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이야기

쥐포, 소주, 담배, 그리고 518

쥐포, 또는 쥐치포

쥐포가 유행한 것은 대략 77년경 부터입니다.

쥐포는 바로 쥐치라는 물고기를 포를 떠서 말린것인데, 쥐치는 말쥐치나 납작쥐치정도를 쓰죠. 쥐치가 어떻길래 ‘쥐’치라 부르는가 하면, 일단 껍질의 색이 쥐색입니다. 물론 말쥐치가 그렇죠. 납작 쥐치는 얼룩이입니다. 거기에 바늘에 걸려 올라오면 찍찍 하는 소리를 내죠.

전에는 그냥 잡히면 패대기 쳐 버리거나 가축먹이로 주던 쓸모 없는 고기였습니다.

흔하기도 무지 흔한것이.. 우리 근처에 흔히 사는, 사람취급한번 제대로 못 받아본 우리 민중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활어회로 꽤나 고급으로 쳐 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누가 요즘 정권이 민중의 정권이라는 식으로 대접해 주는 척 하면서 물먹이는 거랑 관계가 있을까요?

진짜 오리지날 고급 쥐포는 10-15센티 정도의 말쥐치 한마리를 그대로 포를 떠서 말린겁니다. 이런건 무지 비쌉니다. 싸구려는 자그마한 것들을 포를 떠서 이어 붙여 가미해서 말린겁니다.

더 싸구려는 뭔지 알수 없는 잡고기포를 얇게 저며 이어 붙이고, 조미료 듬뿍쳐서 말린겁니다. 많이 먹으면 죽을지도..

하여간에 77년도에 등장할 때부터, 비싼 오징어를 사먹을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서 제 역할을 다 했던 바로 그 쥐포입니다.

지금 쥐포를 두장 꺼내서 가위로 썰어 전자 렌지에 데워서 가지고 왔습니다.

소주

소주하면 진로, 두꺼비죠. 맞나요?

아닙니다. 소주하면 안동소주하고 평양소주입니다.

제대로 된 쌀로 지은 밥과, 정성들여 빚어낸 누룩으로 담근 곡주를 거르고, 또 가마솥에 증류해서 만들어낸 그 소주들의 예술성은 식탐회 산하 주류소분과 위원이라서가 아니라, 민족 음식문화 애호가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사랑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문화를 일제가 죽인 겁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해 가려고 우리 민족에게 술도 못담가 먹게 만들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독재정권들이 목을 졸라 다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우리 민족의 소주가 불쌍합니다.

그래도 증류식이 아닌 희석식이나마 민중의 술로 태어난 소주를 미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 대표선수인 진로 두꺼비는 미워하지 않는게 아니라 사랑합니다. 그 회사가 헛지랄을 해서 망하던 말던, 외국 펀드회사에 속아서 회사를 까먹던 말던, 그 술은 사랑합니다. 그 후손 참이슬까지 사랑하죠.

왜 알콜 함량을 몇 프로나 줄여서 술이 닝닝해 졌는지 조금 불만이 있긴 하지만, 맥주보다 원가가 훨씬 비쌈에도 불구하고 헐값에 구해 먹을 수 있는 민중의 술이라 사랑합니다.

소주 댓병에 새우깡 한 봉지로 밤새도록 민족의 앞날을 얘기하던 젊은 시절의 추억만큼이나 사랑하며, 정권의 폭력에 찢긴 상처를 소주로 씼던 아픈 추억 만큼이나 사랑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의 무덤에 부어주던 소주의 시린 기억만큼이나 사랑합니다.

그 소주를 한병 따서 가지고 왔습니다.

담배





많이 피우면 죽습니다.

물론 밥도 많이 먹으면 죽습니다. 보약도 많이 먹으면 죽습니다.

갈수록 올라가는 담배값에 환장하겠지만, 그래도 맘대로 끊을 수 없는 담배는 마치 돈 뗘먹고 도망갔지만 모른 척 할 수 없는 옛 친구같아서 버릴 수 없습니다.

조용한 밤에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피우는 담배의 연기는, 죽어간 선배들의 영전에 올리는 한줄기 향불 같아서 좋습니다.

아버님이 피우시던 신탄진부터 담배를 배운 은하수, 한산도, 즐겨 피우던 아리랑, 솔, 그것도 청솔, 뻘건솔, 백솔, 풍요의 팔십년대를 상징하는 팔팔, 팔팔 라이트, 한약내 나던 도라지, 군대가서 피우던 백자, 나중에는 팔팔로 바뀌고, 요즘 피우는 티메까지..(타임인가?)

담배도 한갑 새로 따 봅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518


어제 광주에 갔었습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도 오늘 아침에 일이 비는 바람에 얼굴에 철판깔고 튀었습니다.

오후에 일을 정리하고 97년산 똥차를 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뭐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5월 17일의 여행은 정말로 우울하기 그지 없더군요.

거기에, 출발할 때 잔뜩 찌푸려 있던 날씨는 정읍을 지나가면서 강풍을 동반한 빗줄기로 바뀌고, 차안에 있는 MP3플레이어에서는 가뜩이나 우울한 노래만 나왔습니다.

썩을..

큰 맘 먹고 광주 노사모가 준비한 전야제에 참여했습니다. 도청앞 행사는 차마 마음 약해서 못 갔습니다.

그 맛있는 잡채에, 편육에, 무침 안주도, 정체불명의 대잎술도 입맛이 써서 그런지 별 맛이 없었습니다.

그 유명한 녹두서점의 안주인 되시는 분이 나오셨습니다. 현장의 증언을 들려 주셨습니다. 이것만으로 저는 300키로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간 충분한 댓가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술도 안 멕히고, 안주도 안 멕힙니다.

그냥 이래저래 우울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행사를 준비하신 광주 노사모 여러분들의 노고에 치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결국 심야행사에는 참가도 못하고 새벽에 자러 갔습니다. 새벽에 올라와야 될 처지에 무리할 수도 없고, 무리해서도 안 되겠죠.

자고 새벽에 일어나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는 마음 또한 무겁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게 올해 518을 맞이하는 저만의 행사의 전모입니다. 저는 그렇게 올해의 518을 보냈습니다.

——————

소주 한잔을 따르고, 자른 쥐포 한 쪽을 옆에 놓습니다.

나름대로 경건한 자세로, 담뱃불을 붙여서 잔위에 걸쳐 놓습니다.

미안해서, 미안하고 미안해서..죄스럽고, 미안하고…그래서..

저는 518 이 싫습니다. 견디기 힘들게 싫어 죽겠습니다.

===========================================

돌이켜 보니.. 나도 이런 글을 쓸 때가 있었구나~ 싶다.

이건 재탕도 아니고 삼탕인데.. 전에 서프에 썼던 글을 딴지 독투에 옮겼던 것을 다시 또 여기로 옮기는 거다.

지겨울만도 하지만 내가 썼던 글이고.. 실제로 518이 되면 항상 저런 맘이 든다. 그러고보니 작년 올해는 광주도 못갔네..

거기다가 518 직후엔 또 523이잖아.. 이런 줽일..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