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이너뷰 – 박지원을 만나다

1

박지원. 1942년 6월 5일생.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진도중학교를 나오고 1960년에 목포 문태고등학교를 졸업. 63년에 광주교대 입학. 64년 단국대 편입, 69년 단국대 상과 졸업. 99년 고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수료, 2009년 목포대 명예법학박사학위, 2010년 조선대 명예경제학박사 수여.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하다가 전두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을 만나 정치에 대한 꿈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김대중이 정치 활동을 재개하자, 귀국하여 본격적인 정치생활을 시작한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 이전 민주당 총재 시절부터 김대중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던 대변인으로 집권 후에도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으로 계속 근무.

대략 정치인 박지원의 일생은 이랬다. 구설수도 많고, 의혹의 눈초리도 많이 받았으며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북송금특검과 관련해서 결국 징역형까지 선고받고 복역 중 사면, 복권되어 다시 정치계로 돌아오는 등 순탄치 않은 정치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박지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구태정치인? DJ의 가신?

나이로 보나, 정치판 짬밥으로 보나 이제는 은퇴해야 할 나이가 훨씬 넘은 것 같으면서도 근래 들어 민주당에 박지원만한 사람이 없다는 평까지 받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박지원 전 장관을 본지가 직접 만났다. 그냥 만났다.

당대표 선거에서 4위를 차지하여 최고위원 자리를 확보하자마자 총선을 맞아 당내 활동 및 지역구 선거 준비에 여념이 없어 일체의 언론 인터뷰를 사절하고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우격다짐으로 시간을 내서 결국 인터뷰에 성공했다. 본지의 위상으로 봐서는 뭐 당연하고 흔한 일이겠지만, 섭외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는 아주 쪼금만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많이 감사드리면 본지의 가오가 좀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쪼금만 감사 드리는 점 이해해 주시라.

인터뷰는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 그 옆에 의원회관에 있는 박지원 전장관의 의원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최근,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친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SNS공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죽돌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동행했다. 그 소문, 절대 내가 퍼트린 거 아니다. 오해다.

(이하 물뚝심송=물, 박지원=박 으로 표기)

식상한 예의 차리기

물 : 요즘 많이 바쁘신 걸로 알고 있다.

박 : 지금 일정이.. 내일 목포에 내려가서 하루 종일 있다 저녁 때 기차로 올라와서 수요일날 회의하고 수요일 밤에 내려갔다가 목요일에 있고, 목요일 밤에 다시 올라오고..

물 : 시간은 얼마나 걸리시는가?

박 : 아, 목포가 지방 도시 중에 제일 멀어요. KTX가 세 시간 25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니까. 왕복 일곱 시간이죠. 비행기도 없고 해서…

물 :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박 : 혹시 딴나라당에서 보내 가지고 저한테 딴지를 거시는 거 아닌가요?

아마 미리 준비한 멘트겠지만, 딴지일보는 만날 딴지만 건다는 구태적 사고방식이 재확인되는 순간이다. 딴지일보는 딴지만 걸지는 않는다. 물론 딴지를 제일 많이 걸긴 하지만… 넘어가자.

비키니 사건

물 : 시간 관계상 본지 특유의 질문들은 모두 생략하겠다. 대신 한 가지만 묻자. 최근 나꼼수와 관련해서 터진 비키니 사건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가?

맞다. 이 인터뷰가 성사된 시점은 비키니 논쟁이 최절정을 이루던 시점이었다.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2

박 : 그 MBC 이보경 부장하고 잘 압니다. 그 분이 그런 사진을 올렸길래 제가 트윗에 올렸어요. 이 사건은 MB정부에 의해 장악당한 언론에 대해, 민주주의나 언론의 자유, 이런 것들을 위한 저항이라고 보지 다른 것이라고 보고 싶진 않다, 했다가 트위터리안들에게 많이 비판도 받고 했어요. 우린 보통 달을 가리키면, 달을 안 보고 손가락을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사건의 본질은 만약 언론의 자유가 있었다면 딴지일보가 또 나꼼수가 이렇게 유명해졌겠어요? 이런 건데, 그래서 저는 손가락을 보지 말라, 라고 하고 싶습니다.

물 : 그렇다면 본질은 언론 자유에 대한 저항이고, 전달하는 태도를 문제삼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라고 보시는 건가?

박 : 그 동물보호론자나 해양 운동가들이 누드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고 하는 그런 거는 받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게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있다고 보는 거죠.

물 :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선 이게 성희롱이거나 그런 측면이 좀 있을텐데..

박 : 당연히 있죠. 저도 딸이 둘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만든 정부 측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라는 겁니다.

문제의 본질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고, 약간의 문제는 있지만 지엽적인 전달방식 같은 걸로 문제 삼는 것은 본질에서 어긋난 문제라는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엽적인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으며, 중요한 문제를 위해 좀 덜 중요한 문제를 희생하자는 시각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또 그 와중에도 모든 것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야당 의원의 본분을 결코 잊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 시효가 지난 논쟁을 이 지면에 다시 재현하고 싶지는 않기에, 더 길게 끌지 말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호남에서의 성장기

물 :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는가?

박 : 제가 어린 시절 별명이 가분수였어요. 몸이 약해 가지고 머리만 크고 몸은 빼빼 말라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 때까지 늑막염을 일곱 번이나 앓았어요. 그 시절에는 늑막염 걸리면 폐렴, 폐병으로 발전해서 다들 죽었던 시절이죠. 저는 다행히 집안의 형님이 병원을 하셔서 목포에서 치료를 받았었죠.

물 : 그냥 나으신 건가, 아니면 무슨 특별한 치료라도..

3

박 : 그냥 엄청나게 앓았어요. 그 덕분에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도 잘했는데 나만 좀… 허허허

예전에 늑막염 하면 대부분 결핵성으로 추정됐었다. 그러면 소모성 질환이니까 단백질 공급해야 된다고 뱀도 잡아먹고 막 그랬기에 혹시라도 기괴식음을 섭취한 얘기라도 나올까 해서 물었으나 실패했다. 하긴 이력에서 보이듯이 상당히 세력있는 집안 출신으로 추정되면서도 학벌이 대단한 건 아니었다. 병 때문이어 그랬다는 뉘앙스다.

물 : 아파서 공부할 시간이 없으셨던 건가?

박 : 공부 안 했어요, 또 개구쟁이라서 맨날 못된 짓거리만 하고…

물 : 그렇게 성장기를 호남에서 보내셨으니 호남 문화에 대한 각별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남하면 음식문화 하고 욕인데, 실례가 아니라면 욕이라도 한 마디 보여주시라.

박 : 하하하

물 : 잘만 하면 유행어 등극도 할 수 있다. 저기 저 죽돌 기자가 굉장히 못된 짓을 했다 가정하고, 시원하게 한 마디 해 주시라.

뭐,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해본 말이다.

박 : (웃음) 그러니까, 호남은 민중언어를 쓰기 때문에 욕설도 많지만, 제가 창을 좀 합니다.

물 : 판소리 같은 걸 하신단 말인가.

박 : 예, 원래 진도는 귀양지였고 해서 잡가 같은 걸 많이 하고, 그 끼가 좀 있어요. 진도 아리랑 같은건 여기서도 흔하지만 저도 마이크 잡으면 제 사투리로 하는 게 있죠.

4

그러더니 갑자기 진짜 제대로 된 톤으로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을 불러 제낀다. 한두번 한 솜씨는 아니고 역시 호남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성지다.

박 : 서방님이 올랑가 께벗고 잤더니~ 문풍지 찬바람에 설사병만 났네~

물 : 오, 이거 그대로 올라갑니다.

박 : 그런 거 많고, 또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야이, 시벌롬아, 오랜만이다~” 이런 정도는 그냥 문화였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TV의 영향을 받아서 다 서울말을 쓰고 그렇죠.

물 : 문학사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을텐데..

박 :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사다가 많이 돌렸어요. 두 달에 한 번씩 한국 나올 때마다 한 열 질씩 사다가 선물하고… 운임 때문에 많이는 못 가져가고 삼십 권씩 사다가 주로 전라도 사람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죠. 꼭 읽어 보라고. 그러면 다 읽어 보고 나서 아~ 이젠 이해가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대북송금 때 감옥에 가면서 맨 먼저 태백산맥부터 다시 읽었어요. 이런 문화가 있죠.

그리고 그 추임새가 서울에선 얼쑤~ 이런 걸 하는데 어이! 하면서 꺽는 게 있어요. 그 박윤초 교수 있죠. 김소희 선생 딸, 제가 문화부 장관 하면서 진도에다가 남도 국악원을 만들었는데, 거기 한 번 가 보시면 전 세계에서 그런 벽촌 도서에 예술의 전당 옮겨 놓은 것 같이 만들어 놓은 거, 그런 거 없습니다. 거기가 공기가 좋아서 국악인들이 연습하기가 좋거든요.

물 : 도시에서는 공기 때문에 힘든 거군요.

박 : 아주 유명한 명창들이 진도에 와서 노래를 하려면 긴장을 합니다. 추임새 같은 것들이 굉장히 정확하게 나오니까. 목포에 갯돌이라고 마당극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주 잘해요.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때 제가 갔었는데, 국립극장 지방공연하면서 지역구 의원이 온 건 제가 처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저야 뭐 문화부 장관 했었으니까 간 거지만… 그런데 아무래도 관객들이 그걸 못 따라가더군요. 청중이 함께 해야 되는 건데.

이 부분에서 장황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호남 문화, 그 중에서도 판소리나 잡가, 마당 놀이 등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의한다. 그거 굉장히 가치 있는 문화이며 호남인들은 이런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권리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화도 문화지만 호남의 음식문화는 진짜 최고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물 : 그런 모든 것들을 모아 호남의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박 : 민중, 저항문화.

물 : 원래 호남에는 예전부터 거대한 지주들이…

박 : 그렇죠. 우리집도 일종의 지주였습니다. 아버님이 해방 되고 나서 엄청난 땅을 그냥 다 나눠주셨었습니다. 문화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지배계급의 엄청난, 뭐랄까, 확 죽여버릴 정도의 탄압, 그리고 피지배 계층의 목숨을 건 저항…

인터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호남의 문화에 대한 얘기를 계속 늘어놓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이다. 이 느낌은 뒤에 남북문제를 얘기하면서 다시 한 번 들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을 말로 잘 풀어내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거니까 또 끊고 넘어간다.

미국 교포 시절

물 : 미국에서 사업을 하셨다는데.

박 : 제가 미국교포 중에는 돈을 제일 많이 벌었습니다. 진짜 돈 많았어요. 맨해턴에 빌딩도 많고 진짜 잘살았어요.

물 : 그 돈 다 어쩌셨는가?

박 : 한푼도 안 남고 다 없어졌어요. 돈을 자꾸 이리로 가져오니까 미국 세무서에서 걸려 가지고 세금도 많이 내고, 숨겨뒀던 돈도 다 걸려서 뺏기고.

5

박지원 의원을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의혹은 그가 엄청난 재산을 숨겨두고 있다는 루머이다. 실제로 미국에 건너가 사업을 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고, 많은 재산을 김대중의 정치를 위해 썼던 것이 사실인데 그 때의 씀씀이를 봤던 사람들의 생각이 “저렇게 돈이 많던 사람이 그 돈을 다 썼을 리가 없어, 한 재산 어디다가 숨겨놨겠지” 하는 의혹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싶다. 본인은 돈이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박지원 전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던 지인의 얘기로도 실제로 돈이 없다고 한다. 정말일까? 아니면 그래도 한 재산 숨겨놨겠지, 하는 의혹이 맞는 걸까?

어찌되었거나 이제는 돈으로 정치를 하지는 못할 시대니까 이 문제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사실 더 캐물을 이유도 없고, 그런다고 해서 새로운 얘기가 나올리도 없다.

물 : 그러다가 미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신 건가?

박 : 그게 저는 굉장히 정치를 하고 싶어했어요.

물 : 미국에서 사업하던 시절부터?

박 : 아니 아주 어려서부터.

물 : 중학교?

박 :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에요.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 꿈이 대통령이었다고 했는데 나는 밤낮 국회의원이라고 했어요.

물 : 초등학교 때부터 국회의원을 꿈꿔 왔단 말인가?

박 : 그래서 내 별명이 야당원내대표였어요. 민주당 원내대표 하던 시절 제가 하던 얘기가, 내 소원은 대통령도 아니고 비서실장도 아니도 장관도 아니고 야당 원내대표였으니 내 소원은 일단 이루어진 사람이야, 했어요. 야당 원내대표. 어려서 별명도 야당 원내대표.

물 : 어려서부터 김대중의 정치를 보고 자라서 그런 건가?

6

박 : 그건 아니고요. 아버님은 독립유공자셨고, 집안 자체가 말하자면 민족주의자 집안이었고, 저항의 피가 흘렀겠죠. 집안 일가친척 중에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걸 늘 어려서 보고 자라니까, 또 어려서 나는 국회의원을 하고 야당 원내대표를 할 거라고 얘길 하면 어머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만약 내가 그때 대통령을 하겠다 그랬으면…

물 :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박 : 박지원 대통령 나오는 거지 뭐… 으하하하.

(이래서 어린 시절 꿈은 클수록 좋은 거다.)

물 : 그러다가 처음 만나셨나요?

박 : 제가 서른여덟 때, 미주 한인 회장을 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돈선거 했었어요. 막 동원해가지고 해야 되니까. 그 시절에 연합회장 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온 거에요. 그 땐 뭐 의식이 없었죠. 그 때 교포들은 대통령이 오면, 정부 주도 행사에서는 총영사가 인사를 하지만, 민간 행사에서는 한인회장이 하는 거죠.

물 : 그래서 전두환에게 환영사를 하신건가?

박 : 했죠. 그때는 당연히 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후에 김대중 대통령님이 오셨는데, 사실 망명을 오신 거지. 그래서 다들 찾아가고 인사하는데 나만 안 갔어요. 사실 내가 제일 먼저 갔어야 되는데, 그 때 교포들이 돈이 없었거든요. 무척 짜요. 그래도 내가 가야 좀 도와드릴 건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그러다가 나중에야 찾아가서 뵈었죠. 그 때 이희호 여사님이 무척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약속을 다 물리치고 준비를 다 하셔서 아드님이 직접 기차역으로 나와서 차를 가져와 픽업을 해 주시더라고요. 버지니아 아파트로. 그렇게 딱 뵙고 두 시간 정도 얘기를 하는데, 아 굉장히 부끄러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바닥에서 큰 절을 했어요.

전두환 대통령 환영사까지 한 한인회장이 망명객 김대중을 앞장서서 찾아가지 못한 심정은 백 프로 이해가 간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마음에 걸렸을 거다. 혹시 피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도 있었을 거고, 사람들 눈도 무서웠을 거고..

그런 사업가, 그것도 재미교포를 대표하는 한인회장을 겨우 두 시간의 대화로 큰절을 시키는 사람. 이게 정치인 김대중이다.

7

박 : 선생님, 제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내가 진짜 의식이 없었는데 이제 민주화 운동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한 거죠. 그랬더니 내 손을 꼭 잡아 주면서 일어나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도 진짜 탄복을 하는 게… 첫째, 박회장은 한국의 산물을 최대한 많이 수입해라. 수입해서 한국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기여하라…

박지원 의원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79년도에 실제로 수출유공자로 선정되어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전력이 있다. 정말로 사업을 잘했던 모양이다.

박 : 두 번째는 여력이 있다면, 인권문제 연구소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절대 나하고 관계가 있다는 얘기를 알리지 마라.

물 : 그건 참 의미심장한 얘기군요.

박 : 그게 그 때는 아, 나를 보호해 주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닌 거에요. 그 이후로 제가 한 역할이 메신저 역할이었어요. 지금에야 교포들이 잘 살지만, 그 때는 비행기 타고 한국 와서 호텔에서 자고 한 2주 있다가 돌아가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물 : 비용 때문에?

박 : 돈이 없었지. 그래서 따져보니까 내가 매년 한 열 번 이상 왔더라구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그럼 난 사업 때문에 왔지만 편지를 써주고 누구에게 전달하라 그러면 아무도 이걸 모르는 거에요. 그렇게 편지를 주면, 답장을 써 주니까 난 또 그걸 가지고 미국으로 가고.

물 : 내용은?

박 : 아이, 내용은 난 전혀 모르지. 갖다주라면 갖다주고, 가지고 오라면 가지고 오고. 거 알 필요도 없고. 내가 그걸 쭉 했어요. 이게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일 시키는 스타일이에요.

물 : 당시에는 꽤나 살벌했던 시절일텐데..

박 : 그렇죠. 난 사업가고 뉴욕 한인회장, 미주지역 총 연합회장, 한국 정부에서 볼 때는 내가 VIP인 거죠. 내가 세작(간첩)이라는 건 전혀 모르지. 거기다가 인권문제 연구소를 하는데 한달에 이만 달러씩 들어갔었어요. 그거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상하의원 명단을 주더라고. 뭔가 있으면 다 그 양반이 만든 거야. 그 명단을 주면서 후원금을 내주고 도와줘라 이런거였죠.

그러다가 나중에 단식 투쟁할 때, 딱 전화를 해서 인권문제 연구소 소장 하던 임병규 변호사하고 좀 들어와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또 비행기 표, 호텔비 다 해서 같이 들어와서 토요일날 도착했는데, 기자들도 있더라고요. 거기 갔더니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내가 월요일부터 단식을 하니까 넌 월요일 날 들어가서 당시 아태 소위원장이던 쏠라즈에게 다 얘길 해줘서 미국에서 청문회를 할 수 있도록 해라, 이거였죠.

이 사건은 1990년도에 김대중이 지방자치제 시행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하던 시점이다. 당시 13일간의 단식투쟁을 통해 김대중은 노태우 정권에게 강력하게 지방자치제 실현을 요구했고 이 투쟁은 효과를 거두어 1990년 12월 여야간의 최종 합의를 통과하게 된다. 지방자치제는 김대중이 60년대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책이었다. 무려 삼십 년만에 그 주장을 실천해내게 된 것이다.

물 : 미국 의회에 보내는 메신저 역할까지 하신 건가…

박 : 그런데 당에서는 총재님이 단식을 하는데, 너만 미국으로 또 도망가냐 뭐 이런 오해를 하는 거에요. 거기다 대고 내가 쏠라즈 만나러 간다, 뭐 이런 얘길 못하잖아. 그런 오해가 많았어요.

물 : 그런 오해들이 누적되고..

박 : 계속 쌓인 거죠. 그걸 권노갑도 몰랐어요. 나중에 권노갑이 미국 왔는데 사실 권노갑이 내 욕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미국 오기 전에 (김대중)총재님이 불러서 사모님하고 같이 박지원이가 이런 사람이다, 미국 가게 되면 박지원이 말만 들어라, 뭐 이런 얘길 하신 겁니다.

그래서 권노갑 고문님이 뉴욕에 딱 도착했는데,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죽 줄지어 서 있는거야. 그런데 나한테 오더니 손을 딱 잡고 옆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너 욕 많이 했는데 이번에 올 때 말씀하시더라, 그러기에, 얘길 다 해줬죠. 그래서 내 말만 듣고 움직이라는 소릴 듣고 왔으니 제가 쫙 움직여 준거죠. (웃음)나 진짜 그때 돈 많이 들었어요.

물 : 그걸 강조하시는 이유는?

박 : 아니, 실제로 당시 교포들이 돈이 없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권고문이 이러는 거에요. 사람들이 와서 봉투를 주고 가는데, 20불 30불이 들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어이, 박회장, 사람들이 나를 애기 취급하는 거 같어. 이걸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도네이션, 기부라는 건 무조건 1불에서 5불입니다.

물 : 문화 자체가 그렇다 이거군요.

박 : 그렇죠. 문화도 그렇고 실제로 돈도 없고. 그렇게 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하고 관계가 시작된 겁니다.

정리해 보자면, 박지원 의원은 미국에서 돈을 엄청 잘 버는 사업가였다가 망명객 김대중을 만나 감화된 이후, 김대중 정치의 자금책 및 연락책 역할을 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그냥 사업하면서 살지 굳이 정치를 하게 된 이유는 뭘까, 무엇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을까? 단지 어린 시절의 꿈?

정치에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게 단순히 권력의지와 같은 것들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치를 전염병 보듯이 혐오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이룩한 모든 것을 던지고 정치를 시작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을 만나 볼수록,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정말 다양한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정치인들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졸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의 시작

박 : 언론인, 사상가, 학자, 종교가, 시민사회운동가들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당선이 되어야 세상을 바꿉니다. 정당은 집권해야 되는 겁니다. 집권 안 하면 아무 의미가 없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사꾼은 한 10억 벌려고 했다가 잘하면 30억도 벌 수 있는 거고, 안 되면 천만 원을 벌 수도 있고, 적자를 볼 수도 있어요. 정치는 딱 All or Nothing입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떨어지면 사람도 아닌 거에요. 그런 절박함이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거요, 제가 볼 때는 후보 본인의 문제보다 목숨을 바쳐 열심히 해버리는 다섯 명만 있으면 됩니다. 필요 없어요. 진짜에요.

예전에는 진짜 엄청나게 했습니다. 기자들하고 술 먹을 때도 당이나 김대중 대통령님 돈 한푼 안 가져다 썼습니다. 다 내 돈으로 했지. 그리고 밤중 한 두시까지 술 먹고 나면 집에 갈 수가 없는거에요. 요즘 같이 찜질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돼가지고 그런 데서 자면 또 무슨 소리가 나오겠어요. 그래서 동교동에를 갑니다. 그리고 집 앞에 차 세우고 차 안에서 자요. 그러다가 여섯시 십분 되면 들어가고 했죠.

그 때 제 슬로건은 이거였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애국이다.

8

물 : 대통령 되고 난 다음에는 뭘 어떻게 할 건지는 생각 안하신건가?

박 : 저는 그런 건 생각 안했습니다. 일단 당선 자체가 목표인 거죠. 대통령이 되어야 애국하는 거다. 심플하고 단순하게. 대통령이 된 후에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애국이다. 성공을 위해서 우리는 충성을 해야 된다. 그게 애국이다.

청와대에서 비서들한테도 그랬어요. “이 쌔끼들 말야…” 악역은 제가 다 했어요. 이런 문화는 노무현 대통령이랑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솔직히 좀 부러웠어요.

리더는 미래를 보고, 비전을 만들지만, 스텝은 당장 다가온 다음 단계를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해야 된다는 마인드라고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스텝들을 동료로 간주하고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인 노무현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걸까. 시간순으로 배치해 놓고 보면 노무현 스타일이 좀 더 발전한 것일 수도 있다. 효율은 어떨까?

물 : 두 분의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더군요.

박 : 많이 다릅니다. 그 분(김대중)은 엄청난 박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을 안 믿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두 번 세 번 체크를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금은 권노갑, 최재승…

물 : 한 명한테 맡기지 않고?

박 : 절대. 정치는 한광옥, 박지원, 그리고 무슨 협상이라도 하게 되면 비선을 가동시켜서 다시 한 번 체크하고.

물 : 실제로 맡은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고?

박 : 모르죠. 뭐가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요. 주어진 일만 하는 거죠.

무슨 첩보조직을 연상케 하는 점조직 스타일, 거기에 이중 삼중의 크로스체크. 무지막지한 박정희 정권과 수십 년 넘게 싸우면서 몸에 배인 스타일이겠지만, 현대적인 조직운용은 아닌 스타일이다. 그런 조직 문화 속에서 박지원은 어쩌면 최상의 스탭이었을 수도 있다.

물 : 대변인은 어떻게 하시게 된 겁니까?

9

박 : 제가 원래 굴러온 돌이잖아요. 동교동 가신들하고는 다르죠. 그런데 제가 얼굴이 좀 예뻤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동교동 가신들은 인상이 좀 험악하니까, 좀 잘생긴 놈이 옆에서 있어야 그림이 나온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나는 진짜 일기 한 번을 안 써본 사람인데 대변인을 시키는 거에요.

물 : 굉장히 오래 하게 되는데..

박 : 4년 몇 개월을 했죠. 평민당 때 그랬어요. 총재님, 20세기에 만약 예수가 부활한다면 제 일성으로 뭐라 할지 아십니까? 그랬더니, “뭐여~”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기자 왔니?’ 할 겁니다. 그랬어요. 기자가 안 오면 예수도 부활할 필요가 없어요.

(이 대목에서 뭐여~ 하는 톤은 성대모사 수준이 아니라, 오리지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였다. 흠칫 놀랄 정도로. )

이천년 전에는 마굿간에서 구전으로 전해졌지만, 이젠 아닙니다. 재야에 계실 때야 언론을 비판하고 싸웠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언론을 상대 안하면 하루에 오백명을 만나시겠습니까? 결국 언론이라는 매체를 통해야 되는 거고, 국민을 상대로 하는 거고…

당시 평민당의 언론정책은 이랬어요. 공갈, 패고, 읍소. 이걸 바꿉시다, 읍소, 이해, 공갈… 저는 목마른 놈이 샘 파고 궁즉통이라고 생각을 해요. 미국에서 제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제 영어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사람이 보험사 세일즈맨하고 여행사 직원이에요. 자기들이 필요하니까. 그런 생각으로 언론이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그렇게 대해야 된다…

물 : 특별히 언론에 대해 공부하신 적이라도?

박 : 아무 것도 없어요. 대신 저는 소설을 좋아했죠. 지금도 소설은 계속 읽습니다.

물 :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언론을 상대하는 것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 : 이런 겁니다. 제가 메모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김수희 노래를 듣다가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난 작아지는가~ 이걸 메모했다가 얘길 합니다. 당신들은 왜 YS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웃음)

물 : 재활용?

박 : 생활에서 나오는 용어를 잘 쓰는 겁니다. 민노당 강기갑 대표가 그걸 참 잘하시더라고요. 생활용어를 쓰니까 사람들이 알아듣는 거죠. 어려운 말은 쓰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맨 처음에 마이크 잡고 이랬습니다. 저는 주어도 동사도 구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기도 안 써봤고. 그러니까 저한테는 개찰의 법칙을 적용해 주세요.

물 : 그건 또 무슨 법칙인가?

박 :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써달라는 법칙. 그냥 까놓고 얘기하는 거죠. 그대로 했어요. 오 년 간 십 년 간 휴가 딱 한 번 가봤습니다.

물 : 후천적인 노력이라는 건가.

10

박 : 노력도 있지만, 집중력은 제가 좀 강합니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미쳐버립니다. 집사람이 성격을 아니까 이런 얘길 합니다. 절대 단골술집만 만들지 마라. (웃음) 단골 만들면 여자 하고 사고 난다고. 그 정도로 집중을 합니다. 진짜 열심히 했죠.

그리고 책임을 지고자 했습니다. 이 참모라는 사람들이 꼭 무슨 일을 해도, “건의”를 했다고 말을 해요. 저는 그럽니다. 이 새끼야, 건의했다가 잘 안 되면 니가 책임 안 지려는 거 아니냐, 결과가 좋은 것은 대통령님이 하신 거고, 결과가 나쁜 것은 내가 한 짓이라고 해야 되는 거다. 결국 전 대통령님한테 임명장을 일곱 번 받았습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책임지고 그만두고, 눈만 뜨면 또 나갔다가 들어오고. 나중엔, 그만 두고 나가도 다음날 회의에는 그냥 또 참석을 하고 그랬어요.

물 : 그 때 같이 있던 사람들 중에 이번에 과천의왕에 출마한 분이 계시던데.

박 : 아, 이훈… 그 친구는 감방갔다 와서 위장취업해가지고 창원에 있었을 거에요. 내가 국회 있을 때 내 보좌관을 했었죠. 그런데 엄청 유능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국회의원 떨어지고 총재 공보비서를 시켰습니다. 거기 가서도 김대중 총재가 능력을 인정해 주니까…

물 : 당시 나이가 무척 젊었을 텐데..

박 : 엄청 어렸죠. 그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청와대로 데리고 가서, 공보수석이니까… 대통령 부속실에서 대통령과 나 사이를 오가면서 조율하고 그랬던 거에요. 그리고 연설문을 주로 썼죠. 연설은 대통령님 본인이 워낙 많이 쓰십니다.

물 : 워낙 잘 쓰시니까.

박 : 그래도 워낙 시간이 없으니까 요약을 해 주거나 녹음을 해서 주죠. 그러면 그 친구가 써오는데 무척 잘 썼어요. 그러다가 결국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까지 하고 나오게 되죠. 대단히 유능한 친구고, 또 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한 오 년 간 곁에서 안 떠났습니다. 의리있는 친구죠. 의왕과천에 나왔다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군요.

물 : 경선을 해 봐야 아는 거니까요.

박 : 그렇죠.

참고로 과천의왕 지역구는 안상수의 지역구이고, 민주당 쪽에서는 이훈 후보 말고도 유명한 민변 출신 송호창 변호사가 출마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총 8명의 후보가 뛰고 있으며 민주당 후보로 최종적으로 누가 결정되던지 간에, 최선을 다 하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내가 사는 지역구인 과천 의왕 얘기를 끼워 넣은 것은 인터뷰어의 특권!! 억울하면 니가 인터뷰 하등가~

국민의 정부 5년, 민주정부 10년

물 : 그런데 물론 직접 같이 하셨던 경우니까 좋게 평가하시겠지만, 국민의 정부 5년을 보내고 난 소감은 어떠신가?

11

박 : 굉장히 성공했다고 봅니다. 제가 사실 김대중 정부 5년, 노무현 정부 5년을 더해서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개혁이라는 말을 썼는데, 김대중 정부의 최대 개혁은 정권 재창출이다. 그렇기 민주정권이 이어져야 공무원들이 바뀌고 국민들이 바뀐다, 이거에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 개혁을 혁신이라고 바꾸긴 했는데, 미안하지만, 야당 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절대 그건 아니다, 참여정부도 최대의 혁신은 정권 재창출이 되어야 한다, 15년만 하면 국민의 이념과 가치관이 제대로 선다, 두 번으로는 부족하다, 제발 한 번만 더 잡아라, 이랬던 겁니다.

한 번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보세요. 10년을 겪고도 다시 돌아갔잖아요. 오늘도 박희태 뭐 어쩌고 하는 게 나왔는데, 그게 바로 10년 동안 바뀐 걸 모르고, 다시 과거에 하던 대로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사람들이 변화에 적응을 못해요. 저는 아마 민주당 의원 중에서 최고로 열심히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겁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FTA 문제로 얘기가 전이되는 바람에 국민의 정부에 대한 얘기가 뒤로 밀렸다. 기사에서는 순서를 바꿔 재정리 했다. )

물 : 국민의 정부에 대한 평가를 이어서 해주신다면?

박 : 정치는요, 내가 기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닙니다. 대학교수도 아니에요. 정치인은 유리한 얘기만 하는 겁니다. 불리한 얘기는 지적 받으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하고, 변명하면 변명해야 하는 거죠. 잘못된 얘기는 자기가 먼저 하는 게 아닙니다.

민주정부 10년 잘한 일이 얼마나 많냐고요. 왜 이걸 홍보를 못해? 왜 못하는 거냐구.

자랑스럽게 해라. 이게 정체성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뭐 이런 것은 당시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발생한 일이지만 시대가 변하고 보니까 잘못했기에 우리는 이걸 폐기하겠다, 고치겠다, 이게 정치지.

그럼 뭐 단군할아버지가 쪼끄만 데다가 도읍을 잡았으니 거기서 살아야 되나? 차라리 중국 중원 한복판에다가 자리를 잡아서 몽땅 다 대한민국 땅으로 잡아 넣지.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국민의 정부 오 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참여정부 오 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10년 간을 자랑스럽게 국민들에게 얘기를 하자, 이게 민주당의 정체성인 겁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요. 나쁜 정당, 나쁜 정치를 해요. 나쁜 업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그걸 떳떳하게 자랑을 해요. 우리는 좋은 정치해서 좋은 업적, 좋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끄럽게 말을 못해요. 내가 원내대표 할 때마다, 니들 자랑 좀 해라, 그런거에요. 그런데 친노들도 역시 그 얘길 못해요.

아니 왜 자기 반성만 하고 있냐고. 전부 다 얘기하고, 잘못한 거 지적 받으면, 그건 잘못했으니까 고치겠다, 이게 정공법이라고 보는 겁니다.

12

좋았다. 무척 언성이 높아지고 침을 막 튀기면서 얘기하는 데에도 사뭇 통쾌하게 들렸다. 못한 걸 잘했다고 우기라는 게 아니다. 왜 잘한 것도 얘길 못하고 쩔쩔 매는가, 왜 이리 당당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움츠러 드는가. 홍보가 어쩌고 전략이 어쩌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이 이룩한 역사에 자신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자존의 문제다.

이 사람은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

FTA에 대한 관점

박 : FTA에 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해영 교수나 노혜경 시인 무척 좋아합니다. 제 입으로 참여정부 비판할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자기들이 날 감옥에 보냈으니까.

저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FTA를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찬성을 했단 말이에요. 그걸 제가 어떻게 부인을 합니까. 그래서 참여정부 FTA는 OK, MB 정부의 재협상이 나빴다 이랬던 거에요. 결국 개성공단 문제도 그렇고, 북한의 경제발전 문제, 한반도 평화 핵 폐기, 이런 건 좋은데 이게 안 되면 안 되는 거죠. 사법 주권 문제도 있고, 뭐 여러 가지를 알아보니까 정리가 된겁니다.

그래서 당내에서 한미 FTA를 놓고 여론조사도 좀 하고 붐업을 좀 시키자, 그리고 당원들에게 개별적으로 편지도 좀 보내고, 이런 제안을 했는데… 아마 안 할 것 같아요.

물 : 안 할 수 밖에 없는 건가? 하려는데 진도가 안 나가는 건가?

박 : 몸 사리는 거죠. 근데 부자들이나 몸 사리는 거지 가난한 놈들(민주당)이 무슨… 저런 짓거리 하다가 이제 야권연대 이런 거 하면서… 내가 진영에 이러면 안 된다, 저축은행문제, 선거구 문제, 정권교체 이대로 가면 안 된다, FTA 여론조사라도 해보자, 이래도 잘 안 먹혀요. 조용환 헌법재판관 문제도 당신들이 다 속아서 이렇게 된 건데… 그런 말은 또 내가 공개적으로 못하잖아요.

물 : 그런 문제들에 대해 문제의식은 가지고 계신 건가?

박 : 그렇죠. 아니 왜 지금 우리가 FTA를 해야 되는 건데?

13

답답한 일이다. 분명히 박지원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풀어나갈 생각은 없는 걸로 보인다. 자꾸 당에 얘기를 해보고 있는데 잘 안 먹힌다 라는 수준에서 멈춰 있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적으로 만나서 물어보면 다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 뻔하다. 나는 반대하는데, 당에서 못한다…

문제는 아무도 안 나서고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민주당은 침몰하게 될 수도 있는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그 사실을 아무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원 역시 인식은 하고 있으면서도, 심각성은 좀 과소평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북송금 특검

물 : 좀 거북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넘어갈 수는 없다. 남북 사업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혼자 지고 재판을 받았는데, 현대 비자금 150억은 무죄로 나오고, 결국 무슨 돈 일억을 받은 혐의로 옥살이까지 했다. 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서운함 같은 게 좀 있는지..

박 : 그 1억도요. 남북 정상회담 때, 대통령 수행했던 기업인들이 이 좋은 일을 홍보 좀 해라, 하면서 SK 하고 금호 하고 이런 데서 몇천만 원씩 걷어서 기자들 주라고 준 겁니다. 그걸 나는 있는 그대로 전달을 해 준 거죠. 중간에 무슨 수석도 있고 비서도 있고 했는데, 조사를 한다 하니까 절대 내가 다 받았다고 해라 한겁니다.

물 : 왜 혼자서 하신 건가?

박 : 조사 받는 과정에서, 그걸 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했다고 말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혐의를 대통령에게 돌리면 연세도 있으시고 국격도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그러면 우리는 다 나갈 수(석방) 있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랬죠. 이거 노무현 대통령이 잡아넣는 거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풀어준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와 승부를 하는 거고, 우리는 우리 몸으로 승부하는 거다. 오 년만 살면 다 나간다. 걱정 마라. 이렇게 된 겁니다.

대북송금 특검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벤트였다. 참여정부에게는 앞선 정부와의 정치적 단절이 필요했고, 노무현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도 혐의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넘기자는 회유가 있었지만 박지원은 김대중의 역사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독박을 쓰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 안 있어서 사면 복권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박 : 풀려난 뒤에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서 식사도 하고 그랬어요.

물 : 뭐라고 하시던가요?

14

박 : 그건 내가 말 안 할래. (웃음)

물 :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신건가?

박 : 내가 딱 두 번 비난(노무현을)했어요. 연대 초청강의 가서 대북송금특검은 정치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아, 서울대였던가? 그 다음에 전남대에선가 한 번 붙었죠. 그 때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혼났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안 했어요.

그래도 섭섭한 것은, 내가 깨끗한 놈은 아니에요. 그래도 정치 자금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님도 그런건 안 시켰거든요. 그런데 무슨 노후자금 500억 가지고 오더니 수표 추적해서 하나도 안나오고, 150억으로 떨어지고 그것도 아니라 그러고. 결국 기자들 준 돈 1억 얘기까지 나온 겁니다. 그걸 기자들은 명예를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거기서 돈 받은 얘기 나오면 다들 짤릴 거 아닙니까. 그래서 끝까지 다 나한테 미루라고 한 겁니다. 검찰에다가 그랬습니다. 니들 총장은 촌지 안 주냐. 그 때는 촌지 주는 세상이었으니까.

물 : 그러니까 옥살이 한 게 문제가 아니라 죄목이 맘에 안 들었다는?

15

박 : 그래서 내가 서운했죠.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 받을 때, 다들 난 돈 안 받았다고 발뺌하고 아무도 봉하 안 갔잖아. 박지원이 혼자 법사위에서 떠들었죠. 니들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이명박도 반드시 불행해진다.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잖아요. 당시 이명박이 530만 표 차이로 승리하고, 의석 2/3 먹고 그러면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정리를 했어야지,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면 니들도 똑같이 당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 대단히 불행해진다.. 이런 겁니다.

이 부분, 대단히 뼈아픈 얘기지만 자칭 친노 정치인들은 정말로 뼈아프게 새겨야 할 부분이다. 노무현이 검찰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을 때, 자기는 아니라면서 쫄아서 외면하고 있던 당신들,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조차 다하지 못한 인간말종들이다. 김대중에게는, 김대중은 역사를 상대로 승부를 해야 한다며 자신의 몸을 던져 몸으로 승부했던 박지원이 있었다. 노무현에게는 단 한 명의 박지원이 없었단 말인가?

그래 놓고 빈소에서는 잘만 쳐울고 있더라. 이제 와선 스스로 친노의 적자 행세를 하면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신뢰, 그 신뢰를 받을 자격이 당신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지 정말 모르겠다. 나 또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 중에 제일 우울한 부분이었다.

박 : 작년에 내가 그랬잖아요. CNK(소위 카메룬 다이아사건) 얘기 나올 때, 형님(이상득) 물러가라, 형님이 안 하면 동생이 죽는다, 그 때 너희들 다 뭐라 했냐, 나보고 다 폭로쟁이라고 했는데, 내가 말한 게 틀린 게 뭐가 있어.

니들 이제 총선 끝나고 대선 때 되면 다 죽여버릴 거야. 까불면.

드디어 나왔다. 박지원의 빨대

물 : 더 커다란 걸 가지고 계신 건가?

박 : 아, 묻지 말아요.

물 :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게 그거다. 도대체 그런 거 어디서 구하시는가.

박 : 아, 내가 먹고사는 밥줄인데 그걸 왜 알려줘?

물 : 그래도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식인지라도…

박 : 사실 뭐 정치 하면 그런 제보가 다 들어옵니다. 문제는 무서워서 말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도 우린 하거든. 박영선도 잘하잖아요. 내가 주면 요리를 잘해요.

물 : 박영선 의원은 제보가 안 들어오나요?

박 : 아니 들어오긴 하는데 내가 도와주지.

물 : 제보자 관리를 오랜 시간동안 잘 하셔서 꾸준히 들어오는 건가?

박 : 그럴 수도. 이번에 대정부 질문 하는데 질문하는 사람이 나한테 왔어. 야, 맨날 이명박만 잡지 말고 박근혜 하나 끼어 가라고 하나 줬는데, 질문이 없어져 버렸어요. 지금 민주당이 진짜 잘못하고 있는 거에요. 부패 무능한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쇄신하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이렇게 분리하는데 우리가 말려들고 있다니까요. 지금 박근혜 무지 똑똑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가랑비 작전을 써야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맨날 박근혜를 조져야 꼬리를 잡는다고. 어떻게? 매일 하나씩 알아서 잘 해야 하지.

물 : 뭔가 있나?

박 : 아… 나왔지… 으하하하.

물 : 기대해 보겠습니다.

결국 빨대는 구경도 못했다. 씨바, 절대 안 보여준다.

사실 뭐 별 거 없을 수도 있다. 허풍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경계선 줄타기를 하면서 어떻게 써먹느냐 하는 테크닉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제보자라면 다른 의원들보다는 박지원에게 가져가고 싶어질 것이라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래도 궁금하긴 한데… 어떻게 알아보는 방법이 없을까?

아마, 현실 정치에서 은퇴한 다음에야 일화 들려주듯이 풀어 놓지 않을까 싶다.

당 통합과정에서의 잡음

물 : 이건 딴지일보 지면을 통해서 해명의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당 통합 과정의 문제에 대해서 한 말씀.

16

박 : 저는요. 통합은 누구보다도 김대중 대통령님이 주장하신 겁니다. 제일 먼저 많이 했고, 지금도 제가 원내대표 역대 연설을 홈페이지 다 때려넣고 있는데, 통합 연대의 주장이 제일 많아요. 하긴 하되 질서 있게 하자, 그래서 결국 혁통도 시민통합당을 만들어서 당대당 통합으로 했잖아요. 법적 하자 하나도 없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우리 보고 투항을 해라, 이래 버리면 미래가 없어요. 호남, 김대중, 민주당 이 사람들을 끌고 가야 되는 거지. 이광재도 최문순도 박원순도 결국 제가 도와줬잖습니까. 지역감정 문제로 나는 비난 받으면서 도와준 거고, 박원순도 도와줘서 고맙다고 다 했습니다. 저는 제 역할이 있어요. 저는 통합을 반대한게 아니라, 분당을 막은 거다 라고 생각합니다.

물 : 그러니까 통합을 막은 게 아니라 불만 있는 사람들을 감싼거다?

박 : 그렇죠. 나는 괜찮습니다. 부산에서 출마한 사람도 거기 20%가 호남 유권자에요. 제가 연설이라도 해 줘야 다만 천 표 이천 표 들어옵니다. 내가 무슨 문재인 대통령 된다고 총리를 달라 했어, 김정길 된다고 내가 무슨 장관을 하겠어. 난 하도 이 새끼들이 미우니까, 정권교체 해야 된다 이게 전부에요.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 관계의 보전. 내가 먼저 인터뷰 했어요. 난 정권교체 되면 초대 평양대사 시켜달라고.

난 대통령감이 아니에요. 대통령 감은 따로 있는 거지.

박지원의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해명이다. 당 통합에서 소외된 전통의 호남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을 박지원이 막아 준 거다 라는 점. 실제로 박지원이 없었으면 통합하는 전당대회장에 각목이 날아다니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거기에 덧 붙여 스스로 더 이상의 자리 욕심이 없다는 점을 강변하는 배경에는 그간 무수히 박지원에 대해 당신이 여기서 더 무슨 자리를 원하는가 하는 의혹이 쏟아졌었다는 사실이 깔려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박 : 그래서 통합 과정에서 나한테 쏟아진 오해가 많지만 다른 변명 하지 않고 감수하면서 이렇게 오니까, 이제 다시 당에서 박지원의 기여도를 인정하고 있잖아요. 내가 비록 4등 했지만 가만히 앉아있어도 나를 무시는 못하지.

물 : 그것도 질문하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가오가 좀 빠지지 않는가?

박 : 그게 국민의 선택인데 뭐. 사실 나도 사퇴해 버리려고 했었어요.

물 : 그게 언제 보였냐면, 한명숙 대표 옆에 문성근이 서 있고, 그 옆에 서 계시는 모습에서 보였습니다.
박 : 정치는 원래 그런 거에요. 나도 진짜 사퇴하려고 했는데, 내가 호남 유일이 되어 버린거야. 이강래가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전 사퇴했을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사퇴해 버리면 난 자기 명예를 위해 가는 사람이 된다고. 정권교체에 기여를 못하게 되는 거지.

물 : 정권교체를 위해 자기 명예를 포기하는 것을 감수하겠다?

박 : 나 광주전남 통털어서 지역구 지지도가 제일 높아요. 일등. 지역구 관리를 엄청 해서 일 년에 50번 이상 내려갑니다. 오늘도 또 내려가고.

궁금한 점은 과연 진짜로 더 이상의 권력욕이 없이, 오로지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 집단이 미워서 정권교체를 위해 남은 여생을 쏟아 붓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정치란 알 수 없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사람도 당장 대선 후보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게 정치인 거다. 그러나 최소한 이 얘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리고, 최소한 동 세대 사람들에 비해 권위의식은 확실히 없어 보였다.

돈봉투 사건

물 : 돈봉투는 있었나요?

박 : 그거 제가 아닙니다. 아닌 걸로 확인되었어요. 언론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물 : 그런 일이 생기면, 항상 이 쪽을 쳐다보게 되던데요.

박 : 아니 그것은 숙명적인 겁니다. 저한테는 과거의 정치, 김대중의 정치, 동교동 가신의 정치가 살아있는 거 아니에요? 그걸 제가 변명을 해 버리면 배신이 됩니다. 이건 제가 숙명적으로 달고 가야 되요. 우리 시대에는 그렇게 했잖아요.

물 : 요즘에는 진짜로 돈봉투가 없는건가?

박 : 요즘에는 없어요. 어차피 정치하려면 돈이 들어가는 건 맞아요.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법이 바뀐 겁니다. 관행적으로 내려 오던 것도 법에 걸리면 안 하는 게 맞아요.

물 : 상황이 바뀌었다?

박 : 그래서 내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다고 한 겁니다. 관행적으로 하던 것도 위험하다 싶으면 제일 먼저 중단합니다. 내가 과거에 기자들에게 촌지 주고 그런 거 안 했다고 그러면 거짓말이죠. 그때는 그게 해도 되는 행동이었고, 지금은 아니게 된 겁니다. 그러면 지금은 하지 말아야죠.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겁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건데, 적응 못하면 죽는 거죠.

물어본 나도 참 썰렁한 게, 이게 만약에 아직도 돈봉투가 있다면 있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있나? 제로지. 있어도 없다 할거고, 없어도 없다 할 질문을 왜 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인식 한 가지를 확인하는 소득은 있다.

박지원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새누리당의 전략에 대해

물 : 중요한 질문입니다. 새누리당의 총선 대선 전략을 어떻게 보시는가?

17

박 : 크크크 (비웃는 웃음) 로고가 꼭 애들 변기같이 생겨가지고… 똥이나 치울 겁니다.

물 : 별다른 전략이 없을 것이다?

박 : 박근혜가 잘해요.

물 : 잘하고 있지 않은가.

박 ; 아까 얘기 했잖아요. 실제로 내공이 있는 여자입니다. 아~주 그런 독종이란 말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끊어 버리나. 지도자는요 잔인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온정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거죠. 박근혜는 그걸 가지고 있어요.

거기다가 아까 말한대로 이명박의 한나라, 박근혜의 새누리 완전 분리에 성공하고 있잖아요. 이거 성공하고 있고, 이제 아마 친박계를 사정없이 쳐버릴 겁니다.

물 : 그럼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박 : 내부에서 문제 안 생겨요. 왜냐면 확실한 대통령 후보니까.

물 : 그럼 누굴 공천하나?

박 : 할 사람은 많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는 설명을 안 하잖아요. 검증을 안 해요. 이 문제로 인해 대통령은 절대 안 될 겁니다.

물 : 대통령은 안 되지만 새누리당은 살린다?

박 : 작년인가, 제가 대구에 가서 얘기하면서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인 게 문제가 아니라 유신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다는 얘길 했습니다. 퍼스트레이디였잖아요. 또한 이명박의 실정에 공동 책임이 있다. 집권초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둘 있었어요. 청와대 이명박, 여의도 박근혜. 출자총액 제한제 같은 거 할 때, 아니 너 전에 이명박이 할 때에는 아무 소리 없다가 왜 이제와서 이걸 하느냐, 이런 걸 계속 쳐줘야 합니다. 가랑비 작전으로 이런 걸 계속 쳐줘야 되요.

예전 우리가 대변인 할 때에는 이런거 사정없이 쳤습니다.

물 : 언론에서는 정반대로 보는 것 같다. 민주당이 잘하고 새누리가 못하는 걸로.

박 : 그거 반대로 봐야 됩니다. 언론에서 문재인 떴다, 이러면 이거 문재인 죽이려고 그러는 거에요. 문재인 역시 내공이 있더라구요. 그걸 딱 아니다 라고 깔아 줬더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겸손하게 노력해야 되는 거에요. 국민 앞에서 까불면 죽는 거지. 역대 까분 놈 치고 잘된 놈이 없어요. 그래서 난 총선에 우리가 너무 많이 이기는 것도 걱정입니다. 그러면 대선에서 문제가 된다는 거죠.

물 : 그러면 이겨도 힘들고 져도 힘들고.

박 : 그러니까 대선 후보는 우리가 4월이 지나서 내야 됩니다. 미리 얘기하면 안 되고, 정동영도 나와라, 손학규도 나와라, 김정길, 김두관, 문재인, 뭐 정세균도, 다 나와라. 그렇게 나와서 하나씩 탈락되고 안 되고 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내부 경쟁이 쎄게 붙어야 돼.

물 : 최후의 승자를 위해.

박 : 박근혜는 그렇게 계속 말은 안 하고 독재를 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돌멩이를 좀 던져줘야 되는데, 우리 야당은 꼭 중요한 순간에 돌멩이를 옆으로 던져요. 우리끼리 죽인다고. 그러지 말고 계속 가랑비로 죽여야 되는 거야.

물 : 그러면 결국 내리막길을 갈거다?

박 : 경기나게 하는 거야. 내가 전에 이회창 잡듯이.

그럴싸하다. 그리고 가랑비 작전 맘에 든다.

의사결정 방식

물 : 그 때 참 대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박 : 이회창이요. 글쎄 왜 내 캠프에는 박지원 같은 놈이 없냐 그랬답니다. 이회창이 참 인위적인 너털웃음 웃고 앞뒤로 막힌 사람인데, 그보다 훨씬 더 막힌 게 박근혜에요.

물 : 말이 안 통한다는 건가?

박 : 검증이 없잖아요. 측근도 없고 자기 혼자 결정을 하니까.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의중을 어떻게 알아.

조직은 말이죠. 그룹 디씨젼 메이킹(Group Decision Making, 집단 의사결정)을 해야지 저 혼자 다 결정해서 냅다 해버리면… 여태까지 그래왔잖아요. 이래서는 대통령 하면 안 됩니다. 굉장히 위험해요.
단 한 번 실수만 해도 나라가 절단 나는데…

18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박근혜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부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근혜가 누군가 옆에서 써주는 수첩을 보고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농담이 유행한다. 하지만 실제로 박근혜는 매우 독단적이고 혼자 결정하는 스타일이라고 박지원은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의사결정 방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은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런 의사결정 방식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가 없다, 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는 걸까?

과연 실제로 박근혜가 그런 스타일인지, 또 그 스타일로 인해 선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야권연대

(이 대목에서 배석한 보좌관의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는 뜻.)

물 : 민주당의 야권연대 전략에 대해 한 말씀.

박 : 근본적으로, 얘기하기 좀 그런 문제인데, 민주당의 자세가 좀 바뀐 거 같아요.

물 : 어떤 자세가?

박 : 내가 니들 이러면 오만하다고 얻어맞는다고 얘기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에 보니 일제히 오만하다고 얻어맞더만. 신문에서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거죠. 연합 연대 해서 1:1 구도를 만들지 못하면 집니다. 과반수를 못해요. 과반수 못하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지는 거에요.

대략, 지역의 특성에 맞춘 각각의 방법으로. 경쟁력 있는 쪽으로 단일화해야 된다,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뭐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19

물 : 그렇게 될까요?

박 : 민주당은 지면 칠팔십 석 밖에 못 건집니다. 한나라당은 탄핵 때도 130석을 건졌습니다. 그 때 진짜 거리에 한나라당 지지자가 한명도 없었어요. 그래도 이래요. 한나라당 무서운 정당입니다. 지금 골골골 한다고 얕보면 큰일 납니다.

물 : 더 죽는 척 하고 있다.

박 : 단일화 안 되면, 과반수 못하고, 우리가 한 160석 못 가져오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정치는 숫자에요.

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단일화 안해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지 않은가?

박 : 그것도 있고.. 또 어려운 점이 하나 더 있어요. 진보신당 문제입니다. 민주당하고 통합진보당하고 단일화 성공해서 한 명이 나가죠? 그러면 거기에 진보신당이 나올 겁니다. 수요가 있어요. 그러면 지역에서 당선이 안 되더라도 몇천 표씩 모아서 비례를 먹게 되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진보신당 후보 나오면 민주당 출신 단일 후보가 있어도 민노당 출신들은 진보신당 후보 찍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진보신당은 전국적으로 비례대표 겨우 몇 석 먹고, 오히려 지역구 싸움에서는 여러 개 빼앗겨서 진다는 겁니다.

물 : 복병이군요.

박 : 그러더라도 야권이 연대해서 잘 하면 전체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대도 어렵고 이렇게 되면 다 죽습니다. 한미 FTA요? 천만의 말이에요. 모든 것은 이겨야 된다는 겁니다. 지면 아무 것도 아닌 거에요.

지혜롭게 해야 된다, 이겁니다. 아마 대화 시작하고 잘 할 겁니다.

물 : 민주당 쪽이 좀더 노력해 주길 빈다.

박 : 아, 그런데 말이죠. 극렬한 사람들이 밖에서 막 비난하고 그러는 거 바람직하지 않아요. 좀 참고 기다려 줄 줄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야권 연대는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를 떠나서 새누리당이 다시 과반수를 먹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라. 이런 급박한 인식이 민주당에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역시 개개인들은 다 급하게 생각하면서도, 집단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기형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 않은가.
진보신당 복병론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남북사업

물 : 앞으로 총선 지나고 대선 지나면 다시 임기가 시작된다.

박 : 의정활동은 내가 책임지고 잘 할게요.

20

물 : 그러니까 뭘 가장 하고 싶으신 건가?

박 : 아우~ 이 새끼들 때려 죽이는 걸 제일 하고 싶어요. (웃음)

물 : 정권이 교체 된다면?

박 : 남북사업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문제에요. 새 정권 들어와도 한참동안 말썽 부릴 거에요. 김양건(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에 조문왔던 사람이다.)이나 그런 사람들은 쭉 계속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라 만나서 니네 이런 식으로 하면 죽는다, 뭐 이런 얘기까지 할 수 있어요. 전에 조문 왔을 때, 저녁 먹으면서 니네 고개 수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만나고 가라, 안 그러면 니네가 먼저 죽는다, 이 새끼들아, 뭐 이런 얘기 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하루 연기해서 만났잖아.

이 사람들은 귀를 붙잡고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어요. 북한은 과정이 필요 없잖아요. 결정만 있지. 우리는 과정이 복잡하고. 그러니까 김정일 귀를 붙들고 설명하면 되는데…

물 : 김정일은 죽었다. 김정은은 어떤 사람인가?

박 : 난 몰라요. 전혀 몰라요. 한 번도 본 적도 없어.

(완전히 숨겨져 있다가 세습을 이어받은 지도자 김정은. 당황스럽다.)

박 : 장성택이는 잘 압니다. 술도 잘 먹고, 아주 강경파에요.

물 : 그러면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박 : 그러니까 지금 자기들도 벼랑 끝이거든. 지금 6.15나 10.4 이후로 우리가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쪽에서 볼 때는 이게 미치도록 변한 거에요. 이젠 통제가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가 쪼금만 더 주면, 체제의 변화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흡수 통일을 하게 되면 서로 망하니까 안 되고, 조금만 더 해줘서 저 쪽이 좀더 커야 되고, 지랄하지 말고.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도와 줄 테니 잘 들어라 하고 설명을 해줘야 되요.

21

김대중 대통령님이 뭐라고 하셨었냐면, 정치는 선비적 문제의식도 있어야 하지만, 상인적 현실감각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를 북에 보내면서, 가서 이거 하면 니들은 이만큼 이익이고, 이거 안 하면 니들은 이만큼 손해라고 자세하게 설명하라고 시키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그 쪽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요. 금강산 처음 할 때에도 한 달에 얼마씩 주기로 했는데, 그러니까 걔들은 딱 그거만 받아야 되는 줄 알아. 여기다가 시설을 자꾸 늘리고 사람들이 더 가게 되면 머릿수가 늘고 돈을 더 받게 된다는 점을 이해를 못해요. 귀찮다 이거야.

시장경제라는 것이 우리는 거기서 살아왔으니까 다들 아는데 그들은 모르는 거죠. 옛말에 중이 고기맛을 보면 뭐 어쩐다고 그러잖아요. 이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해야 되는 겁니다.

물 : 이해하기 힘들겠죠.

박 : 저쪽 대남일꾼들이 굉장히 빨리 죽습니다. 왜냐면 스트레스 때문에. 협상을 하는데 우리는 협상대표에게 여지를 주잖아요. 이만큼 하면 좋고 좀 덜해도 되고. 걔들은 이만큼 하라고 그러면 와서 딱 이만큼만 해야지 덜해도 안 되고 더해도 안 되요. 가서 자아비판 해야 된다니까. 그러니 스트레스 받아서 술 먹고 일찍 죽지.

걔들한테, 야 임마, 니들이 이러면 우린 돌아가서 수구꼴통들한테 맞아 죽는다, 이러면 자기들도 그래요. 장관 선생, 우리도 수구꼴통 있어요, 군부새끼들이 우리 가만 안 둬요. 이름만 대면 알아요. 이런다고. (웃음)

물 : 사실 북한 애기를 많이 듣고 싶었는데, 요즘 관심사가 총선에 온통 쏠려 있어서요.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 될 듯 합니다.

박 : 나중에 남북 문제로 다시 한번 자리 잡고 얘기좀 합시다.

물 :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한 문제 얘기에서 박지원은 엄청난 자신감을 보인다. 일단 북한의 고위층들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건 기본이고, 그들과의 오랜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해 상당히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만약 정권이 바뀐다면 다시 북한을 상대로 활동하는 박지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하는 기대가 들기도 한다. 이 사람의 강점은 여기에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2

이걸로 시간에 쫓기던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잠시 농담이 오가고 재미있는 일화도 나오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별도의 기사로 알려 드리겠다.

민주당 내에서 박지원의 존재감은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 차원의 중요한 결정에서는 살짝 배제되고 있다는 느낌. 원내 대표로 민주당을 이끌며 다들 기가 죽어 있을 때 혼자서 기세등등하게 한나라당을 대적하던 모습에 비하면 한 걸음 후퇴한 걸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경험, 노련한 테크닉 같은 것은 그냥 묻어버리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어찌 되었거나 그는 무사히 총선을 통과할 것이고 차기 국회에서 우리는 그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연 박지원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사뭇 궁금하다.

정치인 박지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사”다. 그것도 민주당의 최신 현대사 그 자체이다.

우리는 분명히 역사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4 thoughts on “딴지이너뷰 – 박지원을 만나다

  1. 정독했네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그알싫’ 방송 듣는 기분이었어요~ 물뚝님… 미…나…ㅁ 이시네욤ㅋ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