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정수장학회-박근혜

 

바로 지금, 당신이 정치를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무엇이 제일 먼저 필요하겠는가? 사회에 대한 봉사정신? 역사에 대한 인식? 정치철학? 인지도? 지지자들? 학력? 깨끗한 과거?

다 중요한 조건들이다. 그러나 사실 저런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저런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이거 하나 없으면 못하는 게 정치다.

바로 “돈” 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당신을 위해 일을 해 줄 수 있는 충성도 높은 사람들. 그러나 돈이 억수로 많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반대로 좀 희귀한 경우이긴 하지만,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충성도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좀 힘들긴 하지만 정치를 할 수도 있다.

돈과 사람은 상호 보완재일 뿐이다. 그것도 돈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돈이 아주 많으면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아니, 그냥 있어도 사람들이 모이고, 반대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돈이 모이기도 한다. 결국 돈이 제일 중요해지는 거다.

우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하다못해 인구 십만명짜리 지방도시의 초선 시의원을 하려고 아무 신경 안써도 기본적인 생계 유지는 가능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돈 때문이다. 정상적인 정치를 하게 되면 정치 자체에서는 돈이 절대 안나오니까 말이다. 시의원, 구의원, 도의원 이런 사람들 월급 주지 않냐고? 그 월급, 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시정활동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결국 자기 돈이 나가기 마련이다.

정치가 깨끗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주장을 하고, 또 부패 정치인들을 아무리 단속해도 정치와 부패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 것도 바로 이 돈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돈을 모아둬야 다음 번에 또 출마하고 당선될 수 있거든. 세비만으로는 그게 도저히 안되거든.

 

그런데 이게 대선주자급으로 올라가게 되면, 그 필요한 돈의 차원이 달라진다. 우선 선거비용의 규모가 달라진다. 참고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비용의 법정 한도액은 지역의 유권자 수에 의해 변동이 되긴 하지만 대략 1억 근처다. 이번 대선의 법정 비용한도는 559억 7700만원이 된다.

물론 이 법정 한도액은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가 지출을 하게 되면 차후에 선관위에서 국고로 보전해 주는 금액이다. 결국 후보자의 돈은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말이 쉽지 500억이 넘는 돈을 일단 먼저 지불하고 차후에 돌려 받아야 되는 상황임을 생각해 보시라.

거기다가 아직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 법정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룰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비공식으로 암암리에 지출되는 돈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선거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평소 해야 하는 활동, 가동시켜야 하는 조직들을 생각해 보면, 결국 정치는 돈싸움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후원금? 공식 후원금만으로 정치활동이 가능한 정치인은 사실 손으로 꼽는다. 연예인 급 인기를 누리고, 팬클럽 조직이 수만에서 수십만의 회원을 가지고 있고 그런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그저, 이권에 관계된 기업들이 음으로 양으로 찔러 주고, 지역의 유지들이 급할 때 돈 대신 써주는 식으로 버틸 뿐이다.

결국 정치는 엄청난 돈이 소모되는 싸움판이고, 그렇게 소모된 돈을 메꾸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부패가 따라오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수 십년 동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특별하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특별한 수입원도 없는 박근혜는 도대체 그렇게 긴 시간동안 무슨 재주로 정치를 하면서 당을 이끌고, 대선 후보까지 된 것일까?

2011년 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을 보면, 박근혜의 재산은 22억 3970만원으로 되어 있다. 그 중 상당금액은 부동산이다.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박사모가 있다고? 박사모는 박사모 회원들 회비 걷어서 자기 조직 꾸리기도 힘든 조직이다. 그냥 자발적인 지지자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독재정권의 우두머리였던 부친이 죽으면서 공식적으로는 상속해 준 것도 별로 없다. 물론 스위스 은행에 60억불 이상의 계좌가 있었고, 박정희 사망 직후 그 계좌의 주인이 박근혜로 변경되었다는 루머가 흘러나온 적도 있긴 하지만 우린 그런거 빼고 공식적인 얘기만 해 보자. 근데 60억불이면 얼마야? 그것도 80년도에…

20억 가지고는 절대 오늘날의 박근혜를 만들 수가 없다.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소리다. 그게 뭘까? 바로 재단들이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 정치인 박근혜, 오늘의 박근혜가 존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재단이라는 존재들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재단이라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어떤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 특정한 재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그 개인과의 어떤 관계가 입증되는 것은 별로 없기 마련이다. 거액의 재산을 세탁해서 상속세나 증여세 등의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고, 사회의 눈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부들이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재단을 이용한 재테크를 감행하기도 한다. 뭐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청계재단이 바로 그런 재단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사회 환원이 아닌 사위 환원 말이다.

박근혜 후보 역시 알려진 네 개의 재단을 법적인 부담 하나 없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그 재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 네 개의 재단이 바로 육영재단, 영남학원, 한국문화재단, 정수장학회가 된다.

 

 

육영재단은 아마 한 번씩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광진구 능동에 자리잡은 어린이 회관을 건립한 것이 바로 육영재단이다. 이 육영재단의 이권을 둘러싸고 박정희의 자식들 간에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치열한 다툼이 있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근령씨가 이 다툼의 선봉에 서 있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를 소유한 거대한 재단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본인이 이사장, 또 이사로 재직하던 당시 부정입학,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터지면서 국내 최초로 국정감사를 받게 되어 대략 20년간 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에야 정상화된 재단이기 때문에 별로 도움 될 것도 없어 보인다.

실질적으로 박근혜 후보와 직접적인 연관이 되고, 박근혜 후보에게 정치적인 힘이 되어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문화재단과 정수장학회인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문화재단은 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해서 본격적으로 정수장학회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살짝 디벼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에 삼양식품 창립자인 전중윤 회장이 현금 5억에 기타 자산까지, 총 11억원 규모로 설립한 “명덕문화재단”의 후신이 된다. 그리고 설립된 바로 그해 10월 26일에 박정희가 암살을 당하게 되고, 다음 해인 1980년 7월에 모든 임원이 사퇴하고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전중윤 회장>

왜 삼양식품 창립자가 자신의 돈으로 재단을 만들었다가, 그걸 죽어버린 독재자의 딸에게 줘 버렸을까? 바로 박정희와 전중윤 사이에 있었던 오랜 인연에 의한 전격 기부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양식품이 삼양라면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대 히트를 치고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 바로 박정희가 있었다. 전중윤 회장 본인이 61년도에 라면이라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즉석식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기획서를 만들어 방금 군사구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정권을 찾아갔었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이 기획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농림부에서 보유하고 있던 자금 5만불을 불하해 주게 된다. 이로써 64년도에 삼양라면 공장이 탄생하게 되고 삼양라면은 획기적인 신상품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박정희 본인도 라면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연이 있는바, 전중윤 회장은 박정희를 자신의 일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고, 은인이 나랏일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그의 딸에게 자신이 가욋돈으로 세운 재단 하나쯤 넘겨 주는 것이야 사람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게 현재 까지도 박근혜 후보 본인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의 기원이 된다. 이 한국문화재단 역시 장학금 사업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박근혜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경북 지역에 60% 이상의 장학금 예산을 쏟아 붓는 바람에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관련기사)

더 재미있는 것은, 이 한국문화재단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바로 신사동인데, 2002년 당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할 당시, 이 신사동에 자리잡은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을 근거지로 활용했고, 그 이후로 계속 박근혜 뒤에는 “신사동팀”이 존재해서 거기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소문이 정가에 널리 퍼지기도 했었다. 사실 바로 그 신사동 팀이 이 한국문화재단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한국문화재단의 이사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다 박근혜의 정치적인 조력자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수장학회가 박근혜의 외연을 담당하는 조직이라면, 이 한국문화재단은 박근혜의 바로 옆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한국문화재단 역시 박근혜에게 “돈과 사람”을 제공해주는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수장학회가 있다. 참 멀리도 돌아왔다.

 


 

 

정수장학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기에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해 보자.

정수장학회는 5.16 구테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부산 지역의 사업가 김지태씨가 세운 부일장학회를 조직적인 계획을 세워 강탈해 5.16 장학회로 만들어 버린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국정원의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이며,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만 아직도 부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후 박정희의 일가친척이 총출동해서 재단을 관리해 오다가 결국 박정희 사후 박근혜에게 넘어 오게 된다. 하지만 이 정수장학회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박근혜 본인은 이 정수장학회의 이사진에서 사퇴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공익을 위한 재단은 이사진의 것이며, 자신은 이사에서 탈퇴했으니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사진이라는 사람들이 몽땅 박근혜의 수족 같은 사람인 것을 어쩌겠는가. 우선 이사장부터 박근혜의 비서 출신인 최필립이라는 사람인데 말이다.

<최필립>

 

어찌되었거나 이 정수장학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재산도 별로 많지는 않다. 그저 은행예금 200억 정도에 주상복합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지고 있다. 부동산이 한 개 더 있긴 하다. 정동에 있는 경향신문사 부지가 정수장학회 소유이다. 뭐 작은 땅이지.. 가격은 얼마나 될까?

아, 그리고 또 있다. 뭐 종이 쪽지에나 다를 바 없는 주식이 좀 있다. 바로 김지태씨로부터 부일 장학회 강탈 할 때 같이 빼앗은 부산일보 주식이 아주 약간… 그러니까 20만주 밖에 없다. 참고로 부산일보 주식 발행매수는 20만주이다. 그러니까 100% 라는 얘기다. 거기에 현금화 하기도 힘든 공영방송 MBC의 주식도 약간 있다. 6만주 정도.. 그건 전체 주식의 30%이다.

사실 MBC는 아직 상장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6만주라고 해 봐야 액면가 취급밖에 못 받기 때문에 6억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지분에 대한 댓가, 그러니까 배당금이라 해봐야, 일년에 3천만원 밖에 못 받는다. MBC가 정수장학회에 매년 건네는 20억은 그냥 장학사업에 대한 기부금이다.

정수장학회는 이름에 걸맞게 호방한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매년 무려 30억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MBC의 기부금이 매년 20억 규모, 그리고 부산일보에서 들어오는 돈이 매년 8억 정도 된다. 그러니까, 정수장학회는 사실상 자기네 돈은 거의 장학사업에 투입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95년 이후 약 15년간 정수장학회의 자산 규모는 100억 이상 늘어나게 된다. 장학사업은 안하고 몸집 불리기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이 정수장학회의 장학금을 받고 큰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상청회라고 흔히 부르는데, 회원 규모가 3만이 넘어가는 대규모 조직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청회가 또 하나의 박근혜 외곽 조직이라고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냥 의심일 뿐이겠지.

그런 정수장학회의 존재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수도 없이 많은 언론 보도가 나오고, 심지어 조중동에서조차 박근혜 후보에게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과의 연계를 털고 임하라는 훈수를 하기에 이르렀음에도 박근혜 후보는 “나와 관계없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잘라 버리고 오늘날 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도저히 관계없다고 봐주기 힘든 사건이 터져 버린다.

이제 겨우 본론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맨날 꽁으로 먹던 기사만 쓰다가 지대로 걸려 혼쭐나는 중이다.

 


 

MBC의 사장 김재철이 MBC를 완전히 말아먹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얘기라면 접어두자. 또 하자면 입만 아프다.

하지만 사고를 쳐도 너무 큰 사고를 쳤다. 한겨레 신문에서 발표된 녹취록에 의해 사건을 재구성 해보자면 이런 일이 있었던 거다.

박근혜의 비서 출신이자 현재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은 맨날 노조들이 “지랄”(이사장 본인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이나 떨고 있는 부산일보 매각 계획을 세운다. 정수장학회에서 지분 100%를 보유한 신문사이니 매각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매수자들은 부산경남 지역의 기업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빽” (역시 최필립 이사장의 표현이다.)이 되어줄 지역 최대 부수의 신문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신문사를 소유하게 되면 자신들이 저지른 나쁜 짓들을 덮어주고 옹호해 줄 대형 스피커를 확보하게 되는 판이니 충분히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부산일보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부산경남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반값등록금” 혜택을 주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박근혜 출마 지역에 장학금을 퍼붓는 수법과 동일한 기법이다. 자기 자식에게 장학금을 퍼준다는데, 어느 부모가 박근혜를 거부할 것인가. 구국의 여신으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그 상황에서 거대 중앙언론, 공영방송 MBC의 현직 사장 김재철이 나타나 신기한 제안을 더해주고 간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MBC 주식 30%, 그것을 매각하라는 것이다.

최필립 이사장은 솔깃해진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만약 김재철 사장이 제안한대로 정수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던 MBC의 주식 30%를 매각하게 되면 그 매각 대금만 6천억원 규모가 된다. 매년 20억씩 찔끔찔끔 받아쓰는 규모가 아니다. 이 6천억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만 받아도 매년 200억이다. 일년에 정수장학회의 현재 전 재산 만큼씩 더 생기는 판이다. 그 돈이면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 전체에게 반값등록금이라는 명목하에 장학금을 뿌려도 될 규모다.

그래서 최필립 이사장은 MBC 실무진을 불러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실무진으로 파견된 사람들은 바로 김재철 사장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진숙 홍보기획본부장과 삼성 출신의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이다.

여기서, 매각 방식에 대한 논의, 계획을 발표하는 시기와 방법, 어떻게 해야 잡음은 최소화 하고 명분은 최대화 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등등등..

아주 전향적이고 생산적인 회의를 했다고 뿌듯해하면서 10월 19일에 어떻게 이 계획을 세간에 발표할 것인가 하는 꿈에 부풀게 된다. 이거 발표만 되면, 부산경남 지역의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한 10%는 올라가겠지 하는 기대도 했음직 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중요한 회의의 내용이 토씨 하나, 기침 소리 하나 안 빼고 한겨레 신문에 전체 노출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아, 이럴 수가.

 

 

김재철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제 자신을 여태껏 지켜주던 이명박 정권만을 바라보면서 버티기는 힘든 시점이 온 것이다.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고, 그 새로운 권력이 자신을 지켜주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신이 관할하는 MBC의 주식을 무려 30%나 정수장학회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그 순간, 정수장학회가 이 지분을 팔고, MBC는 그 좋아하는 민영화도 되고, 거액이 오가는 과정에 뭐 콩고물.. 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이런 저런 가능성이 막 열리면서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추진하면서 희망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에 한겨레가 재를 뿌려 버린 것이다. 이 순간, 김재철 사장이 느꼈을 분노는 익히 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느낄 정도가 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분노가 사람들을 얼마나 찐따로 만드는 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당연히 한겨레의 보도에 대해 MBC 뉴스는 반격의 포문을 열게 된다. 과연 어떻게 이 난감한 국면을 돌파하려고 들까?

기대감이 들떠 지켜본 MBC 뉴스데스크에 나온 그 반격이라는 것이 참 민족정론지 딴지일보의 필진들 수준으로는 절대 따라가기 힘든 경지에 올라 있음을 확인하고서는 본 필자는 좌절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첫단계는 한겨레를 도청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 한다는 것이었다. 한겨레는 녹취록을 보도하면서 이 자료는 “도청에 의한 것은 아니며, 필요하다면 적절한 시기에 취재 과정을 공개할 수 있음을 밝힌다.” 라고 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도청이 틀림없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뉴스 시간에 앵커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까지 주장을 한다.

 

 

“MBC는 정수장학회와 MBC의 지분매각 논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것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양측의 대화 내용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유출된 것은 불법감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꼭지에 이런 얘길 해 버린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겨레가 문맥을 교묘히 왜곡해 마치 정수장학회가 판 MBC지분을 특정지역 대학생들만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역주의를 조장할 수 있는 대목인데, 실제로 민주당은 이 부분을 부각시켜 쟁점화하고 나섰습니다. ”

앞 꼭지에서는 한겨레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유출시켜 보도를 했기 때문에 불법감청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을 해 놓고 바로 다음 꼭지에서는 한겨레가 문맥을 왜곡해 보도했다고 문제를 삼은 거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토씨조차 안 틀리고 정확하니까 도청인데, 문맥을 왜곡한 거라고? 한겨레 기자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 이길래, 토씨조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문맥을 왜곡할 줄 안단 말인가?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한 편인 줄로만 알았던 최필립 이사장은 이렇게 배신을 때려 버린다.

“한겨레 쪽에서 몰래 녹음한 것으로 알고 알아보니 당사자인 MBC 쪽에서 만들어 나간 것 같더라” (중앙일보 인용)

그럼에도 MBC는 절대 굴하지 않는다. 분노의 폭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다음날에는 한층 더 진보한 반격을 날린다. 최필립,이진숙, 이상옥 셋이서 한 회동이 한겨레가 주장한 비밀 회동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그 근거는…

“정수장학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정동의 한 건물. 경향신문건물로 1층부터 8층까지 경향신문이 쓰고, 장학회 사무실은 11층에 있습니다. 장학회 사무실 바로 아래층인 10층에는 일본 산케이신문 한국지사 등이 있고 13층부터 16층까지는 민주노총과 산하노조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각층은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로 연결돼 있어 누구나 수시로 오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

라는 것이다.

장학회 사무실이 있는 곳이 아무나 오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한 회동은 비밀회동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뭐 수긍이 가긴 한다.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비밀회동이라면 청와대 지하 벙커 급이거나 최소한 초원복집 정도는 되어야 비밀회동일테니 말이다.

MBC 뉴스데스크가, 아니 MBC 자체가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렸다.

 


 

암울한 일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이 여당 대선후보와 관계된 장학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거액에 팔아주겠다고 제안을 하고, 재단에서는 그 지분 판돈으로 특정 지역의 대학생들 전원에게 선심성 장학금을 뿌릴 계획을 한다.

비록 그 계획이 다행스럽게도 노출되고,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실행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이 사람들 하던 행태로 봐서는 그거 언제 다시 막무가내로 밀고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재단을 쥐락펴락 하는 대선후보는 아직도 자신과 그 재단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박근혜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을 해 놓은 상태이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 들이 뒷골목 야바위 판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향후 5년간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을 선출하는 시점에 대선후보와 직접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거기까지라는 것일까.

이렇게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들하고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는 것인가. 무슨 선거를 하고 무슨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얘기란 말인지 진짜 모르겠다.

내가 이상한건지, 사회가 이상한건지 정말로 모르겠다.

순간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혹시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는 신종 “꺽기도” 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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