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주로 터는 것을 기조로 하는 증세안이 발표 되었고 난리가 나더니 전혀 박근혜스럽지 않게 신속하게 “원점에서 재검토”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이 소란한 야단법석을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걸까? 당연히 “좋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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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킬 마음이 있었건 없었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경제관련 공약의 주된 흐름은 경제 민주화였고, 복지강화 였다. 심지어 기초 노령연금을 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었다. 물론 없던 일로 해주세요~ 하고 물건너 가버리긴 헀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구테타로 집권한 독재자이면서 우리 나라의 경제 규모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킨 경제 부흥자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던 부친의 정통성(씨바..)을 이어받은 승계자이면서도 그런 빨갱이 스러운 복지공약을 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의 논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복지는 대세가 된 것이다.

솔직히 몇년 전만 해도 복지 얘기를 꺼내면 복지 망국론이 어쩌고 저쩌고, 복지는 좌빨들이나 하는 거고 어쩌고 저쩌고, 배가 불렀네 마네, 뭐 이런 소리 하면서 큰일날 얘기처럼 취급해 버리던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복지가 주요 이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복지 얘기 꺼내면 기본적으로 “복지 좋지~~” 하면서 찬성하는 태도를 먼저 보이고 나서야, 그래도 보편복지는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 우리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만큼만 선별적으로 하자, 차차 조금씩 해 나가는 게 맞다, 뭐 이런 현실적인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복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빨갱이인 나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우리 사회 마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사회 전반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언젠가는 우리도 복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그게 어떤 종류의 복지이건 관계없다. )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적인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안 꺼내고 있다. 이게 참 말도 안되는 것이 복지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인데, 그 서비스라는 것은 무엇이 되었건 간에 무조건 돈이 드는 일이고, 당연한 논리로 복지가 확대 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뻔한 얘기인데도 아무도 그 말을 안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돈을 더 내야 한다. 가급적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많이 내야 한다. 그렇게 돈을 모아야 국민들에게 복지 서비스, 진짜 쓸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건 불을 보듯 뻔한 스토리 아닌가?

결국 복지와 증세는 결코 따로 논의할 수 없는 한 몸통의 두 얼굴이라는 얘기이다. 남은 것은 과연 어떤 복지를 제공할 것이며 어떻게 증세를 하느냐 하는 세부적인 논의가 남았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지는 좋아하면서 증세의 “ㅈ”자만 나와도 펄펄 뛴다. 딱 조삼모사에 출연한 원숭이들의 수준이다.

그리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인들은 그 원숭이들이 무서워서 아무도 증세 얘기를 하지 못한다. 증세 얘기를 먼저 꺼내는 쪽은 그로기 상태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딱 그 모양새였다.

 

<세금 말이다. 세금..>

 

이번에 문제가 된 세제 개편안은 말 그대로 정부의 안이다. 이거 어떻게 실제로 시행될지 여부도 미지수인 상태였다. 거기다 말은 증세였지만 세율 하나 안 건드린 미약한 방안이었다. 난 이게 불만스럽다. 증세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무서워서 찔끔찔끔..  단지 기존에 복잡하게 깔려 있는 공제 제도를 약간 손보면서 월급쟁이들의 부담이 살짝 상승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 방안이었기에 전체적인 방향에는 동의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 세금 제도는 좀 기형적이다. 세율은 꽤 높게 책정이 되어 있다. 그러나 뭔놈의 공제 제도가 그렇게 많은지, 소득공제에 세액공제에 이런 저런 공제를 하다보면 실제로 내는 세금은 무척 적어진다. 기본적인 세율은 대략 1200만원 이하의 소득 구간에서는 6% 에서 시작되어 3억이상의 소득구간에서는 38%까지, 누진적으로 꽤나 잘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저 세율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최근의 통계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납세자 비율은 57% 수준 밖에 안된다. 43%의 사람들은 세금을 단 한푼도 안 낸다. 이 43%가 전체 인구에 대비한 비율이 아니다. “근로자” 즉 취직해서 월급이건 알바비건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 중의 43%가 세금을 안낸다는 뜻이다. 아니 1200만원 미만의 소득에 대해서는 6%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며? 맞다. 하지만 공제 덕분이다.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내야 할 세금보다 공제되는 폭이 더 크기 때문에 세금을 안낸다. 원천징수 되었던 세금들 몽땅 환급 받는다. 쉽게 말해서, 세금을 내기 시작하는 소득의 수준, 면세점이 무척 높은 편이다.

그리고 상위 10%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전체 소득세의 64%를 내고 있다. 물론 전체 세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세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약간은 기형적인 상황이다. 소득 하위 계층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고 싶다면 차라리 세율을 낮춰 주는게 맞는거 아닌가 싶다. 물론 가족공제 등으로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것이 옳을 수도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복잡한 공제제도가 도입되게 되면 행정 절차에 무지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소득 천만원 올리는 사람들이 세무사 고용할 도리는 없잖은가. 소득 몇억 올리는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세율을 적용받으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온갖 공제제도를 다 적용해서 상당히 많이 공제를 해 버리는 것과 비교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냥 깔끔하게 각종 공제제도는 최소화 시키고, 세율을 재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세율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복지의 시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인 조세부담율이 올라가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근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조세 부담이 실질적으로 약간 증가하는 이번 정부안은 크게 나쁘지 않은 방안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공격거리가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예상대로 민주당은 과거 한나라당이 만들었던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덤벼 들었다. 이거 패착이다. 비난의 방향이 틀렸기 때문에 패착이다. 참여정부 시절을 돌이켜 보자면 증세는 민주당의 철학이었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종부세를 만들고 한나라당이 반대할 때 나온 용어가 바로 세금폭탄이었다. 그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도 패착이다.

졸라 무서운 세금폭탄

즉,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증세를 통한 복지강화를 당론으로 밀었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증세안을 세금폭탄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민주당은 다시는 증세를 얘기하기 힘든 입장으로 전환된다. 차기 정권을 민주당이 잡게 되었을 때, 이제 어떻게 증세를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당은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증세 자체를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할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증세는 방향을 상실한 증세, 혹은 약자들만 터는 비겁한 증세, 재벌을 옹호하는 증세, 이런 식으로 증세는 찬성하되 그 방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했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의 증세안은 문제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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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이번 증세안이 나오게 된 배경 자체는 복지하고 별 관계가 없다. 지금 정부의 증세는 세수 부족이 주원인이다. 세수를 늘려 복지를 하겠다는 증세가 아니라, 복지 자체에는 별 관심도 없지만 정부 운영 자체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세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궁여지책 증세안이라는 것이다.

세수 부족의 주 원인은 경기 하강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세금 수입은 당연히 준다. 그러나 그것 만이 원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벌였던 헛짓거리가 더 큰 원인일 수도 있겠다. 국제적인 경기가 지속적으로 하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감세, 부자 감세를 일삼은 정부가 이명박 정부였고, 그 여파가 밀어닥친 것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아주 쉽다. 이명박 정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면 된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 행해졌던 부자감세를 원위치 시키고, 법인세 감면 해줬던 것을 다시 올리면 된다. 재벌에게 특별 세제 혜택 줬던 것을 다시 없애면 된다. 재벌들이 반발하면? 아니 전 정부가 경기 예측을 잘못해서 지금 정부가 세수 부족으로 부도가 날 판인데, 니들이 좀 참으라고 해 주면 된다. 올리는 것도 아니고 잠시 내려줬다가 원위치 시키는 건데 뭔 말이 많냐고 “지금 저랑 싸우자는 거에요?” 라고 한마디 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걸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그걸 못하고 애먼 월급쟁이들 유리지갑을 털려고 덤비니까 사람들이 화내는 거잖아.

하기사 재벌들이라고 정부에 돈 뜯기는 게 좋기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최근 십년동안 돈 제일 많이 벌고, 혜택 제일 많이 본 것이 그들이니까 이럴 떄 좀 나서서 정부를 도와주는 게 맞다. 그래야 거니오빠도 대인배 소리좀 듣고 사는 거지.

이렇게 잘못된 증세안을 들고 나와서, 이번 개편안은 “증세”가 아니에요, 라고 애처로운 사기를 치던 관료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실질적인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증세가 아니라고 우긴다고 사람들이 속아주나? 물론 정권과 재벌의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료들의 처지가 불쌍하긴 하지만 그거 다 당신들의 자업자득이다. 별로 옹호해 주고 싶지도 않다. 옹호해 주기는 커녕 전문가들 사이에 전래되는 전문 격언을 하나 전해주고 싶다.

어디서 구라를 쳐.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모르나?

그런데 상황이 또 갑자기 돌변했다.

애초에 잘못된 증세안을 내민 정부, 잘못된 증세안을 전면적으로 환영하던 새누리당, 비판의 방향을 상실하고 엉뚱하게 싸우던 민주당, 사이에 끼어서 쩔쩔매던 관료, 이런 사람들을 일거에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원점에서 재검토 하세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전혀 박근혜 스럽지 않게 신속하게 한말씀 하신 거다.

솔직히 난 이 얘기 듣고 뭔가 와전된 것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 아무리 시끌벅적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난리 굿판이 벌어져도 아무소리 안하고 입 꼭 다물고 앉아 있거나 기껏해야 “잘 대화해서 잘 해결해야 합니다” 따위의 쉰소리나 하던 근혜누님이 왜 이렇게 신속하게…

오히려 이거 이상한 안 슬쩍 내밀었다가 야당이 막 난리치면 철회함으로써 시선을 돌리려는 물타기 수작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철회를 해 버리면 기껏 이번 개편안은 증세가 아니고 오히려 조세정의를 향상시키는 개편이고 어쩌고 구라를 막 치던 정부 입장은 뭐가 되며, 당정청 협의를 거친 좋은 안이라고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떠들던 새누리당은 이 무슨 똥밟는 입장이 되는 것인가. 물론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재검토 입장을 발표하자 마자 또 아주 훌륭한 결단이라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부만 하고 있기는 하다. 걔들은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다가 민주당은 이제 어쩔 것인가?

세금 폭탄이라며 반대하던 정부안을 대통령이 철회해 줬으니, 훌륭하신 결단이라고 칭찬할텐가? 이제 증세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할 텐가? 진짜 할 말 없을 것이다. 완전 헛다리 짚기에 당해서 자빠진 셈이다. 내가 다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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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무 의미없는 정치적 해프닝은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런 수작 말고도 우리에게는 논의할 거리, 고쳐야 할 거리가 너무 많다. 세금에 관련해서도 시스템이 거의 확립되어 돌아가고 있는 근로소득세가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한국은행 통계를 전적으로 믿는다 해도 이미 불로소득(근로소득이 아닌 소득)의 규모가 근로소득의 규모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런 자본소득, 투기소득 등의 세원을 확인해서 조세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다.

간접세 비중을 낮추고, 직접세 비중을 올리는 것도 해야할 일의 목록 중에 있다. 이 얘기는 흔히들 오해를 많이 하는데, 간접세 비중을 낮추자는 얘기는 간접세(예를 들어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종합소득세 같은 직접세의 세원을 더 찾아내고 탈세를 막아 직접세의 규모를 늘이면 간접세의 비중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세제개편안에 은근슬쩍 묻어 가려 했던 상속세나 증여세의 실질적인 부담을 낮춰 주는 거, 이런 것은 정반대로 가야 한다.

탁 꺠놓고 “실질적인 증세”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조세 정의를 구현하면서 동시에 전 국민의 실질적인 세금부담을 올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올린 세수로 좀더 포괄적인 보편복지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조세제도에서 부의 재분배 기능을 구현하지 못하면 정부의 복지 정책으로 만회해도 된다. 어떻게든 세금을 좀 더 걷어서, 소외된 계층들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못할 지언정, 이번 해프닝 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치적 개그 콘서트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사람들에게 우리 세금 제도가 아무래도 문제가 많다는 인식을 심어 줬으니 전혀 쓸모 없지는 않았겠구나. 하지만 가뜩이나 날도 더운데, 이런 허무개그는 정신건강을 해칠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좀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 그런데 원점에서 재검토 한 다음에 더 허무한 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오면 어쩌나.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서 심하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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