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빙의 다큐멘터리 1부 – 나는 대리기사다

 

본 글은 10년차 전업 대리기사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의 증언을 근거로

일인칭 시점으로 다시 써진 글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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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리기사다.

사람들은 보통 대리운전이라 하면 인생 말아먹고 종착역에 가까이 온 사람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직장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푼돈이라도 벌어 보려고 알바삼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전업 대리기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에서 어디선가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에 의해 내가 일을 해 주면서 돈을 받는 것. 이것은 지극히 정당한 노동이며, 그 대가를 받는 과정에 있어서 한점 부끄럼이 없다. 오히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면 그 또한 감사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것도 모자라 거래처 접대까지 하느라 시달린 몸에 술까지 취한 직장인들을 안전하고 편하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정에까지 차를 대신 운전해서 모셔다 주는 것, 이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시스템에 돈을 지불하고, 그 돈 중의 일부를 내가 받게 된다.

비록 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아직 제대로 된 시스템도 정착되지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필요한 일을 하고 거기에서 수입을 얻어 내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은 이 사회에 살아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떳떳한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보고 들은 것들, 그리고 내가 속한 이 시스템의 문제들, 이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독자들 앞에 털어놓고 과연 수십 만이 넘는다는 대리기사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공감을 구해 보고자 한다.

얘기는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리운전의 원형

사실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의 형태는 90년대 초반 강남의 고급 접객업소, 흔히 말하는 룸싸롱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칠십 년대까지 있어왔던 통금이 전두환 시대에 들어와 해제 되면서 서서히 심야 영업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팔십 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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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여우세상 

격동의 80년대를 거치며 유흥업의 규모가 늘어나고 심야 영업이 일상화되자 음주운전으로 인한 폐해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음주운전을 경찰이 직접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의 일이었다. 79년 한 해 동안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2000건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80년 6월 치안본부에서 미국에서 수입한 음주 감지기 400대를 도입해서 전국적으로 음주운전 단속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자가용 보유 비율이 높아지면서 갈수록 음주운전 사고의 비율은 높아져만 갔고, 경찰은 이에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거기에다가 심야 영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경기가 좋아지면서 접대 문화가 꽃을 피우자 밤늦게 끝나는 고급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귀가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강남의 고급 접객업소 중심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술 취한 손님들의 자가용 차량을 집까지 대신 운전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리운전의 기원이다. 이때만 해도 대리기사라는 직업이 별도로 있지는 않았고, 그저 룸싸롱에 고용된 웨이터들이 팁을 받고 손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수준의 거래였다.

나는 이 시절부터 대리운전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건당 보수는 좋았지만 하루에 여러 건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수준이었다고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 당시 보수는 최소 3만 원. 당시 물가로 봐서는 상당한 금액이었고, 조금 멀리 가기라도 하면 십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대리기사를 필요로 하는 업소들이 늘어나면서 기사들을 보급해 주는 용역업체 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때만 해도 그런 업체들은 접객업소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전화를 기다렸다가 기사를 보내주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기 시작했다.

군시절, 장기 복무를 하던 나는 전역을 앞두고 생활이 조금 자유로워졌고, 부업거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하루에 십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업체를 찾아가게 된 것이 바로 이 시점 즈음, 95년 경이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찾아갔던 업소는 일종의 용역업체로 기사들이 모여 있다가 업소에서 연락이 오면 순서대로 기사를 보내주는 곳이었는데, 찾아간 첫날에 가입비 십만 원을 내야 했고, 그날은 일을 받지 못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나가보니, 다시 만 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즉, 첫날 가입비는 말 그대로 가입비고, 매일 매일 만 원씩 내고 일거리를 받게 되는 그런 형태였다. 거기다가 스포츠 신문에 업체의 연락처, 전화번호가 찍힌 찌라시를 끼워 구역 내 업소를 돌면서 배달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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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날강도구만 (이미지 출처 링크)

 

그러니까 매일 만 원씩 돈을 내고, 또 기사들이 직접 돌면서 영업을 해야 되고, 그리고 콜을 받아서 한 명씩 나가서 대리운전을 하게 되는 그런 형태였다.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그만둬 버렸다. 물론 가입비 십 만원을 돌려 받지는 못했다. 일 한 번도 못하고 그저 십만 원을 날린 셈이다.

 

대리의 세계에 발을 내딛다

그 뒤로 정식 전역을 하고 나름대로 직장을 잡아 열심히 살다가 결국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강제 퇴직을 당하게 된다. 이 때가 2004년 무렵. 그 때 아는 사람이 자동차 중개상을 하다가 잘 안 되어서 인천 지역에서 대리운전 회사를 차렸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거기를 찾아가서 일을 시작한 것이 바로 내가 본격적으로 대리운전을 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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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절에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꽤 성공을 한 것 같다. 대리운전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절이었고 영업은 잘 되었다.

나한테 처음 맡겨진 일은 픽업기사. 당시에는 요즘처럼 온라인 시스템 같은 것이 생기기 이전이었고, 그저 전화번호 하나 광고하면서 연락을 기다리다가 연락이 오면 기사가 손님에게 찾아가서 모셔다 드리는 형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리기사와 별도로 픽업 차량이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즉, 손님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무실에서 그 위치까지 기사를 태우고 간 뒤, 기사가 손님의 차를 몰고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면, 픽업 차량이 가서 그 기사를 태우고 다시 돌아오는 형태였다. 어떤 경우는 기사가 알아서 돌아오기도 하고, 멀리 가게 되면 픽업 차량이 돌면서 기사를 모아 태우고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픽업 비용은 만 원 정도 했는데, 기사가 부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리기사보다 픽업 기사가 지리를 더 잘 알아야 한다. 기사야 손님이 가자는 대로 가면 되겠지만, 그 기사들이 여러 곳에서 픽업을 요청할 때, 가장 최단 코스로 돌면서 기사들을 태우고 복귀해야 되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제안을 하나 받게 된 것이 아예 이 대리회사에 실장으로 취직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제안을 받아 들였으면 커다란 대리회사의 핵심에 들어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월 150을 받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회사에 눌러 앉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워 거절하고 말았다. 물론 그 직전에 내가 직장에서 받던 보수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았던 점도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디까지나 이 대리라는 직업은 그저 잠깐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 장기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초기 시장의 변화

그 시점에서 대리운전 업계에 슬슬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중심 지역의 메이저 회사들 사이에서 슬슬 휴대폰을 이용한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야 스마트폰은 아니었고 2G 폰 기반으로 지금 보면 매우 원시적인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그래도 유용했다.

한 회사가 대규모로 광고를 하고, 대리 요청 콜을 받게 되면 그걸 자사의 시스템에 올려두고, 기사들은 2G폰을 이용해 계속 갱신 버튼을 눌러 가며 콜이 뜨면 잡아 손님을 찾아가는 구조였다. 이 때 나도 좀 더 규모가 큰 회사로 옮겨 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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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억으로는 주급이라는 것을 냈다. 한 주에 86,000원을 내면 그 회사에 시스템을 통해 콜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은 내가 얼마나 일을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냥 고정으로 내는 정액제였다.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의 몇 퍼센트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정액을 내고 일을 받게 되니 운이 좋으면 많이 벌고, 일을 못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그런 구조였다.

거기다가 대리기사 일을 하다가 보면 옆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회사 소속 기사들과의 비교도 문제가 된다. 거의 고정된 주급을 내고 같이 일을 하면서도 어떤 회사에 속하면 콜이 많이 뜨고 어떤 회사에 속하면 콜이 안 뜨고 하는 차별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콜을 많이 받는 회사로 기사들이 몰리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즉, 기사들의 이직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콜을 많이 받건 적게 받건 기사를 많이 모으면 자동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기사들은 고정액을 회사에 지불하니까, 기사가 많으면 돈이 많이 벌리는 구조. 이러니 회사에서는 당연히 기사들의 빈번한 이직을 막고, 고정시키고 싶어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사들의 숫자에 비례하는 고정적인 주급 이외의 수익을 올리고 싶어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수도 있겠다.

그 때 슬슬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PDA 기반의 프로그램들이다.

이때만 해도 이런 시스템 소프트웨어들을 대리회사, 즉 자신들만의 접수 전화번호를 가진 회사들이 직접 개발하는 형식이었다. 즉 접수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보유하는 형식이다.

그러면서 점차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으니 그 소프트웨어를 가동할 수 있는 휴대폰을 기사들 상대로 판매하기 시작한다. 이 경우 회사는 이통사 대리점 역할을 맡게 되며 거기에 따른 판매 수수료를 또 얻게 된다. 이 수익 또한 만만치 않지만 더욱 좋은 것은 기사들을 고정시킬 수 있다는 이점. 고가의 PDA, 뒤에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그 장비들을 의무적으로 사야 하며, 대부분 할부로 사게 된다. 그걸 구매하고 기사 일을 하다가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면 페널티를 상당히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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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쓰바, 노예지 노예

 

결국 회사는 기사들의 이직을 막고 부수입을 올리게 되는 이중의 효과가 있었고, 기사들은 휴대폰 구매 비용이라는 추가적인 부담을 가지게 되는 그런 구조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회사가 바로 유명 개그맨이 광고를 하던 앞뒤가 똑 같은 대리운전 1577 이었다. 이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콜마너.

1577 대리운전은 워낙 광범위하게 물량을 쏟아 부은 광고를 한 덕택에 아직도 업계의 메이저로 남아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거느리고 자사만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었고, 또 엄청난 콜을 받게 되므로 엄청난 숫자의 기사를 거느리고 있던 회사이기도 하다. 결국 1577은 업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아직도 가장 큰 규모의 대리회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업계에는 또 한번 변화의 회오리가 몰아 닥쳐오고 있었다.

 

접수회사들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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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큰 회사라 하더라도 그 회사에 속한 기사들이 그 회사가 접수한 콜만 받게 된다면 한계는 분명히 있다. 또한 자기들만의 번호를 광고하는 접수회사들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가고 있었다.

잘 나가는 회사 하나가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아무리 영업을 잘하고 광고를 잘한다 하더라도 대리운전이 필요한 모든 지역을 장악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사들 역시 서로 다른 접수회사의 콜을 같이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한 측면도 있다. 좀 더 많은 콜이 올수록,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접수 가능한 콜이 많이 뜰수록 기사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찌했거나 매출액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업계 공통의 상식이다.

대리운전의 특성상 더욱 그런 요구가 강해진다. 손님들은 자신이 지금 어느 회사에 전화를 했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전화하면 순식간에 기사가 나타나기를 원하고 있고, 내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가장 빠르고 싸게 모셔다 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사들은 기사들대로 내가 속한 회사가 어디건 상관없이 손님을 많이 태울수록 유리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콜을 받기를 원한다. 그 대가는 언제든지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접수회사들이 연합을 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연합을 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발한 회사가 그 연합을 주도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LOGI 로지이다. 이런 회사들을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회사라 해서 ‘플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대리기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리 회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번호를 광고해서 손님들의 전화를 받아주는 접수 회사도 아니다. 그저 온라인 상에 서버 시스템을 운영하고, 이 서버에 접속해서 콜을 확인하고 잡을 수 있는 앱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탑재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사들에게 공급하는 회사다.

그리고 이 시스템에 뜨는 콜은 여러 개의 접수 회사들이 받은 콜들을 다 모은 것들이다. 즉, 접수 회사들과 계약을 맺어, 접수 회사로 걸려온 전화를 이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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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링크

 

기사들은 로지의 앱을 사용하면서 사용 수수료를 낸다. 이는 대략 월 만 오천 원 정도의 정액제이다. 그리고 그 앱을 통해서 잡은 한 콜을 받게 되면 손님을 모시고 가서 대리비를 받기도 전에 시스템 내부의 가상 계좌에서 20%의 회사 입금 수수료가 빠져 나가게 된다.

즉, 회사에 내 왔던 대리 수수료 역시도 이제는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게 된다. 그러면 플사가 그것을 개별 대리회사로 일괄 정산해주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여러 개의 대리회사가 모여 있는 시스템이므로 콜이 많이 뜨게 된다. 상황에 따라 나에게 적절한 콜이 더 많이 뜰 수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손님들의 입장에서도 기사들이 더욱 빨리 도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편리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리회사들은 기사들이 먼저 나서서 특정 플사와 계약을 맺어 우리도 그 시스템을 쓰게 해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는 1577 같은 대규모 대리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써 가지고는 많은 콜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로지 같은 회사의 시스템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회사는 이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구조적으로 대리회사들이 플사의 관할 하에 모여들게 될 수 밖에 없는 쪽으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구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플사들은 로지를 필두로 대여섯 개의 회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로지, 콜마너, 아이콘, 콜마트, 콜천지 등이다. 기사들은 어떤 대리회사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앱들을 대략 다섯가지 정도 깔고 있으면서 다양한 콜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쟁 속에서도 구조적으로 대리기사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가고 있는 중이며 대리기사들이 손님에게서 받는 돈, 손님들이 지불하는 대리비용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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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대리기사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대리 업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영업방식이 존재한다. 다음 편에서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대리운전 영업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 얘기를 해 보도록 하자.

 

다음 편에 계속…

편집 : 딴지일보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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