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보는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

정확한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애플 CEO를 사임한 잡스의 최근 사진을 보고 말았다.

암으로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경험이 있다. 심지어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도 췌장암이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그렇게 반복된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 소멸의 고통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는다. 나 또한 언젠가 죽는다. 그걸 안다고 해서 막상 그 순간이 닥칠때 내가 의연하게 맞설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

어찌되었거나 6년쯤전에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장에서 내 평생 길이 기억될만한 명연설을 한 적이 있다.

다시 그 생각이 나서 올려 본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이 멋진 사람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아니 내가 볼 이유가 없지..

그냥 그에게 그런 용기가 함께 하길 빌어본다.

그리고 아래는 이 연설의 해석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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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 자체가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여러분께 제 인생에서 벌어졌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세가지 이야기에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이야기는 “이어지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그만두기 전 18개월 정도는 도강을 들었었죠.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된 얘깁니다. 제 생모는 대학을 나온 젊은 미혼모였고, 저를 입양보내기로 마음 먹었던 겁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나온 양부모에게 입양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하지만 제가 태어나던 순간, 그들은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거죠.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 결과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저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 겁니다.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차후에 저의 생모가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겁니다.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래서 생모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결국 몇 달이 지나고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동의를 하게 된 겁니다. 이게 제 인생의 시작입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이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고,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노동자 부모님이 저축은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6개월 정도 지난 뒤, 이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도 몰랐고, 그걸 알아내는데 대학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믿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무척 무서웠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내렸던 최고의 결정들중의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그만두는 순간부터 관심도 없던 필수과목들을 안들어도 되었었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재미있는 과목들만 도강하기 시작한 겁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죠. 기숙사 방을 얻을 수가 없으니, 친구방의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먹을 것을 사려고 한 개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모아 반환하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일요일 밤마다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는 단 한끼의 제대로 된 식사를 얻기 위해 동네를 가로질러 7마일씩 걸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객기와 직감만으로 저질렀던 일들중 상당부분은 나중에 엄청나게 값진 경험이 됩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는 아마도 미국 최고의 서체 관련 코스가 있었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아름답게 손으로 만들어진 서체가 학교 전체의 모든 포스터에 있었고, 서랍장에 붙어 있는 패찰에도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자퇴했으니 정규 코스를 갈 필요가 없었죠.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그래서 이 서체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고, 서로 다른 문자의 조합과정에서 어떻게 자간의 공백을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것들을 배웠고, 위대한 서체를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으면서도, 예술적인 주제였습니다. 저는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도대체 제 인생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될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뒤,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이 모든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맥에다가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된거죠.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도강하지 않았더라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다양한 서체나 가변공백 서체는 없었을겁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윈도우는 맥을 베낀거니까, 결국 모든 피씨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했겠죠.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자퇴하지 않았었다면, 서체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피씨들은 오늘날 가지고 있는 멋진 서체들을 못 가지게 되었겠죠.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런 순간들이 연결되길 바랄 수는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주 아주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다시 말해서, 지금 여러분은 결코 그런 순간들이 연결됨을 알 수 없습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볼 때에만 알게 됩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의 순간들이 언젠가는,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뭐가 되던간에 믿어야 합니다.

Beleive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그런 순간들이 이어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잘 닦여진 길 바깥으로 여러분들을 끌어낸다 할 지라도 말입니다.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모든 것이 변화될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이 좋게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젊은 시절에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정말 열심히 일했고, 단 십년만에 차고에서 우리 두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4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3천4백억불로 엑손모빌을 제치고 시가총액 규모로 세계 최고 회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역자주)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막 30살이 되던 해. 바로 일년전에 우리의 최고작품인 맥킨토시를 발표했었음에도, 저는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스스로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는게 상상이 가세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글쎄요, 애플이 점점 성장해가면서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해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몇 년은 그럭저럭 잘 해나갔었죠.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러고 나서는 미래에 대한 비젼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그러던 차에 이사회는 저쪽 편을 들었고, 나이 서른에 저는 짤렸습니다. 아주 대놓고..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성인이 된 이후의 제 삶의 초점이 사라져 버렸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몇 달 동안 진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선배들의 과업을 제가 망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다가 제가 받았던 바톤을 놓친것 처럼 말입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창업자)를 만나 일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것에 대해 사죄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공공연한 실패작’이 되었고, 심지어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쳐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하지만 뭔가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죠.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여전히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걸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을 사랑했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 제 인생에서 최고의 사건이었다는 점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다시 초심자로 돌아간 가벼운 마음과, 모든 것은 아직 알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드디어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었던 시대로 접어들 수 있도록 풀려난 것입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그 이후 다섯해 동안 저는 ‘넥스트’와 또 다른 회사인 ‘픽사’를 시작했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놀라운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한다는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저는 애플로 복귀했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기술들이 현재 진행되는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거기다가 로렌과 저는 굉장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걸로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너무나 쓴 약이었지만, 적절한 처방이었나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삶이 벽돌로 뒤통수를 때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명을 잃지 마세요.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거, 이 한가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어떤 일을 좋아하는 가를 먼저 찾아 나서 보세요. 일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이게 진실입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인생의 대부분은 일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러니 진정으로 만족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위대한 일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일에 매진하는 길 뿐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거기다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하는 일을 사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아직 못찾았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절대 멈추지 말고. 모든 힘을 다해 찾는다면, 발견하는 순간 알게될 겁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그런 후에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질 겁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계속 찾으세요. 포기하지 말고.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반드시 바른 삶을 살게된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그 때 이후로 33년간 이 문구는 저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하고 싶은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여러날 동안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제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을 받는 모든 도구들 중에서 가장 유용했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왜냐 하면 거의 모든 것들, 나에게 걸린 모든 기대, 모든 자부심, 모든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이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겨두고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나는 곧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모든 것을 벗어버린 상태라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게 명확히 보였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 때까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어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는 암이 분명해 보인다고 했고,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남았다고 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주변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죽을 준비하라는 의사들의 암호였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줘야 할 얘기들을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내가 죽었을 때 가족들이 느낄 충격을 완화시키도록 정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하라는 거였죠.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그 진단은 온종일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목구멍을 넘어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바늘로 췌장을 찔러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고, 옆에 있던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사들까지도 울음을 터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다시 악화된걸로 보이는군요. 역자주)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몇십년간 더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군요.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때보다 훨씬 더 확신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천국에 가기 위해 죽지는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입니다. 아직 아무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삶이 만들어낸 최대의 발명품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에 길을 비켜주는 방식입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여러분들은 새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여러분들조차 점차 길을 비켜줘야만 하는 낡은 것들이 되어 갈 겁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인가요? 하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면서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도그마 따위에 얽매이지 마세요.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의견들이 만드는 잡음이 여러분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가슴과 직관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가슴과 직관은 당신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겁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지구 백과’라는 우리 시대의 바이블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인 감성을 불어넣은 책이었습니다.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나오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를 가지고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에 나온 종이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멋진 개념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의 팀은 이 지구백과를 몇부로 나눠 만들어냈고, 최종적으로 마지막 회를 만들어 냈었죠.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정도 였을 겁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마지막회의 뒷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모험가라면 아마도 히치하이크를 하게 될만한 그런 길의 사진이었습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언제나 이렇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 나가길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고맙습니다.






5 thoughts on “다시 돌아보는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

  1. 어마어마한 연설이군요…. 스티브 잡스의 생애에 관해서 기사를 조금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기자가 본 스티브 잡스였고, 이번 연설은 스티브 잡스 자신이 본 스티브 잡스입니다. 포스가 남다른 연설입니다. 감동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점점 더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갑니다. 좋은 연설을 소개해 주신 물뚝형님께 감사드립니다.

  2. 대학생인 아이들에게 메일로 보내줬음 하는데,승락해주셨음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알려주셨음 합니다,
    항상 건필하시고요!

  3. 마우스로 글 전체를 긁어서 복사/붙여넣기로 메일을 보내셔도 됩니다. 좀더 좋은 방법이라면..

    http://murutukus.blogspot.com/2011/08/blog-post_27.html

    이게 여기 제 블로그에 이 글의 주소니까요. 이 주소만 긁어다가 보내 주셔도 자제분들이 읽어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제 블로그에 방문자가 좀더 늘어나는 결과를 얻게 되겠죠. 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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