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가능한 제도인가?

먼저 얘기해 둘 것이 있다. 
이 글은 박가분님의 글에 대한 반론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내가 올렸던 글이 반론의 형식을 띠고 있었고, 그에 대해 박가분님이 새로운 반론을 올렸으며, 그 반론중에 실제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의 질문이 핵심적으로 떠올라 있기에,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작성하게 된 글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기사 반론이건 아니건 그게 뭐 중요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던가, 누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하는 불필요한 얘기들은 모두 털어 버리기로 하자. 
핵심은 이것이다. 현실세계의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생소한 제도가 구현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

예의상 박가분님의 글에 제시된 세가지 주제에 대한 코멘트 정도는 붙이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리고 이 세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반론이 나오더라도 답변할 생각이 없다.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 기본소득론자들이 금융자본을 비난했던가 말던가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재원중의 하나로, 금융자본들의 금융거래에 대해 거래세를 붙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국내 총 가처분 소득중 60%가 넘어가면서도 빈약한 세율의 세금만 납부하거나 아예 과세대상 자체가 아니었던 부분에 대해 중과세를 함으로써 상당부분의 재원이 마련가능하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2) 잉여적인 삶의 방식이 뭔지 모르겠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픈 일에 매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예찬하고 싶다. 이를 예찬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까지 덮어두고 예찬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신자유주의건 뭐건간에 그런 삶이 별 문제없이 가능해진다면 좋은 일일 뿐이다. 

3) 이 주제에 대한 박가분님의 주장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산업적 기반이 있어야 금융자본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에 관해 기본소득론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 달라고 주장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이걸로 끝. 
————————————–

깔때기 얘기도 먼저 다루고 넘어가자. 
박가분님도 인정하듯이 자본주의의 틀을 당장 바꾸기 힘들다면 보편적 복지로 가는 것이 좋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복지를 현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게 기본소득이 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물건으로 사서 줄 것을 돈으로 주면 안되는 이유는 뭘까? 
그러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세상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의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건 당연한 얘기다. 기본소득은 그저 새롭게 도입해 볼 수도 있는 하나의 제도일 뿐이다. 그거 논의한다고 국방문제가 해결될리는 없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시혜적, 부분적 복지의 개념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개념으로 대중의 인식이 업그레이드 될 가능성은 무척 많다. 단적으로 최근 있었던 전면 무상급식 논의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광범위하게 벌어졌었고, 다수의 대중이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었다. 개념을 이해하면 바로 이어서 시행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수순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이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복지라는 것이 세금 걷어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라는 수준의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심지어 결론이 안 하는 걸로 나오더라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다만 불쾌해할 사람들은 다수 있을 것 같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

곁가지는 대충 이 정도로 마무리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이 글을 쓰게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기본소득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도인 것인가? 박가분님이 다양하게 건드리면서 언급한 문제들 중에 단 하나, 이 질문만이 나에게 현실적인 의미가 있었다. 
박가분님의 글에는 기본소득이 구현 가능한 나라는 이미 산업경쟁력을 갖춘 일부 선진국들뿐이라는 단정이 있었다. 아마도 산업경쟁력이 있어야 금융자본이 생기고, 금융자본이 (옳든 그르든) 축적되어 있어야 기본소득이 시행될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는 논리인 걸로 보인다. 결국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독일은 이 분류에서 산업경쟁력이 있는 국가로 구분되어, 그들은 이 제도를 실험할 자격이 되는 거고, 우리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는 구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 구분선은 어디에 그어지는 것일까? 
내가 고민하던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만약 우리가 300조에 육박하는 재원을 마련하고, 전격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했다고 쳤을 때, 그게 과연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안정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강남훈-곽노완 모델에서는 비노동소득에 대한 과세로 100조 가까운 재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그렇게 중과세를 시작했을 때, 비노동 소득이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재원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토빈세 같은 것은 당분간 실현될 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재원이다. 급하게 인상된 세율은 끊임없이 인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지속가능한 기본소득제도를 위협하는 위험요인들이다. 
물론 300조에 달하는 기본소득이 일년 사이에 모든 국민들 사이에 뿌려지게 되지만, 그 중에서 과연 얼마나 다음해의 세수로 회수될지도 궁금하다는 것이다. 소비여력이 없던 소득하위계층은 거의 100% 다 소비를 하겠지만 중산층에서는 그 돈을 안 쓰게 될 가능성이 많다. 또 어느정도 이상의 소득이 있는 계층에서는 그 돈이 늘어난 세금과 상쇄되어 버릴 수도 있다. 상위층에서는 오히려 소득이 줄어든다. 
그렇게 된다면 식료품이나 생필품등의 소비가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관련 산업이 약간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분히 인위적으로 부양된 소비경기가 과연 플러스 피드백 상황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세수가 늘어날 정도로 경제적 호황을 가져올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실질적인 수치가 궁금하다. 
그 외에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논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노동의욕의 고취 같은 효과는 다분히 심리적인 문제라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장담하기 힘든 분야가 된다. 초기에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 있을지라도 몇년 후에는 그 또한 의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사람은 모든 자극에 대해 금방 익숙해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박가분님의 주장대로, 산업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 있는 선진국이라면 외부에서 재원이 조달이 가능하다. 독일처럼 전 유럽을 상대로 활개치며 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나라라면, 기본소득제도가 플러스 피드백이 되지 않고 약간 마이너스 피드백이 된다 하더라도 무역이익(좋게 말하자면 무역이익, 나쁘게 말하자면 상대국 착취)으로 빈 틈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게 가능할까? 
물론 우리도 경제규모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무역강국이긴 하다. 양면성이 있다. 이제 우리도 그 수준은 된다는 자신감 어린 판단도 있을 수 있고, 고질적인 열등감 섞인 관점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지만 아직 우리는 멀었다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산업경쟁력이 어느 수준에 달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것이라면 나 또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내부적으로 자체순환되면서 지속가능한 구조가 만들어 질 수 있는지, 무역수지가 어느 정도 악화되더라도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의 금액을 물가 인상률에 맞춰 늘려 갈 수 있을만큼의 플러스 피드백 효과가 나올 수 있는지 말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자면, 반대론자들이 비아냥거리듯이 표현하는 잉여적인 삶의 방식이 뜻밖에 무역수지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기본소득 얘기에서 흔히 발견되는 볼보보다 더 많은 수출을 한 아바 얘기 말이다. 홍대앞의 인디밴드들이 기본소득 제도 시행의 여파로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오아시스 같은 그룹이 서너개쯤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요행수를 믿고 이 엄청난 제도를 막 시행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된다. 만약 기본소득이 진짜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다면, 이런 예측은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정밀도를 가지고 사전에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물론 기본소득에는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 말고도 노동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측면도 있고,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자살률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측면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지속가능성이 적어서 몇년 하다가 포기해야 되는 제도라면 다른 이점들도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지속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가지 빠트리기 힘든 얘기라면, 독일도 말고 우리도 말고, 훨씬 더 가난한 국가에서도 이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시행가능한 제도인가 하는 질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에는 국제적인 연대를 통한 범세계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도 흔히 나오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자. 남의 나라 걱정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그 밖에 기본소득이 사악한 금융자본을 정당화 시켜주는 것이네, 독점자본주의를 영속화 시킬 것이네 뭐 이런 논의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논의는 학교에서 학자들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한가지 추가적으로 언급할 중요한 부분은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에 소개된지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 이 지적은 기존의 기본소득론자들이 충분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적극 동의한다. 
물론 10년이 되지 않은 시간동안 구체적이고 통일된 세부정책까지 완성되어 있어야 된다는 지적은 과한 얘기다. 국제적으로도 통일되지 않은 마당에 국내의 몇몇 학자들의 노력으로 당장 정책적으로 일관된 모델이 완성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논의가 지속되면서 점점 더 가다듬어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들 자체가 “대중적인 언어”에 미숙하다는 점이다. 이 점, 기본소득론자들 자신의 책임이다. 물론 이제 시작이라는 심정으로 활동들을 하고 계시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좀더 효과적인 운동방법, 효율적인 홍보방안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대중에게 먹힐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은 선거때 캐치 프레이즈 만들 때에만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논의과정에서부터 누구에게나, 실제로 기본소득 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저소득층이나 고령층에게까지 설득력있는 언어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또한 우리나라 진보그룹 전반에 걸친 지적이 될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자신들만의 언어로 일반 대중들과 유리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놀이에 빠져있을 건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은 기본소득론자들과 동시에 박가분님 같은 반대론자들에게도 동일한 강도로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글 좀 쉽게 쓰자는 얘기이다. 마치 딴지일보 기사들 처럼 말이다. 
======================================

@murutukus 팔로우하기
Tweet to @murutukus







2 thoughts on “기본소득은 가능한 제도인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