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관한 소소한 일화

노무현에 관한 소소한 일화

2010.05.17.월요일
물뚝심송

5월이다.

이건 뭐 계절의 여왕은 커녕, 계절의 마녀도 아닌데 왜 나한테는 5월이 결코 밝지 못한 계절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사실 안다. 당연히 그럴것이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면서 내가 겪었던 아픔의 역사들, 그 역사들에 대한 추억이 추억이니만큼 밝을래야 밝을 수도 없는 거겠지.

상당히 긴 시간동안 5월은 무조건 광주였다.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게 광주가 바로 5월이고, 5월이 곧 광주였는데, 이제 와선 한가지가 더 겹쳐 버렸다.

5월 23일…

사실, 아직은 난 이 얘기를 가지고 각잡고 앉아서 글을 쓸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느낀다. 아니, 그냥 느끼는 게 아니라 몇번 시도를 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잡소리 늘어 놓을 때, 분당 5-600타를 가뿐히 넘기면서 말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이 졸지에 얼어붙기라도 한 양, 한 문장을 제대로 입력하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었다.

무심코 열어본 지메일의 받은 편지함에 비상경광등을 번쩍이며 날아든 딴지 수뇌부의 지령메일. 본격 추모주간을 선포할 테니 무조건 추모의 글 한개씩 써서 제출하라는 신임 파토 편집장의 살벌한 협박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거다. 안 써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해서 결국,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 그냥 소소한 일화 한개만 적어서 면피만 해 보고자 한다.

… 때는 2008년 4월 6일.

일 때문에 경남 창원에 내려가 지내던 나한테 경기중부 노사모에서 봉하마을을 단체로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사실 뭐 퇴임도 했고, 뭐 나는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도 접는다고 떠들어 놨고, 노사모에 볼일도 별로 없는 상태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봄철 나들이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난 가까운 곳에 있으니 가족들이 함께 차타고 내려오면 합류해서 봉하마을 가서 장군차 나무나 몇그루 심어주고 오자~ 뭐 이러면서 봉하마을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안그래도 창원에서 봉하마을은 차로 가면 삼십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고, 거기서 활동하는 친구들도 만나볼 겸 몇차례 갔다 오기도 해서 새로울 것도 없었고, 심드렁한 기분으로 가긴 했다.

그래도 파릇파릇한 봄철에, 산에 가서 차나무 묘목을 심을 구덩이를 줄 맞춰 파느라 땀도 좀 흘리고 하니 기분도 상쾌하고, 명색이 전직 대통령 께서 친히 하사하신 푸짐한 주안상.. 이라고 쓰고 막걸리에 두부김치라 읽긴 하지만.. 그런 걸 앞에 두고 앉으니 나름대로 기분은 걸찍해지기도 했었다.

대략 차나무를 거진 다 심어 가는데, 드디어 대장이 떴다는 소식이 들리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게 보이기 시작한다. 산에 오르자 마자, 일단 아이들하고 나무 심는 과정부터 사진을 찍어 준단다. 그래, 뭐 남는건 사진이지~ 하면서 딸네미보고 너도 가서 차나무 한개 심고 대통령 할부지하고 사진 한장 찍으라고 해줬다.

혹시 오마이뉴스 열심히 본 딴지스는 기억할 지 모르겠는데, 우리 아파트 바로 옆동에 살던 선배가 하나 있었다. 닉을 비토세력이라고 쓰면서 오마이에서 원고료도 꽤 받아 꼼장어도 잘 사주곤 했던 형이다.

그 형네 가족도 다 함께 있었는데, 그 집도 딸에 아들에 다 데리고 온 상황이었고, 이런 사진도 남긴 모양이다. (형, 미안해.. 뭐 인제 바다 건너 이민 갔으니, 사진좀 깐다고 피해 갈것도 없잖수~)

그런데 사단은 여기서 터져 버린 것이다.

비토형네 딸네미 예린이도 노무현 할아부지하고 장군차나무 심는 모습 사진이라도 한장 찍겠다고 죽 늘어선 아이들 끝에 앉아서 나무 붙들고 기둘리고 앉아 있었고, 이 전직 대통령 영감께옵선 이런 사진들을 쭉 찍으면서 오고 있었다.

얘들은 누구네 애들인지 전혀 모르겠다. 혹시 이 아이들 부모가 뭐라 하진 않을까 일그람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왼쪽에 줄무늬 옷은 잘 모르겠는데, 흰옷입은 여자애 부모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얘 엄마는 나랑 침대 같이 쓰는 아줌마고.. 아빠는.. 바로 나다.

그런데…. 그만.. 애처롭게도..

이 무심한 노씨 영감님께옵서, 예린이가 앉아 있는걸 못 보고 사진 다 찍은 줄 알고, 벌떡 일어서서 절루 걸어가 버린 것이다.

잔뜩 기다리고 있던 예린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려 버렸고, 사람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는데, 노씨 영감님은 벌써 저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린 상태..

비토형은 당장 또 비토할 거리가 생겼으니 이걸 어떻게 비토를 해야 되나~ 하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하여간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거 같았는데, 사건은 이렇게 이어진다.

다들 둘러 앉아 영감님 말씀도 한마디 듣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돌아왔다. 그 때 기억나는 얘깃거리가 이런 거였는데, 사람들이 짖궂게도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을 찍었습니까?”

돌아온 답변은 각자 상상할 것. 어차피 시효도 다 지난 얘기지만 굳이 뭐 그런 얘길 할 생각은 없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하고 막걸리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경기중부에 오래된 고참 노사모 선배 하나가 과감하게 예린이 손을 붙잡고 영감앞으로 뚜벅뚜벅 나가더니,

“보소, 노짱님. 사람이 그래서야 쓰겠습니꺼~ 당장 사과하소!!”

하면서, 예린이가 사진 찍으려고 기다렸는데, 빼먹고 가는 바람에 울고불고 난리 났다는 얘길 해버리는 거였다.

과연 어떤 답변이 왔을까..

진짜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급기야는 예린이를 옆에 앉히고 손수 이렇게 사이다도 따라 주면서..

아직 눈물도 채 마르지 않은 예린이 뺨에 뽀뽀도 해 주면서,

“얘야, 내 진짜 모르고 그런거다, 울지 말아라~ 참말로 미안하다~”

하더라는 것이다.

진짜 별거 아닌 일이다. 그저 흔한 해프닝이고, 그저 당사자들에게만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만한 일이다. 우습게도 이 일이 있은 바로 직후, 몇몇 사이트에 이런 내용이 간략하게 알려진 적도 있으니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소한 일화에 대한 얘기였을 뿐이다.

우리 가족도 당연히 이 영감님과 함께 기념사진도 한장 찍었다.

나중에.. 한참 지나고 나서, 그 사진을 펼쳐 봤는데.. 하필이면 배경이 부엉이 바위였다. 그 사진은 지금 어느 폴더에 있는지 잘 아는데, 어느 해상도로 파일이 있는지도 아는데.. 아직도 펼쳐 보질 못한다.

이런 소소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 조차도 아직은 좀 힘들다.

이런 것은 정치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던 일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에 관한 얘기는 언제나 정치에 관한 얘기보다 우리 가슴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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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다큐멘터리 3일 인가? 거기에도 나오고.. 사사세에서도 좀 유명했었고.. 딴지 마빡에도 걸렸었고 해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 같다.

진짜로 뭉클한 경험이었고, 그걸 다시 떠올리는 지금도 가슴속이 싸해지는..

하여간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사람이다.

고전틱하게 표현하면 절세의 풍운아다. 맞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치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바꿔놓은 사람이고.. 어떤 면에서는 내 인생 자체를 바꿔 놓은 사람이기도 하고..

시바.. 지금 또 콧잔등이 시큰하네.. 이제 좀 잊을 때도 됐건만…







3 thoughts on “노무현에 관한 소소한 일화

  1. 언제 다시 이런 분을 우리의 정치적 리더로 선출할 수 있을까요? 정말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고, 자신이 먼저 참 사람으로 살아가는 바로 그런 리더를…

aj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