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운동

식물의 수정에 관한 연구를 하던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은 1827년 물에 띄운 꽃가루 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꽃가루 입자가 물 위를 끊임없이 그리고 불규칙적인 지그재그 형태로 돌아다니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브라운은 꽃가루 입자가 살아서 움직이는 걸로 알았으나 이어진 실험에서 생명체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담뱃재 입자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보다 나중에 발견된 열역학 제 2법칙을 포함하여) 명백히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듯 불가사의한 이 현상은 당시의 과학자들을 당혹케 했습니다. 그 이후 1860년대에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물의 분자들이 입자와 충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자세하고 깊은 분석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입자의 움직임은 후에 브라운 운동 (Brownian motion)이라 불립니다.




1905년 학계와는 완전히 고립된 채 스위스의 특허청에서 근무하던 26살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당시로선 대담하게 원자와 분자의 실재를 확신해서 ‘브라운 운동’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꽃가루 입자와 보이지 않는 물 분자와의 충돌이라고 결론짓고, 이 꽃가루 입자들이 움직이는 평균 거리는 시간의 제곱근에 정비례한다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즉 입자가 4초 동안 움직인 평균 거리는 1초 동안 움직인 거리의 2배이고, 100초 동안 움직인 평균 거리는 1초 동안 움직인 거리의 10배에 해당됩니다. (평균적으로는 모든 방향에서 가해지는 분자의 압력은 동일하지만, 특정 순간 한쪽 방향에 더 많은 분자들이 충돌하는 불균형이 발생할 때 입자는 튕겨나가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의 이 개념은 랜덤워크 (random walk)라고 불리며 현재까지 여러 이론 및 응용분야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아인슈타인은 입자가 주어진 시간동안 움직인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일정 부피의 액체 속에 있는 분자들의 수를 추정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추정한 수소 1 그램 속에 있는 분자들의 수는 영어로 303 thousand trillion이고, 한자로는 3030 해(垓)입니다).  즉 브라운 운동과 아보가드로수를 정확히 연관 지었고, 자신의 추정보다 훨씬 자세히 아보가드로수를 알아내는 실험을 제안했고, 오랜 동안 논란이었던 원자의 실재를 입증했으며 원자의 운동을 추정할 수 있는 통계적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업적으로 1920년 노벨상 후보에 올라 그해에 가장 많은 8명의 추천을 받았으나, 정작 그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단 한사람의 추천을 받은 샤를 기욤에게 돌아갔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그 다음해인 1921년에 역시 그가 1905년에 이룬 업적인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이론을 혐오했으나 공교롭게도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 로버트 밀리컨은 두해 뒤인 192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아인슈타인과는 전혀 별개로 브라운 운동에 대한 연구로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긴 학자는 프랑스의 루이 바실리에 (Louis Bachelier)입니다. 바실리에는 1900년에 쓰여진 그의 역사적인 박사학위논문 ‘투기이론 (Théorie de la spéculation)’에서 금융시장의 가격변동을 브라운 운동으로 모형화 했습니다. (바실리에의 지도교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후보에 항상 오르는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 (Henri Poincaré)였습니다.) 이 논문에서 바실리에는 주식의 가격이 시장에 관한 모든 합리적 정보와 예측을 반영한다면, 장래의  가격 변화는 예측 불가능 할 수밖에 없어서 주식의 가격이 위에서 설명한 랜덤워크를 따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이며 천재성을 담고 있던 바실리에의 학위논문은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바실리에는 소르본 대학의 정교수로 재직 중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사병으로 징집되었고, 종전 후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학자로 1946년에 일생을 마칩니다.




그렇지만 바실리에의 학위논문 ‘투기이론’은 1950년대 중반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Paul Samuelson)에 의해서 재발견되고, 재평가되어서 결국 그는 20세기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명으로 남게 됩니다. 새뮤얼슨은 바실리에의 아이디어를 대부분 받아들였으나, 주식 가격의 변화가 통상적인 랜덤워크로 표현된다면 주가는 0이하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뮤얼슨은 바실리에의 모형을 수정합니다. 그는 주식 가격이 무작위적인 양만큼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비율만큼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걸로 바실리에의 모형을 수정합니다. 주가의 기대 수익을 제외하면 주가에 로그함수를 취한 값이 랜덤워크로 표시된다는 말고 같습니다. 이는 ‘기하 브라운 운동 (Geometric Brownian motion)으로 불립니다.




새뮤얼슨이 사용한 주식 가격의 기하 브라운 운동 모형이 바실리에의 모형보다 훨씬 정교한 또 하나의 이유는 1930년대에 노버트 위너 (Nobert Wiener) 가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모형을 완전히 수학적인 확률과정으로 변형시킨 것을 사용한 데 있습니다. 위너는 브라운 운동을 다변량 정규분포, 연속이면서 모든 점에서 미분 불가능한 함수 등의 개념으로 수학화 시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브라운 운동은 ‘위너과정’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새뮤얼슨의 기하 브라운 운동 모형은 현대 주식모형으로 그 이후 수십년 동안 소위 랜덤워크 마피아를 이루고 주류 경제학계와 전체 수리금융계, 더 나아가서는 실무 금융계의 큰 부분을 지배합니다.




새뮤얼슨이 바실리에의 논문을 재발견 할 즈음에 브라운 운동에 대한 연구는 일본의 수학자이토 키요시(Ito, Kiyoshi)에 의해서 수학의 새로운 장르로 탄생합니다. 이는 Ito calculus또는 확률 미적분학 (stochastic calculus)으로 불립니다. 이토는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에서 브라운 운동의 미분(differential)의 제곱은 시간의 미분과 같음을 발견합니다. (즉 브라운 운동의 미분은 제곱하면 확률적이지 않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확률과정의 전미분 공식인 그 유명한 ‘이토의 보조정리(Ito’s Lemma)를 사용하여 확률 미적분학을 발견, 발전시킵니다.




이토의 보조정리는 1973년 블랙과 숄즈가 주식에 대한 옵션의 가격을 구하는 데 결정적으로 사용되며, 이 때문에 이토는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의 유력한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합니다. 한편 작년(2006년) 국제 수학연맹은 수학 이외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수학자에게 4년마다 한 번씩 주는 Gauss 상을 신설했고, 초대 가우스 상 수상자에 이토 키요시 선생을 단독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아마도 이토 선생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겁니다.




기하 브라운 운동을 사용하여 주식이나 이자율 등 기초자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은 미래의 주식가격이나 이자율을 예측하고자 함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룰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주식이나 이자율로부터 파생되는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가격은 더 이상 확률적이 아니라 적정가격이라는 정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개방된 국제금융시장에서 선진국의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돈벌이를 하게 하는 원동력의 역할을 하는 실정입니다.






추가 : 1905년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실험은 그 이후 프랑스의 장 페렝(Jean Perrin)에 의해서 거의 완벽하게 실행됩니다. 페렝은 아인슈타인이 얻은 것보다 더 정확하게 아보가드로수를 구했고, 그의 실험으로 인하여 원자의 개념은 더 이상 의심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페렝은 이 연구로 192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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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께서 2007년 8월 15일에 본인의 블로그에 올리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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