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몰락

제목을 참 걸쭉하게 뽑긴 했는데..

사실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지금의 현실은 몰락하고 자시고 할 운동권도 없는 상태다. 몇십명, 몇백명 남아서 지지고 볶는 동호회 운동권들이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차라리 입이라도 살아서 맵게 코멘트라도 해 주는 몇몇 진보적 지식인들의 존재는 읽을거리라도 제공해 주기라도 하니 일그람 고맙기는 하다. 그나마도 일반인들의 인식 상황과 오만광년 쯤 떨어져 있는 소리들이 태반이라 사람들이 학을 떼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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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구십년대, 운동권들은 지금과는 달리 사회적 존재였다.

집회 한번 하면 규모가 적은 집회가 수천명, 연합집회라도 하면 수만명은 가뿐히 넘겼고, 사회적 의제를 선점했으며, 그 의제에 따라 대규모 사회 운동이 벌어졌었다.

예컨대 87년 시스템을 만들어낸 6.10항쟁이 그랬고, 그 뒤를 이은 노동 대투쟁이 그랬고, 90년대 초반의 통일운동이 그랬다. 이 통일 운동이 사실 NL 계열이 주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6.15 공동선언도 끌어 낸거고,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도 만들어 낸 것 아닌가 말이다. 물론 가카께옵서 다 말아 잡수시긴 했지만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거치고 IMF를 겪으며 운동권은 대가 끊기고 말았다.

어지간한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야 뭐 맘만 먹으면 와서 모셔가는 분위기였던 당시와는 달리, 이제 대학을 나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일자리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은 나라 걱정보다는 제 입에 풀칠할 걱정이 더 급해졌고, 심지어 IMF로 인해 길거리로 나앉아 버린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만,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운동권 활동을 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 정권의 탄압이 제아무리 극심해도 끄덕없이 견디던 운동권들은 경제난 한방에 자연 소멸된 셈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권력의 탄압보다 무서운 것이 돈의 탄압이다.

이걸 알게된 집권층은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예전처럼 잡아다가 패는 게 아니라, 가볍게 몇억짜리 민사소송을 걸어 버림으로써, 꼼짝 못하게 만드는 신기술을 연마해서 수시로 써먹기도 했고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운동권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다. 도심의 집회가 벌어져도, 대학생 단체의 깃발아래에는 작게는 이삼십명, 많아야 이삼백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구차한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들의 마인드, 그들의 문화가 아직도 살아 남아 있다는 뜻이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 시절의 마인드와 문화로 무장을 하고, 이제 새롭게 사회에 눈을 뜨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망치려고 드는 잘못된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를 향해, 꼰대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쉬워서 꼰대질이지, 사실은 굉장히 복잡한 프로세스로 나타나게 된다.

수 십년간 내려온 운동권 문화는 매우 가치있는 개념들을 축적하고 있다. 흔히 말해서 진보적 가치로 부를 수 있는 복잡한 얘기들. 인권 문제, 성평등 문제, 약자에 대한 보호, 정치적인 올바름, 쉽게 침해되는 개인의 권리, 뭐 일상생활에서 어느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촘촘한 가치 체계에 대해 다년간 수련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 이런 종류의 진보적 가치들에 대해 생소한 새로운 세대들은 그저 모든 걸 퉁치고 커다란 가치, 현정부가 개판이니 갈아치워야 한다, 라는 대전제하에 돌진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런 진보적 가치들을 깨트리는 실수를 수없이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올드 운동권 출신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렇게 우리가 다년간 설파했던 기본적인 가치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큰 가치를 어찌 구현하노~ 하면서 뒷방 늙은이처럼 설교를 하려 든다.

당연히 이런 설교를 받게 되는 입장에서는 졸라 재수없기 마련이다. 지들이 해 놓은 건 쥐뿔도 없으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양새가 되니까 말이다. 도대체 저것들은 뭐람?

이거.. 매우 소모적인 충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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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고 통탄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소멸되어 가는 운동권 그룹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 그들은 고독한 투쟁을 해온 사람들이다. 정권의 탄압이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압박도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할 때, 주변의 이해와 찬사가 없다면, 그것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

그들은 이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둘씩 주변을 떠나는 동료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꾸준히 그 길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그중 능력있는 사람들은 대학에 일자리를 얻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학원 강사 자리를 잡았고, 그것도 안되면 비루한 글쟁이 노릇을 하거나, 밥 굶기 딱 좋은 시민단체 간사 일을 하고, 상당수는 정치판 언저리를 배회하며 다분히 부패스러운 먹거리를 줏어 먹으며 버티게 된다.

그 중에 골수로 빠져 이상하게 변질된 이석기 그룹도 존재하는 거고 말이다. 그들은 아예 생태계를 구성해 버렸다. 그들이 변하기 힘든 이유 중에, 그 생태계가 이미 고착되어 있어서 자체 재생산 시스템이 돌고 있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그걸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복하고 죽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쌓아온 가치는 자신의 인생 그 자체다. 그게 막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면 견디기 힘들다는 거, 이해가 간다. 이백삼십프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 버렸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2008년도의 촛불이 이 변화의 획을 그은 중대한 일인 것으로 판단된다.

 

운동권이 사회적 아젠다를 제시하고, 진보의 방향을 제시하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 그게 바로 2008년의 촛불이다. 사람들은 이제 운동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고 있다.

아이들의 먹거리를 걱정하는 젊은 주부들이 선봉에 서고, 미래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이 대열에 나선 것이다.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운동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자발적으로 책 몇권 읽고, 인터넷 SNS를 통해 소통을 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정상적인 운동권 출신이라면, 이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운동권들은 고립된 상태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언어도 달라지고 사고체계도 다르다. 현실 생활에 몰두해 있던 생활인들과는 종이 달라져 버렸다. 그러던 중에 사회적으로 다수를 점하는 생활인들이 이 사회를 고쳐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운동권은 사회적 권력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게 몰락이지 뭐.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의 앞에는 운동권하고는 관계없는 폴리테이너 들이 서 있게 되고, 발빠르게 변신한 지식소매상들이 서 있게 되고, 정치적 실력이나 논리, 엄정한 정치적 가치 보다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과거의 시각에서 보자면 값싸고 가볍기 그지없는 정치 초년생들이 서 있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상징하는 게 바로 나꼼수지 뭐.

더 이상 과거 세상을 호령하던 진보 좌파, 아니, 운동권 지식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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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도대체 몇번이나 써먹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괴물이다.

양쪽에게는 양쪽의 가치가 있다. 두 그룹간의 충돌이 비생산적인 마찰로 전환되어 양쪽의 가치가 모두 소진되어 버리는 불행은 막아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반대로 양쪽에 도무 충분히 담겨져 있는 가치들을 생산적으로 결합시켜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해내고, 단절된 문화를 이어 나가면서 융합에 의한 씨너지 효과를 일으켜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가치 체계도 다르고, 대화도 안 통할 정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경험도 다르고, 완전히 이질적인 종 간에 어떻게 융합을 하고 어떻게 가치를 증폭시킨다는 말인가.

불가능할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안되는 일이 어딨어.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 딛고 일어나서 사회를 뒤집어 엎어 버린 동학혁명이 더 불가능했지.

진보 운동권 출신들과 새로운 세대간에 말이 안통해 봐야, 양반과 상놈 사이만큼 안 통하겠어? 그런 양반과 상놈들이 모여서 혁명까지 이룩한게 동학이란 말이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야 한다는 거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이거, 결혼생활 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두 종족, 남성족과 여성족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는 얘기다.

먼저 운동권 출신들은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이 이미 오래전에 권력을 놓쳤음을 인정해야 할 일이다. 자신들의 문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태도가 더 이상 대중적인 설득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가치를 한개라도 더 온전히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파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 뿐이다. 그게 할 일이다.

그 가치들, 하나같이 설득력 있고 훌륭한 가치들이다. 가치들이 문제가 있어서 전달이 안되는 게 아니잖아. 전달하는 방식, 대화의 기법이 문제가 되는 거잖아. 동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형이상학적인 학술용어들은 그게 입에 아무리 배어 있어도 좀 떼어 버려야 한다. 대중의 언어로 가치를 표현하고 전달해야 한다. 그게 아무리 천박해 보이고 없어 보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켜온 가치들이 증발해 버리는 것 보다는 낫다.

트로츠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3의 길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하버마스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해방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그런 것들 다 번역도 제대로 잘 안된 언어들이고, 결국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거 또 잘난척 한다는 소리밖에 못 들었던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들이었잖아.

그런 표면적이고 장식적인 어휘들은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고. 그 안에 담겨 있는 현실적이고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알맹이들이 진짜 가치인거지. 그 가치를 장삼이사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그 가치가 사회적으로 구현되는 거잖아.

이게 정말 해 보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치들을 제대로 소화를 해 내고 대중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원래 있던거 아닌가 말이다. 나꼼수가 진보적 가치들을 수도없이 훼손하면서 나대고 있지만, 이 대중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측면에서 가치를 가진 거잖아.

그거 마냥 고깝게 생각하지만 말고,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절실하게 있다고.

반대로 새로운 세대들도 마찬가지다.

저 꼰대들이 또 개소리 한다고 욕하기 전에, 저 꼰대들이 또 뒤로 총질한다고 갈구기 전에, 저들이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도의 지적 인내력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저들이 가진 가치는 최소한 저들의 졸라 맘에 안드는 태도들 보다는 훨씬 소중한 거니까 그걸 찾아서 간직해야 할 필요는 있는 거다. 그게 아무리 사소해 보이고, 큰 일 앞두고 무시해도 될 정도로 작아 보이는 가치라 해도, 오래 겪다 보면 그런 가치들이 모여서 큰 가치를 이루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 줄 필요가 있다는 거지.

이런 세심하고 작은 진보적 가치들이 뒷받침이 안된다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한 순간에 또 쫄딱 망한다니까.

물론 당연히 힘들다. 말도 안 통하고, 열부터 뻗치는데 그걸 참고 세세히 뒤져보는 것은 어지간한 인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는 거, 잘 안다. 그거, 운동권 꼰대들도 수도없이 겪어온 일이거든.

어쩌면 새로운 세대가 매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문제들에 대한 해법, 이미 어지간히 다 알려진 문제들이라는 거다. 그거 고까움을 좀 참고,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좋아서 술술술 설명해 줄 거다. 물론 도대체 뭔 소릴 하는지 알아듣기도 힘들겠지만 말이다.

두 집단간에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두 집단 내부의 문화가 달라서 그런거다.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고. 문화가 다르니 사고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니 언어가 달라지는 거지. 개와 고양이가 만나서 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니까 고양이가 전투 모드로 돌입하는 거랑 다른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일 뿐이다.

똑똑한 고양이라면, 한두번 겪고 나면 아, 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반갑다는 뜻이구나 하고 제2외국어 배우듯이 배울 수 있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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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비키니 사건, 김용민이 쌍욕사건, 또 반대로 진중권이 싸가지 없는 입진보라고 욕 먹는거, 뭐 그런 일들하고 이번 하종강공지영 사건 하고 문법이 다른게 하나도 없다. 전통적인 진보 운동권 멤버들하고 새롭게 사회에 눈을 뜨고 사람을 위한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하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발생한 감정적 충돌이라는 거지.

거기에 작아 보이는 진보적 가치를 위배했다고 길길이 뛰는 운동권들과, 그깟 가치가 밥멕여 주냐고 나서는 새로운 세대와 쌈이 나는 거고.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다.

운동권은 이미 오래전에 몰락했고, 그 몰락을 인정해야 하며, 몰락한 집안의 사람이라면 그 집안에 있던 작은 보물들을 어떻게든 새로운 집안으로 전달해 줄 의무가 남은 것 뿐이라는 얘기다. 그게 몰락한 집안의 자제들이 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면 되는 거거든.

억울하고 슬퍼도 할 수 없어. 그게 역사지 뭐 다른게 역사겠나.

너나 나나 우리 모두 역사를 위해 나선 것이고, 그 역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가장 효율적으로 하고 사라지면 되는 거지 인생 머 있게써~

더위가 한풀 꺽이고 나니, 하늘도 참 지랄맞게 맑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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