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세대갈등 을 보는 또 다른 관점

 

부제 : 계급 투표에서 정체성 투표로

 

1. 단계를 건너 뛰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수준을 비판하는 관점들 중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적 전근대성에 대한 지적이다. 즉, 근대화 이전 단계에서 갑작스레 외국의 무력 지배를 수십 년간 받게 되고 그 지배가 해소되면서 내적 성찰과 발전과정이 채 성숙되기 전에 긴급히 도입된 공화국 체제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이 문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점일 수 있겠다.

즉,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계급간 갈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주권이 성숙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입된 공화정 체제가 아니라, 왕조가 외적 요인으로 인해 급속하게 붕괴하고 중간 과정 없이 갑자기 도입된 공화정 체제 하의 대한민국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이 근대화 되지 못하고 아직 전근대 단계에 머물러 있기에 정상적인 공화정치, 혹은 민주주의가 구현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투표행위는 계급배반 투표로 보일 수 밖에 없으며, 상당 비율의 유권자들이 계급배반 투표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 전근대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21세기에 진입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2014년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아직도 전근대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의심을 가져볼 필요도 있겠다.

계급 관점에서 사회를 해석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낡은 방식이 되어 버렸고, 역사는 이미 근대화 단계를 넘어 탈근대, 포스트모던의 단계로 진입한지 오래이다. 탈근대의 관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 참여 행태를 관찰하게 되면 단순히 계급 이론만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복잡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게 되며, 그 한 갈래로 우리는 계급 투표를 대신할 수 있는 “정체성 투표”라는 개념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소유량, 또는 생산 수단의 보유 여부로 구분되는 경제적 계급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극도로 발전한 미디어로 인해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정보가 퍼부어지고 있고, 이런 정보들 중에 자신이 취사선택한 것들이 모여 구성되는 자신의 정체성, 이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관점이 현대인들의 복잡한 행동 양식을 설명하기에 좀 더 적합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체성 투표는 계급 투표에 상대되는 개념이 아니며, 좀더 포괄적인 상위 개념이 된다. 즉, 계급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그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치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에 기반한 정치행위를 근대적인 것으로 분류했을 때, 이런 정체성 투표는 근대를 넘어선 탈근대적인 정치행위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유권자들은 전근대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도입된 공화정으로 인해 충분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단계를 건너 뛰어 탈근대 사회로 진입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계급 투표 과정이 생략된 채, 정체성 투표로 전이해 버린 탓에 많은 관찰자들이 한국사회를 계급배반 투표가 일상화된 전근대적인 사회로 오해하게 되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의식의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오진을 내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한 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한국 사회 전체를 전근대적인 상태로 진단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식의 근대화”를 주문하는 행동은 매우 낡은 관점이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이기도 하며, 심지어 오만하기까지 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2. 정치행위로 이어지는 정체성

정체성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체성에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현재 자신의 상태 보다는 한결 더 좋은, 자신이 되고 싶은 어떤 상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이러한 이중적인 면모를 이해한다면, 정체성이 정치행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들을 쉽게 풀이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5-60대 세대가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몰입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아주 쉽게 해석이 된다. 그들은 자신이 보냈던 좋았던 젊은 시절을 자신의 정체성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박정희가 후대에 들어 비판당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야당이 내세우는 노년층 복지에 대한 공약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

2-30대 젊은 세대가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것도 역시 해석이 가능하다. 안철수는 이렇다 할 정치적인 업적도 없이 순식간에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 집단에 포함되어 버렸는데,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안철수라는 한 개인의 삶이 젊은 세대에게는 일종의 “되고 싶은 모델“로 보였기 때문일 수가 있다. 즉, 자신의 현재 상황이 아니라 되고 싶었던 모습을 담고 있는 정체성에 안철수가 적합한 모델로 떠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과 긍정적으로 연결되는 정치인은 하나의 추상적인 모델로 작용해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계급배반 투표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표피적인 해석일 뿐이며 옳지도 않다. 이들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그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어떤 세대의 정체성은 이렇게 정치적 행위로 이어지게 되며, 서로 다른 세대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발생하는 정치적 행위에서 차이를 보이게 되며 이 차이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3. 세대간 정체성 갈등의 심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세대와 연령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20대와 40대라 하면 연령대가 되지만, 2014년 오늘의 20대와 40대라면 세대가 된다. 즉 같은 연령대라 하더라도 1987년의 20대와 2014년의 20대는 분명히 다른 세대라는 점에서 세대라는 개념은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의 연령대를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구분된 세대는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사회적 집단이 된다. 예를 들어 2014년 현재 한국 사회의 40대는 급속한 경제규모의 성장기인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고, 경제적 풍요와 함께 찾아온 정치적 격변기였던 80년대에 10대를 보냈으며, IMF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20대에 경험하고, 그 회복기에 30대를 보낸 그런 세대인 것이다.

이 세대는 동시대의 다른 세대와는 물론 다른 시대의 같은 40대들과도 완전히 다른 독특한 경험을 가진 특이한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이들은 다른 세대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며, 이 정체성은 이들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그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라 하더라도 큰 틀에서 발견되는 한 시대의 특정 연령대가 가지게 되는 보편적인 경향성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의 큰 차이를 보이기는 힘들다. 역사 속에서 어떤 시대를 고르더라도 특정 연령대는 특정한 성질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20대는 진보적이며, 40대는 보수적이 되고, 60대 이상은 과거 회귀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흐름 속에서 각 시대별로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차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차이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증폭되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별로 구분되는 특정 세대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세대가 한 시대에 공존하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세대간의 갈등, 특히 그 중에서도 세대 간의 정치적 갈등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현대사회에서 길게는 20년 짧게는 5-6년의 단위로 구분되는 세대가 가지는 집단적인 정체성은 과거와 달리 그 세대간 차이의 폭이 크게 되므로 매우 강력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크다.

최근 들어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나, 지역 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보다 바로 이러한 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현상은, 실제로 그런 격차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위험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지만,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위험은 그 갈등을 유발하는 사실들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여부 보다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위험하다고 인식하는가 여부에 더 의존하기도 한다.

20세기 초반의 대공황을 불러 일으킨 이유도,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경제적인 요인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케인즈가 언급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한 잘못된 집단적 경제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정치적 세대갈등의 문제는 세대 간에 서로 다른 경험으로 인해 생성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사회가 급속히 변화할수록 그 세대 간 정체성의 격차는 당연히 커지게 되며, 이로 인해 정치적 행동의 격차도 갈수록 더 커지게 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할 정치적 세대갈등의 폭도 그리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4. 해결 방안

갈수록 빠르게 변하며 다양성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세대 간의 정체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정체성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 자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이 한가지로 통일된 사회는 끔찍하기까지 하다. 정체성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 해서 정체성을 묵살하고 획일화시키자는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하나의 사회 안에서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가능한 답변은 내가 선택한 나의 정체성 이외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 대한 관용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겪은 세대에 대해, 그들이 선택한 집단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매우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서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을 타인들에게, 나아가 타 집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일 뿐이다.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라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에 지나치게 몰입하기 전에, 현재 사회의 상황과 자신의 정체성이 부합하는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냉정한 자기 객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이며, 비정상적이며 구현 불가능한 정체성을 선택하고 거기에 매몰되어 무의미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세대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세대 갈등은 서로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행복하게 공존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사회라는 점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또 냉정하게 이 사회의 현실에 맞는 정체성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해소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반대로 말해서, 사회적 권력과 부를 좀더 많이 보유한 특정 세대가 자신들이 선택한 특정한 정체성을 다른 모든 세대 집단에게 강요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점점 증폭되어 사회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폭발적인 갈등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thoughts on “정치적 세대갈등 을 보는 또 다른 관점

  1. 정체성 투표의 개념이 투표 성향과 동의어로 들릴 정도로 굉장히 포괄적이네요. 문제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4대 요소, 즉 계급, 연령대, 정치적 성향 그리고 지방색 가운데 어느 것이 현실 선거(예컨대 대선) 결과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느냔데, 물뚝님의 생각은? 관련 자료나 논문이 있으면 소개를…

    1. 제판단으로는 계급은 그리 중요하게 작용한 적이 없고, 지역구도가 꽤 강하게 작용을 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연령과는 좀 다른) 세대 개념이 강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같군요.

      관련 자료나 논문은 스스로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2. 며칠전 뉴스 페퍼민트에서 NYT 기사를 번역한 태어난 해는 어떻게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치나? 라는 기사도 한 번 생각해봄직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개인이 만 18세때의 경험이 평생의 정치성향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기술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링크는 http://newspeppermint.com/2014/07/08/birthyearandpoliticalviews/

    물론 정치성향에는 지역이나 가정적인 분위기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화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한국 상황에 맞춰 대입해보았을 때 어느정도 드러맞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제가 주로 만나고 교류하는 연령대는 아무래도 20대후반~30대초반이 많은 편인데, 우리세대가 만18세에 경험한건 2002 월드컵 4강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2004년 탄핵과 촛불집회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20대중반 친구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있었지요. 같은 대입법으로 부모님 세대인 50대 중후반~60대초반을 대입해 보니 대체로 60년대~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실제적으로 오일쇼크와 부가세 신설 등으로 서민경제에까지 영향을 준 시기는 70년대 후반이어서 특히 현재의 60대 이상 세대가 만18세이던 시기에는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미국의 동아시아 성장전략에 기인한 점도 있으나 어쨋든 도로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는 긍정적 부분이 더 크게 읽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대학생들은 70~80년대에 일정하게 문제의식을 가졌을테지만, 사실 80년대까지도 대학생은 전체 세대에서 30% 정도를 차지한걸로 알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대학으로 세대를 구분하는건 90년대 이전에는 좀 대표성을 갖기는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문제의식을 가졌더라도 어쨋든 지금은 더 이상 통금이 존재하지 않고 머리를 길렀다고 잡아가지도 않으며 선거도 하기 때문에 당시 세대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대부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정확하게 양적연구를 해보지 않아서 크게 가치는 없지만, 2030세대에서도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노무현 대통령 혹은 그 세력에 대한 지지에 있어서 30대중후반과 초반이 다르고 20대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똑같이 문재인 후보나 박원순 시장에게 투표했더라도 30대 중반 이상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금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고 그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비율적으로는 좀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20대의 경우에는 세월호 사건 등에서 공통적으로 분노를 느끼긴 하지만, 사형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10년전에 비해 매우 많아졌고 북한에 대해 부정적이며 평준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등 개별사안에서는 기존의 진보적인 아젠다에 비해, 30대에 비해서도 좀 더 보수화된 경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2000년대에 학부시절 사형제에 대해 토론을 하면 대부분 반대측에 섰기 때문에 찬성측이 1대다로 토론을 해야했는데,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반대라고 하더군요. 사법부 판단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등등을 이야기해도 옛날에나 그렇지 지금은 안그렇다, 니가 피해자 유족의 심정이라도 그렇게 말하겠냐? 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고.

    특히 20대에서 한때 안철수 지지율이 높았던건 자신의 정체성을 성공적인 벤처 CEO에 투사하고 싶은 시각도 있었겠지만, 그 지점과 함께 이런 개별 이슈들에 대한 20대의 시각 변화가 전통적인 햇볕정책, 사형제 폐지, 민주화 같은 가치들이 더 이상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상황적인 변화도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박원순이 야권 리더로 나올지 문재인이 나올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명박 후보가 2007년에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우려를 비핵개방 3000으로 어쨋건 당시 주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했듯이 야권의 어느 정파든 정책을 만들고 케치 프레이즈를 던지는 분들도 이런 차이를 잘 봐가면서 대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담으로 드네요.

    1. 그게 바로 제가 글에 쓴 연령대와 세대의 차이점이겠죠.

      특정 시대의 특정 연령대를 세대라고 정의한다면, 그 세대가 어려서 겪은 시대적 경험이 그 세대의 정치적 입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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