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강아지

어제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일이었다. 양력으로야 좀 남았는데 형들이 음력으로 하자고 하니 기일 맞다.

형제들이 모여서 어머님 모신 곳에 다녀와서 식사하고 헤어졌는데, 비가 철철 내리는 와중에 문중 세장지에 만들어 놓은 가족묘 앞에 서 있자니 기분이 영..

하여간 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현관에 왔는데, 비에 흠뻑 젖은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흙투성이가 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자동문 앞에서 애처로운 눈길로 우릴 바라보면서 말이다.

이 강아지, 전날 밤에도 귀가길에 내 차의 헤드라이트 앞을 가로질러 가던 놈이었다. 그걸 보면서 저 강아지는 저렇게 길에서 돌아다닐 만한 애가 아닌거 같은데.. 하면서 의아해 하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주인을 잃었구나..

딸아이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도 나를 닮았는지.. 마눌님도 강아지를 기르자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물론 아이가 어려서부터 아토피가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부담이 되는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도, 조막만한 강아지가 떨고 있는 걸 보니 어찌나 불쌍하던지..

처음에는 외면할 생각이었다. 가족들 보고 빨리 문 열고 들어가라고.. 그리고 나도 차갑게 외면을 하고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그 순간 외면해 버리면 얘는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지는 거고, 내 인생과 상관이 없는 죽음은 오늘도 사방에서 흔하게 벌어지곤 하는 거니까..

적어도 내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녀석이 흙 묻고 젖은 몸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면서 커다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 본다. 얼핏 보니 두어군데 작은 상처도 보인다. 여기서 얘를 내비두면 어디가서 길고양이나 다른 큰개에게 물려 죽거나, 차에 치어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버린거다.

결국 어느새 이 녀석은 우리 집으로 들어와 있었고 마눌님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시키고 있었다.

뭘 줄까 하다가 길에서 헤매이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거 같아 일단 급한대로 우유를 조금 따라 줬더니 허겁지겁 핥아 먹는다.

햄을 몇조각 썰어서 줬더니 냄새 한번 맡아 보고나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내가 개 기르기에 대해서 뭘 아는 것도 아니고, 이 집에서 이 녀석을 거두어 줄 계획도 없다. 결국 일단 주인을 찾아 보고, 그 다음에는 얘를 새로 맡아줄 만한 곳을 찾아 봐야 되겠지.

트위터에 사진을 올려 보기로 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말티즈인것 같고, 털도 새로 깨끗하게 깍여 있는 상태고 발톱도 관리가 되어 있었다. 이 녀석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속이 상하려나.. 그런데.. 혹시 일부러 버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났더니 마눌님이 아마도 얘가 사료를 먹고 자란 놈 같으니까, 가서 사료좀 사오라고 한다. 다시 나가서 차를 몰고 마트에 가서 개 먹이를 좀 살펴 봤더니 이건 뭐 도대체 어떤 것을 얘가 먹을지 알 도리가 없다. 그냥 적절해 보이는 걸로 한 통 사왔는데, 역시나 이것도 안 먹는다. 어쩌라고~

그런데..

마트 가는 길에 마을 입구에 있던 재활용품 수거장소에 조그만 개집이 버려져 있는 것을 같이 가던 딸아이가 발견했다. 아빠, 저거 혹시…

비가 철철 내리는 와중에 차를 세우고 확인해 보니 헝겊으로 약간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개집과 그 안에 부드러운 깔개, 그리고 호랑이, 원숭이 인형에다가 쿵푸팬더 인형까지 들어 있다.

이거.. 주인이라는 인간이 이 개집과 인형들과 함께 그 녀석을 여기다 버려두고 도망간거구나.. 싶은 생각이 퍼뜩 든다.

집에 돌아와 개집과 인형들을 세탁기에 돌려 빗물과 묻은 흙을 씻어 내고 말려본다. 깔개가 약간 축축한 거 같아서 드라이기로 급하게 말린 다음에 깔아 줬더니,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냉큼 그 안에 들어가서 엎드려 있다. 얘가 쓰던 물건들 맞구나.

새로 등장한 낯선 생명체 때문에 소란스러웠던 집안이 나가수 보느라 다시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이 녀석이 드디어 사고를 친다. 이상한 자세로 왔다리 갔다리 하더니 책장 앞에다가 똥을 한바탕 싸 버린다. 고생을 해서 그런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설사를 한바닥.. 쪼그만 넘이 많이도 싼다.

아마 배변 훈련을 좀 받았는지, 지 집안에다가 싸지는 않고 나와서 어디에 싸야 될지를 몰라 헤매이다가 그냥 급하니까 싸 버린듯. 그러고 나더니 눈치를 살살 보면서 책상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

살다살다 개똥까지 치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마루바닥에서 말이다. ㅎㅎㅎ

어찌되었거나 이 녀석하고 최소한 3-4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같이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앞으로 고난의 연속이 될 거 같은 느낌이다.

뭐 어쩌겠나.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떠안게 된 자업자득이지 뭐..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이 이런 작은 생명을 나몰라라 하고 길거리에 버려두고 도망가는 걸까?

그런 행동이 스스로의 정신세계에 어떤 상처를 주게 될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어찌 되었거나 이 자식아.. 뭔가를 좀 먹으란 말이다. 설사할까봐 우유도 못 주겠고 물은 접시에 따라 줬더니 냄새만 맡고 건딜지도 않고 사료도 안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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