 ~ 70년대 초반 좌파의 혼란과 불안정을 자양분 삼아 연명해 갔다.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비판은 (TV를 통해 대량전달된 이미지와 탈산업화, 생태학의 역습), 구좌파의 혼란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던적 담론에 배양실을 제공한 것이다.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근대성은 오로지 시간적인 지향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근대성은 과거로부터 등을 돌리고 “앞으로만 향하는”, 결코 뒤로 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탈근대는 바로 이런 근대성의 미래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맑시즘은 그런 의미에서 탈근대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러나 변증법적인 “앞으로 나아감”의 의미에 따른 다면 맑시즘은 무척 근대적인 것이다. 이점은 맑시즘의 핵심으로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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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1. 근대성이 약속한 미래담론.
 
전근대적 과거                            근대적 미래
           ↓                                                ↓
무지, 미신, 종속                         해방-합리적 개인적 계몽
압제, 속박                                 해방-집합적
가난, 질병, 불황                         성장, 진보, 발전
경쟁이 없거나 적음                     적자생존
법적규제, 독창성 결여                 창조적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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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2. 자본주의적 근대성에 내재한 모순에 대한 맑시즘의 변증법적 결과.
 
자본주의적 근대                      모순에 대한 변증법적 결과.
           ↓                                                 ↓
진보                                        모순, 갈등
개별화                                     자동화, 소외
생산력 상승                              착취, 분배의 양극화
자본주의 확장                           프롤레타리아의 통합, 강화
지구화                                     반제국주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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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보듯이 근대화를 위한 개별화, 합리화, 성장이라는 자유주의의 단선적인 기획에, 맑스는 변증법적 전망을 제시하고 근대화의 모순들은 합리적 변화의 전조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1990년대에 근본적으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맑시즘의 변증법적 구상을 무시하고 근대성의 모든 거대담론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주의적 좌파들에게만 대항한 결과를 낳았다.
 
우익 근대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는데, 신자유주의가 바로 고도화된 우익근대주의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근대성 자체가 하나의 지적입장으로 포기되지는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비변증법적인 근대성 개념(비맑시즘)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좌파의 혼란과 유럽을 넘어 바라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서, 징후적으로 독해해내야 할 것이다.
 
 
세줄 요약하자면, 근대성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여러가지 방향으로 변환했다고 할 수 있다.
 
① 우파로의 전환.
②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
③ 새로운 근대성들에 대한 이론적, 정치적 탐색으로의 전환.
 
 
3. 사회이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Definitions)
 
① 현상에 대한 설명 –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틀을 제공하는 경험적 사회과학.
② 의미의 구성 – 경험적 발전에 대한 철학적 적용력(탄력).
 
의 양자 모두에 적용되는 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구성을 말한다.
 
 
 
B. 좌파의 대응 – 주제별로.
 
 
1. 유럽 – 신학적 전환.
 
 
신학적 전환이란 종교적 믿음의 수용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종교에 대한 학술적 관심을 의미하며, 논쟁에서 종교적 사례들을 사용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안적 미래사 사라지거나 희미해짐에 따라 뿌리, 경험, 배경 등이 중요해진 것을 의미한다.
 
관련학자 : 드브레, 알랭 바디우, 슬로보예 지젝, 마이클 하트, 네그리, 하버마스, 하우크.
 
 
2. 미국 –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미래주의.
 
 
a. 새로운 유토피아 – 프레드릭 제임슨, 라이트, 존 로머, 하비, 윌러스틴.
b. 체계적 자본주의 종말론 – 지오반니 아리기, 윌러스틴. (그러나 좌파에게서 조차 동의를 얻어내지 못함)
c. 새로운 이행 – 아리기, 베벌리 실버. 안드레 군더 프랑크. 사미르 아민(개중에 균형잡힌 지정학적 분석임)
 
 
3. 계급개념의 배제 경향.
 
 
좌파이론의 가장 중심개념 중 하나인 계급개념이 최근 몇년 새에 배제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a. 자본주의 계급투쟁에서 좌파담론의 패배와
b. 탈산업인구학의 발달로 이론적, 지정학적 중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 라클라우, 샹탈 무페 – 계급투쟁은 교조적 주장이며 “적대”가 새로운 중심개념이다.
. 발리바르 – 계급투쟁이 유일한 것이 되지는 않아야 함을 강조. (그래도 맑시즘 전통에 가까운편)
 
그러나 이렇게 계급개념이 배제되는 속에도 여전히 계급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는데….
 
. 골드 트로페 – 투쟁없는 계급의 사회학을 주장하고 계급을 동원에 관한 연구의 개념으로 삼고 있고,
. 올린 라이트 – 사회학에서 맑시즘적 분석을 지켜냈다.
. 미국의 사회학- 계급, gender, 인종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앵공은 성과 계급의 여성주의적 접합을 끝장내버렸다.
 
최근에 세계적 계급투쟁에 대한 저술들은 북미가 중심이며, 베벌리 실버의 노동에 관한 책들이 대표적이다.
 
 
3. 국가개념으로 부터의 탈출시도.
 
 
a. 민족 자본주의 국가로 부터 -> 전지구적 네트워크로의 관심 이동.
    그러나, 주권국가의 상실이라는 주장이 논증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상태다.
 
b. 국가로 부터 -> 시민사회로의 관심 이동.
    약간 유토피아적이긴 하나, 좌 우파 공히 세계적 관심을 끌어냄.
 
c. 정치철학이 보다 추상화 됨.
    라클라우, 무페 (보편주의, 특수주의), 하버마스(보편적 대화정치), 발리바르(시민성의 정치학), 지젝(반자본주의), 마이클 만, 찰스 틸리.
 
 
4. 섹슈얼리티의 Return 경향.
 
 
생물학적 성의 주어짐(고정성)이 공격 받으며 생겨난 흐름이다.
 
버틀러는 생물학적 성이 사회적 성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으며, 동성애자들의 도전은 퀴이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성주의 이론과 좌파의 연결고리를 차단했으며, 라캉적 정신분석학에의 몰두(지젝,라클라우,발리바르)
경향을 가져오기도 했다.
 
 
5. 네트워크 숭배 경향.
 
 
사회이론에서 네트워크가 구조와 조직개념을 대체하는 흐름을 말한다.
 
네트워크는 집단이나 조직보다 느슨하고 개방적이며, 집단성보다는 개별행위자와 그들의 자원에 촛점을 둔다. 네트워크는 지적발견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관계의 지표로도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포스트, 혹은 신맑시즘에서 네트워크는 핵심개념이지만, 네트워크 자체는 어떤 분석과 비평도 없는 상태이다.
 
. 마이클 만 – 상호작용적 네트워크를 중심개념으로 만들었고,
. 카스텔 – 네트워크사회를 이야기 했고,
. 하트, 네그리 – 신맑시즘의 핵심적 개념으로 도입했다.
 
 
6. 정치경제학의 흐름.
 
 
생태학 성향의 경제학(알트파터), 앵글로 색슨 급진주의(월러스틴, 아리기, 브레너, 바단, 볼스), 경제학과 철학의 결합(아마타 센), 프랑스 조절이론(아글리에타, 브와에), 영국(호지슨) 등이 있고,
 
제도경제학은 이와중에 신자유주의에 녹아드는 경향을 보여주었다.(프리쉬.뮈르달, 틴베르헨)
 
 
 
C. 현대 맑시즘의 레퍼토리들.
 
 
 
전반적으로 보면, 북미가 유럽보다 더 좌파적이다. – 촘스키나 마이크 데이비스 등, 먼슬리 리ㅠㅠ나 사이언스 앤 소사이어티의 존재와 미국사회학협회의 급진성 등을 볼 때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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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 사회주의.
 
명시적인 사회주의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며 승리한 대처리즘의 불모지에서 자라났다.
 
. 존 킨 – 시민사회를 찬양하며 사민주의를 경멸했다.
. 앤서니 기든스 – 좌우를 넘어선 이동을 시도했으며, 제 3의 길이라 불리움.
. 울리히 벡 –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소모되어버린 이상일 뿐이라 함.
 
 
2. 비맑스 좌파 – 사민주의적 경향을 말한다.
 
. 부르디외, 산토스, 세네트, 틸리.
. 웅거 – 국가독립을 위한 높은 저축과 과세, 권한부여와 능력주의적 사회정책, 시장경제의 민주화와 고임금, 양육에 대한 보편적 책임, 강력한 민주정치 등을 제안했다.
 
 
3. 과학적 맑시즘과 맑스학.
 
어떠한 반자본주의적 실천이나 이데올로기적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다.(부라보이, 라이트)
 
. 데사이 – 블레어의 총애를 받으며 신자유주의적 하이에크와도 손잡는다.
. 데리다, 카버 – 맑스를 맑시즘과 단절된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 강조한다.
 
 
4. 포스트맑시즘.
 
맑스적 배경을 가지고도 맑시즘적 문제의식을 벗어나 더이상 맑시즘에의 헌신을 주장하지 않는 조류이다.
 
라클라우, 무페,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하버마스, 오페, 호네트, 카스텔, 드브레, 지그문트 바우만.
 
 
5. 신맑시즘.
 
맑시즘의 갱신으로 더욱 급진화된 경향이며 한편으로는 고전적 맑시즘으로 부터의 현저한 이탈도 보여준다.
 
. 지젝 – 레닌을 반복하라고 주장한다.
. 하트, 네그리 – 제국과 다중이라는 핵심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21세기에 맞는 혁명적 출구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또 레닌이 주권의 파괴를 고취했다고도 한다. ((주1) 제국 : 네트워크적 제국, (주2) 다중 : 프롤레타리아와
인민의 대체개념으로서 전지구적 대중지성.)  
 
지젝과 네그리,하트의 공통점 – 낙관적 급진주의, 출판의 국제적 성공, 아상블라주(?)라는 바로크 양식을 이용하며 사회이론이라기 보다는 현실정치철학이다.
 
특히 지젝과 네그리는 둘다 주류공산주의 가정 출신이며 유럽의 지적전통을 통해 맑스를 해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 카스텔 – 밀레니엄의 종언을 경험적으로 분석했으며 정보화시대의 근본적인 사회분할을 이야기 했다. 실버도 카스텔과 비슷.
 
 
6. 복원적(탄력적) 좌파.
 
맑시즘의 회복 또는 복원을 꾀함으로써 맑시즘의 현실 탄력성을 갖추려고 하는 움직임이다.
 
이 중에 부라보이나 라이트의 경우에는 맑시이론에서 “가치이론”을 제외하기도 한다. 그리고 착취로서의 계급개념을 살려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계급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하고, 그 갈등의 극복과정에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치적 기획을 연결시킨다.
 
그외에 하우크, 포스톤, 올만, 벤자이드,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이 있다.
 
 
D. 맑시즘의 미래전망.
 
 
이 글의 개관은 고전적 맑시즘의 삼각형이 깨져버림으로써 야기된 불균등한 효과들에 관한 것이다.
 
사회주의의 지평선은 사라졌고, 가장 위대한 계기들은 지나갔을 수도 있으나, 좌파의 지적 창조성은 중단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21세기의 저항자들은 200년 전의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지평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개관은 북대서양(유럽)과 북미지역에 한정되었으나, 이 지역이 21세기 자본주의의 운명을 결정할 제 1의 전선은 아니다.
 
현재는 전지구적 차원의 이론적 경험적 연구가 중요하며,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앞두고 “도전적 겸손”이 가장 지적인 태도인 듯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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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길어서 오타가 있는지 다시 살펴볼 엄두가 안나 그냥 올리니, 오탈자가 있는 경우 알아서 잘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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