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가 위험하다고?

 

지난번 대선 전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최초로 민주노총이 제기했고, 이어서 시민사회 단체들이 동의하고 참여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확장되었던 그 문제는 바로 “투표시간” 문제였다.

이 투표시간의 문제는 유권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긴 근로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정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 12시간 만에 전국의 유권자 약 4천만명이 모두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제약조건은 “일 하느라 바빠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결과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는, 즉 기본권을 침해 당하게 되는 사례를 양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제기는 매우 시의적절 했었다.

이 투표권에 대한 침해가 벌어지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투표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오전 6시에 시작되는 투표 개시 시간을 더 앞당긴다거나 오후 6시로 되어 있는 투표 마감시간을 더 늦추는 것. 하지만 오전 6시 이전에 투표하러 올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지극히 낮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후 6시로 되어 있는 마감시간을 더 늦추는 것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선관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음이 알려진다. 투표 마감시간이 늦어지면 개표 시간이 같이 늦어지고 개표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개표 종사원의 인건비가 급하게 늘어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인건비 차원의 문제를 떠나, 개표 종사원들 역시 일반적인 교사, 은행원, 등 다양한 사회인들인 상황에서 다음 날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결국 그런 식으로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되고 말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정해진 시간 내에 잠시 일을 멈추고 투표하러 갔다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잠시 교대를 하고 투표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맞지만, 그런 경우는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는 근로기준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투표권 보장에 관한 조항을 들어 전국의 모든 사업장, 특히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 들을 대상으로 근로자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안내를 담은 캠페인을 시행하면서, 근로자들에 이런 투표권 보장 조치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만약 없다면 제보를 해 주길 권하면서 제보전화를 받을 수 있는 콜센터를 운영하기까지 했다.

이 조치는 충분히 효과가 있는 조치였고 많은 제보전화가 접수되고 상황이 시정되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기도 하다.

결국 이 문제는 유권자의 기본권인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숙제를 우리에게 남겨둔 것이었고, 우리 사회는 어떤 식으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문제는 뜻밖의 방향에서 해결되어 버렸다. 비록 중앙선관위가 매번 전국 규모의 투표가 있을 때마다 유권자들의 신뢰를 쌓지 못하고 부정선거, 혹은 편파적인 선거관리의 의혹에 휩싸이는 등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관철해 낸 것이다.

일단 사업장에서의 투표권 보장 문제는 기존에 있던 처벌조항도 없는 근로기준법 조항보다 더 강력한 조항을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포함시켜 버렸다. 이제 근로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사업주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잘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과는 달리 공직선거법은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무수한 정치인들이 처벌받고 자격을 상실하는 강력한 규정으로 작동하는 살아있는 법규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부재자 투표 시스템을 완전히 대치해버리는 “사전투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이 시스템으로 인해 투표시간은 기존의 12시간에서 36시간으로 늘어났다. 불편한 별도의 사전 신고도 필요 없이, 또 지역적으로도 자신이 거주하는 투표구 이외에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라도 투표를 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도는 사실상 “시간이 없어서” 라거나 “사업장의 여건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변명은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강력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제도를 준비한다 하더라도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호주의 경우와 같이 벌금제를 도입하는 경우 90%가 넘는 높은 투표율을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실정상 그런 강력한 제도는 도입하기 힘들 것이다.

자발적인 유권자들의 참여의식에 의지하는 우리 사회의 투표제도 하에서의 투표율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고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투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귀찮아서 포기하는 유권자나, 투표를 지레 포기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유권자들에게 당신들도 유권자이며 투표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정도의 투표 시스템은 확립되었으며, 그들이 투표에 참여하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 시켜줄 수 있는 시스템은 준비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전투표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일련의 유권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 대선 직후에 터져 나왔던 개표부정 의혹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분들인 걸로 보인다.

사전투표 후 투표용지를 우송하는 과정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할 것을 의심하거나 투표 자격을 확인하고 투표 여부를 기록하는 전산망의 신뢰성을 의심하면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으니 아예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말자는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을 널리 알려 사람들에게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선관위를 의심하는 것은 좋다. 모든 공공기관은 시민의 감시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들이 가진 의혹은 최선을 다해 해명을 해야 하며, 역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자신들의 게으름과 부족을 탓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공공기관이 작동하는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민사회의 요구, 투표시간을 늘리고 일하는 도중에라도 투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관계법령을 개정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도입한 새로운 시스템의 운용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 시스템을 도입한 취지를 이해한다면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신 정 의심이 들고, 이 시스템을 아직 신뢰하지 못하겠다면 직접 참여해서 감시하고 투표가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될 일이다. 그것이 생산적인 태도이며 민주 사회의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운용할 자격을 갖춘 시민의 기본 자세일 것이다. 쉬운 말로 그렇게까지 선관위를 못 믿는다면, 투표 당일날 시행되는 투표는 어떻게 믿고 참여하겠는가 말이다.

사전투표 제도의 취지는 어떤 면에서 검토하더라도 옳다. 대신 처음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시행착오 없이, 운용 상의 문제가 없이 정상적으로 시행되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하나씩 갖추어지는 제도적 장치들을 지속적으로 시험하고 보완발전 시켜 무사히 정착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시켜나가는 그런 과정이 될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선관위대로 기획한 시스템을 정상가동 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고, 유권자들은 유권자들 대로 이렇게 새로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지켜보면 될 일이다. 무리한 의심과 의혹은 잠시 접어두고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지켜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시스템이 투표조차 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수많은 어려운 유권자들의 기본권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시스템으로 자리잡기를 기원하며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중앙선관위에 기고한 글입니다. )

 

 

 

 

 

 

 







5 thoughts on “사전투표 가 위험하다고?

  1. 멀리 찾을것도 없이 저희 집사람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ㅜㅜ 다음 아고라에 개표부정 글을 많이 보더니 … 그래도 전 사전투표 할겁니다 제도 얼리어답터 이니까요 !!

  2. 저도 사전투표를 할거지만, 우려하는 목소리 자체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선관위가 “사전투표도 충분히 안전하다”라는 설명을 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죠.
    지난 대선도 많은 의혹이 있고, 이 의혹조차도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고 있듯, 이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지금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의심되는 마당이라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은 우려를 표할 수 밖에 없겠죠.

    선관위가 사전투표가 어떻게 진행되고, 개표까지 철저하게 안전이 보장된다는 설명을 해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솔직히 가장 우려되는건,
    만약 사전투표를 조작할 수 있지만 지방선거등에서 조작하지 않고 놔두면
    아무래도 사전투표가 여러가지 편한점이 있기때문에 점점 사전투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테고,
    가장 중요한 다음 대선때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를 했는데, 그때 숨겨뒀던 조작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는거죠.
    물론 우려고 음모론이지만, 이 말을 일축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건 가장 큰 원인은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겠죠.
    그 원인은 분명히 정부를 비롯한 기관들에 있구요

  3. 전 당일투표할 예정입니다.
    사전투표제의 편리한점에 대해선 많이 들었고, 좋은 취지의 제도라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당일에 투표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투표시간 2시간 늘이자는 얘기에 그렇게 반발하던 ㅅㄴㄹ당이 사전투표제 시행에는
    이상하리 만큼 조용한게 불안하달까요…(그저 제가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있는것이기를 바랍니다ㅠㅠ)

  4. 오늘 채널 A에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 언뉘는 핀란드에서는 사전선거를 1주일 한다고하더군요~
    저는 방금 사전투표하고 왔슴미다~ 끗
    – 울매으리-

  5. 저도 지금 사전투표를 하고 왔는데 찜찜하네요 선거조차도 의심스러운 우리의 시스템이 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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