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시모어

 

“퓨처라마”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애니 시리즈로, 심슨 가족의 제작진이 만든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심슨즈를 방불케 하는 통렬한 비꼼은 퓨처라마에서 더욱 그 칼날을 날카롭게 다듬고, 인류라는 종이 자행하는 온갖 짓거리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것들인지를 우리 눈앞에 코믹하게 펼쳐준다.

이런 비꼼의 매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시리즈가 별로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있고 그 문화들을 서로 비교하는 데에 흥미가 있던 사람이라면, 또 인류의 관습이 한발자국만 떨어져 관찰하게 되면 얼마나 허무하고 우스운 것인지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열광할 만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 속에서 문득 한 장면이 가슴에 와서 꽂히고 말았다.

내가 늙어서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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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라마의 주인공은 프라이라는 젊은 친구인데,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바보 캐릭이라서 뭔가 친근해 보이는 그런 인물이다.

되는 일 하나 없이 맨날 골탕만 먹으면서 피자 배달부로 일하던 어느날, 하필 그날은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뉴 밀레니엄의 밤, 장난전화에 속아 냉동인간 연구소에 피자 배달을 갔다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지면서 냉동 캡슐에 들어가 딱 천년간 냉동이 되었다가 깨어나게 된거다.

그래서 졸지에 서기 3000년이라는 시대 배경으로 날아가게 되었고, 자신의 유전적 조카(무지 늙어서 노망이 난 천재 과학자인 휴버트 판스워스.)가 운영하는 우주 택배 서비스에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택배에 사용되는 우주선의 선장은 외눈박이 외계인(에피소드 중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외계인이 아니라 돌연변이 인것으로 알려지게 되지만)이면서 젊고 예쁜 만능 여성 투랑가 릴라.

동료직원은 주정뱅이 로봇인 벤더 벤딩 로드리게스 (뭐든지 구부리는 것이 직업이라 벤더).

중국계 인턴사원 에이미 웡이나 의술을 전혀 모르는 주치의 조이버그, 자메이카 출신 회계사 허미스 등이 함께 나온다.

이들이 펼치는 매회의 에피소드들은 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드라마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나 관습에 대해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영감을 줄 만한 색다른 발상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개스가 많이 배출되어 지구 온난화가 극심해지자, 온실개스 배출의 주범인 로봇들을 모두 학살하려고 계획을 했지만 판스워스 교수의 아이디어에 따라, 모든 로봇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개스를 방출(쉽게 말해서 거대 방귀를 뀌어서)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살짝 늘려 지구 온도를 다시 낮추는 뭐 그런 식이다.

그런 황당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와중에 갑자기 날아와 꽂힌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시즌 4에 에피 7편인 쥬라식 바크, Jurassic Bark 편이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쥬라기 공원의 패러디.

프라이는 20세기의 피자집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광고를 보고 박물관에 구경갔다가 우연하게도 그 피자집이 자신이 일하던 피자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심지어 그 박물관에서 자신이 냉동되기 전에 유일하게 친했고 사랑했던 강아지 시모어의 화석을 발견하게 된다.

시모어는 지치고 힘들었던 프라이가 또 장난전화에 속아 헛배달을 하고 뒷골목에 주저앉아 피자를 꺼내 먹던 중 다가온 못생기기 짝이 없는 유기견. 함께 자기들 것도 아닌 피자를 나눠 먹으며 친해진 시모어는 프라이를 따라 피자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되고..

프라이가 냉동되던 날, 마지막으로 배달 갔다 올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천년의 세월을 넘어 헤어졌던 강아지 시모어를 화석으로나마 다시 발견한 프라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강아지 화석을 전시하고 있던 박물관측에 터무니없는 이유를 달아 일인시위를 지속함으로써 돌려받게 된다.

강아지 화석을 들고 와서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던 프라이를 보며, 자신이 프라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생각하고 있던 벤더는 배신감을 느껴 시모어 화석을 상대로 질투를 하기도 한다.

결국 판스워스 교수의 아이디어에 따라, 화석속에 남겨진 시모어의 DNA를 이용해서 시모어를 복제해 부활시키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 부분 때문에 아마 쥬라식 바크라는 제목이 붙은 듯.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벤더는 프라이와의 우정을 독점하기 위해 시모어 화석을 용암속에 던져 넣었더가 진심으로 슬퍼하는 프라이를 보고 시모어에 대한 프라이의 사랑이 진심임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용암에 뛰어들어 시모어 화석을 다시 구해 온다.

작업은 다시 재개되고, 판스워스 교수는 이 시모어가 15살에 죽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내게 되는데..

그 말을 들은 프라이는 급하게, 복제 작업을 중단시킨다. 물론 뭐 젠틀하게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고 언제나 그 멤버들이 그렇듯이 판스워스 교수가 만든 복제 기계를 마구 때려부수는 걸로..

황당해 하는 동료들 앞에서 프라이는 시모어의 화석을 슬프게 쓰다듬으며 이런 대사를 친다.

 

 

“I had Seymour until he was three.

That’s when I knew him, and that’s when I loved him.

I’ll never forget him.

But he forgot me a long time ago.”

시모어를 세살때 만나고 사랑을 한 뒤로 나는 그를 잊은 적이 없지만, 15살이 될 때 까지 살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나를 잊고 다른 주인에게 갔었을 거 아니냐는 얘기인거다.

그러면서 장면은 플래시백으로 과거로 돌아가 피자집 앞의 시모어를 향하게 된다.

그 때 흐르던 음악이..바로 Connie Francis의  I will wait for you 라는 노래.

시모어는 프라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말을 결코 잊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라는..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가면서 계절이 바뀌고, 피자집 주인이 늙어가고 가게가 망해 문을 닫는 순간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자가게 앞에서 프라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시모어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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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다.

이 친구들, 원래 이런 인간들이 아니다. 인류의 거의 모든 문화와 관습들을 몽땅 다 뒤집어 까발겨 놓고, 낄낄 거리며 비웃는 것이 더 어울리는 친구들이고 거의 대부분 그렇게 에피소드를 채우는 인간들이다.

그러던 인간들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기껏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힘들어 하던 무능한 바보 하나와 그 바보보다 더 초라한 길 잃은 강아지 사이의 우정을 이렇게 가슴 찌르게 그려내다니..

어쩌면 결국 우리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모든 것, 나름대로 자기들 딴에는 멋지다고 개폼을 잡고 칭송하던 모든 것들, 철학적 가치, 찬란한 문명, 뭐 이런 것들은 뒤집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들이고, 사실 궁지에 몰려 서로 보듬고 위하는 마음, 항상 비웃음 당하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나누는 작은 감정 하나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 모두 마지막 순간, 저 시모어 처럼 눈을 감는 그 순간에 과연 무슨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탱구를 기르고 있어서 그런 것만은 절대 아니다.

 

 

 

 

그럼 가을이 와서 이런건가? 줸-_-장….

 







2 thoughts on “굿바이, 시모어

  1. 이거 꼭 찾아서 함봐야겄다. 실제로 대구 한 아파트에 버림받은강아지가 주인기다리는라 몇년째경비실부근에 밤늦게까지 꿈쩍도 않고 기다리다 잠자리로돌아간다는 사연듣고 마음이 엉망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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