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이발사

프랙탈 얘기도 해 놓고 괜히 했다 싶었는데, 이번엔 집합론에 나오는 러셀의 패러독스로 얘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시작은 칸토르의 집합론이다. 칸토르의 집합론 하에서 잘 정의되는 다음과 같은 집합을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글 그만 읽고 마우스 휠 확 내려버릴 거.. 다 안다. 그러지 말고 몇줄만 넘어가시라.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을 생각해보자. 이거 무슨 얘긴지 이해가 가시는가? 나도 얘기할 때 마다 헷갈리긴 한다. 하여간 뭐 이런 집합들을 정의하는 것은 칸토르의 집합론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정의하는 순간 모순이 생겨 버린다. 
왜냐면, 그 집합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지는가라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진다, 라고 가정하면 원래 정의에 의해 가질 수 없게 되고,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 라고 가정하면 원래 정의에 의해 자신을 원소로 가지게 되니까 말이다. 
쓰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번역본을 준비했다. 
세르비아에는 이발사가 한명 있다. 이 이발사는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지 못하는 사람들”의 머리만 깎아 줄 수 있다.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안 깎아 준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그 이발사는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 있을까? 있다고 가정하면 이발사 본인이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못 깎게 된다. 깎을 수 없다고 가정하면, 이발사 본인이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 없는 사람”이 되니까 깎아 줄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래도 저래도 모순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 패러독스의 제시는 사실 수학계를 발칵 뒤집어 버릴 만한 큰 사건이었고, 그 결과 현대수학은 큰 폭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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