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편 닭죽

 

그렇다. 이건 비상식량 수준이다.

심지어 내가 보기엔 라면보다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라면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처럼 보이는 그런 좋은 음식이다.

사실 제대로 닭죽을 끓인다는 것은 일단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다. 귀찮다.. 라는 이 말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인간사가 무시되는지..

그 무시무시한 귀챠니즘을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디테일들이 생략되는지.. 디테일 속에 사는 악마들은 아마 귀챠니즘을 제일 싫어할 것 같기도 하다.

출발해 보자.

정육점이나 마트에 가면 냉동 닭가슴살을 판다. 값도 싸고 보관도 용이하다. 그저 한 봉다리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 두면 된다. 한 달 이상 보관해도 잘 상하지도 않는다. 이게 핵심 재료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밥. 밥이 없으면 그냥 쌀도 좋다. 제일 좋은 것은 전기밥솥에 지어 놨다가 한 이틀 정도 지난 처치 곤란 상태에 빠진 밥이다.

이것과 계란 한 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본은 차리려면 몇가지가 더 있으면 좋다. 국물용 멸치, 다시마, 소금, 후추가루, 새우젓, 당근, 양파, 파슬리, 바지락 등등 한도 없다.

냄비에 물을 한 300미리 정도 넣고 멸치 한 두 마리 (없으면 생략), 다시마 한 두 쪽(이것도 없으면 생략)을 넣고 팔팔 끓인다.

4-5분 끓인 뒤 다시마를 꺼내서 잘게 썬다. 가로세로 3미리 이하. 잘게 썰어서 다시 국물에 투하. 그 때 쯤 멸치는 꺼내서 버린다.

거기에 닭가슴살 한 쪽을 넣고 끓인다. 그러니까 멸치나 다시마가 없으면 첨부터 닭가슴살 한 쪽을 넣고 끓이면 된다.

한 십오분 끓이면 닭가슴살이 다 익는다. 젓가락으로 꾹꾹 찔러 보면 익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끓이는 동안 다른 재료를 준비한다. 그래봐야 당근 양파지 뭐. 당근 양파는 최대한 잘게 썰어서 준비해둔다. 양파 잘게 썰 때 조심하라. 여차하면 첫사랑 헤어진 3일 뒤 소주 두병 정도 먹은 상태만큼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다.

바지락이 있어서 넣게 되면 도중에 꺼내 껍질은 까서 버리고 조개살은 잘게 썰어서 준비해둔다.

닭가슴살이 다 익었다 싶으면 꺼내서 조금 식힌다. 식히는 이유는 오로지 손에 화상을 입지 않고 잘게 찢기 위해서. 조금 식은 뒤에 최대한 잘게 찢어라. 민망할 정도로 잘게 찢어라.

물론 그 동안 국물은 계속 끓인다. 닭가슴살 꺼낸 뒤에 거기다가 아예 밥을 넣자. 밥을 넣는 양은, 국물을 다 빨아 들일 정도의 밥만 넣는 게 원칙인데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얼마를 넣는지 모를 것이다. 밥을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풀어서 누룽밥 농도 이하로 밥알이 휘휘 날아다니는 수준만 넣어야 한다. 보통 물 300미리 넣었으면 한공기 미만이다.

그렇게 밥 넣고, 양파 당근 썰어 둔 거 넣고, 다시마 잘게 썰어 둔 거 넣고, 혹시 바지락도 넣었으면 살을 잘게 썰어서 넣고..

중불로 계속 끓인다. 가끔 숟가락으로 저어 줘야 한다.

그 동안 닭가슴살은 최대한 잘게 찢으라고 했다. 다 찢었으면 닭가슴살도 넣어라.

다 넣었지.

이제 밥이 막 버글버글 끓을 것이다. 불을 약불로 줄이고 천천히 밥알이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자. 그냥 만고땡으로 여유를 주면 밥이 냄비 바닥에 눌어 붙는다. 가끔 와서 숟가락으로 저어 줘야 한다.

한 십오분에서 이십분 정도 저어주면서 약불에 끓이면 밥알은 부풀어 오르고, (참, 난 현미밥 기준이다. 보통 쌀밥은 훨씬 더 빠르다.) 이 때 파슬리 같은 향료를 조금 넣으면 좋다.

마지막 순간에 날계란을 한개 풀어서 휘휘 저어줘도 좋다.

그러고 나서 냄비에서 밥그릇으로 옮겨 담고, 거기에 소금과 후추,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보기엔 구려도 맛은 좋다니까.
보기엔 구려도 맛은 좋다니까.

이게 바로 물뚝심송의 초간편 닭죽이다.

구리다고 욕하지 말자. 나도 닭뼈로 육수내고 뭐 하고 뭐 하고 이런거 다 할 줄 안다. 그거 졸라 귀찮다. 이거 만드는데 사실상 라면 끓이는 거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노동력 밖에 소모가 안된다. 단지 약불로 밥알 부풀리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익숙해지면 이십오분 이내에 마무리 된다.

그런데 효능은..

감기기운 있거나 속이 쓰리거나 할 때 직빵이다.

믿고 한 번 해서 드셔 보시라.

떼놈 빤쓰를 입은 것도 아니고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서 어쩌려고….

 

 

 

 

 







2 thoughts on “초간편 닭죽

  1. (참고로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요..) 여기 코스트코에는 닭한마리는 통째로 로스트해서 한마리에 5불 미만으로 팔고 있어요..그거 사다가 그냥 뜯어 먹어도 맛있거든요.

    일단 닭다리 2, 날개2 뜯어 먹고 나면..배도 슬슬 부르고, 퍽퍽한 닭가슴살만 남게 되요..그 처치 곤란인 닭을 손으로 살과 뼈를 발라내고 (기름이 싫으신 분들은 닭 껍질 볏겨내고)..뼈를 통째로 (물뚝님 레서피의 멸치, 다시마, 바지락에 해당할 듯) 처럼 끓여 주신 뒤 건져 내고, 냉장고 돌아다니는 밥 (통마늘이 있으면 넣어주면 대박…마늘 넣으면 양파 당근 안 넣어도 되지 않나요? 황기 까지 넣으라고 하면 화내실 듯 ㅎㅎ) 넣고 한 소끔 끓여내어 기호에 따라 파도 넣고 소금도 넣고 (너클볼러 할머니 명언처럼 ‘음식에 미원을 넣어야 된다’ 미원 한 다섯톨 넣으면 고기의 아미노산과 미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완존 맛있는 닭죽이 된답니다.

    사실 닭 손질하는 것도 어렵고 귀찮지만, 닭을 썬, 도마와 칼은 꼭 뜨거운 물로 소독하거나 락스로 씻어 내야 바이러스가 죽는다고 해서..그게 귀찮아서 닭죽 안해 먹었는데..코스트코 닭으로 만드니 간편하고 번거럽지도 않고 아주 좋아요..한국 코스트 코에도 그런 닭파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건강이 최고입니당

    간단 레서피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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