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반론 소개

모든 주장에는 언제나 반론이 있기 마련이다. 
완벽한 주장이라는 것은 현실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반론은 항상 나오게 되어 있다. 또한 반론은 원래의 주장의 힘을 꺽는 것이 아니라, 주장 자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반론이 있어왔다. 
사회 주류층의 입장에서 재원 마련의 어려움이라거나, 빈자들에게 무조건 돈을 나눠주는 것에 대한 전통적이면서도 관습적인 거부감은 흔히 발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진보진영이나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은 존재한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
박가분은 매우 정통적인 마르크스 주의를 주장하는 필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 때 최장집 지지자들을 놓고 박가분과 한윤형이 벌인 논쟁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논쟁이 현실과 좀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소득 제도의 수많은 디테일 중 한부분인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미칠 영향”에 대한 짧은 글을 한겨레 “훅”에 게재한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바꿀 세상>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박가분의 글이 동일한 공간에 올라오게 된다. 
<기본소득론 비판>
거의 사회적 인지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기본소득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터이니, 반론이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천천히 글을 읽어본 결과, 역시나 또 현실과 이만큼 떨어져 있는 주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공허한 일이다. 
반론의 기본적인 골자는 기본소득이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을 핵심으로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이며, 기본소득 운동 자체가 맥거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하는 것이다.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은 마르크스 주의의 기본적인 주제가 된다. 2010년 무렵에 나왔던 전남대 이채언 교수의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도 유사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http://goo.gl/RzycN )
학술적 표현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을 위해 “번역”을 시도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생산적 노동”에서 나온다. 그런데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 생산적 노동이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자본이 장악하고 왜곡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일은 노동자가 하는데 가치는 자본가가 가지게 된다는 것. 
그로 인해 생산영역과 비생산영역이 나뉘게 되고, 실제로 중요한 생산영역보다 비생산영역이 비대해지며, 이로 인해 사회가 왜곡되고 붕괴를 향해 치닫게 되므로, 생산영역의 변혁이 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생산 수단에 대한 권리는 누가 가지는가, 노동에 대한 가치는 어떻게 인정이 되어야 하는가 등의 변화 말이다. 
그러므로, 진보를 생각하는 모든 운동은 바로 그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을 향해 촛점을 맞추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방향은 이 결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부수적인 걸로 격하시키고 있고, 결국 장기적인 사회 변혁의 과정을 지연시키는, 반진보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다, 라는 것이 이런 류의 반론들의 핵심이 된다. 
온갖 현학적인 어구를 다 걷어내고 나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기본소득”은 정통파 마르크스 주의에 위배된다. 
여기에 대한 나의 재반론은 이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하나, 양념처럼 곁들여진 박가분의 반론은 맥거핀에 관한 얘기이다. 맥거핀이라는 것은 영화감독 히치콕이 만들어낸 말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의 주제와는 관계없는 다른 내용을 뭔가 심각한 것인양 포장해서 관객들의 눈을 잠시 속이는 기법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인즉슨,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는 진보운동의 동력이 시들해지는 것은 우려한 나머지, 꼭 구현하고 싶은 주제도 아니면서 사람들이 혹할 만한 주제를 하나 제시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진보운동의 동력을 삼아 보자는 사기성 짙은 주제 아니냐는 지적이 된다. 
흥행을 위한 주제라는 지적이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밖에도 여러가지 얘기가 현란하게 제시되는 데, 일일이 옮길 수도 없으니 독자분들은 직접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할 뿐이다. 
————————————–
문제는 이런 류의 반론은 현실에서 떨어져 버린 논쟁을 위한 논쟁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최초 아이디어 자체는 사실 이상적인 국가론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은 맞다. 몽테스키외나 밀, 그리고 버트란드 러셀의 아이디어가 그랬다. 
그러나 현실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은 영국 노동당에서 먼저 나왔고, 6-7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최근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도 노동계 출신의 인사들이 주류가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주장이며, 실제 대중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고쳐 보고자 하는 의도로 설계된 개념이라는 뜻이다. 
<기본소득 네트워크 공동창립자 가이 스탠딩 교수. ILO의 국장 출신이다.>
이런 현실적인 주장에 대해 백년이 다 되어가는 마르크스 주의의 핵심을 위배한다고 해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동의하기 힘들다.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은 충분히 설득력있는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생산영역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이루기 힘든 허상이 된다. 
심지어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방안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는 “금융의 사회화”라는 부분만 해도, 당장 금융기관을 국유화 시키자는 것이냐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재인 까닭에 나름 다듬어진 “사회화”라는 용어로 조심스럽게 끼어 넣어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보자.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주장이 마르크스 주의의 근본을 격하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현실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한 글방 서생의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이채언 교수의 주장에서도, 불로소득이나 금융에 대한 과세가 그들의 합법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부동산 거래, 주식매매, 금융상품에 의한 소득, 이런 것들이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일반인들까지도 상당한 수익과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좌파 진보 그룹의 멤버들이 그것의 합법성을 인정하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정신적 딸딸이가 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빨갱이 소리라고 놀림이나 받을 만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체 가처분 소득의 6할을 넘어 7할 8할까지 차지하고 있는 불로소득이나 금융소득의 현실적인 비율을 낮추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중과세를 매기고, 그 재원을 기본소득에 투자하자는 “현실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이런 “현실적인” 주장조차도 공허한 소리로 치부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현실감각이 결여된 사상은 역사시간에나 얘기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안해봤는지 궁금하다.
물론 이런 반론을 얘기한다는 것은 사상적 일관성을 갖추고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얘기를 비판할 때에는 같은 등급의 현실적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
또한, 궁극적으로는 기본소득 제도가 어쩌면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그렇게 바라는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을 가져오게 될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다. 
기본소득이 채택된다면, 그 재원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당한 규모의 피드백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 자체가 별도의 화폐를 찍어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기존의 국가 총생산중 가처분 소득에 대한 분배의 비율을 바꾸는 것이 그 골자이다. 박가분이 주장한대로, 기본소득은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이 아니라 분배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분배구조의 변혁은 “직접적인 생산영역의 변혁”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빠른 피드백을 통해 생산영역의 변혁을 초래하게 될 공산이 크다.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된 노동자들은 스스로 일자리를 선택하기 시작할 것이며, 부당하거나 부정한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할 것이다. 거기에 노동자의 권리 차원에서도 생존권이 보장된 노동자들의 발언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아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권력이 강화된 노동자 집단이 가져올 변화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에 다름 아니다. 기본소득은 직접적으로 생산영역의 변혁을 못박아 둔 제도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통해 생산영역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무척 높은 제도가 된다. 
또한,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운동가들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사회구조를 그리기 시작할 것이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사회운동가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극빈곤 환경에서 벗어 난다는 것은 단순한 “맥거핀”이 아니라 항구적인 사회운동 동력의 향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 자체가 맥거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좌파 진보 운동의 최종적인 목적을 위한 운동의 동력을 공급하게 되는 본질적인 역량 강화 방안이 된다고 보면 지나친 낙관일까? 
기본소득이 “생산영역의 변혁”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하는 박가분이나 이채언 교수에게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이,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서 그 중요하다는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을 위해 어떤 경로를 채택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이미 우리는 87년에 만들어진 자유주의 체제를 20년이 넘게 겪어 오고 있는 마당이다. 그 긴 시간동안 우리가 근본적인 생산영역에서의 변혁에 관련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라도 있던가? 
사실상 진짜 “맥거핀”이라도 필요할 정도로 운동의 역량은 감소해 버렸고, 새로운 세대는 진보그룹을 마치 이상한 덕후집단을 보듯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말 하면 개량주의네 패배주의네 하는 얘기가 당연히 나오겠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괴물이다. 지난 이십년 동안 좌파는 패배와 후퇴 이외에는 한 것이 없다. 
좌파적 변혁은 모두 후퇴해 버렸고,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를 뒤흔들며 미국에 유럽에 중국에 그리고 한반도에 경제위기를 선물로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대안은 제시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던 북구의 국가들조차도 경제난을 이유로 살짝살짝 우경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기본소득이라는 대안만이 여러 국가에서 논의가 되고 있으며, 특히 독일 같은 경우 이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하는 해적당이 예상을 뒤엎고 약진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도 70%이상의 찬성율을 보이는 등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기본소득 이외에 마르크스 주의에 충실한 새로운 대안이 있다면 얘기좀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
기본소득은 이상향이 아니다. 
모든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이론적 주장도 아니다. 아직 제대로 해본 나라도 없고, 특히나 우리 사회는 알래스카나 이란 같이 천연자원등으로 인한 쉬운 재원이 주어지는 편한 상황도 아니다.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혀 새로운 시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막대한 필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반적인 증세, 금융소득을 포함한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금융기관의 사회화, 힘들겠지만 국가간의 협조를 통한 토빈세등의 도입, 그 밖에도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재원을 다 찾아봐야 할 상황이다. 
거기에 기본소득으로 주어지는 최소한의 소득이 노동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해 강제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향상등,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 패키지로 같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있다. 이런 형태의 패키지 정책들은 매우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설계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기가 더 쉽다. 복잡성이 증가하는 정책일 수록 성공의 확률을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제도의 본질이 원론적인 마르크스 주의의 본질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 오히려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표피적이고 즉흥적인, 나아가 정파적인 이유에 의한 반박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자. ) 현실을 벗어나 추상적인 세계에서 반박을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 뿐더러, 불필요한 시간낭비라는 생각까지 든다. 
오히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과연 기본소득이라는 신기한 제도가 우리 사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제도가 존재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 역시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알리는 것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런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성화 된다는 것은 심지어 기본소득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좌파 진보진영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논의하다 보면 기본소득은 못하더라도 부분적 복지라도 향상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당장 내일에 자살을 결정할 지도 모르는 상태로 궁지에 몰려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지금 당장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 아닐까? 
몇몇 사상적 얼리어댑터들의 뒷방 논의가 아니라,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논의의 장에서 다시 얘기하게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

@murutukus 팔로우하기
Tweet to @murutukus







1 thought on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 소개

  1. 좌파가 되기 위해서 또는 마르크스의 순수한 이념을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건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