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을 둘러싼 문제들

그냥 통털어서 우주개발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종류의 과학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기본적인 학문적 접근인 천문학이나 우주공학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하여, 각종 탐사장비를 궤도에 올려 놓는 작업, 또는 뭔가를 지구 주변의 궤도나 달, 또는 다른 행성, 나아가서
다른 항성에까지 보낼 수 있는 우주선에 대한 개발작업, 거기다가 사람을 외계로 내보내서 뭔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
심지어 군사용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무기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요즘에야 통신이나 위치확인의 목적으로 쏘아올리는 위성들이 많아 져서 상업화 되고 있지만 이 우주개발이라는 분야가 과연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얘기하려면 골치부터 아파오기 마련이다.

천재 물리학자 와인버그 같은 사람은 사람을 외계로 내보내는 “유인 우주개발 사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아주 비싼 스포츠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이제는 사람들을 그다지 열광시키지도 못하는 정치적 쇼라는 것이다.

우주 얘기하면 맨날 언급되는 칼 세이건 같은 사람들도 우주개발이 학술적 입장에서 진행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정치적 거래에 의해 진행되는 어두운 면이 반드시 존재해왔다는 점을 털어 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궤도상에 허블 망원경을 설치한다거나, 탐사 로봇을 화성에 보낸다거나 하는 학술적 개발활동조차도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구상에서 관측이 불가능한 엄청난 정보를 모아올 수 있는 궤도 망원경등을 올리는 행위는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의 발전의 한계를
깨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측만으로 알 수 없던 세부적인 실제 상황을 탐사로봇이 가서 확인해 올 수도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까닭은 사람을 외계로 보내는 것과 기계가 가는 것과는 엄청난 비용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유도 있다.

즉, 사람 한명을 달에 보낼 비용이라면, 수많은 탐사로봇들이 다른 여러가지 활동을 수행하고도 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학술적 선택이라면 굳이 사람을 보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우주개발은 결국 유인 우주개발로 가고 있다. 우주 정거장이 그렇고 유인 우주선이 그렇다. 결국 탐사로봇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 봐야 훈련된 전문가가 직접 현장에서 제어하는 것에 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먼 미래에는
결국 사람들이 행성간, 혹은 항성간 여행을 하게 되지 않겠냐는 궁극적인 비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인류가 수많은 고통과 싸우고 있는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또 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게 원래 인류의 본질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닥친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비용이 부족해서 쩔쩔매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유인 우주개발에 나서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철학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도전정신, 혹은 파이오니어 정신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휴머니즘이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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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학생이 외국의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선에 거액의 탑승료를 내고 관광을 갔다 왔다고 한다.

과학적 임무를 가지고 갔다고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이벤트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그녀가 우주공간에서 행한 과학실험이 과학자들이 보기에 애들 장난 같은 것에 불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핵심 문제 두가지는, 그런 이벤트를 통해 장기적인 우주 개발에 관한 여론을 상기시켜 좀더 빠르게 우주개발을 진척시키겠다는
비젼과 관련된 의도 하나와, 그 돈이 있다면 지금 당장 푼돈이 없어서 중단되고 있는 기초과학에 예산을 분배해 주는 것이 진정한
과학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인 의도가 충돌하는 현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개념없기로 유명한 방송국 하나가 거액을 쾌척하고 시청률 증가에 힘썼지만 예상보다 썰렁했으니 과연 그들 자신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앞서서 유인 우주개발에 관한 의견충돌은 결국 도전정신과 휴머니즘의 충돌이라고 결론을 내렸었지만 이번 우주관광 사건에서는 그런 문제의 레벨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사회에서 제대로 리소스를 공급받지 못하는 순수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소외감이 또 한번 거대 상업자본의 놀음에 농락당하는 비참함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나름대로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순수과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하고 끝내기에는 아무래도 뭔가 허전하다.

그런 부탁은 수도없이 있어 왔고, 수도없이 무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나약한 방법은 소용이 없다.

순수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무시당하고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스스로 나서서 뜯어 고치기를 권하고 싶다. 과학자 정당을 만들던지, 아니면 과학자 단체라도 만들어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갈수록 정글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울지 않는 아이에게 떡을 줄 의사결정권자는 아무도 없다. 개인적인 연줄과 정치력으로 자금을
따오는 교수가 학계의 필요악으로 존재하면서 유능하다고 칭송을 받게 되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 과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각성이라도 있게 된다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번의 우주쇼가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는 판단을 받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래 사진은, 보이저호가 명왕성 근처에서 찍어 보내온 “창백한 푸른 점”의 사진이다. 이것을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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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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