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 – 6


역정 – 1 

역정 – 2

역정 – 3

역정 – 4

역정 – 5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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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영병은 헌병대와 보안사의 조사를 거치고 나면 군법에 회부된다.
현역 군인은 단심제로 재판을 받으며 탈영병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혹하다.
내가 잡혀들어 간 날이 업무가 끝난 토요일 늦은 밤인 관계로 월요일까지는 신분이 모호했다.
수감자는 유치장에 들어가면 소속부대 표식과 계급장을 떼고 수감자 신조를 암기해야한다.
국민교육헌장 보다 긴 항목을 5분만에 외워라고 요구 받는다.
대체로 수감자는 입방 첫날 수감자신조를 못외워서 종일 당한다.
오분의 시간을 주고 이후론 확인을 거쳐서 체벌을 하고 30초 후에 또다시 확인 후 체벌을 반복하여 수감자가 외울 틈을 주지않고 돌린다.
나 역시 들어가니 수감자 신조가 걸려있는 액자를 가르키며 오 분 후에 확인 할테니 외워라했다.
오 분까지 걸릴 이유가 없었다. 한번 훓어보고는 다 외웠다니까 믿지 못하는 표정이다.
줄줄외워버리니 나더러 천재라고 한다.
이전에 영창을 두 번 산 경험이 있어서 외우고 있는 걸 그들이 몰랐을 따름이다.
당시, 다른 넘들은 한나절만에 외울 때 나는 이틀이 지나서도 못외워
“씨뱅아, 니 아이큐 몇이고?” 소릴 대가리 박고 들었는데 천재라하니  쑥스러웠다.

 일요일 오후에 사단 군법사가 면회를 와서 언질을 주었다.
원칙적으론 군법에 회부되어서 남한산성으로 갈 대상이지만(그 당시 육군형무소는 이천으로 옮겼다) 보안대장에게 손을 써서 자대 징계로 돌리기로 했으니 보름 정도 영창살이 할  각오를 하라했다.
아닌게 아니라 군법사가 돌아가고 이내 자대에서 선임하사가 나를 신병인수하러 왔다.
부대로 돌아오니 전체가 다음 날 시작하는 ‘혹한기 극복훈련’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동계훈련이라고도 부르는 혹한기 극복훈련은 말 그대로 추위에서 생존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고생 칠갑한다.
영하 십도 이하의 날씨에 야외서 생존하는 방법이란 게 계속 걷거나 뛰거나 땅을 파는 등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훈련이다. 동계훈련을 다녀오면 동상환자들이 속출한다.
저녁 점호를 앞두고 침상에 도열해 있을 때  익일 영창 살러 갈 나를 안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영창을 산 경험있는 김장군 병장이 한마디 했다.
“삼매 절마는 영창복도 있네. 영창을 살러 가도 동계훈련 기간중에 가니 고생하란 소리도 안 나온다. 
니 보다는 우리가 더 욕 볼 거 같다.  어이~ 삼매,  내가 영창 갈께 나랑 바꾸자.”
 
 헌병대는 새건물이라서 보일러 난방이다. 다만 유치장은 특수성상 보일러가 들어 오지않고 석탄을 물에 반죽한 걸로 난로를 피운다. 빼치카와 같은 원리의 난방법이다.
다만 난로는 빼치카와 달리 한번에 투입하는 석탄량이 적은 관계로 20분 단위로 석탄을 갈아줘야한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 방식의 난방은 경험자가 아니면 불을 지필 수가 없다.
유치장내의 근무는 헌병들이 맡는 근무중에서 제일 편한 근무다.
고참 대우 차원에서 제일 고참과 아직 초병으로 세우기엔 미약한 신병과 2인1조로 한다.
고참은 의자에 앉아서 자고 신병이 감시를 하는 게 보통이나, 겨울에는 난로 때문에 고참이 자거나 쉴 수가 없다. 그 분풀이는 수감자에게 돌아간다. 특히 취침시간에는 더 심하다.
먼저 들어와 있던 예방헌병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를 추천한다.
“근무자님, 새로 들어 온 절마, 빼치카당번 출신입니다. 난로 하나는 귀신같이 다뤄요~!!”
영창살이 보름간 난로만 벌겋게 흥분시키며 지냈다. 졸린 눈으로…
덕택에 야간근무 들어오는 고참 헌병은 잘 수 있다보니 유치장의 밤에 평화가 왔다.
유치장 수감자는 두 부류다. 징계를 받고 들어온 측(보름이 최장이다)과 군법에 회부된 미결수로 나뉜다.  미결수는 확정판결까지 최장 3개월정도를 머물다보니 유지장 내 수감자 중에서 고참군이다.
그들이 말했다.
“니야말로 유치장에서 꼭 필요한 넘이다. 평화의 전도사다. 우짜던지 말뚝박아라.”

 영창살이 보름간 비록 수면부족으로 비실비실하였으나 내 없으면 니들은 좇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자부심이 영창살이 마지막 날 사정없이 무너졌다.
헌병대 영창살이는 들어갈 때는 몇시까지 입방을 해야하고, 마치고 나가는 날은 몇 시 이후라야 내보낸다는 규정이 없다. 서류상으로 그 기간에 유치장에 있었으면 된다.
군바리 사회도 사람 사는 정이란 게 있어서 영창살러 갈 사병을 헌병대로 인솔하는 간부는 바로 헌병대로 인계하지 않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삼겹살이라도 사먹여서 시간을 보내다가 일과가 끝나기 직전에 넘기는 게 통상관례였다. 퇴소하는 날도 마찬가지다. 인솔자는 소속부대로 출근하지 않고 바로 헌병대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오전 8시 일과가 시작되면 바로 찾아온다.
그러나 내가 영창을 살러 가는 날은 부대가 훈련을 시작하는 날이라서 마땅히 인솔할 간부가 없었다.
부득히 부대가 훈련장으로 출발하기 전인 새벽 5시에 헌병대로 넘겨졌고, 영창살이 마지막 날엔 훈련 나갔던   부대원들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자정이 지나서야 인수하러 왔다.

 영창살이 마지막 날,
“저 새끼는 아직 안 찾아갔냐?”
근무 인계받는 헌병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자정이 지나도록 인수하러 오질 않자  당직 순찰 나온 중사넘이 한마디 했다.
“씨뱅아, 내 헌병대 7년 근무에  날짜가 지내도 안 찾으러 오는 넘은 첨 본다.
찾지도 않는 서방을 말라꼬 기다리노,  차라리 여기서 내캉 살자. 자래주께~”

눈팅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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