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반복되는가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 포스터를 보게 되었었다. 뭐야 이거..

이젠 원숭이도 혁명을 하나? 이볼루션(진화)이 레볼루션(혁명)이 되다니.. 이게 도대체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까.

하다하다 못해, 이젠.. 헐리우드의 오락거리로 “혁명”까지 굴려 먹는 이 장사치들이.. 순간 불쾌감이 엄습했지만 찰턴헤스턴 주연의 원작 Planet of the apes 를 떠올리면서 궁금증이 더 강하게 몰려 오기도 했다.

도대체 뭔 수작일까…

실제로 원작 “혹성탈출(이 번역 무지 불쾌한 수준이다. 행성도 아니고 혹성이라니.. 그리고 있지도 않은 탈출이라니..)”은 상당히 괜찮은 수작이었다. 덕후기질을 발휘하는 팬덤정신이 똥꼬 깊쑤키부터 생성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리즈 전체를 흥미롭게 지켜봤었고, 뒤로 갈수록 재앙이 되어가는 작품의 수질저하를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었던 정도다.

원숭이들의 사회에 홀로 던져진 인간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악습, 갈등, 투쟁, 혼란, 사실상 이 모든 것들이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그걸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는 원숭이들의 사회라니..

마지막 장면에서 이곳이 어딘가 안드로메다의 다른 행성이 아니라 내가 살던 바로 그 곳이며, 다만 주인만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열을 터트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여태껏 지켜보면서 미개한 원숭이들이라 저런 짓을 하는구나 하고 약간은 안심하고 있던 관객들에게 그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똑같은 문제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며 소름을 잔뜩 선사했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거다.

과연 우리 사회는.. 아니 모든 사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건가?

신작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구조를 만들어간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인류는 말도 못하고 사냥이나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고, 침팬지, 고릴라등 유인원들은 옷을 만들어 입고, 사회를 구성하고 권위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하는 궁금증을 나름대로 교활하게 설명해 나간다.

이런 관계로 이 작품이 프리퀄이냐 리부트냐 하는 얘기가 나오곤 하지만 그건 별로 관심이 없다. 뭐가 되었든 무슨 문제랴.

원작 시리즈에서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그 자리를 유인원이 대치한 걸로 설정되어 있고, 심지어 핵무기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게 나오기도 하지만, 신작에서는 핵무기 얘기는 사라진다.

대신 요즘 유행인 생명공학이 그 자리를 대치하게 된다.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고자 하는 한 연구원의 눈물겨운 노력이 만들어낸 유전자치료제가 현명한 유인원들을 대거 만들어 버리게 되는 기묘한 설정으로 부족해서, 그 치료제가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작용해서 멸종을 부르게 된다는 양수겸장까지 만들어낸다.

그럴싸 하다. 살아남은 인류는 유인원보다 더 무식한 애들(아무래도 왠지 생존력이 좀 강할거 같잖아..)만 남게 된다는 설정까지도 한방에 설명하는 거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닌거지.

다른 원숭이들을 선동해서 봉기를 이끌어내는 시저(주인공 침팬지)의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지켜보던 내 생각의 더듬이는 엉뚱하게도 여기로 향했다는 얘기다.

다를게 뭐 있겠나 싶다.

귀족들의 여흥을 위해 피를 뿌리고 죽어가야 하는 검투사들의 인생과 막대한 거금을 벌어들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온갖 의약품을 몸속에 쏟아 부으며 죽어가야 하는 침팬지의 인생이 말이다.

이런 처지에 빠진 존재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혁명을 위해 봉기, Rise 하지는 않는다.

최초의 필수요건은 각성, 그걸 계급의식인지, 천부인권인지 뭐라 하던간에, 나는 이런 비참한 환경에 처해서 죽어가지 않을 자격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각성말이다. 거기에서 모든 혁명은 시작되는 법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나 불행하게도 노예로 전락했지만, (이 부분은 정사에는 없고 그냥 야사로만 만들어져온 얘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숨건 싸움을 지켜보며 와인을 즐기는 저 귀족들하고 나하고 아무 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스파르타쿠스는 혁명의 선봉이 된다.

최첨단 유전자치료제 덕분이긴 하지만 뛰어난 지능때문에 자기를 길러주던 주인과 똑같은 사람인줄 알았다가, 자기랑 똑같은 목줄을 매고 끌려 다니는 개를 지켜보면서 나는 펫(Pet)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시저 역시 혁명의 선봉이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피가 끓는 혁명은 시작되고 사방에 피가 뿌려진다. 적들과 아군이 뿌리는 피의 색은 똑같이 붉다.

스파르타쿠스가 했던 것 같이 비록 실패하더라도 역사에 기록되는 혁명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영화에서 시저의 혁명은 신약의 엉뚱한 부작용 때문이긴 하지만 인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유인원(은 개뿔.. 원숭이 주제에..)이 차지하게 되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 혁명은 과연 우리의 사회, 또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의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질문이 남게 된다.

이 질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주제다.

이문열같은 패배주의에 찌든 사람들은 칼레파 타 칼라 라고 외치면서 혁명 그까이꺼.. 해봐야 혁명 지도자들이 또 하나의 권력층이 되어 역사는 반복되는거 아니냐고 자조어린 뇌까림을 반복하기도 한다.

또 어떤 쪽에서는.. 혁명만 성공시키면 온 세상이 유토피아로 바뀌기라도 하는양, 침을 튀기며 혁명을 예찬하기도 한다.

둘다 구라라는거, 이미 다들 아닌거 아닌가?

역사속에서 실제로 수많은 혁명들이 벌어져 왔다. 우리라고 다른가? 망이 망소이의 난부터 떠오르고 그 뒤로 줄줄이 많다. 묘청의 난도 있고, 가깝게는 동학혁명의 위대한 정신과,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적 성과를 거둔 419가 있다.

비록 썩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혁명의 가치를 폄훼하더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인류사회는 반복되는 혁명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꼼꼼하게(큰일이다.. 꼼꼼이 입에 붙어서..) 진보해 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비록 현대사회에 자본의 노예가 득시글하긴 하지만, 인류에게 있어 최소한 공식적인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잘나가는 왕정보다 비효율적이고 맨날 지지고 볶는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공화국에 살고 있다. (미안하다.. 가카 시대는 공화국 아닌거 같기도 하다. )

단 한번의 혁명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거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혁명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지금 당신이 혁명따위 아무 소용없다고 외칠 수 있는 그 자유, 그거 자체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싸워 얻어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절대 잊지 말자.

수천명의 스파르타쿠스는 아피아 가도에 십자가에 매달렸고, 천재 원숭이 시저의 혁명은 군부의 무력에 시달리는 빈약한 지식인(아니..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원숭이)들의 사회를 만들게 되는 빈약한 결과를 만들게 되지만,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한발한발 나가는 거다.

혁명은 반복되는게 아니라, 우리가 반복해서 혁명을 해야 된다는 거다.

세상에 좋은 일은 공짜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2 thoughts on “혁명은 반복되는가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1. 아따 르 몽드지 문화 섹션에 실려도 되겄소.

    분명한 문제의식이 담긴 수준 높은 영화비평 같다오.

    “혁명과 진보는 함께 가는가?”

    “혁명이 곧 진보인가?”

    이 영화는 그에 대해 관람객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하겠구랴.

    그런 점에 비춰 볼 때, 내 생각하는 잘된 글의 조건이 영화에도 적용되겠구만.

    분명한 주제의식, 명확한 글쓰기, 여백.

    굿.

    피.에스.

    스마트폰에서 최적화된 블로그인지라 내 좋아라 하는데 말이오.

    거 새기능이 추가된 듯 보이오?

    좌우 슬라이딩(뭐라 해야하나)이 되오.

    처음에는 없던 것 같아서 말이지.

    하 하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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