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면식

 

사실 이건 우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식 완탕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면이냐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면발을 내가 좋아하는 국물에 넣고 내가 좋아하는 고명을 얹은 정체 불명의 국수일 뿐이다.

설명해 보자.

 

음식 만들기

음식을 만든다는 것 중에서 일반적으로 놓치기 쉽고 설명도 잘 안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재료 준비와 음식의 분량이다.

혼자 살면서 밥도 잘 안해먹는 그런 사람이 아무리 호화로운 주방 시설이 있는 원룸에 산다고 해도 음식을 잘 해먹지 않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료 준비와 음식의 분량.

재료 준비는 어렵지 않다. 그냥 마트에 가서 이거 저거 사오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식재료들을 파는 분량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콩나물? 한봉다리 사면 그거 혼자서 먹으면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콩나물 국을 먹어야 되는 분량이다. 미쳤어? 콩나물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태반을 버리게 된다.

그 밖에도 이런 저런 식재료들, 일인분의 음식을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단위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니 그 식재료들을 사다가 쑤셔 넣을 냉장고가 필요하게 되고, 결국 냉장고 안에서 썩어서 음식물 쓰레기로 나가게 되며 이런 경험을 한 두번만 하게 되면 “에이, 그냥 사먹고 말지.. ”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맘먹고 일품 요리를 한다고 치자. 예를 들어 오늘은 크림소스 파스타가 먹고 싶군.. 하면서 만들어 보자. 백프로 삼사인분은 됨직한 크림소스가 당신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거 일인분 딱 맞춰서 만들면 맛을 내기가 힘들다. 재료도 그렇고, 생크림 같은거 휘저을 때 일인분 넣고 젓기는 힘들다. 계란찜을 해도 계란 최소한 두 개는 넣어야 뭐가 되는데 이것만 해도 반찬으로는 이삼인분이다. 결국 또 남아.

부부만 사는 나같은 경우에도 거의 식사를 나 혼자 해결하기 때문에 이런 고충에는 다년간 숙달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매번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재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

따라서 혼자 사는 사람이 음식을 해 먹을 때 결과물의 맛과 성취감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재료 관리이며, 음식 분량의 조절이다. 이거 실패하면 당신은 음식 쓰레기 봉다리 사러 다니기 바쁘게 된다.

요리가 종합예술이라는 거, 이래서 현실적이다.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해서 이번에는 이 음식을 만드는 것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해 먹고도 재료 손실도 없고 음식물 쓰레기도 발생시키지 않는 법을 위주로 구질구질한 얘기들을 할 생각이다.

밤중에 심심할 때, 라면 하나 정도는 끓여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라면은 뭔가 찜찜하지. 나도 라면을 자주 먹긴 하는데 먹고 나면 속도 좀 불편한 것 같고, 다음날 아침 상태도 별로 안 좋고 하다. 먹고 나서 기분 나쁜 음식은 몸에도 안 좋은 법이다.

그럴 때 가볍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면식이 하나 정도 있다면, 그리고 그 면식이 꽤 호화롭게 보이지만 재료가 냉동실에 항상 비축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먼저 다시마. 말린 다시마를 좀 사오면 보관하기가 쉽다. 보통 싱크대 윗단 캐비넷에 봉투 잘 묶어서 보관해도 된다. 말린 것이기 때문에 습기만 안차면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이걸 가위로 가로세로 2센티 정도로 잘라서 락앤락 통에 한 통 정도만 잘라두고 쓴다. 냉동실에 넣는 것이 제습효과가 있어서 좋다.

국물용 멸치는 선반 어딘가에 잘 묶어서 보관해두면 된다. 역시 한 통 정도는 쓰기 편하게 덜어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이 두가지가 육수의 기본 재료가 된다.

무우는 상비 재료중의 하나이다. 건강하게 생긴 무우 하나 사다가 냉장고 야채칸에 랩으로 싸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 또한 육수 낼 때 한 덩어리씩 썰어서 넣어줘야 된다.

이 세가지 재료로 끓인 육수는 대략 한번에 2리터 정도 끓여두면 좋다. 중형 냄비에 멸치망에 멸치 넣고 무 한덩이 넣고 팔팔 끓인 뒤 다시마 대여섯 조각 정도 넣어주고 1분 후 다시마는 건진다. 다시마는 항상 말하지만 오래 끓이면 이상해진다니까. 그리고 약한 불로 끓이다가 5분 정도 후에 멸치는 건지고, 무우는 그대로 둔 채 5분 정도 더 끓이면 쓸만한 육수가 준비된다. 보통 국수 한 그릇 끓일 때 500미리 정도 쓰니까 2리터면 국수 네그릇 분량인 셈이다.

이 육수는 물통 커다란 것에 담아서 냉장실에 넣어두면 국, 찌개, 전골 등의 국물 요리에 항상 쓰이므로 편리하다. 막 일주일씩 보관하면 안된다. 육수도 상한다.

그리고 육수 끓이다가 건져낸 다시마는 칼로 잘게 썰어서 국수 고명으로 쓰면 좋다. 미끄러우면서도 오돌오돌 씹히는 다시마는 꽤 괜찮은 고명이거든.

마트에 갈 때, 냉동 새우살을 좀 사다 두면 편하다. 물론 생새우 사다 먹으면 맛있고 좋지만 보관성이 나쁘다. 새우를 다 까서 냉동시킨 거 한봉다리 사다가 냉동실에 넣고 조금씩 꺼내 먹으면 편하다. 아예 냉동 시킬 때, 한 번 먹을 분량 만큼씩 비닐 봉다리에 따로 담아 얼리면 더 편하다.

바지락 조개는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좋은 재료다. 국, 찌개, 전골, 심지어 매운 볶음 등에도. 그러니 바지락도 기회 될 때 수산물 시장에 가서 싱싱한 것을 몇키로 사다 놓으면 좋다. 물론 싱싱한 바지락을 넣고 칼국수 같은 거 끓여 먹으면 좋긴 하지만 보관성이 나쁘니 해감 잘 시킨 다음에 깨끗하게 헹궈서 역시 한 번 먹을 분량씩 포장해서 냉동실에 얼려 두자.

물오징어도 매우 다용도 재료이다. 된장찌개에 넣으면 해물된장인 척 할 수도 있고, 매운 볶음을 해도 좋고, 싱싱할 때에는 그냥 데쳐서 초고추장 찍어 먹어도 된다. 주말에 삘 꽂히면 튀김을 해도 된다 .이런 물오징어는 마트 갈 때 마다 서너마리씩 사다가, 잘 손질해서 반마리 분량 씩 포장해 냉동시켜 두고 꺼내 먹으면 편하다.

어묵, 흔히 덴뿌라라고 하는 것도 여기저기 넣기 좋다. 두부와 함께 준비해 두면 언제든지 찌개를 끓일 수도 있고, 졸여서 밑반찬을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값이 싸다.

양파, 감자, 마늘 등은 단단해서 보관하기 좋다.빨간 양파망에 담아서 바람 잘 통하고 볕 안드는 베란다에 걸어두면 된다.

그 밖의 채소들은 별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마트에 갈 때 마다 싱싱한 채소를 사다가 밀폐용기에 담아서 잘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 주로 양배추, 양상치, 콩나물, 쑥갓, 파, 고추, 피망, 오이, 가지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조금 커다란 밀폐용기를 하나 준비해서 그 안에 썰고 남은 채소들을 같이 보관하면 편하다.

면은 참 힘든 문제다. 소면은 건조된 상태로 나오니 용기에 담아 보관하면 된다. 메밀면도 마찬가지. 칼국수용 생면은 사다가 바로 먹는게 좋다. 금방 상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마트에서 냉동 중화면을 발견했는데, 이거 나름대로 괜찮다. 꽁꽁 얼어 있는 면이 다섯개씩 포장되어 있는 제품인데, 냉동실에 넣어 두고 하나씩 꺼내서 쓰니 무척 편하다. 그리고 면발 스타일이 중국식이라 짜장면, 짬뽕, 우동 등에 적합하다.

기타 향료들은 단순히 설명해 보자. 간장은 기본적으로 국간장이 있어야 한다. 재래식으로 만들어진 조선간장이 제일 좋은데, 이거 물론 담궈 먹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힘들면 큰 통으로 사다가 베란다에 보관하고, 작은 피티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쓰면 된다. 그리고 좀 맛있는 양조간장이 필요하다.

국간장은 간을 맞춰 주고 깊은 맛을 낸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물은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된다. 맑은 탕 같이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시원한 맛을 내는 경우도 있으나 국간장이 들어가야 깊은 맛이 난다.

그러나 양조간장이 또 없으면 안된다. 단맛과 감칠맛이 강한 간장이라 이걸로 간을 맞추려 하지 말고 국간장으로 약간 싱겁게 맞춘 뒤 양조간장으로 맛을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양조간장은 좀 비싼 걸 쓰길 권한다. 조금만 넣어도 단맛이 강한 제품들은 주로 일제다.

고춧가루, 소금, 깨소금, 흑설탕 이런 것들은 뭐 알아서 보관하시라. 상하는 것도 아니고..

대략 이 정도만 냉장고에, 베란다에, 싱크대 위아래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마음 내킬 때 일인분 씩 만들어서 깔끔하게 먹고 치울 수 있는 면 요리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구비해 두고 사용한다면, 전체적인 비용은 한도없이 절감된다.

어떤 면에서는 일반 라면보다도 더 쌀 수도 있다.

 

본론 – 오늘의 면식

이제 멀고 먼 길을 돌아 시작해 보자. 재료는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 확인해 보자.

멸치, 다시마, 무우를 넣고 끓인 육수 500미리.

냉동 중화면.

냉동새우, 바지락, 오징어, 어묵.

콩나물 약간, 쑥갓, 마늘, 풋고추 반 개. 날김.

국간장, 양조간장, 고춧가루, 후추, 통깨

조리법:

육수를 500미리 덜어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이면서 그 동안 재료를 준비한다.

냉동새우살 대여섯마리. 오징어 가늘고 길쭉하게 썰어서 예닐곱 개. 바지락 다섯마리. 어묵 다섯조각. 모두 다 한 주먹도 안되는 분량일 뿐이다. 많이 넣지 말자. 맛 없다.

콩나물 한 줌, 꼬리 잘 떼고 맑은 물에 헹궈두고, 쑥갓 약간 손질해 두고. 마늘은 세쪽 정도 슬라이스로 썬다. 풋고추도 한 개 다 넣으면 맵다. 반개만 잘게 썰어둔다. 청양고추면 거의 대여섯쪽 이하로.

굽지 않은 날 김은 고명용이니 잘게 부숴서 준비해둬도 된다. 마트에 가면 아예 잘게 부순 김을 팔기도 한다.

냉동면은 별도로 삶을 필요가 없고 끓는 물에 넣어 1분 정도면 된다. 전분이 우러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삶아서 헹구는 과정이 생략된다. 바로 끓는 육수에 냉동면과 마늘 슬라이스를 투입한다.

잠시 후 새우, 오징어, 어묵 등을 투입하고 한번 끓어 오르는 시점에 콩나물을 투입한다. 콩나물은 먹을 때 아삭거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절대 많이 익히면 안된다.

불을 줄이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양조간장으로 맛을 낸다. 이미 새우나 오징어의 맛까지 국물에 포함되기 시작한 시점이라 이 때 맛이 국물의 최종적인 맛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민감하게 맛을 봐 가면서 맞추길 권한다.

그리고 예쁜 면기를 꺼내 거기에 전부를 쏟아 붓고, 그 위에 고추가루, 후추, 김가루, 통깨 등을 얹고 이 때 미리 준비해둔 가늘게 썬 다시마도 같이 얹는다.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다면 이 과정 전체에 소모되는 시간은 십분이 채 안걸린다.

물론 물 끓여서 라면 봉다리 뜯어 끓여 먹는 시간보다는 좀 더 걸리겠지만 익숙해지면 거의 불편 없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분량이다.

그리고 그 댓가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은 그럴싸한 국물에 통통한 면발, 그리고 각종 고명이 함께 들어있는 훌륭한 면요리. 이걸 우동이라 부르건 완탕이라 부르건 뭐라 불러도 상관 없다. 내 입맛에 맞는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밤중에 이런 따뜻한 국물과 함께하는 면 요리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게 된다.

한 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사진이 없다. 해서 어제 밤중에 마눌님과 함께 해 먹은 매운 닭똥집 볶음 사진으로 대치.. 이게 뭐야. 이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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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나만의 면식

  1. 콩나물 대신에 숙주를 올려 보세요.
    다 된 면에 날것을 올려서 먹으면 아삭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멘이나 베트남 쌀국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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