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예행연습

타이밍도 적절했고, 이 정도 규모의 재보선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험 적용해 보는 것은 상당히 적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통합선거인명부가 적용되어 치러지는 새로운 부재자 투표 시스템, 부재자 투표라기 보다는 거의 “사전투표제”에 더 가까운 상당히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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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와 관련된 공직선거법은 2012년 2월에 개정되었다. 
법 개정이 앞서고, 실질적인 변경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선관위는 이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선을 꽤 오랜 시간동안 장기적인 목표하에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방향은 별로 문제가 안된다. 문제가 아니라 좋은 거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투개표 시스템도 같이 발전하는게 맞기 떄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둘러싼 불신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따라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되었거나, 법은 개정되었고 이번 재보선에서는 새롭게 바뀐 제도가 실제로 도입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 부분. 기존의 부재자 투표 사전 신고가 사라진다. 이 작은 변화로 인해 상당히 큰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부재자는 자신의 주소지에서 떠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가 어디로 가 있게 될지는 모른다. 심지어 해외일 수도, 국제적인 항로를 오가는 배 위일 수도, 아니면 그저 옆 도시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나 어디에 있을 거라고 신고도 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투표를 하게 되나? 
바로 온라인에서 확인가능한 “통합선거인명부”가 제공되면서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투표일 당일부터 역산하여 5일전, 4.24 재보선이 수요일이니까 5일전이면 19일 금요일이다. 거기서 이틀간, 즉 19, 20일,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부재자 투표가 시행된다. 이 부재자 투표시일에는 오전6시부터 오후4시까지 누구나 근처에 있는 부재자투표소에 나아가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재자투표소는 전국 선거의 경우 전국에 설치된다. 이번 재보선 같이 특정한 지역에만 선거를 치를 경우에는 해당되는 지역에만 설치된다. 
그 부재자 투표소에 자신의 주소지와 관계없이 아무 곳에나 가서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이 사람이 유권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온라인 시스템으로 제공되는 “통합선거인명부”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 선거일 닷새,나흘전 불금과 토요일에  
– 근처에 있는 아무 투표소에나 가서, (이번 선거는 재보선이니 투표가 있는 지역에서만 투표소가 설치된다. )
– 내가 유권자임을 온라인으로 인증을 받고 
– 미리 투표를 해 버릴 수 있다.
이게 새로 도입되는 선거 시스템이다. 
형식적으로는 부재자투표제도가 개선된 것이지만, 선거제도 자체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투표시간이 무려 20시간이나 늘어났다. 그것도 평일이 아닌 주말포함해서.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총 중심으로 투표시간 몇시간 늘려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을 쳤었는데, 몇시간 정도가 아니라 이틀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부재자투표가 엄청 쉬워졌다. 대학교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네 마네 하고 싸우던 것도 무의미해졌다. 
이번 선거야 재보선이니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만 투표소가 설치되지만, 다음에 치르게 될 전국선거에서는 그냥 전국 아무곳에나 읍면동 단위로 설치되는 부재자투표소에 가서 누구나 투표를 할 수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틀간의 사전투표가 시행되는 걸로 볼 수 있다. 
부재자 투표제도를 고쳐서 사전투표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난 이거 적극 찬성. 
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상당히 큰 폭으로 증대된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는 아무런 반론이 있지 않을 것 같다. 원래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좀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기관이 맞고, 좀더 편한 투표 시스템에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과연 이 변화가 좋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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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바로 이 서비스가 “온라인”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직접 투표를 하는 것은 아니다. 투표용지가 온라인화 된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에게 투표를 했는지가 온라인상으로 전송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유권자인지, 내가 통합선거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지만 온라인으로 확인을 하게 된다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그 명부를 누가 건드리면 어쩌냐는 것이다. 
명부는 투표권을 의미한다. 명부를 확인만 하는 것이면 그래도 좀 낫다. 원래 온라인은 Read-Only, 읽기만 하는 시스템일 경우가 훨씬 더 안전하다. 그러나 이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은 100% Read-Only 는 아니다. 
확인 후, 내가 투표했음을 “기록”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기록은 입력, Write (SQL식 표현이라면 insert 가 되겠지..) 작업이다. 이 기록도 중앙에 있는 온라인 상에 존재하는 서버에 집중적으로 모이게 된다. 이 기록을 건드리게 된다면.. 아주 손쉬운 단순 연역으로 “이중투표“가 가능해진다. 
현재 시스템이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늘어나는 위험성은 바로 이 부분, 온라인 침입을 통한 이중투표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당연히 선관위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온라인 자체를 인터넷과 완전히 분리된 국가망을 쓰고, 국가망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VPN을 쓰고, 모든 라인과 서버를 이중화하고, 등등 기술적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수단은 적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할 때를 대비해서 가장 원시적인 기록방법, 종이에 손으로 쓴 기록을 남기는 방법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온라인으로 유권자임을 확인하고, 투표를 시행하면서 별도의 종이 연명부에 이름, 민번, 서명 등을 받아서 (기존에도 지역별 연명부에 서명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보관했다가,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확인해 볼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두면 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시연을 통해 본 투표 시스템에는 적용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가 직접 선관위 담당자에게 구두로 제안을 했고, 그 쪽에서도 이해를 했으니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말이다. 
(* 이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투표시스템에 공헌을 한 셈이다. 난 이렇게 착한 일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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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위험성은 이번 대선 후에 봤듯이, 어떤 시스템으로 어떤 투표를 치르더라도 의혹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거기다가 온라인까지 적용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고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홍보작업이 병행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유권자임을 확인해 주는 노트북의 화면을 보면서 당연하게도 “해킹”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역시나 당연하게 “해킹에 의한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이미 늦어진다. 또 무수한 사람들이 음모론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선관위는 이를 해명하지 못하고 쩔쩔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터진 다음에 고생하지 말고 사전에 충분한 홍보를 우선해야 할 텐데, 선관위라는 조직의 특성상 홍보에 능하지 못하다는 점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역시 그런 홍역은 또 한번 치르고 넘어가야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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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63년에 설치되어 이미 창설 50주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조직이면서도 선거때만 되면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그 동안 선관위가 제대로 일을 해 오지 못한 측면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그 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된 것이고, 그 의심속에서 아무리 일을 잘 해봐야 선거라는 이벤트의 승부적 효과로 인해 패배한 측에서 언제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한 선거법 적용을 수시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관위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불공정한 선거운동 관리를 하고 있으니, 아무리 최신 설비를 도입한 세계 최고 수준의 투개표 시스템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이 역시 불공정할 것이라는 대중적 불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분석해 본 결과로는 선관위의 선거운동 관리 부분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투표/개표 시스템은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실제로 투개표가 끝난뒤 재검표를 해본 사례들을 모두 찾아 봐도, 선관위의 투개표 관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적은 없다. 
결국 선관위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투표 이전의 선거운동기간에, 선거법 적용을 좀더 공정하게 할 수 있는 것, 정치권과 권력층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좀더 강하게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내고 시행하는 것이다. 무척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하지 못한다면 선관위는 항상 의심받고 질타를 당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기왕에 나름 성의껏 만들어낸 투개표 시스템의 작동 프로세스에 대한 대중적 홍보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개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도 모른다. 모르니까 오해가 발생하고, 오해가 발생하니까 음모론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을 마치고 또 어떤 문제들이 터져 나올지, 또 무사하게 선거가 치러졌다 하더라도 또 어떤 투개표 의혹이 발생할지 이젠 궁금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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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망은 그리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핵심적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못한 조직이 선관위 아닌가 말이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선관위가 국정원에 비하기 힘들 정도로 상위기관이다. 국정원이야 행정부의 일개 부서 아닌가 말이다. 선관위는 헌법 직속기관으로 대통령도 당선증 받기 위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징적 기관이고 말이다. 선관위는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오로지 유권자만 바라보고 가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이 유권자들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도 써 있다. 
과연 이번 재보선에서는 우리의 중앙선관위가 이렇게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유권자들을 위한 유권자에 의한 유권자의 선관위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될지 기대할 뿐이다. 
비록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사진은 최근 선관위가 개최한 새로운 투표제도 설명회의 모습이다. 이 글은 이 행사를 통해 입수한 자료들에 의해 쓰여졌음을 밝힌다. 참가자들에게는 무척 비싸 보이는 식사도 제공되었다. 뭐 꼭 그것 때문에 간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뱀발> 선관위는 투개표 과정에서 민간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적극 원하고 있다고 한다. 투개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선관위에 문의하고 직접 참여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으로 통해 작동하게 되는지 한번씩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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