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이해와 햇볕정책

 

(****** 글을 쓰게 된 배경.

일단 바베르크(@Bawerk)님(이하 존칭생략)이 최근에 언급하신 햇볕정책 관련 내용을 얘기하기 이전에, 대하 트윗(여러 개의 트윗을 연속으로 이어 붙여 긴 이야기를 하는 방식) 전문가로서 그의 역할에 대한 존중은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다양한 역사적 기록과 그 기록에 등장한 사실들을 맥락에 맞게 연결하여 재구성 해내는 그 분의 대하 트윗은 참으로 재미있어서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다른 분들에게도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그 분의 관점에는 사뭇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자칭 “원조 수꼴”을 자처하는 분이라 그의 관점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 드려야 함이 옳다. 하지만 모든 사실은 “관점”에 의해 재구성되기 마련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던 재미있는 사실들을 연결해서 보여주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관찰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관점까지 전달된다는 점에서, 좌빨 코스프레 중인 나는 바베르크 특유의 “수꼴적 관점”이 그의 대하 트윗을 애독하는 독자들에게 전파될지도 모른다는 정파적인 걱정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때 마다 반박하기도 불가능한 일이라, 차라리 그의 독자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나 일화들 말고, 그가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관점”에도 동의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걸로 대신하고자 한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안철수 관련 문제, 즉 신당의 정강에 6.15 선언, 10.4 선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의 과정에서 바베르크가 보여준 “햇볕정책”에 대한 설명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는 이해하면서도, 사이사이 섞여 있던 잘못된 판단들 덕에 저 관점이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성의를 담아 정중하게 반박을 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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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이해

햇볕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라는 기이한 체제의 국가에 대한 나의 관점을 먼저 설명함이 필요하다. 햇볕정책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부터 이 북한 정권의 실체와 특성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었으며, 이 점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햇볕정책이라는 아이디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갑제류의 사람들에게는 햇볕정책은 미친 짓에 다름 아니다. 무력으로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들어가 고통 받는 북한 인민들을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북진 통일 이외에는 모두가 다 헛소리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기는 하지만, 나 또한 북한의 체제를 매우 야만적인 그 무엇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지는 70년이 다 되어가는 북한의 정권은 그 긴 시간 동안 북한이라는 국가의 체제를 현대국가들 중 가장 괴상한 체제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심지어 그들과 우리는 사용하는 정치적인 용어들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그들이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민족해방? 적화통일?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런 추상적인 구호들은 그들 자신도 믿지 않는 걸로 보인다. 그냥 “생존”이다. 특히나 북한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계층들의 공통적인 마인드는 바로 체제의 유지와 인민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제의 유지라는 것 역시 한 번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지배계층의 생존”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냥 생존 하나로 종합해도 별 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생존을 원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난폭한 외교 전술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벼랑 끝 전술 같은 것은 생존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과거 NL 계열 운동권 출신들은 북한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미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무역 봉쇄,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북한 체제의 우월성으로 간주하는 망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별다른 선택지 없이 버티고 살아남은 것뿐이다. 중국과 소련의 공산화를 지켜보며 한반도에서의 공산해방을 넘어 세계 공산주의의 도래를 꿈꾸며 시작했을 북한의 정권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도입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결국 주체사상이라는 해괴한 카드를 꺼내 들고, 주체적인 독자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고행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강성대국을 향한 고난의 행군이며 이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아주 오래된 공산(사회)주의 기반의 고립된 국가인 북한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그 긴 고립의 시간은 북한 체제 자체를 기괴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기괴하건 말건, 북한은 스스로의 생존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야생동물 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고립과 의존

그렇게 고립된 북한의 체제도 자본주의가 휩쓸어버린 전세계의 변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전을 초래했고, 기술의 발전은 모든 국가들 사이에 만들어진 전파 경로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북한이 스스로 독자적인 생존을 추구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석유다. 북한도 차를 써야 하고 현대적인 무기를 운용해야 한다. 화력발전도 해야 하고 공장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영토에서는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물론 신의주 앞바다에 거대한 가스 유전 층이 있다는 구라도 간혹 보이는데, 그런 루머가 도는 이유 자체가 북한이 얼마나 절실하게 기름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것이 바로 서방세계의 중유 원조였다. 이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아주 곤란하기 짝이 없는 약점을 스스로 내보이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기름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해야 할까? 돈 주고 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무역을 통해 돈을 벌 수가 없는 구조에 3/4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묶여 있었다. 결국 북한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그게 공식 경로이든, 비공식 경로이든 상관없이 달러를 원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미제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국가가 그 제국주의가 채택한 화폐를 가장 급하게 원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고립의 결과로 북한은 의존성이 생겨 버렸다는 것이다. 달러를 제공해 주는 외부 세력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 때 북한의 주요 달러 수입 경로는 일본의 조총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거의 막힌 것이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말미암아 총련계 사업가들이 주로 하던 파친코 등의 비즈니스 수입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그 조총련 내부에서도 다양한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의존성은 북한이라는 집단의 행동방식, 어떤 선택을 결정하는 방식에 매우 크게 작용하는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좀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의존성은 내부적으로 볼 때에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지만, 역으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안전보장 문제에 있어서 이 의존성의 논리는 상호 연결성으로 발전하면서 아주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우를 보자.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피치 못하게 국제무역을 국가 우선순위의 맨 앞에 놓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온 것이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 결과 세계 무역규모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해 오는 과정에서, 무역에 대한 의존성은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같은 수준의 무역제재를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된다면, 6개월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 무역에 대한 의존성은 매우 치명적인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성으로 인해 외부, 즉 국제사회와 긴밀한 연결이 지속되면서 이 의존성 자체가 우리 사회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가 모종의 이유로 붕괴해 버릴 경우, 국제 사회 역시 편치 않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갤럭시S4 같은 저렴한 스마트폰을 구할 것이며 (중국이라는 대안이 만들어지고 있긴 하지만..) 어디서 현기차 같은 저렴한 승용차를 구하겠는가.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얘기일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국제자본과 한국 시장이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그리 쉽게 붕괴하지 않게 된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달러에 대한 의존성은 아직 이렇게 상호간의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정도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마약이나 위폐를 거래하다가 방코델타 은행 계좌가 정지됨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던 수준이 얼마 전이고, 이란 등의 제3세계에 소련제 미사일 개조버전을 수출하려다가 봉쇄 당하기나 하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 그나마 북한이 손쉽게 달러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이제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중국과의 무역조차도 무역이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으로 일방적인 시혜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으며 그 결과 중국은 매년 거액의 무역부채를 탕감해 주는 식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북한의 천연 자원을 사들이고 있으며, 또한 나진이나 선봉 같은 몇몇 도시에 공단을 설치하고 무역거래소를 만드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기도 하는 등 사실상 북한 체제의 의존성을 선점하고 있다.

즉 북한 체제의 현실을 설명해 주는 가장 좋은 키워드는 바로 고립과 의존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자초한 고립 상태로 인해 의존성이 생겨났고, 그 의존의 대상을 찾지 못해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정도.

 

충돌의 위험

북한은 우리를 현실적인 적으로 간주한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우리를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제의 앞잡이로 간주한다. 그냥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본다. 그런 관점에서 오히려 우리를 불쌍하게 여긴다. 물론 국제 정세에 밝은 북한의 고위층들은 그게 얼마나 웃음거리가 될 만한 주장인지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십여 년 전 사업상의 이유로 직접 만났던 북한의 KCC(평양에 자리잡은 조선 콤퓨타 센터)의 중요 임원은 웃으면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를 가난하다고 비웃겠지만, 우리는 당신들이 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

긴 대화 끝에 내가 내렸던 결론은 이 사람들과 우리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얘길 길게 할 수는 없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북한은 지금도 미국이 남한을 통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작계 5027 이후 새롭게 등장한 작계 5029에 북한 정권의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포함되면서 미군이 북한에 상륙해서 정권을 무력화 시키는 과정이 문서화 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불쾌하고 두렵게 생각하는 걸로 보인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실제로 이런 두려움에서 촉발된 사건이다. 서해 바다에 미 핵항모를 포함한 전단이 진입해서 훈련을 한다는 것은 북한에게는 일종의 무력시위로 간주되었을 것이고, 훈련 도중 언제든지 실제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는 “현존하는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 대응책으로 민간인 주거지역에 포격을 가한다는 야만적인 방식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잘못이지만, 그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에는 미국과 우리의 책임도 분명히 한 몫을 했다는 점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계속 유지해온 장사정포 등의 재래식 무기에 관련된 시대착오적인 군사적 우월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남한을 상대로, “니들이 미국만 등에 업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 힘으로 남한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는 식의 구차한 자존심을 비행기 띄울 기름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무모한 자존심은 군부 내의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판단이 불바다 발언 등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존심도 없이 미국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남한의 한민족들에게 언제든지 따끔한 “교훈”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즉, 남한(주한미군을 포함한)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거나, 자신들과의 약속을 무시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이들은 언제든지 국지적인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도발은 북한의 정권의 입장에서도 체제의 안정을 위해 억누를 수만은 없는 것이며, 그런 도발로 인해 군부를 숙청하거나 하기도 힘든 그런 복잡한 상황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햇볕정책의 시작

이런 위태로운 안정, 불안정 속의 평화를 반세기가 넘게 이어온 것이 남북의 현실이다. 그 동안 남한의 국가 규모는 엄청나게 상승해 버렸고, 세계 최빈국 수준의 북한(북한의 GDP는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비슷한 수준인 800불대를 유지하고 있다.)과는 달리 경제규모 10위권의 대국이 되었다. 그 와중에 북한은 수십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말로만 강성대국 운운하며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느끼는 생존 위협은 추상적이고 국제적인 무형의 위협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면으로 드러나기도 하면서 체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시작해서 약 10년간,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은 실제로 약 60만명 정도의 인구가 아사한 것으로 대한민국 통계청이 집계한 바도 있다. 이는 남한이 경비를 지원하고 유엔이 앞장서서 실시했던 북한 내 (거의) 최초의 근대적인 인구센서스 자료에 기초한 것이므로 아마 가장 정확한 자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햇볕정책이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거의 평생에 걸친 북한에 대한 연구의 결과이기도 하며, 현실적으로 채택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대안이기도 했다. 북한을 상종할 수 없는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과반을 넘는 상황에서 제기된 파격적인 아이디어이기도 했었다.

기초적인 논리는 북한에게 다양한 형태로 경제적인 원조를 행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적인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기적인 관점의 통일방안까지 재구성된다.

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것은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상징적인 명칭이라는 점이다. 이게 실제로 남한의 대북 정책 모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그 시작과 끝이 설정된 정책의 모음도 아니며, 통일 방안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햇볕정책은 무력 대결을 근거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과거의 정책을 우호적인 경제협력의 분위기로 반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이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오해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일단 햇볕정책과는 구분되는 통일방안이 따로 있었다는 점부터 생각해 보자. 북한은 북한대로 고려연방제 같은 통일방안을 지속적으로 수정해오고 있었다. 우리 역시 박정희의 7.4 공동성명에서부터 통일의 원칙이 제시되고 있었고, 이게 발전되어 노태우, 김영삼의 통일방안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김대중의 통일방안이 그 중에서도 높게 평가 받는 것은 앞선 우리 정부의 통일 방안의 틀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역대 통일 방안 중에서 최초로 북한과 “협상이 가능할 정도로 근접한” 방식의 통일방안이었다는 점이다.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통일 방안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김대중은 그 통일방안을 들고 김정일과 직접 만나 실질적인 성과를 올렸던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루어낸 공을 세우게 된다. 이게 바로 6.15 남북 공동성명의 본질이다.

그러나 통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루어진 독일의 통일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의 상황은 동서독의 입장과는 또 다른, 훨씬 더 어려운 그 무엇이다. 통일은 아마도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통일은 너무 먼 얘기고 차라리 한반도 평화나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 더 현실적인 목표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동의한다. 통일은 아주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목표이며, 평화는 지금 당장 눈 앞의 안전보장이라는 현실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만약 통일이 평화를 저해한다면, 가차없이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조갑제류의 북진통일이 말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스스로 붕괴하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통일은커녕 한반도의 불안요소가 수십 배 상승하며, 평화가 깨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대비한 미국의 작계 5029가 발동되어도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며, 중국이 미국 대신 북한을 접수하게 된다 하더라도 북한 내부는 내전이 범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중국과 미국이 상호 협정을 통해 북한을 방치한다 하더라도 각 지역의 군벌이 준동하는 준내전 상태가 상당시간 지속될 것이다. 어느 한 경우도 우리에게 유리한 일은 없으며, 평화는 오히려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예측 가능성도 현저하게 사라질 것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무조건 막아야 할 상황이라는 결론이 그리 어렵지 않게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바로 햇볕정책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햇볕정책과 개성공단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햇볕정책 아니라 더한 무엇이 오더라도 한 나라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변화시킬 방법은 별로 없다. 유일하게 있다면 전쟁뿐이다. 무력으로 지배를 해서 체제를 바꿔 버리면 된다. 그것 말고 어떤 방법으로 한 나라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까? 없다.

북한의 주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준의 식량 지원, 비료 지원 등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실질적인 방법은 거의 없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해방을 생각한다면, 북한을 상대로 인권해방 전쟁을 벌여야 한다. 마치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회주의 민족해방 전쟁처럼 말이다. 평화를 우선시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전쟁을 배제한 상태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아사의 위기에 빠진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은 북한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이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봉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만약 북한 주민들의 봉기, 민란, 혁명 등을 원한다면 북한 주민들을 더 굶게 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가능성이 높은 길이다. 그리고 그런 봉기의 뒤끝은 역시 또 한반도의 전쟁상황이며 평화의 붕괴가 온다.

세상의 어떤 정권도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을 개선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에서 어떤 세력도 무력을 동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얘기를 하는 중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이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한다는 바베르크의 비판은 당연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애초에 햇볕정책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장기적인 통일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도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 차원의 얘기들이 함께 엮이면서 발생한 오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인 통일방안에 의하면 북한뿐 아니라 우리 정권의 정체성도 바뀌어야 한다. 단일국가 체제에서 연방제로 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은 북핵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6자회담에서 다룰 의제이다. 북핵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6자회담 참여국들의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햇볕정책은 6자회담의 결과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하면 6자회담 참여국들은 북한을 상대로 경제 제재를 감행해야 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그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정책이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6자회담에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수성과 남북문제의 직접적인 당사국인 남한의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었다.

즉 북핵 관련 6자회담이 잘 진행되어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제스처를 보일 때에도, 또 북한이 몰래 핵시설을 가동중인 것이 들통이 나서 북한을 상대로 하는 경제 제재가 진행이 될 때에도 햇볕 정책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자체가 북핵 문제와 별도로 움직이는 정책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이 북핵 개발을 저지하지도 못했다는 바베르크의 비판도 역시 의미를 잃게 된다.

햇볕정책은 절대로 남북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햇볕정책은 뭐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바로 북한 체제의 의존성을 높이면서 고립성을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햇볕정책의 대표적인 성과로 바베르크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개성공단을 생각해 보면 이 주장에 쉽게 공감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영토 안에 공단을 조성하고 각종 사회 기반시설을 설립한 뒤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남한의 공장주들이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실제로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이 110불 선이었으니, 이는 동남아나 중국에 공장을 지은 사업가들도 분노할 정도로 저렴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예상되는 장기적인 이익의 규모는 상당했다.

물론 초반에는 각종 시설을 위해 남한이 일방적으로 돈을 퍼부어야 했고, 그 돈의 상당수는 북한 정권의 손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또한 북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임금의 상당부분도 역시 북한 정권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마치 서독에 파견되었던 광부나 간호사들의 임금이나 베트남 참전 군인의 임금 중 상당부분을 박정희 정권이 가로챘듯이 말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될까? 물론 공단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면 장기적으로는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며, 단기적으로는 거액을 북한정권에게 그냥 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금강산 관광 역시 이 부분은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남한 정부와 대기업, 즉 현대아산은 북한 측에게 거액을 지원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바로 북한 체제의 의존성을 강화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돈을 주는 상대라는 지위를 남한 측이 차지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개성공단은 지속적으로 확장될 계획이었으며, 그 계획대로 확장이 지속되었다면 지금쯤 국내 산업에 그나마 유의미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갈수록 북한은 개성공단의 운영을 중단시키기 힘든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발생하는 북한 정권의 수익이 커질수록 정권 내부에서 개성공단을 중지시키자는 목소리와 의지는 힘을 잃게 된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미있는 규모의 돈이 매년 발생하는 공단을 없애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북한 내부에서도 개성공단의 확대를 두려워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들도 자신들의 의존성이 확대되는 것은 두려워했으며, 하필 그 상대가 남한이라는 점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초기에 개성공단이 세워지면서 그로 인해 북한군 보병 6사단과 62포병여단은 후방으로 10km 이상 후퇴해야 했다. 특히 62포병여단은 서울 용산구 일대까지 사정거리에 두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사정거리가 파주 지역에 겨우 미칠 정도로 후퇴해 버렸다.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 이 정도의 군사적 성과는 일찍이 단 한 번도 이루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 내의 강경파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 양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생각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 봐야 한다.

초기에 남한이 제시한 개성공단 개발 계획에 의하면 1단계 백만 평의 공장부지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이 수준에서 아직도 머물고 있다.) 2011년까지 800만평으로 확대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장 면적만 800만 평이고 배후 도시 건설의 규모는 1200만평, 합계 이천만평의 건설 계획이 전달된 것이다. 이 정도면 포병을 후퇴시키는 선택의 대가로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이 정도 규모로 개성공단이 확장되었다면 북한 체제는 이 개성공단에 심각한 의존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2011년까지만 해도 5만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개성공단에 근무했으니, 계획대로 확장이 되었다면 지금쯤은 40만명의 노동자가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1인당 100불씩만 따져도 매달 4천만불의 임금이 북측에 지급되는 것이며, 연간 5억불 가까이 수입이 발생한다. 이는 2013년 기준 국제사회의 북한 지원금이 6천만불 수준인 것에 비해 8배가 넘는 규모가 된다. 각종 물자가 들어가는 교역액을 제외한 순수 인건비 지급만으로도 북한은 이런 규모의 이익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의존성이 충분하다. 이 의존성을 깨트릴 만큼의 도발은 불가능해진다. 심지어 한미연합사가 백령도 앞에서 합동훈련을 해도 북한은 기본적인 항의 정도만 하지 포격 따위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계획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중단되어 버린다. 외적으로는 2010년 천안함 사태로 인해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 지원 중단을 결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그 이전부터 즉, 집권 직후 시점에서부터 개성공단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지원 중단은 사실상 시작되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우리 정부에게 언제나 가장 먼저 요구하는 첫 단계, 개성공단 근로자 숙소 건설을 예정대로 해 달라는 것이 바로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 숙소 문제는 2007년에 이미 합의했던 것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전혀 진전이 되지 않았고, 그 결과 북측은 과연 남한이 정권 교체 이후 개성공단 계획을 기존대로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북측에서 보자면 우리가 먼저 약속을 어긴 것이다. 따라서 입주기업 대표들은 이 문제부터 해결해서 다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정권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안함 사고를 이유로 하는 2010년 5.24 대북지원 중단조치는 기존에 이미 개성공단 지원을 중단한 이명박 정권이 그 결정을 가시화 한 것에 불과하며, 이 정권은 전임 두 정권의 실질적인 성과인 햇볕정책을 지속할 마음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북한 내 강경파들에게 좋은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어차피 개성공단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상대로 남한은 부적합하다는 것이며, 남한 정권의 기만성에 대해서는 익히 우리가 잘 알고 반대하지 않았던가 하는 발언에 힘이 실리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개성공단도 주저 앉아 버렸고, 그 뒤에 출입경 금지 조치나 폐쇄 문제, 그리고 다시 재가동하는 과정은 과거와 같이 실질적인 중요성이 없는, 그저 없애버리기는 아까우니까 하던 거나 그냥 하자는 수준의 무력한 프로젝트가 되어 버리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햇볕정책의 목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햇볕정책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권이 의도적으로 중단시킨 것이며, 이 이후 햇볕정책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햇볕정책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확장을 중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정권은 북한이 곧 스스로 붕괴할 것이며, 이에 대한 대비 시나리오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사람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명박 집권 이후 평화통일 정책자문위원회, 줄여서 평통을 통해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무수한 자료들이 뒷받침을 하고 있다. 결국 붕괴를 지연시키는 햇볕정책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해가 되는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만약 햇볕정책이 그렇게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게 하기 위해서 하는 정책이 햇볕 정책이다. 그저 개성공단은 끊임없이 확장되었을 것이고, 북한 노동자들의 저렴한 임금으로 생산된 제품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 국내 기업들의 개성 진출은 경쟁적으로 가속화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성공단을 통한 북한의 수입은 지속적으로 상승되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체제 자체의 의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의존성은 북한의 대남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며, 이 효과는 바로 한반도 평화로 직결된다.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도 없었을 것이다. 햇볕정책의 목표가 통일 보다는 평화에 있다는 것을 다수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변화가 통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체제가 나름대로 안정을 회복하고 다시 무력 적화통일의 꿈을 꾸기 시작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북한 진출의 러시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북한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자리잡게 될 가능성도 무시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소한 평화는 확보할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통일은 장기적인 비전이고 평화는 당면과제이다. 이 당면과제를 다른 어떤 조치나 정책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실효성 있게 획득할 수 있는 정책이 바로 개성공단이었으며, 그런 정책을 상징하는 명칭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그렇게 평화가 정착이 되면 그 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통일방안을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장 서로가 군대를 앞세우고 한 쪽은 앞바다에서 무력 시위(군사훈련과 무력시위를 구분하는 선이 있기는 한가?)를 지속하고 한 쪽은 그 대가로 민간인 지역에 포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무슨 통일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언제나 통일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협상의 시간 비중을 따져보면 그런 것은 그저 문장의 문구만 가다듬어서 서로가 불쾌하지 않게 예쁘게 생긴 말로 치장하는 수준의 협상만이 존재했다. 오히려 수도 없이 반복해서 논의되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것은 양측에게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정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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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개성공단이 안착된 것이라고 성급하게 간주하고 그 다음단계의 논의를 요구했고, 그것이 바로 서해 평화수역과 관련된 해주항 개항 문제였다. 김대중 정권이 개성공단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참여정부는 해주항을 개항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개성공단 생산 물자를 바로 중국으로 수출할 수도 있었고, 남한으로부터 원자재가 해상운송을 통해 개성으로 대량 유입될 수도 있었다. 해주항은 그 위치의 특성상 북한 입장에서는 버려진 항구(NLL이 사실상 해주항 앞바다를 가로 막고 있다.) 였지만 그 항구가 무역항으로 개항될 경우 북한이 예상할 수 있는 수입의 규모는 상당하다. 또한 해주항이 개항될 경우, 해주항 주변에 주둔하는 포병과 해군의 후퇴 역시 거의 기정사실화 된다. 이는 또 하나의 군사적 성과가 된다.

그리고 이 해주항 개항에 이어질 프로젝트로는 AH-1, 즉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라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해서 만주와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그 도로와 유사한 경로를 따르는 철도,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 등이 내부적인 논의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 역시 정권이 바뀌면서 전혀 실질적인 가치도 무엇도 없는 NLL 문제로 치환되어 오히려 전임 정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전용되고 북한의 자존심을 긁어 버리는 쓸데없는 기 싸움으로 흘러간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햇볕정책은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도, 북핵을 막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그저 북한에게 남한 정부나 기업이 일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규모를 훨씬 넘어선 규모의 경제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 북한 체제에 남한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키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정책이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북한 체제는 변화하기는커녕 더 안정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줌으로써 북한 정권 책임자들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차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고, 그 평화의 기반 하에 장기적인 통일 정책을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을 잡자는 단계적인 방안이었고, 그 방안에 의한 정책들의 집합에 붙여진 상징적인 명칭인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북한이라는 뿔 달린 괴물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남한의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김대중 특유의 탁월한 정치적 레토릭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숨은 효과 – 이질성 감소

큰 틀에서의 햇볕정책의 효과는 대략 한반도 평화를 끌어오기 위한 것이었다면, 부수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성과가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남북한 일반 국민들 사이의 이질감 감소 효과이다. 개성공단에 참여했거나, 그 공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참여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이 효과가 상당하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목적이나 성과, 장기적인 통일 방안 등과는 또 다른 하나의 효과가 된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 사이에는 문화가 전파되기 마련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양국이 공통의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하면 두 나라 사이의 우호는 강화된다. 굳이 장기적으로 봐서 이질감 감소는 통일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이질감 감소는 평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더 주목하고자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 잔을 먹고 일을 시작하는 행위나, 저녁에 퇴근할 때 간식용으로 나온 초코파이를 싸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먹이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아주 사소한 습관의 변화에서 이 이질감 감소는 시작된다.

그리고 개성공단에 설치된 편의점 CU나 노동자들에게 구매가 허용된 상점들을 통해 공급받는 생필품이나 각종 물자들의 효과도 상당하다. 좌빨스럽게 표현하자면 북한의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단 맛을 선보이는 효과인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정치적인 선동이나, 정책적인 교육, 자아비판 등의 행정처리로 이룰 수 없는 단계의 문화적 동질감 회복에 효과가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느껴지는 무엇이 있는데, 바로 외국인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체취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외국인들은 우리에게서 특유의 체취를 느끼겠지만, 북한 사람들에게서는 마치 시골에서 살고 있는 삼촌의 체취 같은 아주 익숙한 체취가 난다. 거기다가 그들과 우리는 부분적으로 많이 달라지긴 헀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를 쓴다.

우리와 북한 사람들 사이에는 혈통적 동질감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약간만이라도 더 문화적 동질감이 확보되면, 그들과 우리는 금방 가까워질 수도 있는 사이이다.

햇볕정책은 이러한 면에서 무시하기 힘든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물론 그 시작은 경제협력이지만, 그 경제협력이라는 것이 실무 담당자들의 물리적인 접촉을 대량으로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는 점, 또한 양국의 고위층 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만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 혹은 축소되면서 관련자들이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개성공단의 운영이 상설화 되고 계속 확대되어 간다면, 심지어 개성공단에 참여하지 않는 북한인들에게까지 그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 또한 어떤 면에서는 북한 체제의 고립을 감소시키며 의존성을 확대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서로를 사람으로 대접하고 얼굴 맞대고 살기 시작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앞당겨진다는 얘기인 것이다.

 

햇볕정책은 실패한 것인가?

맞다.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중단되었으니 실패한 것이 맞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가진 모든 효과가 부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쌓았으며, 언제든지 남북 관계에 대한 유연한 관점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어렵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햇볕정책이 그저 남한이 가진 돈을 퍼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비록 종자돈은 우리가 대더라도 차후에는 서로가 돈을 벌어갈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도 확인되었고, 그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또한 햇볕정책이 지속되던 시점이 남북간의 긴장 상태가 가장 극적으로 완화되었던 상태였다는 기억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 평화 유지에 가장 효과가 좋은 정책이 바로 햇볕정책이라는 깨달음도 비록 소수지만 공유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라도 한 번도 안 해본 것 보다는 한 번 해 본 것이 두 번째 할 때에는 훨씬 더 잘하게 되기 마련이다. 남북관계와 햇볕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다시 정권의 흐름이 바뀌고 햇볕정책의 연장선이 이어지기 전에 남북 관계에 급변하는 사태가 발생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깨지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이 중단된 것은 더욱 아쉬운 일이며,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북한 정권이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이라고 믿고 “통일은 도둑같이 오게 될 것”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던 이명박 정권의 무능에 대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은 과연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남북 축구? 이산가족 상봉? 뭐 이런 것들은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북한 체제에게 실질적인 의존성을 전파해서 도발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비가역적인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어떤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미 임기 1/3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관찰해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 탄식이 절로 나올 뿐이다.

 

 

 

 

 







12 thoughts on “북한에 대한 이해와 햇볕정책

  1. 진짜 햇볕정책은 김대중대통령님께서 통일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정책이었죠. 개인적으로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또 언젠가는 다시 되었으면 하는 바람 있습니다.

  2. 너무 우린 돈을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이념 싸움을 합니다.
    돈에 환장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백불짜리 인력을 쓰면 큰 돈이 된다는걸
    알면서도 그런 돈은 안벌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게 이상하다는
    당장 내 눈앞에 만원짜리 한장에도 벌벌 하면서
    수조원 대 개성공단 폐쇄 보상금을 세금으로 주는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다니 아이러니

    1. 이념 뿐 아니라.. 우리는 과거에 이념과 결합된 살육전을 치렀고, 그 살육전의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겠죠.

  3. 북한의 경제규모를 늘리면 그 수입으로 무기를 만들텐데 거기서 오는 공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북한은 이미 재래식 전력으로는 남한과 승부가 되지 않는 상황이고, 유일한 가능성은 비대칭 전력, 즉 핵무기입니다.

      핵무기라면, 우리가 경제적 지원을 하건 말건 북한은 만들어 낼 것입니다. 북한도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핵무장은 정치적인 걸림돌들이 문제이지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아니에요.

  4. 햇볕정책을 쉽게 이해하려면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사실상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정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이나 임동원이 가장 자주 언급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새정치연합이 제시했던 강령에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명기한 것은 분명하게 햇볕정책의 관점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일 뿐이다, 폐기되어야 한다, 물론 성향에 따라서 그러한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겠으나, 저는 김대중-노무현 정북의 대북정책에 한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통일이 “도둑처럼” 오길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모든 대북정책은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어야 한다는 햇볕정책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도 북한의 붕괴를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햇볕정책을 가지고 지나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5. 젊은이들의 우경화는 군대,의경에서 겪었던 분노와 피로로 몸으로 체험한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하는것보단 분노하는것이 더쉬우니까요. 인간은 이성적인 존제 이긴하지만 반은 짐승이기도 하기도 하기때문에 현상에 대한 학습에 대한 기대또한 절망적이까지도 합니다.

    핵시험 뉴스를 들으며 군대나와서 땅크 홍어 운지운지 거리는것도 그런것에 통쾌함을 느끼는것도 이해못하는것 아닙니다 단편적인 지식과 경험들(혹은상처와 트라우마들)에 대한민국 젊은이의 세계관과 일베식 소통방식과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는것처럼 보입니다. 원래 생명이라는것이 각자의 우주에 맞게 적응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그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를 할수있을것만 같습니다.

    햇볕정책은 정말 합리적인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북한의 광기어린 비현실적인 인식자체가 대화나 회담이란 것으로 소통이 가능할까 회의스럽니다. 저도 뭔가 전쟁의 직관적인 두러움때문인지 저는 진심으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80프로 동의하고 햇볕은 50프로정도 그렇습니다 저 사람들은 능력으로 지휘를 얻은 사람들도 아니고 약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면서 세습된것입니다.그런사람들과 그런 자손들의 사고방식은 뭔가 우리가 상상할수없을정도로 뒤틀려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사람들의 둘러싼 현실에 대해 상상해보면 비현실적인 세계에 살고있습니다. 마치 메탄행성속에 사는 외계생물처럼 우리가 제안하고 이야기하는것에 얼마나 소통이라는걸 할수있는건지 좀 회의스럽습니다.나아가서 그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쓰고 관리하는것도차도 정말 현실적인 소비를 하고있는건지 아니면 무기나 군인에 올인하고있는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NL이나 어떤 광신도들처럼 뭔가 이미 현실에서 이탈한 자각을 하고있는것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심지여 카타피나 후세인도차도 그런 뭔가 소통이 단절되고 자기애적인 이상한 쿨함같은게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일베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접속했었습니다 왜그런지는 똑똑하신분중에 완전히 헛소리일지도 제말을 들어주실분은 물뚝님밖에 없는것같아서 그런것같습니다 정말입니다 심지여 딴지 필진중에서 물뚝님이 유일할것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일 답변한다는것자체가 얼마나 귄찮은건지 얼마나 피로를 주는건지 알고있거든요. 그래서 좀 건성적인 답변이라도 저는 감동을 받습니다. 얼마나 좌파적이고 얼마나 똑똑한것도 중요하지 않죠 그사람이 쿨하고 생까면 그냥 찌질한 저는 상처받거든요 솔직히 UMC님은 정말 통찰력이 있고 쿨한데 트위터로 근데 왜 저보고 반말이죠 이런 까칠한 반응을 보니 실제로 만나면 속으로 개쇅이네 하면서 찌질하게 도망할것같습니다 그래서 물뚝님이 인내하는 교감 자체로만으로도 어떤 만족을 얻고 갑니다.

    일베의 야수성에 대해선 전 좀 회의적입니다.저는 뭔가 경찰이나 군대가 없으면 인간은 야수성을 같기때문에 관리자가 없거나 터치를 거의 안하는곳은 야수성을 같게 되는것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범죄들 그것들은 교육받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그런상황이랑 비슷한것같습니다. 계획적인 범죄도 있죠 물론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는 제가 말한 경우같습니다.

    왜 일베는 메이저 언론이 해내지 못한 젊은이들의 우경화를 이끌어냈을까요 노무현자체를 희화화한것도 있고 많은 이유들이 있겠죠 그중에 머리속에 맴도는건 일베식의 언어 사용방식이였습니다. 우리가 쥐라고 하면 한사람 이명박을 떠올릴겁니다. 하지만 이런 제한된 고유명사대신 일베의 언어방식은 역구조를 같고있는것같습니다. 일상에 쓰는 단어를 일베식으로 오염시키는것으로 택한거죠

    낙사하신 대통령님->자연인->운지천->운지=떨어지다 이런식으로 일상의 대화중에 섞어들어갈수있을만큼 언어의 용도가 많습니다.

    우리도 그런걸 만들어낼수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4를 이호성으로 교체하여 쓰는 일베의 용법처럼 저도 생각해봤는데 4대신에 녹조를 쓰면 되는겁니다 4대강->녹조 연상방식으로
    터미네이터4를 터미네이터 녹조 이런식으로 인터넷의 대화에 그런 속어를 쓰는거죠.
    이런 언어방식이 얼마나 나쁘며 좋은것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그 증오와 낙인으로 가득찬 일베(혹은 디씨)용어가 일상에 퍼져나갈때 일베의 폐쇠성또한 결정되는것같습니다. 만약에 어느중학생이 게임하면서 일베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 치죠 저는 이때까진 일베가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이건 수많은 경우중 하나일지도 있지만 이럴 확률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전 누군가 분노를 유도하는 단어에 분노하고 그사람에게 일베충이라고 할떄 그사람의 일베라는 자아는 커지기 시작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나는 일베였구나 하면서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일베용어를 쓰게 될꺼고
    일베충이나 인간쓰래기 라는 소릴들으면 분노를 느끼고 더 그때부터 일베에 있는 자료를 읽고 노무현이 쓰래기였구나 하면서 일베인으로 태어난거라고 보입니다.

    그들의 사상이 완성되면 낙인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자연적인 발생이라고 해도 일베의 자료들은 낙인을 찍기위해 나오는거라고 보입니다. 낙인이란 전라도나 홍어가 같은 단어가 폐쇠성을 갖고있고 소통을 포기한체 자기만의 사상적인 네트워크을 유지하는걸 말하는겁니다. 이 네트워크는 증오로 시작되었고 증오를 유지하기 위해존제하는거죠. 사상적으로 자기가 갖고있는 자료를 의심해보고 회의하는건 정말 힘들고 어쩌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의미도 있을수도있죠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한다는건 정말 쉬운선택입니다. 일상에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낙인찍고 조리돌림하는건 정말 편하고 심지여 뇌에서 쾌락물질을 주는듯이 어떤 보상같은게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인간의 본성의 중심중에 증오라는게 얼마나 차지 할까 궁금해집니다.그런게 있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을 거세하도록 교육받아야하는건 아닐까 그런 망상도 해봅니다.

    사실 심리학 뉴스을 읽은적인 있는데 상대방이 모욕적인 언어를 쓰면 상대방을 설득하기 힘들다는 그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베 언어의 폭격에 극단적인 인내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건 정말 힘들일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박정희의 독재에 관한 트위터주소 보여준것은 일베라는 집단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도서관처럼 그들만의 팩트과 데이터로 무장해있는데 진보계는 일반인들을 위한 그런 정리같은게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그분은 적어도 제가 인터넷하면서 학술적으로 팩트와 이론 데이터를 갖고 반론하면서 일베의 사상을 논리적인 논파를 해줬다는것을 처음 본것같습니다. 문제는 이런건 잊혀질것같지만 일베는 일베 가이드북같은것에 방금 사람의 논박의 논박을 어딘가 정리해둘것같단말이죠

    망상으로 가득찬 비문이고 산만하고 쓸때없이 엉망진창인 긴 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ps. 생각해보니 일베애들은 일베애들을 늘리기위해 이상한 이유로 상대방을 일베충으로 몰아가는 장난을 치는걸 자주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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