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논리 문제

 

어제 장난삼아 한 트윗이 있었는데, 내용이 이런 것이었다.

트윗 공간에 유달리 어린 시절 가정내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로써 나는 새로운 학설을 하나 창안할 수 있겠다. 가정폭력은 아이의 심성을 파괴해 나중에 자라 트잉여가 되는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 자신 있으면 반론해보시지!!

정리하자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트잉여가 될 확률이 높다. ” 라는 명제가 되겠다.

그렇다면 이 명제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가정폭력을 경험했으나, 트잉여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

2.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았으나, 트잉여가 된 사람이 있다.

3.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트잉여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뭐 대충 이런 정도의 경우의 수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1,2,3 모두 원 명제에 대한 반론은 되지 못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논리적 구조가 담겨 있는데, 하나는 A 이면 B 이다 라는 조건문에서 가정이 F 일 경우는 언제나 결과가 참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필요조건 충분조건의 구분이 포함되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정폭력을 경험하면, 이라는 조건이 붙은 애초의 문장의 경우,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진술은 없기 때문에, 2,3번의 문장은 원래의 명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즉 말로 설명하자면, 가정폭력을 경험하면 트잉여가 된다는 문장에 대한 반론으로 가정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례는 아무리 가져와도 소용이 전혀 없다는 뜻이 된다.

필요조건 충분조건 얘기는 뭐냐면, 가정폭력을 경험하면 트잉여가 된다는 문장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한 모든 사람은 트잉여가 된다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것은 트잉여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 중에는 트윗을 구경하지도 못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필요조건조차 되지 못한다.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트잉여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래의 문장은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일부가 트잉여가 되는 경향성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런 문장은 반론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즉, 제대로 된 반론을 하려면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가 트윗을 아주 많이 하는 트잉여가 되는데, 그들 중에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을 따져보고, 거기서도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이 트잉여가 되는 것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본 뒤 별다른 관계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슬쩍 부존재에 대한 증명 비슷하게 되어서 네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냐 하는 반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게 된다.

이 정도 되면 반론은 거의 논문 하나급의 데이터가 필요해지고 분석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반론은 정말 쉽지 않다. 그냥 트잉여 중에 가정폭력을 겪지 않은 사례를 제시한다 해서 그 사례가 반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반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또 반대로 가정폭력을 겪었는데 트잉여가 안되는 사례를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 역시 반례가 되지 않고 반증도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애초에 반론을 할 필요 자체가 없다. 왜냐하면, 최초의 트윗 자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개드립에 불과하다.

어떤 주장을 진지하게 하려면 먼저 주장을 내놓은 쪽이 근거를 정리해서 이러이러하므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논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런 논증도 없이 던지는 개드립을 반증하느라 개고생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즉 입증 책임은 최초의 주장을 내놓은, 주장자의 임무이지 반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저런 주장은 “응., 그냥 개드립이구나? 피식~” 하면서 넘어가면 되는 것 뿐이다.

——————–

이와 비슷한 경우가 신의 존재 증명에 관련되어 흔히 발견된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보자. 구조적으로 꽤 유사한 케이스이다.

이걸 어떻게 반증할까? 종교가 없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반증을 해 볼까? 그거 아무 관계 없다.

종교가 있어도 불행한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올까? 그것도 소용없다. 경향성에 대한 반증은 사례 몇개로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있는 것과 행복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입증하겠는가?

기껏 해 봐야, 전체 인구 중에 행복한 사람의 비율을 통계적으로 확인하고, 종교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비율을 확인해서, 종교가 있으면서 행복한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인구대비 행복한 사람들의 비율보다 별로 높지 않고 오히려 낮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정도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개고생 하면서 입증을 해 봐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이유가 불행해서 였다고 하면, 종교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원래 다 불행했는데, 종교를 가짐으로써 이렇게나 많이 행복해졌다는 식의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건 애시당초 반증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냥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행복한 경향이 있다는 입증을 제대로 해보라고 요구하고, 그 입증의 품질이 나쁘다고 지적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입증 자체를 못하고 버버대면 그냥 개드립 취급해줄 일이고 말이다.

 

논리의 세계는 그리 쉽지 않다.

 

 

 

 

 







2 thoughts on “단순한 논리 문제

  1. 가정폭력 -> 트잉여(?)
    트잉여 -> 가정폭력(X)
    ~가정폭력-> ~트잉여(X)
    ~트잉여 -> ~가정폭력(X)
    이런 개드립이 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드립을 깨뜨리는 논리는 필요함.
    수학전공한 친구에게 필요 충분 조건을 들먹였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는데, 명제에 대한 역 이 대우 모두 충족하지 않을 경우 참이 아니라는 대답.
    물론 A는 B다와 같은 확정이 아니라 확률이라 했으니 피해나갈 구멍은 많음.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은 개인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확률이 크므로 이 경우,
    물뚝심송 씨는 트잉여이므로 어릴적 가정폭력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는 개인적인 소견에 너무 마음 상하지 않으셨으면…

  2.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들 중에 트잉여가 된 사람의 비율과
    가정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트잉여가 된 사람의 비율을 서로 비교해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
    반박할 수 있지 않을런지요?ㅎㅎ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