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못 읽는 건가?

 

이런 일이 한 두번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진영을 가리지도 않는다. 아주 단순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의도를 자기 멋대로 곡해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적 주장을 전개한다.

도대체 왜 이럴까?

아주 단순하다.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위해 주어진 정보들을 곡해하는 것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거겠지. 우리나라 비문해자 비율이 상상외로 높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사례를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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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영선의 논문에 표절의 혐의가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누가 제보했는지는 얘기 안해도 다 알 것이고..

그 결과 서강대학교에서는 해당 논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를 공문으로 알려 왔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2. 위와 같이 표절로 제보된 논문에 대한 예비조사 결과, 선행 연구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포괄적 출처 표시, 재인용 표시 미비 등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부 표절과 그 외 연구윤리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연구방법, 연구결과 및 결론 부분 등에서 저자가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되고, 또한 본교 “연구윤리진실성 위원회 규정” 부칙 제2조에 따라 검증시효가 지나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연구진실성 검증대상이 아니므로 본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끝.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이걸 읽고 어떻게 논문이 표절로 확인된 거라고 주장을 하지?

한글 못 읽어?

부분적으로 표절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괜찮아. 거기다가 검증시효가 지나서 본조사는 아예 안할래.

이거잖아. 이게 어떻게 “표절로 확인” 이 되는 거야? 미친거 아냐?

제발 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읽고 싶은 대로 읽은 다음에 지 꼴리는 대로 개드립같은 주장이나 하는 것은 좀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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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엄격하게 말해서 박영선 의원도 잘 한 것 없고, 서강대도 잘 한 것 없다.

애초에 저 논문 서강대 교수님들이 심사해서 통과시킨 거다. 그 때는 왜 부분적인 연구윤리 진실성 위반을 못 잡았는데?

왜 이제와서 부분적인 문제는 있으나 블라블라.. 이런 소릴 하냐는 거다.

이 모든 골치아픈 문제는 바로 저 “검증시효”라는 한 단어 속에 다 녹아들어 있다. 무슨 연구논문이 형사범도 아니고 시효는 무슨 시효..

대한민국 학계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 그 문제들이 바로 그 검증 시효라는 말에 다 숨어 있는 거라는 얘기다.

연구윤리? 표절? 인용의 문제? 출처?

솔직히 말해서 90년대만 해도 그런거 제대로 지키면서 논문 쓰는 사람 손에 꼽았을 거다. 관행이 그랬다는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만약 요즘의 룰을 규정으로 잡고 과거의 논문들을 털기 시작하면 요즘 대학교에 교수입네 하고 앉아 계시는 분들 상당수는 논문 털리고 학위 반납해야 될걸?

연구윤리 분야야 말로 우리 학계에서 손 꼽히게 낙후되어 있는 분야중의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제적인 조류에 맞춰 요즘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예전에는 학위논문 조차도 허술하기 그지없는 심사를 거쳐 발표되었고, 교수들이 매년 건수 채워 쓰는 논문들 태반은 원생들이 대충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짜깁기 해서 쓰곤 했다는 거 공공연한 비밀이었잖아.

체육계 출신들 논문은 체육사 논문이라고 돈 주면 써주는 전문가들이 있어서 아예 가격도 표준화 되어 있었고.. 유력 정치인들은 그냥 대충 대충 학위 만들어 주고, 돈많은 기업인들은 대충 대충 경영학 박사 학위 하나씩 주고..

이런 과거가 있으니 현대적인 연구윤리 규정을 만들어서 논문을 심사한다고 했을 때,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저히 이런 빡빡한 규정을 적용할 수도 없다는 거.. 서로서로 다 알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 “검증시효” 같은 신기한 규정이 생기는 거지.

엄밀히 말하자고? 저 논문 표절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그 논문 표절이라고 잡아내서 처벌하지 못해. 저 수준을 처벌하려고 들면 아마 과거 논문 절반은 다 취소되고 학위 반납해야 될거다.

기존에 정치권에서 논문 표절이 문제가 되었던 것들, 그런 것들은 이런 수준이 아니야. 그냥 남의 논문을 가져다가 제목만 바꿔서 쓰고, 얼마 주고 사오고, 이런 것들이거든.

그렇게 당하다 보니 이제 변모가 씨바, 니들 논문 다 뒤져서 한 문장이라도 같은 거 나오기만 해봐라, 그러면서 검색기 돌려가지고, 몇 문장 잡아내고, 그걸로 여기저기 제보한다고 다 찌르고 다니고, 그러다가 빠꾸 먹으면, 서강대도 한통속, 미네소타 대학도 한통속, 뭐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대학이 다 한통속이겠지.

이러고 있는 거라고.

그런 내막을 알게 되면 최소한 이런 결론 가지고 박영선 논문 표절~ 이라는 주장은 못하게 될 거다. 그저 후즐그레한 대한민국 학계의 어두운 과거를 지켜보며 쓴 입맛이나 다셔야 되는 거지 뭘.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다들 입 다물고 조용히 돌아앉아 있는 거라고.

변모가 무서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표절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야. 이 문제가 참 들여다 보면 그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둡고 음침한 문제라서 그런거라고.

그나마 이제라도 각 대학별로 IRB도 생기고, 표절 규정도 점점 까다로와 지고, 학생들에게 논문 작접, 인용법, 출처 밝히기 뭐 이런 것도 가르치고.. 그러고 있으니 그저 이제 시작인가 보다.. 그러고 있는 거지 뭘.

보다 보다 답답해서 한 마디 써갈겼다.

 

반론은 사절. 이런 화제는 캘수록 기분이 더러워지는 분야라서 더 이상 다루기도 싫다. 이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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