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시인에 대한 추억

내가 노혜경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참여정부 시절 초기의 청와대에서였다.

시작을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마치 청와대에서 뭐라도 한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난 청와대에는 딱 두번 구경간 적 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 흔한 대통령 노무현이 찍혀있는 시계하나도 없다. 열쇠고리는 한개 있긴 하다.

그냥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지역의 노사모에서 단체로 청와대 견학을 갔었고 거기에 섞여서 어머니 모시고 따라 갔었을 뿐이다. 즉, 구경하러 갔던 거다.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을 만들어 낸 노사모였고, 그 노사모 중에서도 경기 중부의 한 지역이 단체로 청와대 견학을 하러 간 자리였으니 뭔가 대단한 대우라도 받았을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반인 단체 견학하고 똑같은 코스였을 뿐이다. 하다못해 밥도 한그릇 안 주더라고. 치사하게..

다만 당시 청와대에 홍보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노혜경 시인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설명을 해 주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노사모 활동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하면서 말로만 많이 들었던 노사모 원년멤버 노혜경 시인을 처음 만나긴 했지만, 일대일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저 인사만 살짝 하는 정도였으니 아마 본인은 그거 기억도 못하시지 싶다.

그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청와대에서 물러나온 노혜경 시인은 노사모의 전국 대표일꾼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그 때 이미 나는 심우재 대표일꾼 체제 하에서 노사모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홈페이지 개편 작업”에 착수해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난 뒤였고, 나름 애초의 의도가 100%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 시스템을 운영할 다음번 대표일꾼으로 노혜경 시인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 참이었다.

사실 내가 노사모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문제점이 바로 이거였다.

시스템의 부재. 주먹구구식의 운영.

노사모는 엄청난 회원수를 자랑하는 전국 규모의 조직이었다. 당시 탄핵열풍도 있었고 해서 많을 때에는 한달에 일억이 넘는 자발적인 회비가 납부되던 거대조직이었다는 얘기다. 이 정도 규모의 조직이 된다면, 최소한 조직 자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은 필수적인 일이 되는 거고, 아마츄어 자원봉사만으로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는 없는 단계이기도 하다.

요즘에야 우리나라에 NGO학과도 많이 생기고 이런 자발성에 기초한 조직들을 운영하는 전문성이 널리 교육되고 있기도 하지만 당시의 노사모는 그야말로 주먹구구 그 자체로 운영되는 원시적인 형태의 조직에 머물러 있었다.

회비 수입도 흐릿하고, 지출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었으며, 각 지역 노사모들간의 의사결정 시스템도 비효율적이고, 그저 수시로 모여 모임을 개최하면서 지역별로 친목이나 다지고, 무슨 일 있으면 어떻게 처리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그 결과 무슨 큰 행사만 한번 치르고 나면 온갖 잡음이 쏟아져 나오고, 지역은 중앙을 못 믿고, 중앙은 지역을 경원시하는 전혀 아름답지 못한 상태의 조직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조직을 어떻게 해서든 좀더 효율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바꿔보고자 했던 내 입장에서는, 노혜경 시인은 전혀 대표일꾼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먼저 시인이잖은가. 시를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감수성 예민한 사람이 냉철한 판단으로 효율적인 조직을 꾸려가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시는가? 가뜩이나 감성 과잉이라 술자리만 펼쳐지만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 감성적 조직 노사모에 감성 만땅의 시인이 대표까지 하면 어쩌라고.. 하는게 내 심정이었다. 거기에 초기부터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는 명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일년가까이 캐리어를 쌓고 나와서 노사모 대표일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불편함도 약간 있었고.

이제와서 얘기지만 솔직한 심정은 노혜경 시인에게 노사모 대표일꾼을 맡기면 안되겠다 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난 노혜경 후보가 아닌 다른 대표일꾼 후보를 돕기 시작했고 선거를 치러 패배하고 말았다. 과연 노사모 내에서 노혜경이라는 이름은 상대하기 힘든 중량감이 있었고, 우리 캠프는 쫄딱 망했다.  우리 측 후보였던 성남의 또디라는 친구하고 난 투표 마지막날 아마 어디로 낚시를 갔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만큼 쫄딱 망한거지 뭐.

그런데 내 예상은 바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노혜경 대표 체제의 노사모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합리적으로 가동을 했었던 것 같다. 중앙 사무국의 시스템도 안정이 되기 시작했고, 각종 행사들도 상당히 정상적으로 수행이 되었으며, 또 시사 사안에 대해서도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성명도 발표하는 등, 나름 살아 돌아가는 체제로 발전했었다는 거다.

전국의 지역대표들이 모인 상임위원회도 나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회원들간의 분란도 어느정도 가라앉기 시작하는 등, 보이지 않는 내실이 쌓여가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물론 참여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던 시점이기도 했고, 별다른 큰 격변도 없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시점이었기에 더욱 더 각종 사고가 터지면서 급격하게 세가 쪼그라들 수도 있는 법인데, 그러지 않고 세를 보존하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 이 점은 상당히 많은 점을 시사하는게 아닐까 한다.

한 마디로 노혜경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과 함께 시인답지 않은 합리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신기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당선되자 마자 바로 자신의 상대 후보였던 또디에게 노사모 중앙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국장 자리를 제의했고, 머뭇거리는 또디를 설득해서 관철해 내는 것에서 벌써 그런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했는데, 조직 운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막 보이기 시작한거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릴 때에, 빠르게 양측의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려 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에도 정말 능했었다. 몇건의 작은 사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무리한 고집을 피우거나, 어느 한쪽에 편파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절제된 합리를 도구로 무난하게 처리해 내곤 했었다.

역설적으로 난 노혜경 대표 체제의 노사모 시절에 노사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자연히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아, 이 정도로 무난하게 가동되는 시스템이라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안심이었다. 그리고 나서 난 당시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황우석의 논문조작 사건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되어서 두가지 이유(이라크 파병, 한미FTA)로 인해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접고 노사모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노혜경 시인의 모습은 바로 이거였다.

시인의 감성과 조직 운영자로써의 전문성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인간형.

그랬던 노혜경 시인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했다고 한다. 야권연대에 개혁공천에 뭐다 뭐다 해서 이번처럼 혼란스러운 총선 공천판이 없어 보이는데 그 와중에 노혜경 시인이 민주통합당에서 당선 가능한 선 안 쪽의 비례대표 순위를 받을 것인지 못 받을 것인지는 내가 예측할 도리가 없다.

또, 그 노혜경 시인이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금뱃지를 달게 된다고 해서 향후 전체 국정의 방향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주게 될지 안 주게 될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300개의 뱃지중의한개, 그것도 아무 힙없는 초선 비례대표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 노무현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

그러면서도 노무현이 추진했던 한미FTA를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반대했던 한 정치인으로.

그런 상반되는 입장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왔던 한 여성 정치인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이런 추억담 같은 글 한편으로 내 작은 뜻을 표시해 보고자 한다. 그런다고 해서 민주통합당 공심위원들이 이런 작은 글을 읽어보고 감명받아 마음을 바꿀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부디 잘 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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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노혜경 시인에 대한 추억

  1. 서프 게시판에서 희안한 논리로 황우석을 적극 옹호하던 노혜경님이 생각납니다.
    그때 오만정이 다 떨어졌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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