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

몇달 전쯤 됐나,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딸내미 데리고 참고서 사주러 동네 서점에 갔다가 제목이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샀다. 이 책 옆에는 “하악하악~~” 뭐 이런 제목의 당시 인기있던 이외수 책이 있었는데 딸내미 눈치보여서 못 사고…

 

나는 이외수를 무척 좋아한다. 좋아하는 만큼 그의 작품을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늘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아가는 내 삶의 무모함과 야성(野性)은 군대 이등병 시절 빼치카 아궁이에 웅크리고 앉아 올나잇 뻬치카 당번을 자청하며 밤새 읽었던, 내무반에서 몇 년 동안 굴러다녀 너덜너덜해진 “들개”라는 책으로부터 비롯됐다.

 

위의 문장은 이 책에 따르면 “한 문장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구겨넣은” 나쁜 문장의 전형이다. 그걸 알면서도 줄줄 늘여쓰는 습관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나는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있던가? 집중적이거나 고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꽤 범상치 않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 훈련을 따로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글쓰기가 대단한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며, 훈련의 질과 강도에 따라 글의 품질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런 주지의 사실이 새삼 그 강도를 달리하여 머리를 파고든다. “글을 잘 쓰려면 이런 짓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글을 잘 쓰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공감이 훨씬 깊이 느껴진다.

 

글 잘 쓰는 방법을 실감있고 소상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썼다는 정도라면 굳이 이외수의 책이 아니라도 관계없을 듯. 일종의 실용서임에 불구하고 문장 하나 하나에 이외수의 느낌과 색깔이 고스란이 담겨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임에는 틀림 없으나, 이외수가 쓴 글에서 이외수의 냄새가 나는 것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일 터.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매력과 힘은 문장론에 “불과”할 수 있는 글에서 뜻하지 않게 대단히 심오한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단어의 장, 문장의 장, 창작의 장, 명상의 장, 이렇게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내게 큰 감명을 선사한 부분은 첫번째 “단어의 장”이다. 나머지 세 부분 역시 “기술”이 아닌 “느낌”을 담뿍 담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 훈련을 받아본 사람이면 이미 대략 아는 얘기들이다.

 

첫번째 단어의 장은 (이것 역시 나보다는 글쓰기에 좀 더 천착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글쓰기의 바탕이 결국 “애정”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단어의 장에서 첫번째로 요구하는 것이 “단어 채집”이다.

 

머리 – 대가리, 대갈통, 대갈빡, 골, 뇌, 대뇌, 소뇌, 작은골, 큰골…..

 

이렇게 뭔가를 잡아놓고 그와 관련된 단어를 모으는 훈련부터 시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단어채집장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직접 손으로 써가며 정리를 하고, 여기에 각각의 단어의 감각을 찾아내고 속성을 뽑아내서 그것을 뒤집어 보고 하는 등등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가다 보면 단어 채집장은 한 단어가 지닐 수 있는 잡다한 요소들을 모조리 모아놓은 것 같은, 단어의 위키피디아 같은 내용의 글 모음집이 된다.

 

이런 훈련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가 관찰이다. 내 주위에 있는 것들, 내 머리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들, 이런 세세한 것에 대한 관찰이 없이는 한 단어에서 시작해 여러 단어들을 줄줄이 엮고 그것을 느끼고 파헤치고 뒤집는 일을 할 수 없다.

 

보인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들을 유심히 뜯어보고 잡으려고 해야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보인다. 그것이 관찰이다.

 

그런데 그냥 기계적인 주시(注視)만으로 관찰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이리도 보고 싶고 저리도 보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애정이 있어야 눈에 보이는 껍데기 속으로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그것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네모난지 둥근지 살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외수가 단어의 장에서 펼쳐보이는 숱하게 많은 예시조차도, 그것이 표현하는 사물(대가리, 대갈통 따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다 읽어내기가 버겁고 숨가쁘다. 또한 그것을 다 읽어내고 나면 내 눈을 스쳐가 그 많은 단어들이 “사랑”의 느낌으로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생겨난다.

 

물론 나는 단어채집을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연습 삼아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스쳐지나갈 때는 깨닫지 못했던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니 진짜로 단어채집을 하겠다고 덤비게 되면 사물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애정이 오죽하랴.

 

글은 쓰는 자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사물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본문 중에서)

 

결국 글쓰기란 내가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표현이라는 것. 애정 없이는 “글다운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 정도만 깨달아도 내 수준의 “공중부양”은 이룬 것 아닐까 한다.

 

사족 삼아 한 마디 덧붙이면, 이 책에서 나를 가장 흐뭇하게 만들어 준 대목은 바로 아래의 문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포트, 독촉장, 공문서, 보고서 따위의 형식적인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서는 리포트나 독촉장이나 공문서나 보고서 따위처럼 형식적인 글은 다루지 않겠다. 행여 그대가 그런 류의 글을 쓰는 방법을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리포트, 독촉장, 공문서, 보고서의 질도 훨씬 향상된다. 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믿고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이 대목은 책의 딱 중간 쯤에 나온다. 사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종류의 글이 아닌지라 그때까지 읽기가 좀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매우 흡족해져서는 시키는 대로 끝까지 읽었다.

코코@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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