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저자

사실 이 얘기는 정치불패용은 아니고, 학술불패 같은게 있다면 거기에다 써야 되겠지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 얘기 자체가 황구라 사건에서 파생되어 나온 얘기니까 그냥 여기다가 씁니다. 황구라 사건 자체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뭐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보통 논문 하면, 모든 종류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다른 이에게 알리기 위해 쓰는 문서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학자들은 이 논문을 쓰는 행위가 연구활동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게 맞습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논문을 설계하기 위해 이론의 진행방향과 실험을 구상하며, 논문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리퍼런스를 확인하고 실험을 수행하여 데이터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근거들을 조합하고, 그 근거에 기반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다 모이면 한편의 논문이 완성되죠. 즉, 학문의 발전은 모두 이 논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도 저술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쓰는 거죠. 그러나 책은 전반적으로 후진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나, 일반인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분야의 학문적 성과들을 평이한 어투로 설명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니, 비평의 대상은 될지 몰라도 반론의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상 연구활동이라는 것의 전부는 논문에 있다고 봐야 되겠죠.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 논문의 저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그리 확실하게 통일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현대 학계에서는 이 논문의 저자를 어떻게 규정을 하고 어떤 관행으로 대접을 하고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측면에서 논문의 저자라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지적인 활동을 통해 참여한 모든 사람이 저자가 됩니다. 하지만 이 선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겠죠. 어떤 실험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그 실험을 하기 위해 사온 비이커를 배달해준 택배기사까지 저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뚜렷하게 지적 공헌을 한 사람들로 제한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해도 매우 많은 수의 저자들이 논문에 기록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각 저자들 간에도 기여도의 차이에 따라 순서가 부여되고, 과연 이 논문은 “누가 쓴 논문인가” 하는 것 역시 규정되어야 합니다.

결국 아주 복잡한 체계가 완성되게 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이 체계 역시 언제나 100%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암묵적으로 주어지는 학자들간의 동의나 관행에 따라 수행되기 마련이죠. 연구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맨날 이 저자 문제가지고 서운해하고 화를 내고 세상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고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이 저자가 중요하면서도 명확한 선이 없다는 뜻이 될 겁니다. 결국 어떤 논문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유명세를 타게 되면 그 논문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처우의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한 논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상식에 도움이라도 되고자 저자에 관련된각각의 개념들을 설명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개념은 “제1저자”입니다. 제1저자라는 의미는 논문에 저자들을 쭉 나열할 때, 맨 앞에 쓰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제1저자라고 보셔도 별 틀림이 없을 겁니다. 간혹 드물게, 논문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의 공로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 알파벳 순서로 이름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그렇다고 별도 명기를 하게 되죠. 그렇지 않다면, 논문의 저자 목록에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이 제1저자가 됩니다. 제1저자의 현실적인 의미는, 실제로 그 논문을 쓴 사람입니다. 쓸 뿐더러 논문을 준비하고 작업하고 정리하고 교정하고 하는 모든 작업들을 직접 담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대학원생이 써온 논문을, 지도교수가 검토하고 발표하는데, 자기 이름을 그냥 제1저자로 넣어 버리는 경우가 그런 것이죠. 사실 이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처사이며, 심하면 제자의 공로를 가로챈다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제1저자와 함께, 이 논문에 기여한 사람들이 주로 제1저자의 판단에 따라 기여도 순으로 나열되게 됩니다. 제2저자, 제3저자, 등등등..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흔히 말하는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입니다. 이는 연구기관의 구조와 학계의 관행에 따라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잡은 개념인데, 간단하게 말해서 연락책임자라는 것입니다. 논문을 쓰게 되면, 학술지에 발표를 하게 되겠죠. 학술지는 맨 밑바닥의 후진 수준에서 세계적인 수준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합니다. 후진 잡지들이야 몇몇이나 보고 말겠지만, 세계적인 잡지들은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모두 보게 되겠죠. 그러면 그 논문을 본 사람이 논문에 대해 질문이 있거나, 반론을 하고 싶거나, 같은 실험을 재연해 보고 싶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즉, 논문을 발표할 때는 수많은 저자들의 연락처를 다 기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교신저자의 메일주소만을 기록하는 관례가 생긴 겁니다. 물론 필요에 의해 각 저자들의 소속기관은 거의 공개가 됩니다.

그러면 다른 학자들은 주로 이 교신저자와의 연락을 통해 해당 논문과 관련된 학술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보통은 이 교신저자의 역할은 제1저자가 제일 잘 할 것이라는 게 상식이 됩니다. 그러나 학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논문은 반드시 그 제1저자만의 공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속 기관이 그 논문으로 얻게 되는 명예의 상당수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것 역시 상식입니다. 연구기관은 연구자들에게 연구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이나 포닥(박사후 과정), 잠시 고용된 연구원들이 쓴 논문이 유명해 질 경우, 교신저자의 역할을 그 제1저자가 하게 되면, 이직율이 높은 젊은 연구원들이 다른 연구기관으로 옮기게 될 경우, 해당 연구기관이 더 이상 그 논문에 관련된 학술활동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게 되죠. 그래서 교신저자는 주로 해당 연구기관에 장기 근속할 가능성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차지하게 됩니다. 보통 지도교수등이겠죠. 실제로도 연구원이나 대학원생이 논문을 쓰게 되면 그 과정에서부터 지도교수는 어쩔 수 없이 개입을 하게 됩니다. 논문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부터 말입니다. 즉, 제1저자가 이직을 하더라도 교신저자는 남아서 그 논문에 대한 연락을 받아 줄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교신저자는 관행적으로라도 직접적으로 논문을 쓴 사람보다 고위층에 있는 사람이 가져가게 될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니, 논문에 대한 책임성도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제1저자가 더 중요하냐, 교신저자가 더 중요하냐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거죠. 양쪽 모두 중요합니다. 교신저자는 논문에 대한 책임성으로 인해 중요해 지고 제1저자는 직접적인 저자라는 의미에서 중요해 지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번역이 그리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만큼 일반적으로 명확하게 쓰이는 용어는 아니라는 뜻이 되겠죠. 시니어 저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굳이 설명을 하자면, 총책임자 개념입니다. 저자들 중에 최고의 역할을 수행하고, 전반적인 연구의 조율을 할 권리도 있고, 전체적인 책임을 질 능력이 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보통 연구실에서는 연구책임자 개념이 되는 거겠죠. 흔히 PI 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시니어 저자의 개념을 적용하는 경우는 실험의 규모도 크고, 여러 연구실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 모인다거나 하는 경우에 등장하게 됩니다. 거기에 최종적으로는 이 시니어 저자가 논문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영예를 다 가져갈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총 책임자니까 모든 권리를 다 가지는 겁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저널에 발표되는 논문들은 이 시니어 저자에 대한 명기를 하지 않습니다. 저자 목록과 그 중에 누가 교신저자인지만을 구분해 준다는 거죠. 시니어 저자는 다른 경로로, 즉 언론을 통해서나 사업 관계상으로 밝혀지게 되기 쉽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학계는 이런 개념들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교수가 제자의 연구실적을 훔치는 게 다반사고, 제자들은 이를 북북 갈면서도 아무소리 못하는게 현실인 곳이 많습니다. 학위를 받기 위한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노예라고 불리우는 판인데요. 그러니 제1저자라 해 봐야, 논문을 직접 쓰기는 커녕 한번 읽어보지도 않은 경우가 속출하고 실제 논문은 저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대학원생이 다 쓴 경우도 많고, 교신저자는 관례적으로 학과장이 가져간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물론 논문이 우수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아주 엉망입니다. 일부 의식있는 학자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슬퍼하는 얘기들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상징하는 샘플을 한번 보실까요?

이 그림은 황우석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 유명한 2004년 논문입니다. 사이언스에 실렸던 그대로, PDF 파일에서 캡춰한 그림입니다. 이제는 직권철회되어서 잘 찾아지지도 않는 거, 몇년전에 쓰던 외장하드를 구석에서 찾아서 다시 꺼내 제가 직접 캡춰한 겁니다. 이 짓을 왜 하나 몰라…

제목이 있고 바로 밑에 저자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밑에는 논문의 개요가 되겠죠. 제일 처음에 황우석의 이름이 보이고 언론을 통해 자주 들었던 연구원들이 쭉 나열되어 있습니다. 맨 뒤에 문신용이 있군요.

그리고 참여정부 과학기술 자문위원 박기영씨 이름은 왜 저기 있을까요? 공무에 바쁘실텐데 황우석 연구실에서 논문 쓰는데 기여라도 하셨나 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황우석이 제1저자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자신은 줄기세포를 잘 모르고, 볼 줄도 모른다고 고백한 황우석이 교신저자도 아니고 제1저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논문의 제목은 “복제된 배반포에서 만들어진 분화다능한 인간배아줄기세포주의 증거”라는 겁니다.

일단 황우석이 제1저자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만, 넘어가기로 하죠. 그런데 이름 뒤에 보면 각주 숫자가 붙어 있습니다.

각주를 보시겠습니다.

각 연구자들의 소속 기관과 그 기관의 주소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맨 끝에 이상하게 황우석과 문신용의 이름 뒤에만 붙어 있던 *표 각주가 있습니다.

연락할 게 있으면 이들에게 연락하라면서 황우석과 문신용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그렇죠. 바로 이 두 사람이 이 논문의 교신저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2004년 논문의 제1저자는 황우석이고, 교신저자는 황우석과 문신용입니다. 교신저자 역시 한명 이상이므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1교신저자는 황우석, 제2교신저자는 문신용입니다.

그러면 이 논문의 시니어 저자는 누굴까요? 적어도 논문 내에는 그와 관련된 언급이 없습니다.

즉 말씀드렸다시피 시니어 저자라는 것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연구의 총 책임자가 누구냐는 것인데, 그건 이 연구를 수행한 기관이나 협조한 기관, 참여한 업체, 이 모든 조직들간의 계약문제, 뭐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는 뜻이죠. 그러나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이 발표될 당시 전 세계에서는 “황우석이 *** 논문을 발표했다”, “황우석이 ***를 최초로 성공했다” 뭐 이런 보도들이 넘쳐났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논문의 시니어 저자는 황우석입니다.

또 볼까요? 이번에는 겨우겨우 한개 정도 만든게 아니라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주를 무데기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2005년의 논문입니다. 역시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것을 캡춰 했습니다.

“핵치환으로 만들어진 배반포로부터 유래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이군요.

역시 저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황우석이 제1저자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피츠버그의 제랄드 새튼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의 이름 뒤에 별표가 붙어 있습니다.

똑같이 각주에 각 저자들의 소속기관이 있고, 교신저자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황우석이 제1교신저자, 새튼이 제2교신저자입니다.

새튼때문에 문신용이 교신저자의 자리를 양보했군요.

또 저자 목록의 면면을 보자면, 한나산부인과 원장님 장상식씨, 줄기세포 구경 가서 감탄 한번 해주고 저자목록에 들어갔습니다. 2004년 논문 쓰고 나서 피츠버그로 옮겨가 2005년 논문에는 관여도 안한 박종혁씨도 보이고..

황우석의 논문에 이렇게 잡다하게 붙어있는 저자들은 “연구과정에 지적인 참여를 한 사람들”이라는 저자의 개념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 논문이 가져올 명예를 나눠 먹기 위한 밥숟가락의 목록으로 보이는군요.

새튼은 과연 어떤 기여를 했었을까요?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전해지는 말로는 논문의 초안을 작성해 줬다고 하는데 본인은 극구 부인합니다. 연구실 한번 와서, 머리는 태평양에 두고 와서 줄기세포를 몇개를 구경했는지 기억도 못한다는 경험을 한번 했을 뿐입니다. 사실은, 사이언스지에 짬밥을 동원한 압력을 넣어 심사과정을 빨리 통과시키는 혁혁한 공로를 세우긴 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압력 넣는 활동을 교신저자의 임무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법하겠군요.

그러면 이 논문의 시니어 저자는 누굴까요? 이 연구과정 전체를 총괄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져야 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황우석은 새튼에게 이 논문의 시니어 저자의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건 다분히 뭔가 연구작업을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이 논문으로 생기는 영광을 뇌물로 주겠다는 뜻에 불과했습니다. 황우석 연구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황우석 연구에 돈을 대주기는 커녕, 오히려 현찰로 몇천을 챙겨간 새튼은 시니어 저자의 자격이 없죠. 연구원을 선발하지도 않고, 오히려 황우석 연구실 출신 연구원을 데려가기는 했었습니다. 박종혁 등..

황우석이 시니어 저자, 너 해라~ 하고 새튼에게 뇌물을 주자, 새튼은 덥썩 받았다가, 나중에는 지금은 곤란하다, 기달려달라~ 며 손사래를 치다가, 조작이 거의 밝혀지는 단계에 가자, 난 이 논문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고, 황우석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오리발을 내밀게 됩니다.

결국 이 논문의 시니어 저자는 황우석이 맞습니다. 그리고 조작이 발각난 뒤에는 서로가 다 난 그 논문하고 관계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게 되고, 황우석은 이 연구는 학제간 연구니까 난 책임이 없고, 난 배반포만 만들기로 했고(그거나 만들었으면 말도 안하지..), 속았을 뿐이니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불쌍하게도 이 논문은 책임지는 저자 하나 없는 고아 신세가 되어서..

사이언스에서 이 논문을 철회하려고 저자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아무도 답변이 없자, 그냥 직권으로 철회해 버리게 되는겁니다.

절대로 오해하시면 안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학계가 이렇게 엉망이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연구원들이 나름대로의 고충을 극복하면서 젊음을 쏟아부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가 아주 잘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은 태부족입니다. 그 결과, 황우석이라는 걸출한 과학사기꾼을 만나, 그 모든 학계의 취약점이 다 모여서 이런 희대의 사기극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기극을 잉태한 우리 학계의 문제점들은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가 다 도맷금으로 쓰레기 취급 받아서도 안됩니다.

아무쪼록 학계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도 이런 글들로 인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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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님.. 황우석이 교신저자 역할을 안했으므로 시니어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면, 황우석이 저 논문에 써 놓은 내용에 거짓말이 한개 더 늘어나는 것 뿐이에요. 자기 손으로 저 두개의 논문에 연락할 일 있으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적어 놨잖아요.

아, 저기 있는 내용이 황우석이 쓴게 아니라구요? 저것도 김선종이나 기타 연구원에게 속은 결과라고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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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은 진짜 징그럽게도 거짓말로 똘똘뭉친 캐릭이다. 더 웃긴것은 그런 그의 거짓말들이 그를 지지하는 일련의 무리에게는 정반대로 그를 옹호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무수히 언급되어서 더 얘기하기도 지치지만 말 그대로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현상이라고 할 수있는데, 일단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드러난 사실들을 어떻게 해서든 꿰어 맞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절대 자신은 자신이 그런 얼토당토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지하지도 못한다. 이 복잡한 사건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얼마나 단순하냐면 오컴의 면도날 만큼이나 날카롭고 단순하다.

황우석은 병적인 수준의 거짓말장이 이다.. 이거 한 문장이면 그 당시 벌어졌던 그 많은 기괴한 일련의 사건을이 아주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얘기다. 이걸 못해서 그 지랄들을 떨었던 거지.

어찌 되었거나 이 글은, 현대 과학, 특히 생명공학 분야의 논문에서 종류도 많은 그 저자들의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는 건지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설명문으로써, 딱 그만큼으로써의 가치가 있기에 옮겨 둔다.

이런 글을 어떤 한 캐릭을 까기 위해서 쓰다니.. 나도 정상은 아닌게 분명하다. 히히히~~

사실 이 짤방을 쓰려던게 아니라, 황우석 젖병 걷어차기 짤방을 쓰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찾기가 힘들어서 이걸로 쓴거다. 무슨 짤방이냐면..

그렇게 세계적인 성과로 자랑하던 영롱이라는 복제소, 그 복제소를 세상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자세로 사진을 찍는데, 영롱이 젖 먹이는 젖병이 사진 촬영에 방해되자 인정사정 볼거 없이 발로 차 버리던 짤방이 있었다.

이 사진에 있는 소도.. 그게 영롱인지 지나가던 옆집 소인지, 내가 젖소인지 확인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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