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바꿀 세상

 

 

아이폰에 깔리는 iOS와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아이패드를 보여주는 스티브 잡스
아이패드를 보여주는 스티브 잡스

 

중앙집중식으로 강화되는 통제와 개방된 분산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애플은 자신들이 만든 장비에 자신들이 만든 오에스를 탑재하면서 모든 것을 틀어쥐고 통제를 하고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만들긴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는 장비를 만든 회사들과 개발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얘기이다.

그 결과 애플진영은 깔끔함과 편리함, 통일성을 얻었고, 안드로이드 진영은 더 많은 사용자를 얻었지만 아직도 장비 회사별로 사용자 경험이 달라지는 파편화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런 형태의 철학적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초창기 애플과 IBM 간에 오픈 아키텍쳐 논쟁이 있었다. 예술품의 경지에 이른 피씨를 만들어내던 애플은 그 때도 지금처럼 자신들만의 장비를 독점적으로 만들어 내길 원했었고, IBM은 개방형 구조를 채택해서 수많은 서드파티 제작자들이 피씨를 만들고 주변장치를 만들 수 있도록 했었다. 그 결과는 IBM의 완승. 피씨 시장은 IBM-PC 호환 기종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그 뒤를 이은 또 하나의 개방과 폐쇄적 독점과의 전쟁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리눅스 진영간에 재현되었다. 이 전쟁의 철학적 관점은 에릭 S. 레이몬드의 “성당과 시장”(기술적인 얘기가 많이 섞여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일독을 권합니다.)이라는 글에서 아주 극적으로 잘 묘사가 되었었고, 리눅스로 대표되는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의 정신적 주춧돌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MS의 승리.

이제 세번째로 벌어지고 있는 개방과 폐쇄간의 싸움이 애플과 구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과연 누가 최종 승자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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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꺼낸 세가지의 싸움은 서로 약간씩 다른 면이 있긴 하지만 공통된 특질을 뽑아 내라면, 바로 소수에 의해 통제되는 집중형 생산체제의 결과가 더 우수한가, 아니면 다수의 창의성에 맡겨진 분산형 생산체제가 더 좋은 결과를 내는가 하는 논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공산품의 생산이나 토목, 건설 같은 대규모 생산시스템이야 뭐 어쩔 수 없다. 누군가 공장을 지어야 하고 관리해야 하며, 누군가 설계를 해야 하고 시공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개방과 폐쇄의 논쟁이 가장 주효하게 적용되는 분야는 바로 문화예술분야. 거기에 정보화 사회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가 추가되고, 학술연구 분야가 추가될 수 있다.

수백 수천의 천재들을 하나의 시설에 몰아넣고 시급을 계산해가며 성과를 재촉해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이 애플과 MS의 제품들이라면, 전세계에 흩어져 모니터 앞에서 밤을 새는 괴짜 해커들이 만들어낸 것이 리눅스 제품이고, 구글은 이 리눅스의 정신을 어느정도 이어받고 있는 회사가 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손을 확실히 들어줄 수도 없는 것이, 애플의 결과는 대단히 우수하며 또 구글의 안드로이드 역시 매우 강력한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양쪽의 특성이 있으며, 각자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성의 측면에서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일까?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력 발휘에 어느 쪽이 우수한 제도가 되는 걸까?

어찌되었든간에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즐기며 할 때,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낸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 아닐까?

그런데 왜 리눅스가 윈도우보다 쓰기 불편하냐고? 결과가 나쁜거 아니냐고?

당연한 얘기다. 다른나라도 물론 그렇지만,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리눅스 같은 것을 붙잡고 매달려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쓸만한 코드를 만들어 낼 만한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니, 표현이 틀렸다. 그거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리눅스 공부한다고 돈 주는 사람이, 돈 주는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방형 개발환경이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레이몬드의 주장은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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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시궁창이다.

밤샘작업을 밥먹듯이 하다가 30대만 되어도 소프트웨어 개발을 포기하고 관리직으로 옮겨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절망하면서, 나이 오십이 넘은 머리가 허옇게 센 캐나다의 개발자가 자신의 근무시간 이외에 여가생활로 즐기면서 만들어낸 굉장한 보안관련 소스코드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광경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인간에게 기계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만 놓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중앙 집중적인 생산체제보다는 개방적이고 분산적인 환경이 인간의 창의력 발휘에는 더욱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보수.

어디에 속하지도 않고 월급도 안 받는 개발자들이 자신의 생활만 보장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코드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그리고 그런 코드들은 인류의 기술을 한층 더 진보시키고,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계를 보장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똑같이 생계만 보장된다면, 위대한 소설, 위대한 희곡, 위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위대한 그림을 그리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예술가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 모두가 생계 보장을 위하여 원하지 않는 직장에 가서 밤 새가며 재고현황 파악을 하거나, 야근하면서 직원들 4대보험 지불액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위대한 코드를 쓰거나,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되면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인간이 처음부터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년간 즐기며 연습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수없는 실패를 겪어야 하나 나올 수 있을까 말까한 위대한 결과를 위해 몇년 씩이나 굶으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위대한 결과는 커녕 방세도 못내고 굶어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얘기다.

일하면서 여가시간에 작업을 하면 되지 않냐고?

김제남 노역형 내리는 소리 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현실에서 어떤 노동자가 9 to 5 노동을 즐기며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작업을 할 수 있겠냐 말이다. OECD 국가중 평균 노동시간이 그리스 빼고 제일 긴 나라가 우리나라다. 거기에 애들 학원 보내고 아파트 대출금 이자 갚으려면 야근에 연장근무에 주말특근까지 닥치는 대로 뼈빠지게 일해도 부족한게 우리나라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창의성을 억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항상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창의성이 풍부한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창의성이 생길 틈이나 줘보고 그런 소릴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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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있다.

경제적인 효과가 어떻고 실행에 필요한 재원이 어떻고 공기업의 사회화가 어떻고 보편 복지가 어떻고 하는 일체의 제반 논지는 다 집어 치우고 생각을 해 보자는 거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 모두에게 똑같이, 아주 기본적이고 최소한도인 생활, 밥먹고 잠 잘 수 있는 비용, 즉 우리 수준이라면 방 한칸에서 삼시 세때 밥 먹을 돈 정도만이라도 고정적으로 줄 수 있다면?

어차피 문화,예술,학술 이런 분야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미친 인간들은 호화로운 식사나 고급 옷 따위에 거의 관심이 없다.

굶어죽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몇일이고 몇달이고 몇년이고 밤 새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들 전부가 성공할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 것이고, 모두가 위대한 결과를 내지도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들은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그 힘든 시간 자체를 행복하게 보낼 것이라는 점은 장담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왕창 늘어난다면.. 몇년뒤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올 위대한 결과들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살율은 최고로 올라온지 오래이며 출산율은 최저로 떨어진지 오래이다. 우리 사회, 이대로 나가면 근본적으로 붕괴하고 만다. 아니지.. 사람이 없어지면 사회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멸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고 시장경제가 어떻고 사회주의가 어떻고 사민주의가 어떻고 이런 한가한 논쟁을 할 여유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대안을 찾아야 하고, 그 대안은 가급적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대안이어야 한다.

그 해답이 바로 기본소득 이라고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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