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벌금제, 소득에 따라 벌금액수를 달리 하자

한참 화제가 되었던 핀란드 노키아 회장의 과속벌금 문제에서 촉발된 얘기이다. 
과속, 주차위반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부자나 가난뱅이나 벌금을 동일하게 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차등적인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이다. 
(과태료, 범칙금, 벌금 등의 차이점을 논하는 것은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와는 다른 문제이므로 다루지 않도록 하며, 사소한 범죄도 모두 범죄로 간주하고 벌금형도 모두 동일한 형벌로 간주한다.)
언뜻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논제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따지고 들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혹시 술자리 등에서 화제가 떨어질 때 아는 척 하면서 써먹어 보시라고 간단히 정리를 해 보자. 
항상 그렇지만 논쟁의 대전제는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시작해야 된다. 그게 안되면 개소리와 그에 대한 응징만이 남을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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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원칙은 “동일 범죄 동일 형량의 원칙” 이다. 
이 원칙은 아무도 부정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원칙이다. 
이 원칙을 쉽게 해석해 버리면 똑같은 과속에 가난뱅이는 2만원, 부자는 2억원의 벌금을 매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수작이 된다. 하지만 일수벌금제 같은 것이 논의가 되는 이유는 이 대원칙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 더 보강하자는 의미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이 논쟁을 따라오는 첫 걸음이 된다. 
두가지 경우를 보자. 
먼저 소득에 상관없이 동일한 범죄에 동일한 벌금을 매기는 경우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이 경우 주차위반은 4만원의 벌금을 내게 된다. 누가 하더라도 말이다. 
두번째로는 동일한 범죄에 서로 다른 벌금을 매기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소득기준으로 범죄자를 구분해서 1등급은 주차위반에 백만원, 최하 등급은 주차위반에 만원의 벌금을 매기는 식으로 말이다.  
이 경우, 전자는 동일 범죄 동일 형량의 원칙을 지킨 것으로 보이고, 후자는 위배한 걸로보인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어떤 사람에게는 4만원은 휴지보다 못한 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날 하루의 소득액수 전부보다 높을 수도 있다. 이게 과연 동일 형량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즉, 동일 형량이라는 말에는 그 형벌을 받게 되는 범죄자의 고통이 동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범죄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이유가, 범죄예방의 차원이거나 이미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피해보상의 차원이거나 하는 형벌 본래의 의미와도 상관이 없다. 
그저, 동일한 형량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더 현실적으로 해석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해 보자면, 후자가 좀더 동일 형량의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수벌금제 같은 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이게 완전히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련한 논문 하나를 소개해 본다. 
또한, 이 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논의된 적도 있다. 
그것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같은 좌빨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시절에 있었던 논의다. 총리 주재의 회의에서 논의가 되어 법무부에 제안이 되었고, 법무부는 원칙적으로 이 제안을 받은 상태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제도를 연구해서 도입하자는 것이다. 
일단 범죄의 양형 기준을 액수가 아니라 일수로 통일하는 것이다. 즉, 과속은 3일형, 주차위반은 2일형. 
그렇게 되면 법정에서는 부자건 가난뱅이건 상관없이 해당 범죄에 부과할 수 있는 동일한 기준으로 양형을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동일 범죄 동일 형량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그렇게 되고 벌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해당 범죄자의 1일 소득을 산정해서 실질적인 벌금액수를 산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이 부분에서는 동일 범죄 동일 형량의 원칙을 “현실적으로 같은 고통을 느끼는 수준”으로 전환하여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런 식이라면 동일 범죄 동일 형량의 원칙이 좀더 강하게 지켜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원칙을 깨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 보강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핀란드, 독일, 스위스 등에서 이런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대략 이 정도라면.. 
나는 이런 개념이 깔려 있는 일수벌금제가 원칙적으로 훨씬 더 옳은 제도라는 판단이 든다. 이게 정치적 스탠스와는 무관한 이야기일 뿐더러, 복잡한 법철학하고도 별 관계없는 현실적인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이다. 
거기에 소득 파악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은 국가 운영의 전반에 걸쳐 투명한 소득파악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문제로 논란을 확대시키는 부분이라서 굳이 연계시키고 싶지는 않다. 
소득 파악의 정확도를 올리는 작업은 이 문제 말고 오히려 조세 정의를 수립하고 국가 투명도를 올리는 엄청나게 큰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유로 일수벌금제의 도입의 의미를 깍아내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일수벌금제는 이것 대로 추진할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같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이따위 제도가 뭐람~ 하는 불평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한탄만 하고 있어야 되는 걸까? 그런 자세는 지나치게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태도일 것이다. 
자.. 이제.. 
이 얘기가 술자리에서 잘난척 아는척 하기에 훌륭한 꺼리로 보이시는가? 그렇다면 주변에 전파해 주시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얘기를 하고 변화에 동의한다면, 표냄새라면 상어가 피냄새 맡는 것 보다도 더 잘 맡고 다니는 국회의원들이 냄새를 맡게 되고, 누군가는 국회에 이 관련 법안을 제출하게 된다. 논리적이고 법리적인 연구는 다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법안이 통과되어 실제로 적용되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좋아진다. 
그게 우리가 채택해야 되는 진보의 방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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