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스카이

 

난감한 일이다.

어제 무려 용산 CGV 까지 가서 영화 “아이언 스카이”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 왜 난감한지.

근래 십년이래, 난 이렇게 대단한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영화 보는 내내 이렇게 집중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유쾌한 기분으로 크레딧 올라가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기분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주고 싶어졌는데, 막상 설명을 하자니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될 때 얻게될 재미를 반감 이상, 80% 이상 깍아먹게 될 판이니 말이다.

이걸 말을 해, 말어..

그래도 최대한 스포일을 피하면서 얘기를 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의 우려가 있으니 영화를 최대한 즐기겠다는 맘을 먹으신 분들이라면,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 외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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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포스터를 보자.

영화에 대한 첫 인상은 포스터에서 온다. 하지만 포스터는 물주의 입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이미지라는 점은 에러.

 

 

이게 아마도 우리나라 개봉을 앞둔 공식 포스터일 것이다. 이 포스터는 이 영화의 본질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본질을 전달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절대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주인 VS 지구인의 전쟁을 다룬 영화도 절대 아니다. 그리고 저 장면, 전혀 영화에서 중요성 있는 장면도 아니다.

 

이 포스터를 한번 보자.

 

 

이포스터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똑같이 황당해 보이는 이미지를 깔고 있지만, 이 영화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포스터 되겠다.

We come in PEACE…

이거 중의법이다. 이 문장은 보통 SF에서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면서 자신들의 음험한 속내를 숨기고 지구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많이 쓰이는 상투적인 용어다. 음험한 속내는 대부분, 지구를 파괴하거나, 인류를 멸종시키거나, 아니면 인류를 식량으로 채취하려고 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외계인이 안 나오거든. 외계인도 아니면서 이런 소릴 할만한 놈들은 누구일까?

바로 나찌(Nazi)다.

늘어서 있는 인물들을 보시라. 삐딱하게 서 있는 우주복 입은 흑인 말고는 대부분이 나찌의 군복을 입고 있다. 물론 좌측에 가죽옷 입고 있는 섹시한 여성도 나찌로 보이지는 않는다. 가죽옷이라는 드레스 코드가 맞긴 하지만..

배경으로 서 있는 인물들은 아예 나찌의 정규군복에 나찌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저 마스크, 영화 스타워즈의 주인공(주인공 맞나??) 다스 베이더의 디자인의 모태가 된 독일군 가스 마스크 맞다.

그리고 국내용 포스터에는 지워져 버린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도 들어가 있다. 좌측 빌딩 벽에 붙어 있는 Yes she Can 포스터. 바로 이 영화를 관통하면서 가장 나찌스러움을 자랑하는 미국 대통령 후보이다. 여성이다. 이 여성은 사라 페일린이 모델인 걸로 보인다. 하는 짓도 사라 페일린과 똑같다.

하여간 이런 영화의 중요한 요소들을, 처음 보면 저게 뭔가~ 싶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아아~ 저 포스터에 있던 저 기이한 존재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어~ 하고 무릎을 치게는 만들어 줘야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스페이스 나찌,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달 뒤로 도망가버린 제3제국의 나찌 잔당들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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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나찌를 한때 저 지구 반대편 동네인 유럽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골때리는 애들, 혹은 졸라 멋진 군장비들을 만들어냈던 애들, 혹은 요즘 머리를 반짝반짝하게 밀고 깽판치는 스킨헤드 족속들 뭐 이런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사람들, 특히 뭔가 추상적인 정치나 사상 같은거 신경쓰는 사람들은 나찌를 매우 강렬한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개인을 무시하는 국가권력의 존재,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이 되는 유권자를 속이는 정치, 정치 홍보술, 나아가 예쁘장하고 멋지게 포장되어 있지만 까보면 개차반인 권력의 속성, 그리고 지나치게 발달한 기술로 무장한 권력의 폭력성, 언젠가는 그 거대한 폭력이 우리들 모두를 이 지구상에서 지워버릴 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우려..

뭐 이런 말들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나쁜 것들의 상징으로 나찌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만약 그 모든 사회적 부조리들의 상징이 나찌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얼마나 나찌스러울까?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도 당장 대선을 치르는 중이지만, 대선 후보들이 지지자들 앞에서 날리는 가식적인 웃음, 실현 가능성 제로에 수렴하는 화려한 공약들, 누가 봐도 뻔한 일들을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정반대로 강변하는 그 두께를 측정하기 힘든 후안무치. 그리고 당선된 뒤에 돌변할 그들의 권위적인 자세.

이거 무척이나 나찌스러운 얘기들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나찌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의 상징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찌는 유태인을 차별하고 죽이고, 흑인은 인간으로 간주하지도 않을 정도의 인종차별을 행한 집단이다. 그러나 오늘날 극단적인 양극화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시장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이 겪는 사회적 권리 침해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나찌의 아리안 족 제일주의는 심지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거기다가 시야를 글로벌하게 넓혀 보자. 각 나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의 나찌 스러움은 사소한 일로 줄어들고 만다.

글로벌 정치판, 즉 외교판에서 벌어지는 나찌스러움은 충분히 우리 상상을 뛰어넘고 남음이 있다. 이라크를 침공하는 조지 부시의 행태는 얼마나 나찌스러울까? 실제로 영화에서도 조지 부시의 이름이 선명하게 등장한다.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간의 분쟁들, 온갖 명분으로 치장되어 사람들을 선동해대지만 알고보면 돈지랄인 그 수많은 다툼들, 이런 거짓으로 치장된 이기주의적인 다툼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유럽 전체를 통일해서 평화적이고 순수한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하던 나찌의 명분이 훨씬 더 소박하고 인간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내용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국제사회는 오리지널 나찌보다 훨씬 더 나찌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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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일어서는 순간 내 머리속에 입력된 결론은 이거였다.

이 영화는 감독이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작품 “독재자”에 바치는 헌정작품이다.. 라는 생각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 채플린의 독재자는 수시로 등장한다. 그리고 10분밖에 보존하지 못한 채플린의 작품을 통해 채플린이라는 거장이 나치를 찬양했다고 믿고 있고, 나아가서 자기 스스로도 진심으로 나찌의 우수함을 믿었던 여주인공은 채플린의 “독재자” 전편을 관람하고 난 뒤, 나찌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미디어와 컨텐츠가 평생 받아온 교육을 한순간에 뒤집을 수도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왜곡된 미디어의 위험함까지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깨닫게 해 준다.

그 뿐 아니라, 이 영화에는 수많은 패러디들이 숨어 있다. 나 또한 전부 다 알아내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덕력이 풍부한 오덕일수록 더 많은 패러디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아이언 스카이이다. 이는 독어의 Das Eisernes Kreuz = Iron cross = 철십자에서 온 말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거의 전편에 걸쳐 나찌를 상징하는 상징물들로 그득하다.

독일의 비행선 힌덴부르크를 닮은 나찌의 우주전함들은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소행성들을 줄로 묶어 끌고와 “메테오블리츠크릭스(소행성 전격작전)”을 시전한다. 시바.. 메테오라니..

그 순간 울려퍼지는 바그너.. 독일군이 즐겨 틀었던 바그너.. 지옥의 묵시록에서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안겨주던 바그너..

한 때 인터넷을 뜨겁게 만들었던 “몰락-히틀러와 제2제국의 종말” 이라는 영화의 유명한 한 장면도 똑같이 패러디되어 등장한다.

우주정거장 미르는 실제 모습 그대로 우주 전쟁을 위한 병기로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의 이름 또한 덕후의 세계에서 명작으로 칭송받는 작품들에서 수도없이 따온다.

실존하는 정치인들, 혹은 그 이름들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며, 그들의 비열한 언행, 거리낌 없이 내뱉는 거짓말들도 통렬한 조롱거리로 코믹하게 그려진다.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힘을 개발해서 달기지를 건설한 나찌 과학자는 아인슈타인과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아인슈타인은 컴퓨팅 파워가 모자라서 아직 가동시키지 못한 궁극의 무기 “신들의 황혼”을 21세기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가동시킨다. 나중엔 아예 태블릿을 연결해서 가동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의 궁극의 무기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장치를 USB라 명명하기도 한다.

잠시 숨이 넘어갈 뻔했던 장면은 바로 수령님의 신묘한 능력을 주장하는 유엔 북한 대사의 등장이다. 우리나라의 관객들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을 정도로 조롱거리가 된다. 하지만 난 그 장면을 보면서 웃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은 우주전쟁에서도 가미가제 정신을 발휘하고, 핀란드는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진짜로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로 나온다. 참고로 이 영화는 핀란드에서 만든 영화다. ㅎㅎ

그리고 나찌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오매불망 염원하는 궁극의 무기를 개발해서 달을 날려버리기까지 한다.

안 건드리는 소재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했던 문제들,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 모두가 이 영화에서는 개그의 소재로 전락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구두가 날아간다. 그리고 미국의 여자 대통령은 하이힐을 벗어 응수를 한다.

유전을 놓고 싸우는 국제사회와 똑같은 이유로 나찌가 채취해 놓은 헬륨3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국가 정상들간의 난투극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지구의 생존을 놓고 나찌와 벌이는 싸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우리 안의 나찌스러움” 으로 인해 엔딩 크레딧과 함께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순박한 나찌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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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웃음보를 터뜨리는 이 영화 스타일의 개그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기존의 영화문법을 전혀 지키지 않기 때문인 걸로 보이기도 하고, 잘못 만들어진 포스터로 인해 이 영화의 정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온 관객들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관람 내내 앞뒤옆 관객들에게 방해 될까봐 웃음보를 맘껏 터트리지를 못했다. 심지어 바로 옆에 부부가 함께 관람을 오셨던 아저씨께서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탄식을 내뱉으셨다.

“살다보면 이런 영화도 보게 되고 저런 영화도 보게 된다지만 이건 참… 쩝”

이 영화를 무슨 블록버스터 우주전쟁 영화나 인류 종말을 다룬 헐리웃 영화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이 영화는 쓰레기다. 조잡하고 그리 웃기지도 않은 개그로 가득찬 B급도 못되는 C급 영화일 수도 있다.

SF덕후나 밀덕들, 아니 그들보다는 차라리 정치덕후들에게는 바이블의 위치로 올라갈 수도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전달력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반인들의 덕력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최고급 정치풍자 영화로 간주하고 싶다. 내가 정치덕후라서 그런가?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세기의 명작, 채플린의 “독재자”의 21세기 버전이 된다.

누구 말 처럼, 이 영화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 두기로 하자. 후세의 역사가들은 21세기의 국제 정치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한 영화로 이 작품을 기록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졸라… 재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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