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강철대오

아는 꼰대는 아시겠지만, “구국의 강철대오” 라는 것은 80년대 말 탄생했던 전국적인 대학생 운동권 조직, “전대협”의 구호였다. 
난 솔직히 아직도 이 구호를 들으면 코끝이 찡해지고 아스라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맞다. 내가 바로 그 꼰대다. 바로 그 전대협의 주제가, 우리들의 주제가가 “전대협 진군가”였다. 

지금 다시 들으면 무슨 북경 해당화 식당에서 울려 퍼지는 북한 유행가처럼 구리긴 하지만, 당시에는 참 대단했다. 가사를 보면 대략 이런 구절이 있다.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총칼로 짓밟는 너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맞다. 진짜 말 그대로 총칼로 짓밟히던 시절이었고.. 아.. 칼은 아니었나? 하여간 총은 있었다. 그러던 시절이었으니 강철같은 대오가 필요하기도 했었고, 그런 삭막한 시절에 우리들이 이렇게 뭉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동 먹고 질질 울던 시절이었던 거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술마시던 친구들이 잡혀가고 최루탄 맞아 죽고 군대 끌려가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씹어 삼키며 부르던 노래였던 거다. 
조금만 더 치라고.. 우리는 시퍼렇게 날이 서 가고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저랬던 기억들도 세월의 저편으로 다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뭔가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느낌만..)도 드는 그런 세대가 되어 버린 거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강철같은 단일대오, 어떤 말로도 설득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견딜 수 있는 그 강철대오가 옳은 걸까? 
이제부터 수학 비스무리하게 논리적으로 이 강철대오가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서 보여줄 참이니까 잘 보기로 하자. 
증명 시작. 
1. 우리가 박근혜 지지자를 설득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두 가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있다. 
1-1. 니들 말 따위는 다 구라야. 닥치고 박근혜 지지!
1-2. 잘 들어보니, 내가 뭔가 잘 모르고 있었군. 좀더 설명해 봐. 생각 좀 더 해볼테니. 
위의 두가지 경우 중에 1-1의 경우를 보면 “이런 조또 모르는 게 말도 안되는 수작을 우기고 있어~” 하면서 빡치게 된다. 
1-2의 경우를 보게 되면, 오오~ 이 사람은 박근혜를 지지하고는 있었지만,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야.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었군. 
이렇게 된다는 거다. 거기다가 1-2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게 되면, 그 사람은 여지껏 기회가 없어서 이쪽 진영의 논리를 접해보지 못한 것 뿐이라는 점도 알게 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의 인생이 그래 왔던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합리적인 태도, 설득 가능한 태도” 를 가진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가치나,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가치를 판단하려면, 
현재 그 사람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을 우리 쪽에다가 그대로 대입시켜 보자. 
2. 나는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한테 와서 문재인은 그리 훌륭한 후보가 아니라고 설득을 하려고 한다. 
2-1. 까고 있네, 닥치고 문재인 지지!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2-2. 그래? 니 주장은 뭐냐?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봐. 맞는 말이면 내가 설득당해주마. 
자, 둘중의 어느 태도가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좀전에 우리가 내렸던, 현재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게 중요하다는 결론에 의하면, 2-1의 경우는 박근혜 지지자들 중 1-2 보다 못한 놈이 되어 버린 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동의할만 하지 않을까? 
QED. (Quod erat demonstrandum) 증명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내가 아무리 훌륭한 입장을 가지고, 훌륭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새로운 설득에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얻은 결론이라면,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절대 흔들리지도 않고 유혹당하지도 않는 우리의 태도는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결론을 아주 쉽게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렇게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가치나 사상, 입장 같은 것은 별로 없다. 내가 불가지론자라서가 아니고 실제로 경험적으로 그렇다. 
그러니,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라는 노랫말을 듣고 코가 찡해지는 내 감정은 그저 추억속에 묻어 두어야 하고, “강철같은 대오”를 외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옳지 않은 태도” 라는 점을 이제는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운동이 그랬었다. 
주사파, 아니, NL 들이 추구하던 통일운동 역시 그러했다. 
좌파들의 운동도 비슷했다. 
거의 모든 진보주의자들의 운동판에는 언제나 이런 문제가 깔려 있었다. 자신들만이 옳고, 자신들의 대오는 언제나 강철이었다. 
그런 잘못된 풍조가 강하고 멋진 걸로 오인 받으면서 새롭게 정치판에 뛰어드는 젊은 세대들 역시도 자기들만이 옳다는 확신에 찬 개발질을 수두룩 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는 그런 식의 태도,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고 혈기 넘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쥐뿔도 모르고 설치는 독선적인 개발질 같은 그런 태도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아무도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잖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어서가 아니고, 이제는 그런 맹목적인 감성의 분출을 구리게 본다고. 실제로 구린게 맞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꼭 이렇게 한발 뒤로 물러서서 좀더 차갑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얘기인 거다. 
그러고보니 수천년 전에도 꼰대들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좀 삼천포로 온 것 같기는 하지만 이게 오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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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오글거리는 제목의 책광고






4 thoughts on “구국의 강철대오

  1. 그걸 아는 사람이……
    실제로 알긴 아는 건가요?
    아니, 하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도 있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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