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상처를 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치는 상처를 준다. 그것도 아주 깊고 오래가며 그 흉터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것 같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치고, 이런 상처 몇개 없는 사람이 없으며, 그 상처는 두고두고 남아서 고통을 전파하고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정치 자체를 끊을 수는 없고..

상처가 주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생각을 해 보다가 문득 결론이 생각났다.

상처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 자체를 직시하고 그게 상처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오히려 본질적으로 그건 당연한 일이며, 그걸 상처로 느꼈던 내가, 또 우리가 얼마나 모자른 사람들이었는가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 모진 상처들은 어느새 즐거운 추억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을 길건 짧건 정치에 관여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통스러웠던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괴로와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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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내가 길고 긴 생각 끝에 어떤 결론을 내렸어. 나름대로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전인 단계를 거쳐 어떤 답을 얻은거지. 그리고 그 답을 곱씹어 보니 진짜로 효율적이고, 이대로만 한다면 우리가 이겨. 진짜 좋은 결과가 나올 거 같아.

그래서 그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거지.

“야, 우리 이렇게 해보자. 그럼 잘 될거야. “

그런데 그게 아니라네. 상당수의 사람들은 어~ 그거 맞네~ 하면서 동조해 주는데, 어떤 넘들이 아니래. 그렇게 하면 우리 좆망하는 거고,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된다네.

그 뿐인가?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썩어 자빠질 생각을 해냈냐고 욕을 막 하네. 그러면서 되도 않는 다른 주장을 막 늘어놔. 그래서 내가 좋은 맘으로 설명을 해 주는 거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게 맞다.. 맞잖아. 당연한 얘기잖아. 그렇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잘 설명을 해 줬더니, 오히려 그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요래서 안되는데 도대체 뭔 소리냐고 막 들이대네.

그거 참, 그런 거 저런 거 내가 생각 안해봤나, 다 생각해 본거라고. 그거 반론의 핵심요지들, 다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그건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약간의 부작용 같은 거라니까. 어떤게 더 중요한 건지 전체적인 국면을 보고,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가야지.

이렇게 얘길 해줘도, 전혀 안 먹혀. 설득이 전혀 안되는 거야.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지.

니들 혹시 뭔가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런 이상한 주장을 하는거 아냐?

아뿔싸, 여기서 이걸 입밖에 내면 안되는데, 그만 흥분한 나머지 글로 싸질러 버리게 되는거야.

“니들, 알바들이지?”

이 얘기 나오기 시작하면 게임 끝나는 거지 뭐.

사실, 이 사건 전개의 흐름 속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부분은 바로 이거야.

애초에 의견을 제시한 이 친구와, 이 친구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저 친구, 그 둘은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 똑같은 주장이 아니라, 생각을 해내고 그 생각을 주장하고 상대의 반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똑같다는 얘기다.

당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뭔가 자신만의 생각을 해내는 것은 아주 기본적이며 권장되어야 할 자세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지만, 그 의견이 만고의 진리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사실인데도, 이걸 실제로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거든. 내가 생각해낸 이렇게 그럴싸한 얘기가 틀릴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을 해?

어떤 참신한 생각을 해 낼 경우, 그 생각을 해 낸 자신이 엄청나게 대견해지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뿌듯하기까지 하잖아.

오, 신이시여~ 과연 제가 이 생각을 해 냈단 말입니까?

그런데 거기에 반론이 붙으면 기분 팍 상하지.. 그 반론을 보는 순간, 반론의 근거들은 진짜 내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자마자 “아, 저거, 내가 다 생각해본 문제들이잖아. 그거 쥐뿔도 아냐.. ” 뭐 이런 쪽으로 생각이 막 돌아가는 거야. 누구나 그렇게 된다니까.

그러면서 상대와 사생결단 싸움을 하게 되는.. 뭐 이런 당연한 전개로 흘러가기 마련.

바로 이게, 쌈나는 기본이며 심지어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싸움마저도 정확하게 이런 수순을 밟아 진행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양쪽의 사람들이 다 똑같다는 점이다.

물론,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싸움판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흔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양측의 주장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하고 괜히 조금이라도 더 아는 사람 편 들면서 한마디 거들다가 덩달아서 싸잡아 욕먹게 되고 흥분해서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가 되기 일쑤다. 이렇게 되면 집단 패싸움이 되고.. 세력이 한쪽으로 기울면 패싸움이 아니라 집단 다구리가 되고.

이러면서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거야.

그리고 그 상처는 절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아.

왜냐면 정치적 의견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이기 때문이야. 이 엇갈린 두 주장 중의 하나가 사회적 의제로 채택이 되어, 현실속에서 구현이 되어 버리는 상황까지 와서도 두 주장의 진위가 판별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거든.

A안이 채택되어 사회적으로 그 정책이 구현되었어. 그게 잘 된건지 못 된건지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지. 거기다가 비록 그 정책이 90% 이상이 잘된 정책이라고 하는 압도적인 평가를 받게 되어도, 애초에 B안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B안을 택했으면 더 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또, A안을 선택하는 바람에 완전히 망해버렸어. 그러면 B안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거봐라, B로 했으면 이렇게 안 망했지~ 하는 심정이 들지만, A안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그나마 A로 했으니 덜 망했지, B로 했으면 완전 거덜났을 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게 당연하거든.

그러니 애초의 거대한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는.. 서로 내 생각이 옳았다고 자위하면서, 그 때 왜 쟤들은 딴 소릴 하면서 일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하는 마음을 평생 가지게 되는거야. 그리고 그들의 사이는 서먹한 정도를 넘어서서 같이 쓴소주 한잔 안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거지.

거기다가 알바 소리 나오고 서로 머리 풀어 헤치고 머리 끄댕이 잡아 댕기면서 쌈이라도 했다면, 그들은 진짜 개인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도 평생 어떤 일을 같이 하기 힘든 진짜 무서운 웬수지간이 되어 버린다는 거지.

이거 털어버릴 줄 아는 사람들 진짜 몇명 밖에 못 봤거든.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중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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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해봐.

어떤 사람이 어떤 의견을 말해. 그 의견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수천만가지 의견중의 하나에 불과해. 지금은 이런 얘길 하지만 어제는 다른 얘기 했었고, 내일은 또 다른 얘길 하는게 그 사람이라고. 근데 그 의견이 아무리 맘에 안들어도, 그 의견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을 버린다는게 말이 되나?

그 의견도 문제지만, 그 의견을 주장하는 그의 극단적인 태도 때문에 그 사람을 버려야 한다고?

이봐~ 이봐~ 그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의견을 주장하게 된 이유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당신이 먼저 그렇게 극단적으로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해보나? 그 사람 보기에는 바로 당신이 문제라는 생각.. 이런 기본적인 역지사지 같은건 전혀 안해볼거야?

그렇게 따지면 그 사람이 당신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당신 역시 할말이 한개도 없다니까?

그것까지 각오하고 한거라고?

각오할 일이 따로 있지, 겨우 그까짓 한개 주장이 얼마나 큰 일이길래, 언제 어떻게 내 편이 되어 큰 일을 해 줄지 모르는 사람을 버려? 그것도 십중팔구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매번 하나의 집단을 버려왔잖아.

버리고 나면 맘도 좀 편하고 일도 좀 더 잘되던가? 아니잖아.. 매번 속으로는 씁쓸해 하면서 후회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잖아.

모든 거 떠나서..

우리한테 있는게 사람 밖에 없는데, 사람을 버리면서 뭘 취할려고 하는건지..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생각좀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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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치에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작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수만, 수십만명에게 보여주게 되면, 필연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겨.

그 사람들이 내 글에 담긴 주장을 논박하면서 쌈이 벌어지면 나 또한 상처를 받게 되는거지. 나같은 듣보잡 글쟁이도 이 짓을 십년 가까이 해 왔더니,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도 한 무데기, 그들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도 한 무데기야.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그런 상처들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그 상처로 내가 암에 걸리나, 교통사고를 당하나 밥을 못 먹나.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다 어쩔거야.

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길 해 주고 싶어진거야.

그 상처들, 알고보면 실제로 상처가 아닌거야. 그냥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너무 맘들만 급하고 의욕만 앞서서, 그렇게 서로 미숙하고 어리기 때문에 벌어졌던 해프닝 들이라는 거지.

그러니, 그런 상처를 기억하고 자꾸 헤집어서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그러는 거는 좀 그만뒀으면 좋겠어. 또 지난 일들에서 좀 배우고, 앞으로는 의사소통의 방법을 좀더 갈고 닦아서 새로운 상처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도 좀 하고.

기왕에 벌어진 상처는 뭐.. 어쩌겠어. 그 상처는 사실 상처가 아니라고 깨달아서 더 이상 안 아파졌으면 제일 좋겠고, 그게 정 안되고 자꾸 아프면, 치유하도록 노력을 해 봐야지.

그렇게 상처를 늘여가는 속도, 아픔이 늘어가는 속도보다 치유의 속도가 빨라진다면, 이 사회에 존재하는 고통의 총량이 줄어들겠지 뭐.

올해부터는 그렇게 좀 살아볼까 하다가..

아 그게 안된다니까.

올해까지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카에게 무상급식을 시켜 드리기 위해 조금만 더 상처받을 각오, 상처 줄 각오를 유지하면서 좀더 전투적으로 살기로 하고!!

내년부터 평화롭게 살기로 맘먹는 걸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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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정치는 상처를 준다

  1. 님이 진중권에대한 진정성 있는 변호(?)를 하셔서 평소 듣기도 보기도 싫은 진중권의 주장을 읽어 보았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진중권의 주장은 매우 합당하며 저도 동의 했습니다. 판사는 나름 객관적이 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가 김총수나 나꼼수가 자기 한테 깨질꺼 같으니까 응대 안한단 말에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근데 정봉주 의원에 대한 발언은 님이 말한 상처 입니다. 왜냐면 감옥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쥐만 알게 이감 되었으니까요.
    최근엔 나꼼수 들으며 깔깔 거립니다 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눈에 눈물이 찔끔 나네요. 누가 먼저 때리기 시작했는지 누가 상처를 더 받았는지 무릎 맞데고 따져 보지 않아도 진중권님이 훨 더하겠죠. 근데요. 그래도 정봉주 의원 그딴식로 개무시 하는건 기분 나쁩니다. 아무리 그가 믿을수 없을 만치 경박하고 깔대기나 들이대고 남의 이야기 잘 듣지 않지만 이미 정이 들어버렸고 까치 까치 설날에도 감옥에 계시니까요. 저더러 지금 정 따위를 논리에 들이대냐 하신다면 할말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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