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그녀

때는 20년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촌 봉원사 올라가는 골목길에 있던 낡은 한옥집.

계속 서울서만 살다가 고등학교때 경기도로 이사가는 바람에 신촌까지 통학하는 건 너무 힘들어서, 피같은 알바돈 모아 자취방을 얻었던 내가 살던 곳이다. 낡은 한옥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만 살고 있었고, 방이 많은 관계로 그 방들을 다 연대나 이대 자취생들에게 빌려주던 곳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제일 큰 방을 빌려서 일년 후배 하고 둘이 공동으로 방세를 내고 살고 있었는데..

방이 넓다 보니 집안에서 서로 친해진 자취생들이 가끔 모여서 술 먹고 놀 때에는 하필 꼭 내방에서만 노는 거였다. 그 때 집안에만 자취생들이 예닐곱 정도 되었는데.. 문제의 그녀는 우리방에서 마당 건너 쪽에 있던 방에 살던, 대학생은 아니고 부산서 노래 꽤나 한다고 인정받아 청운의 꿈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던 가수 지망생, 그 지망생의 고향 친구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집을 나와서 그 가수 지망생 자췻방에 얹혀 살던 근처 모 여대 4학년생이었다는 것이었던 거시어따~

아침저녁으로 가끔 얼굴도 마주치고 인사도 하고 지내던 중, 뭔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깃발을 올리고 술판이 벌어졌다. 물론 내 방에서.. 후배 녀석도 느지막히 들어와서는 합류하고 나와 후배, 가수와 친구, 옆방 철학과 애하고 신학대학애 까지 끼어서 벌어진 술판은 자정을 넘어서도 계속 되었고, 하나둘씩 나가 떨어지고, 내 후배도 나랑 같이 쓰던 이층침대의 이층으로 올라가 쳐박히고, 아마 기억에 가수도 꼴아서 지 방으로 갔던 거 같은데…

그 이후로는 기억에 없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층침대 아랫칸에 내가 누워 있는데, 그 좁은 속으로 그녀가 헐벗은 상태로 날 꼭 끌어안고 누워 있는거 잖아.. 줽일.. 나 또한 팬티정도는 입고 있었긴 한데, 하여간 소스라치게 놀라서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바람에 그녀도 눈을 뜨더니, 날 보고 씩 웃는데, 등골에 소름이 쭉 끼치고 순간 당시 사귀던 여자애 얼굴이 눈앞에 확 지나가고..

그 황당한 상황에서 이층에 있던 후배녀석이 얼굴을 쓱 내밀더니, 어~ 형~ 뭐 했어? 라고 그러고.. 난 후닥닥 튀어나와 옷 챙겨 입다가 어제 저녁 술판의 흔적으로 남아 있던 빈 병 밟고 자빠지고, 허둥대는 내가 우습다는 듯이 몇몇이 킬킬거리는 바람에 옆방 애들까지 와서 다 들여다 보고..

심지어 그 부산 여가수까지 와서 들여다 보더니, 오호라~ 이것들~ 뭐 이런 멘트 날리고 있고..

하여간 사태를 수습해야 되길래, 난 대충 옷좀 챙겨 입은 뒤,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외쳐 버렸어. 난 어제 술이 꼴아서 잠 들었고, 확실하게 얘기하는 데 아무일 도 없었다! 니들 사람들이 그러는 거 아니다, 특히 너, 가수, 니 친구 정도는 니가 데려갔어야지 왜 이방에 남겨둬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인가, 하늘이 두렵지도 않더냐~ 뭐 이런 소릴 지껄이고 만거지.

다들 “뭐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히히히~ ” 하면서 전혀 납득이 안가는 표정으로 사라지고.. 난 학교로 도망가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걸로 보였어.

근데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누나랑(당시 내가 2학년인가 그랬으니 누나 맞지 뭐.. ) 아무 짓도 한 기억이 안나는 거야. 그러니까 당당했지. 지금이야 뭐 그까짓거 한번 하는 게 머 대수랴~ 마눌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뭐 이런 자세로 살아가면서, 그래도 걸리면 발생할 상황이 무서워 공포에 떨며 지내긴 하지만, 당시에는 경험이 있어봐야 뭐가 있겠어.. 그 나이에..

그러니 당연히 내가 뭔가를 했다면 반드시 기억이 있어야 되는데 아무리 해도 아무 생각이 안 나는거야. 심지어 내가 언제 침대로 기어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뭐.. 방바닥에 깔려있던 술병의 용량을 더해서 참석자 숫자로 그냥 나눠 보기만 해도 많이 먹기는 했거등…

며칠 지나고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수근거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모르지 뭐, 내 앞에서만 조용하고 뒤에선 뭔 얘길 했을지.. 이 사건이 20년도 더된 일이라는 점을 상기해 주길..)

집에서 혼자 책보고 있는데, 그 누나 둘이서 또 내 방에 온거야. 술 먹자고.

그러지 뭐~ 하면서 술을 먹는데, 이 여자가 그 얘길 또 꺼네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딱 잡아떼냐, 뭐 이러는 거라고. 내가 뭘~ 난 진짜 아무 기억이 없다니까~ 막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쓸데 없는 소리 해서 사람 놀리려 들지 말고 술이나 먹으라고 오히려 강하게 나갔더니, 급기야는..

“야, 이 씨발놈아, 내가 자나 안자나 보려고 살그머니 침대에 올라갔더니 확 끌어댕겨서 물고 빨고, 옷 벗기고 온갖 소리 다 해가면서 뎀벼들고, 나도 이 나이 먹도록 한번도 못해본 자세까지 취하게 맹길고, 이거 무슨 선수도 그런 선수가 없어, 침대가 부서져라 난리를 떨어놓고, 뭐 기억이 안나? 술 그렇게 쳐먹은 넘이 한번만 한 것도 아냐, 아무리 젊다고 그래도 서너번씩이나 뎀벼서 완전 다음날 내가 오줌을 못 싸겠더라, 내가 너한테 무슨 책임을 지라고 하길 했냐, 사귀자고 하길 했냐, 그냥 하룻밤 술 먹고 같이 잘 놀았다고 하려고 그랬더니 이 어린 새끼가 새빨갛게 딱 잡아떼네.. 이 새끼 이거 진짜 나쁜 넘이네.. ”

이러더라..

아, 씨바.. 그럼 그게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내 이마에는 작고 귀여운 땀방울 한개가 또르륵 굴러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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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딴지일보 독투불패 중에서도 최고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육두불패에 올렸던 글인데..

사실 이 글은 픽션이다. 뭐 꼭 이 글이 블로그에 올려지면 마눌님께서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져서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그냥 픽션이라는 얘기다.

등장인물들은 대략 사실에 기반한 거지만, 당시 나처럼 순진한 학생이 저런 짓을 할리가 있겠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이 사실이라고 추정을 한다거나, 혼자 그런 오해를 하고 나서 나를 뭐 졸라 선수로 간주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진짜로 픽션이다.

줸장.. 이 땅에는 아직 언론의 자유가 없다니까…

자취방 키워드로 검색하니까 예상대로 이런 사진들이 졸라 많이 나오는군.. 음휏휏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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