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의 미학 – 프로와 아마츄어

(* 미리 명확하게 밝힙니다. 이 글은, 제게 직접 제작한 면과 소바장, 라유를 제공해 주신 모 식당의 주방을 관장하시는 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식당 모습이 담긴 사진과 위치 정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피치못하게 광고 효과가 있을 수 있으며, 고마운 마음에 식당 홍보를 해 드리고 싶다는 의도까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에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지어낸 거짓 내용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드립니다. *)
사실 음식을 즐기는 것, 내가 원하는 재료로 내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내고 그 맛을 즐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어떤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재료에도 한계가 나타난다. 결국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산지까지 쫓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수입되지 않는 외국의 식재료를 구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어느 한 구석에선가 팔리고 있는 식재료를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약간의 예외라면 직접 밭에다가 채소를 기르는 정도라고나 할까.. 
재료를 구했다 해도, 그것을 “가정”에서 조리할 수 있는 것에는 역시나 또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냉면 육수 같은 것, 이런 것을 500미리, 1리터 단위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보통 국물의 경우 500미리 정도를 1인분으로 간주하기 마련.) 순대국을 만들기 위한 육수, 설렁탕을 만들기 위한 육수, 돼지국밥을 만들기 위한 육수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것을 집에서 조리한다는 것은 대가족이 모이는 잔치때 말고는 불가능하며, 심지어 요즘의 생활방식으로는 잔치때에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이것 역시 한계로 작용한다. 
거기에 재료가 있어도 집에서 만들기 힘든 중간재료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면이다. 밀가루하고 소금(소다 같은 것은 쓰지 말자.)이 있다 한들, 집에서 어떻게 좋은 면발을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소면, 중면 모두 마찬가지고, 파스타도 마찬가지다. 파스타의 원료를 다 구비했다 하더라도 집에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마트에 가서 만들어진 면을 사다가 삶는 수준으로 만족해야 한다. 
칼국수 정도라면 집에서 만들 수도 있겠다. 열심히 끙끙대며 반죽을 하고 숙성을 시켜 칼로 썰어대면 된다. 하지만, 음식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현대의 사회인이 집에서 이 작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마트에서 포장된 칼국수를 사다가 삶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내가 제일 불만인 것 중의 하나가, 짜장면, 짬뽕 등에 어울리는 면발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메밀국수(모리소바)나 잔치국수용 면발은 마트에서 구할 수가 있고, 나름 괜찮다. 적당한 면을 사다가 삶아서, 적당한 국물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이 정도면 행복하지. 
그런데 짜장면이나 짬뽕을 만들 때 마다, 여기에 적절한 면을 도저히 마트에서 찾지 못해 좌절하곤 했었다. 짜장은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 줄 알면서 면이 없어서 맨날 짜장덮밥이나 먹기 마련이고, 짬뽕 국물은 만들어서 찌개처럼 술안주로 퍼먹거나 밥을 말아 먹고, 가끔은 라면 면발을 삶아 말아 먹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것 들에 어울리는 면발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 왔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범어사 방향으로 가면 이런 식당이 있다고 한다. 
대략 보기에는 일식 샤브샤브 전문점으로 보인다. 사실 난 이 곳에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이 곳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곳에서는 이렇게 십년이 넘게 일본에서 들여온 제면기를 가지고 면을 만들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저 분이 면과 기타 식재료를 제공해 주신 분으로 “추정”된다. 일면식도 없으니 추정할 수 밖에. 이 사진들을 이 글에 포함시켜도 좋다는 허락도 아직 받지 않았다. 글을 완료한 뒤에 받아볼 생각이다. 
그저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서, 내가 먹거나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수준인 나와는 달리 직업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생업을 삼는 분이다. 쉽게 말해서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다. 
이 분께서, 내가 블로그에 가끔 올리는 음식 관련 얘기들을 지켜보셨던 것 같다. 그리고 트윗 상에서 가끔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더니 덜컥 면발을 보내줄 테니 한 번 맛을 보라는 제안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영부영 하다 보니 우리 집 주방에는 상당히 적절해 보이는 면발과 소바장, 그리고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라유(고추기름)까지 들어와 있었다. 
직접 써서 보내주신 메모에는 생면의 성분까지 적혀 있었다. 물과 천일염, 밀가루와 전분(고구마)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금의 양도 보통의 수준에 비해 훨씬 줄인 것이라고 한다. 
시험삼아 면을 삶아 봤다. 
하필 그 때 나는 비빔면이 먹고 싶었기에 이런 저런 야채를 준비하고, 비빔장을 만든 뒤, 면을 삶기 시작했다. 팔팔 끓인 물에 면발을 풀어넣고, 끓어 넘치려고 하면 찬물을 약간 부어 냉각시키기를 두 번. 그리고 찬물에 깔끔하게 헹궈내고, 준비한 그릇에 담아 비빔장과 야채를 얹어 만들어 봤다. 
비비기 전에 맨 면발을 좀 집어서 씹어 봤더니.. 이 탄력과 맛이 범상치 않다. 
비벼서 먹어 봤더니.. 소면이나 중면, 혹은 메밀면에 비볐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맛은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으면서도 고소한 맛을 유지하고 있었고, 씹히는 탄력은 면발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끈적거리지도 않고 흐물거리지도 않고, 적절한 씹힘을 제공하면서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면발. 
그날 저녁에, 바로 면의 제작자 분께서 직접 추천하신 “냉우동”을 만들어서 가족들과 함께 시식을 해봤다. 냉우동이라는 것은 사실 이런 밀가루 면발 말고, 메밀면을 따로 담긴 소바장에 찍어먹는 방식인데, 이런 형태로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이름을 붙이기가 힘든 그런 음식이었다. 
면과 함께 보내주신 소바장에 파를 잘게 썰어 넣고, 강판에 간 무우를 적당량 넣고 김가루를 조금 뿌려 준비한 뒤, 면을 삶아 잘 헹궈내고 채반에 받쳐 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생와사비를 종지에 담아 놓는다.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장에 담궈내고, 면발 위에 와사비를 살짝 발라 한입 먹어 보니.. 
이건 A급 일식집에서 제공되는 정통파 모리소바 보다도 더 괜찮은 맛이 나온다. 아니 어떤 관점에서는 메밀면이 아니라 향은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대신에 면발의 질감이 훨씬 더 우수하다. 소바장의 달콤한 맛에 탱탱하고 매끄러운 면의 질감이 어우러져.. 뭐 이런 식으로 자꾸 더 쓰면 지금 미스터 초밥왕 찍냐고,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지적이 나올 것 같아서 그만 두도록 하겠다. 하여간 졸라 맛있었다. 
딸아이의 소감은, 딱 한마디. “면발 쩐다.”
그리고 내친 김에 어제는 짬뽕도 직접 만들어 봤다. 여지껏 하던 대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시원하고 얼큰한 짬뽕국물을 만들어 내고, 똑같은 방식으로 면을 삶아낸 뒤, 국물을 부어 마련을 해봤다. 
잘 어울린다. 보통의 중국집에서 시켜 먹는 짬뽕에서 내가 싫어하는 텁텁함을 빼고, 면과 함께 동봉된 라유를 듬뿍 쓰고, 단맛을 최대한 억제해서 얼큰하고 시원하게 만든 짬뽕 국물에 탱탱한 면발이 어우러진 맛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짜장면인데.. 
짜장면 만들기 전에 면발을 다 먹어버릴 모양이다. 지금 두타래 남아 있는데, 이거 아마 짜장 만들기 전에 냉우동으로 다 먹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은 어디 있냐고? 가족들과 함께 뭔가를 먹을 때에는 민망해서 사진을 잘 못찍어서 별로 없다. 짬뽕 사진 한장만 보여주도록 하겠다. 
만약 사진이 맛이 없게 보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엘지 옵티이의 후진 카메라 덕분이라고 우겨 보겠다. 사실은 사진을 너무 못찍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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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렇다. 
그저 취미삼아 가끔 마트에 들러 식재료들을 사고, 가급적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들 보다는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을 즐기는 아마츄어에게는 항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가끔 음식이 실패하면, 다음에는 좀 더 맛있게 되겠지 하면서 대충 참고 먹어 치우기도 한다. 좀 심하게 실패를 해도 재료가 아까와서 다 먹어 치우기도 한다. 사실 한계도 한계지만 긴장감도 별로 없다. 대충 맞춰 먹으면 되지~ 하는 심정. 
하지만, 프로페셔널 들은 다르다. 음식이 맛이 떨어지면 당장 손님들의 타박이 이어질 것이고, 직업이 붕괴한다. 엄청난 긴장과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매일 이어가야 한다. 새로운 시도는 몇년에 걸쳐 누적되어야 하고, 그 맛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수한 실패와 무수한 재료 낭비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 결과 프로페셔널들이 만들어내는 음식들은 “상품”이 된다. 아마츄어가 만든 음식은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된다. 
우연한 기회에 그런 프로페셔널의 솜씨를 맛볼 수 있었던 기회를 가져봤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음식들 말고, 어떤 한 요리사의 노력이 담긴 식재료들을 접할 기회를 가져 본 것이다. 내가 만나고 있는 한계 너머에 서 있는, 진작에 그 한계를 넘어선 어떤 프로페셔널의 작업의 결과를 본 것이다. 
나한테는 행운이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신 트윗 아이디 군개일닭 @1900lamen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나야 워낙 멀어서 못 가지만, 혹시 근처에 계신 분 있으시면 찾아가 보시길 권하고 싶다. 면발 하나에 이런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시는 분인데, 손님들에게 내는 주메뉴는 어떨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직접 가봤더니 별로더라~ 하셔도 어쩔 수는 없다. 그건 내 책임은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좀 지시길 바란다. ㅋㅋㅋ
트위터에서 맨날 개드립만 치더니 이런 일도 있다고, 마눌님께서도 신기해 하시지만 나 또한 신기하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음식을 접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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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면발의 미학 – 프로와 아마츄어

  1. 어느 직군에서 어느 일을해도 항상 힘든일만 오지않죠. . .
    여차저차하며 살다보면 어느틈에 찾아와 살맛 느끼게해주는 그래서 또 즐겁게 실수있는 삶의활력소. . .
    그래서 또 감사하며 삽니다. . . ㅋㅋ 전 가끔 비슷한거 경험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또 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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