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와 조금, 물때 이야기

 

그냥 어느 한 순간 슬쩍 구경하고 돌아오는 바다가 아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존재이다. 더욱이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해안가에서 지켜보는 바다는 살아 움직인다. 한 줄기로 유유히 흐르다가 여름 한철 홍수라도 나면 물이 불어 넘치는 강과는 차원이 다르게 살아 움직인다. 파도가 치는 것을 가지고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바다는 물이 불어서 해안선이 밀려 왔다가, 다시 빠져나가고, 또 한 번 물이 들었다가 또 한 번 난다. 하루에 벌어지는 일이다. 약 여섯 시간 간격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물이 든다, 들물, 혹은 물이 밀려 들어온다 해서 밀물이라고 불렀고, 물이 나간다, 날물, 물이 썬다 해서 썰물이라고 불렀다. 즉, 들물과 밀물은 같은 말, 썰물과 날물은 역시 같은 말이다. 그리고 바다는 하루에 두번 물이 들었다가, 역시 하루에 두번 물이 나가는 것이다. 물이 최고로 많이 들어왔을 때가 만조, 가장 많이 나갔을 때가 간조. 이 차이를 조수 간만의 차라고 하는데, 동해안이나 남해안 보다 유독 서해안이 이 간만의 차가 극심하다.

이 주기 조차도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매일 하루에 50분 정도씩 느려진다. 즉, 오늘 만조가 아침 00:25, 간조가 07:00, 다시 두번째 만조가 12:31, 그리고 두번째 간조가 19:09 였다면 내일 첫 만조는 01: 10분 정도, 즉 오늘의 첫 만조보다 45분 정도 늦게 오는 것이다. 이 수치는 매일 조금씩 변하고 평균을 내면 하루에 48분씩 정도 늦어진다는 것이다. 졸라 복잡하다.

시간 간격만 변하는 것일까? 물이 들어오는 정도, 물이 써는 정도까지 매일 달라진다. 어떤 날은 물이 아주 조금밖에 들지 않고, 조금만 썬다. 어떤 날에는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가, 갯벌이 한도 없이 드러날 정도로 많이 나 버린다. 이 변화는 대략 7일에서 8일 간격으로 벌어진다.

즉, 물이 점점 더 많이 들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최고로 많이 들고, 다시 점점 더 적게 들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최저로 적게 든다. 이걸 한 달에 네 번 반복하게 된다. 하루에 들물과 날물, 만조와 간조가 네번 반복하는 것과 유사하다.

대략 언제 물이 가장 많이 들고, 언제 가장 조금 들까? 중고시절 배웠을 것이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일직선 상에 놓이는 시점, 즉 그믐달(삭)과 보름달(망)이 뜰 때 물이 가장 많이 든다. 그리고 상현(반달)과 하현(반달) 때 물이 가장 적게 든다. 이 이유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이 중첩되는가 상쇄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옛 사람들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물이 많이 들어오는 시점의 바다는 살아나는 거라고 생각해서 사리(살다, 살이에서 온 말로 추정), 물이 적게 들어오는 시점의 바다는 죽었다고 생각해서 조금(죽음에서 변화된 말로 추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물이 많이 들어오고 적게 들어오는 것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바다에서 배를 몰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바닷물이 흐르는 것도 참 중요한 문제였다. 물이 많이 들어오고 많이 나갈 때에는 같은 시간 내에 더 많은 물의 이동이 벌어지므로 흐름이 강하고 빨라진다. 이 흐름은 지형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조석과 관계없는 큰 바다의 흐름에도 영향을 받게 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리와 조금을 가르는 물때에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사리 때의 물은 빨리 흐르고, 조금 때의 물은 천천히 흐른다.

이 흐름을 하루 기준으로 보자면, 완전히 물이 찬 만조 때와 완전히 물이 빠진 간조 때에는 물이 거의 멈추게 된다.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그 짧은 시간 동안은 물이 고요해진다. 이 때를 굳이 이름 붙이자면 정조시기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무시(무수無水에서 온 말로 추정)라고 불렀다. 그리고 흐름이 바뀌어 거세게 흐르다가 다시 다음 번 만조나 간조가 오면 흐름이 죽는다. 그리고 다시 흐름의 방향이 바뀐다.

하루에도 네 번씩이나 고요한 바다가 왔다가 다시 흐름이 거세지기를 반복하는 바다. 그리고 그 시점도 매일 바뀌는 바다. 흐름의 빠르고 느림도 매번 바뀌는 바다. 이런 바다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는 힘들다. 그리고 바다에서 일을 하려면 이 변화가 어떤 기준으로 생기는 지를 알아야 했다. 그 기준은 쉽게 찾아졌다. 바로 달이다.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은 태음력이라고 한다. 보통 음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은 태양력이다. 태음력은 바다물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하게 예측해 주기 때문에 어부들에게 유리했다. 태양력은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알려 주기 때문에 농부들에게 유리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 두 가지 달력을 섞어서 썼다. 이른바 태음태양력이다. 기본 달력의 달과 날은 음력으로 한다. 이로써 어부들은 물때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농사를 위한 태양력은 “24절기”의 형태로 달력에 첨가된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춘에서 시작되어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으로 나뉘는 24절기는 많은 사람들이 음력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철저하게 태양력 기준으로 나뉘어 지는 계절의 흐름을 알려 주는 지표이다. 그 의미조차 농사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 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청명, 얼음을 녹이는 비가 내리는 우수, 곡식을 자라게 하는 비가 내리는 곡우, 더위가 가시는 처서, 이슬이 내리기 전에 곡식을 거두라는 백로, 등등이다.

일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 가장 짧은 동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도 24절기에 포함되어 있다. 24절기는 태양력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필요에 따라 태양력과 태음력을 섞어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음력은 원시적인 달력이라고 없애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태음력은 바다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뱃사람들은 단순한 음력에 나열된 날짜들에 이름까지 붙여준다. 그 이름은 바다물의 움직임을 상징하게 된다.

한물 – 두메 – 무릎사리 – 배꼽사리 – 가슴사리 – 턱사리 – 한사리 – 목사리 – 어깨사리 – 허리사리 – 한꺽기 – 두꺽기 – 선조금 – 앉은조금 – 한조금 그리고 다시 한물 두메로 이어진다.

15일 기준으로 반복되는 이 이름들은 음력과 일치한다.

즉, 한물은 음력 10일이다. 물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는 시점이다. 두메를 거쳐 사리로 이어지는데 사리도 등급별로 나뉜다. 무릎사리, 배꼽사리, 가슴사리, 턱사리를 거쳐 한사리가 된다. 이 한사리가 진짜 사리다.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날이다. 보름달이 뜬 다음날이다.

그리고 다시 사리는 점점 약해진다. 목사리, 어깨사리, 허리사리로 내려가다가 한꺽기, 두꺽기로 변하면서 조금으로 진입한다. 선조금과 앉은조금을 거치고 나면 한조금, 즉 물이 제일 적게 들어오는 날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한물 두메를 거치면서 물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는 식이다.

이 흐름은 상현달이 점점 더 커져서 보름달이 되고 다시 점점 작아져 하현달이 된 뒤, 더 작아져서 그믐달이 되는 과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물론 매일 매일 들물과 날물이 오가면서 변화하는 시점이 달라지고, 이 흐름을 태양의 변화인 매일 매일과 양력상의 월과 비교하면 약간씩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워진다.

이 용어들을 좀더 정형화 시켜 1물 – 2물 – 3물 – 4물 – 5물 – 6물(사리) – 7물 – 8물 – 9물 – 10물 – 한객기 – 대객기 – 조금 – 무시 로 쓰기도 한다. 어부들이나 낚시꾼들이 쓰는 달력에는 이런 식의 표기가 더 많을 것이다.

바다는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사리와 조금이라는 말에는 바로 그 바다의 삶과 죽음이 표현되어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용어 설명

–       사리와 조금이 살이와 죽음에서 왔다는 것은 추정이다.

–       지역에 따라 방언이 많이 달라 용어들에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무시는 무쉬라고도 하고, 무수라고 하는 지역도 있다.

–       한객기 대객기는 한꺽기와 두꺽기를 한자화 시킨 말로 추정된다.

–       한꺽기 두꺽기에 이어 조금과 무시가 오는데, 조금과 무시 중에 어느 날이 물이 더 적게 드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       한사리는 7물이지만, 1물 2물 따지는 식의 달력에서는 6물을 사리로 친다. 역시 6물과 7물 중에 어느 날이 물이 더 많이 드는가 하는 것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       사리 중에 백중사리가 있다. 음력 7월 보름경인데, 이 때가 1년 중 가장 물이 많이 들고 많이 빠지는 날이다. 이 날을 전후한 시점의 간조 때에는 평소 물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던 갯벌이 드러나기 때문에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할 수가 있다.

–       기본적으로 배낚시 하는 사람들은 물이 많이 흐르면 낚시가 어렵기 때문에 조금 때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물이 너무 안 흐르면 고기도 안 움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이나 무시때는 수확이 적은 편이다.

–       물때에 따라 잘 잡히는 고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부들은 물때 에 맞춰 다른 방식의 어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화된 장비 앞에서는 이런 차이도 무시되기 마련이다.

–       이 정도만 알아두어도 바닷가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술 한잔 얻어 먹을 기회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육지 것들이 이 정도 아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 환대 받는 다는 것은 어딜 가도 통하는 만고의 진리이다.

 

 







7 thoughts on “사리와 조금, 물때 이야기

  1. 우연히 링크를 따라 들어왔는데 공감가는 글이 많네요.

    저도 다른사람에게 합리적이고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제시할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겨찾기하고 두고두고 들려서 구독하겠습니다.

  2. 물때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고맙습니다!

    근데, 한물,두메,,,,로 시작하는 물때호칭은 15개인데,,,
    1물,2물,,,,로 시작하는 물때호칭이 14개뿐이군요…

    요 차이는 어찌 해석해야 되는지 여쭤봐도 될른지요?

  3. 물이 가장 많이 드는 날은 사리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요. 보통은 8~9물일때 가장 물이 많이 들어요. 지역에 따라서는 10물일때 가장 많이 들기도 해요. 마치 해가 가장 긴 날은 하지지만 가장 더운 날이 하지가 아닌것 처럼 말이죠. 어쩌면 과거에는 음력날짜와 물때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역에 따라 달랐을 수도 있을 거고. 분명 그때도 물이 가장 많으 든날을 사리라 불렀을테니까요.

  4. “오사리 잡놈들”
    오월 사리때는 그물에 여러 물고기가 든다는 말인데…(그래서 오합지졸이란 뜻인가?)
    사리란게 물이 드는건지 나는건지 확인해봐야지 한게 몇 년이네요..
    자세히 알려줘서 무척 고맙습니다.
    화성이나 안산 바다갈라지는 곳에 함 가보려고 물때에 관심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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