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이야기

진짜 졸라 엄청 살벌무쌍하게 무서운 납량특집을 쓰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는데, 갑자기 더위가 한풀 꺽이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져버렸다. 줸-_-장.. 역시 문제는 스퓌드인가..

뭐 기회가 되면 가을밤의 공포를 위해서라도 쓰던거는 마저 쓸 생각이니 기다리시던 분은 좀 더 기둘리시라. 어쩌겠는가, 니들이 참으셔야지. 대신 갑자기 생각난 멧돼지 얘기나 한편 해 보겠다.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만 아기일 때에는 정말 예쁘다. 이게 자라면 맹수가 된다.>

—————————

멧돼지는 집에서 기르는 집돼지와 구분되는 야생 멧돼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산에도 멧돼지가 많이 살았는데, 일제와 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에서는 거의 멸종단계로 접어들었다가 근래 몇십년간 나무를 잘 길러서 숲이 울창해지자 다시 출몰하면서 피해를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다 자란 멧돼지는 어지간한 고양이과 맹수 못지않은 흉폭한 맹수다. 특히 새끼를 보호하려고 하거나 공격을 받게 되면 그 흉폭성이 무섭게 발휘된다. 주로 땅을 파 엎어서 뿌리열매 같은 것을 캐 먹기 위해 길게 발달한 어금니도 무서울 뿐 더러 거대한 덩치와 그 덩치를 놀랄만한 스피드로 이동시킬 수 있는 근력.. 육식이 아닌 잡식이라 그렇지 어지간한 육식 맹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뭐 내가 왕년에 멧돼지한테 받혀봐서 아는데~ 뭐 이런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냥 멧돼지 먹어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얘기는 또 군대시절로 돌아간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아니라 군대에서 멧돼지 고기 먹은 이야기.

사단 사령부에서는 아침마다 상황보고라는 것을 한다. 사단장을 앉혀놓고 옆에 부사단장하고 참모장, 사단 선임하사가 배석을 한다. 그리고 참모부별로 돌아가면서 참모들이 보고를 하는 거다. 근데 뭐 작전할 때도 아니고 맨날 일상적인 일이니 보고할 게 그리 많지도 않다. 맨날 한소리 또 하고 한소리 또 하고.. 챠트병만 개고생이다.

결국 그런 시간은 사단장에게 내가 여기서 알파메일(대빵 숫놈)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고, 어제밤 관사에서 사모님에게 구사리 먹은 분풀이를 하급자들에게 하는 새디스틱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하루는 사단장이 졸라  트릿한 목소리로 얘길 하는 거다.

“어제 사격 훈련 있었나?”

작전참모가 쫄아서 대답한다.

“없었습니다. 인접부대에서도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근데 왜 산에서 총소리가 나지? 사고 아냐? ”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

“요즘 시절이 어떤 시절인데 통제되지 않는 총소리가 나냔 말야.. 도대체 부대 지휘를 어떻게 하는거야?”

순간 인사참모 얼굴이 일그러진다. 총소리가 왜 났는지를 알고 있었거든.

사단직할 수색대에 중대장 자리가 셋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새로 배속된 중대장, 3사 출신 대위 하나가 또라이였던 것이다. 부임한지 사날도 안돼서 짚차 몰고 M16 들고 산에 들어가 멧돼지 사냥을 한다고 설친 것이다.

아무리 강원도 산골짜기라 해도 멧돼지가 연못에 올챙이처럼 바글거리는 것도 아니고, 사냥용 엽총도 아니고 군용 개인화기를 들고 올라가 멧돼지를 잡겠다고 설치는 넘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된단 말인가.

상황보고 시간이 끝난 뒤, 인사참모는 바로 수색대대장에게 전화를 돌려서 갈구기 시작한다. 같은 중령이라 해도 사단 인사참모하고 수색대대장은 서열상 차이가 있기 마련. 그렇게 대충 좀 갈구고 이제 괜찮겠지 하고 있는데, 다른 날도 아니고 그날 오후에 또 총소리가 들린다.

“선하님요, 총소리 또 납니다. 참모님께 말씀 좀 드리세요. ”

인사처 선임하사에게 황급히 얘길 해줬더니 놀라서 참모실로 또 뛰어 들어간다. 참모는 또 수색대로 전화를 걸고, 이번엔 쌍욕소리가 참모실 바깥으로 막 흘러 나온다. 그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산에선 또 총소리가 빵~

“저 새끼가 미칬나 보다. ”

인사보좌관에 인사장교들까지 웅성웅성 하면서 다들 한마디씩 하고 참모는 방방뜨고 그러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상황보고 시간은 또 돌아왔다. 인사참모는 사단장이 그 중대장 쪼가리 당장 전출시켜 버리라고 할 것에 대비해서 공석이 될 수색중대장 자리에 불러 올 수 있는 여유인력에 대한 자료까지 준비해서 들어갔다. 잘하면 부임한지 일주일만에 쫓겨나는 중대장 하나 구경하게 되겠다 싶은 상황이다.

그런데 웬걸.. 사단장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훈시를 하기 시작한다.

“요즘 젊은 장교들이 우리 젊었을 때와는 달리 호연지기가 없어. 맨 샌님들처럼 약해 빠져가지고, 맨날 술이나 먹고 다방 애기들만 쫓아다니지 무인정신이 없어. 군인이라면 모름지기 무인 아닌가 말야. 무인. 무인정신이 필요하다~~ 이거야.

그런데 이번에 새로 수색대에 괜찮은 친구가 하나 들어온 모양이야. 이 험한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직접 발로 뛰면서 집채만한 멧돼지를 한마리 잡았더라고. 우리 사단이 흥할 징조인 것 같아. 이렇게 패기 넘치는 신임지휘관들이 들어오고 말야. 내 기분이 무척 좋아. 우리 회식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사령부 직할대 부부동반 회식 한번 하지?”

인사참모가 재빠르게 응대한다.

“넵, **회관(전방 사단에는 사단 이름을 딴 시설이 있기 마련이다. 숙박도 가능하고 한중일 식당도 있다. )에 홀 비워두라고 하겠습니다. ”

사단장이 손을 내 젓는다.

“아니아니, 그 뭐 쪼매난 방구석에 틀어박혀 술 먹는거 말고.. 헬기장 옆에 2연병장 있지? 거기다가 판을 차려. 멧돼지 한마리로는 모자를테니 읍내 나가서 중퇘지 두어마리 더 사오고. 부부동반이니 사모님들 고생시키지 말고, 본부대 병사들 서빙 시켜. ”

“알겠습니다.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또라이 대위, 결코 또라이가 아닌 아부의 마스터였던 거다. 며칠동안 흔적을 쫓아 산을 뒤지더니 진짜 이따시만한 멧돼지 한마리를 발견하고, 그걸 M16으로 명중, 피를 철철 흘리는 놈을 그대로 짚차에 싣고 사단장 관사로 직행해서, 사단장 보는 앞에서 멧돼지 목을 군용 대검으로 따서 뿜어져 나오는 뜨끈뜨끈한 피를 유리잔에 받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사단장에게 무릎 꿇고 양손으로 바쳐 버린거다. (시바, 그 기생충 드글드글한 짐승 피가 뭐가 좋다고..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 대위, 나중에 남들 다 오고 싶어하는 인사처로 우선 발령 받았다. 하여간..

이렇게 졸지에 사단 사령부와 직할대에 있는 당직제외 모든 간부들이 다 모여서 부부동반 야외 가든파티를 하는 걸로 결정이 나 버렸다. 사단 선하는 신나서 애들 풀어서 돼지를 수배하랴, 피엑스에 술 재고를 확인하랴, 장교식당 취사병들에게 지시를 내리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 좋게 되는 건 본부대 병사들이다. 팔자에 없는 흰모자에 앞치마 두르고 서빙팀으로 변신한다. 하기사 그래도 고참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고기에 술에 원없이 먹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병사들에게는 공식적으로는 쥐뿔도 없다. 그저 사역만 하게 되는 거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서빙 보게 될 병사들이 다 사단 본부대 내무반 졸병들 아닌가 말이다.

회식이 시작대고 군악대 병사들이 와서 오부리 밴드 역할까지 만들어지고 쿵작거리면서 한쪽에서는 거대한 멧돼지 통 바베큐가 돌아가고, 곳곳에 바베큐 틀에는 숯불이 이글거리면서 목살에 삼겹살에 구워지고 장교식당 사병식당 취사병들은 총 출동해서 불앞에서 얼굴 벌개져가며 고기를 쉴새없이 궈 대고, 훈련용 테이블들을 모두 깔아놓고 흰 천을 덮어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호텔 출장 부페 수준의 시설과 음식이 제공되기 시작하는 거다.

영관급 장교들에게는 면세양주가 돌려지고, 위관급 장교들에게는 면세맥주와 소주가 돌려진다. 물론 사단장과 그의 일당들에게는 발렌타인 27년산급을 재료로 한 폭탄이 돌려지고.

그렇게 회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술이 거나하게 돌기 시작하면, 서빙병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바베큐 틀에서 잘라진 고기들을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 장교들 테이블로 가는 척 하다가 순간이동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 고기 접시는 갑자기 내무반에 등장한다.

장교들이 헬렐레 취한 동안 고기와 술이 곳곳에서 증발하면서 내무반 병장들 침상에 현신하게 되는 거다.

때맞춰 군사령부에 보낼 인사업무 보고서 작업을 마친 나도 내무반에 들어와 합세한다. 상병 선임이 헐레벌떡 들고온 접시를 내밀며, 박벵장님, 이게 그 유명한 강원도 멧돼지 바베큡니더~ 한다.

그래? 함 묵어보자. 그러면서 한점 집어 먹었는데..

바베큐로 구운 것이라 기름기가 쏙 빠진 담백한 맛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만, 특이했다. 이 고기가 결이 강하다. 마치 닭가슴살 처럼 결결이 찢어질 정도이다. 돼지고기는 이런거 없잖아. 거기다가 군바리 입에 맛 없는 고기가 어디 있겠는가. 과연 천상의 맛이다.

“씨바.. 이거 졸라 맛있잖아. 시바, 팍팍 위치이동좀 시켜봐. 전송 중에 니들도 눈치껏 좀 집어 먹고. 진짜 졸라 맛있다 야. ”

진짜 맛있었다. 그 때야 뭐 어릴 때니, 고기맛을 알겠냐만은 그래도 이게 흔한 돼지고기가 아니라는 것은 눈 감고도 알수 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섞여 들어오는 읍내 고깃간 돼지고기는 뭐 흔히 먹던 거니까 알겠는데, 이건 무슨 돼지가 아니라 전혀 다른 동물의 고기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입과 머릿속에 명징하게 틀어 박힌다.

사회에 나가서 이런 고기를 먹어볼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사단 사령부의 거창한 회식은 마무리 되고, 내무반 병사들은 다들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새벽까지 뒷청소 하느라 뺑이를 쳤다. 물론 병장들은 빼고..

——————————-

그런데 결국 그로부터 한 십여년 지난 뒤, 멧돼지 고기라는 것을 또 먹어볼 기회가 생겼다.

맘먹고 부부만 떠나는 전국일주 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대게를 먹어볼까 하고 영덕위에 축산이라는 항구에 들렀던 때였다. 아는 선장 집에 들러 졸라 비싸기만 하고 먹을 거 없는 대게들 말고, 대게잡이 배 선장들이 배에서 몰래 챙겨두는 다리 두어개 떨어져서 상품성 없는 놈들이나 알밴놈(이건 무조건 놔줘야 되는 건데, 선장들이 몰래 챙겨두는 것은 “항상” 있다.)들을 잔뜩 대접받고, 얘기를 하다가 멧돼지 얘기가 다시 나온 것이다.

바로 근처에 대규모 멧돼지 농장이 있다는 거다. 거기서 고깃집도 같이 하니까 한번 들러서 맛을 보란다.

그래? 그렇다면..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차를 몰고 선장이 가르쳐준대로 올라가 본다. 과연 있다. 규모가 상당한 돼지목장이 있다. 그런데…

차를 대놓고 내려보니 산기슭 비탈에 만들어둔 농장이 한눈에 보이는데,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두두두두두~ 하면서 삼사십마리는 넘어 보이는 멧돼지 떼가 목장안을 질주한다.

오오~ 야성의 질주여~

드디어 군대시절 잠깐 맛을 본 천상의 맛을 또 한번 보게 되는 건가..

일단 들어가서 자리잡고 앉아 주인에게, 이 부위 저 부위 섞어서 한판 궈 보자고 주문을 한다.

그런데.. 그 맛이 아니다. 맛도 맛이려니와 결대로 찢어지는 그 고기의 형태도 아니다. 그냥 시장 정육점에서 파는 돼지고기중에 좀 품질 좋은 놈의 맛. 좀더 싱싱한 상태. 뭐 이런 수준.

바베큐가 아니라 숯불에 구워서 그런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워낙 손님도 없는 가게니 주인장이 슬슬 와서 인사를 한다. 그래서 술도 한잔 나누면서 천천히 얘기를 걸어본다.

고기가 참 싱싱하고 맛이 좋긴 한데, 내가 군대 시절에 진짜 야생 멧돼지를 통 바베큐로 해서 먹어봤던 그 맛에 그 육질은 아닌 거 같다. 혹시 품종이라도 다른거냐? 아니면 사료먹고 자라서 이렇게 된거냐, 뭐 이런 얘기를 천천히 물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장이 웃으면서 실토를 한다.

진짜 토종 한국산 야생 멧돼지는 농장에서 기를 수가 없다는 거다. 이게 무리 생활 자체를 안하는 놈들이라 서너마리만 한 곳에 풀어놔도 서로 치고받고 영역싸움을 하고, 결국 한넘이 죽어 나갈 때까지 싸움을 끝내지 않는다는 거다.

저 창밖에 들판을 떼지어 달리는 멧돼지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무리생활하는 품종이라는 거다. 결국, 이게 족보가 다른 놈들이다.

주인이 말하길, 자기도 진짜 오리지날 멧돼지를 사냥으로 잡아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맛이 바로 손님이 말씀하시는 그 맛이라고, 그런건 사냥하기 전에는 먹을 수 없는 거라고.. 그래도 자기가 기르는 멧돼지들 사료 멕이는 놈들은 아니고 생과일에 고구마 감자 같은거 사다가 먹인다고..

그랬던 거다.

————————————–

이런 경험을 하게 될 때마다, 또는 그런 경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거 먹고 살았구나.

물론 우리들처럼 내킬때마다 저녁때 직장동료들하고 몰려가서 삼겹살 굽고 소주 한잔씩 하는 그런 호사는 못 누렸겠지만, 동네 장정들이 패를 짜서 겨울에 멧돼지 사냥 한번 나가게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이런 걸 구워 먹었겠구나..

아니 오히려 자주 못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맛이 황홀했겠지.

현대 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안락함을 주었다고 다들 생각을 하고 그게 맞는 거겠지만, 거기에 숨어 있는 진짜 아름다운 경험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지가 오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편하게 수시로 사먹을 수 있는 고기들, 그게 자연상태의 고기가 아니잖아. 항생제에 홀몬제로 뒤범벅된 사료를 먹고 좁디 좁은 공간에서 똥칠하면서 자란 돼지를 공장에서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 분해하고 냉장차에 실려 마트에 공급된 그런 “공산품 같은 먹거리”를 좋다고 먹고 살고 있는 거잖아.

채소는? 밥은? 온갖 음료에 유전자 조작된 곡식들은?

만약 인류가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게 된다면, 멋 훗날의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뭐라고 묘사할까?

문명이랍시고 쓰레기통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좋다고 살던, 지 생명 단축시키는지도 모르고 헤벌레하던 바보같은 시대.. 라고 욕하게 되지나 않을까?

 

 

씨바.. 진짜 멧돼지 고기 한번 더 먹고 싶다.

 

 

 

 

 







1 thought on “멧돼지 이야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