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정치평론가의 등장

 

 

 

 

htm_201407052493920102011.jpg 

초거대 미디어 기업이자 민족정론지인 딴지일보에 정치 관련 글을 좀 쓴다고 해서 내 자신을 정치평론가로 간주해 달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작금의 우리 사회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정치평론가입네 하는 사람들, 특히 종편에 나와 복덕방 한담을 나누며 특정 정치세력에게 저주를 퍼붓는 그 할배들께서 정치평론가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정치 평론 따위를 하고 싶은 생각은 천리 밖으로 도망가곤 한다. 

하지만 정치평론가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며,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정치판을 알기 쉽게 펼쳐 보여 줌으로써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 건전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해 주며, 선거가 돌아오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즉, 언론의 역할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정치평론가들이 해 줘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중요한 정치평론을 일부 헛된 이름과 잔돈 몇푼에 눈이 먼 헛똑똑이들 보기 싫다고 해서 그 자체를 무시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평론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분야의 평론가,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평론가 역시 관찰자에 그친다는 점이다. 스포츠 분야에 비교를 하자면 그들은 해설자이지 결코 선수나 코치가 아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결국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떤 예술 비평가도 역사에 남을 작품을 남기지 못하며, 어떤 문학 평론가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명작을 만들지 못한다. 정치평론가들 역시 직접적으로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며, 그렇게 사회가 진보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일부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정치평론을 보고 정치적 각성을 하고 직접 정치에 참여해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유권자 운동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도와주고,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정치평론가의 영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자신이 나서서 직접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안 그들은 각 정치세력들의 그런 행동들의 옳고 그름을 분석한다. 그리고 참견만 한다. 당신들이 옳고 당신들은 틀리다며 심판질만 한다. 결코 자기가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얄밉다. 그래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걸 보니 일도 잘하겠네~ 니가 한 번 나서서 직접 해보지 그러셔?”

기성용_0002.jpg

답답하면 니ㄷ…

 

이런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이렇게 입바른 소리만 하는 정치평론가들은 보통 사회 일반으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환영받고 사랑받고 싶어서라도 특정 정치세력의 입맛에 맞는 소리만 늘어놓는 가짜 평론가들이 득세를 하기도 한다. 종편에 많이 나오는 할배들이나 야권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에게 기생하며 맞춤법도 안 맞는 비문으로 글을 써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 아니겠는가. 

정치평론가들은 선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운동장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뛰어든다고 사형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정치평론가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경우에 따라서 이 선이 깨지면서 어떤 정치평론가의 평론으로 인해 다수의 유권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특정 정치세력이 강화되는 결과가 나오면서 그 평론가 본인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런 정치평론가를 평론가라 부르지 않게 되며, 그의 평론은 평론이 아니라 선동이 된다. 물론 이는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다. 

모든 선동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경우, 그 행동의 가치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선동이 나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선동이 평론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며, 그런 선동을 자주 하는 정치평론가는 평론가가 아니라 선동가, 즉 정치인의 한 부분집합으로 봐야 한다. 이런 결론은 사뭇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사회에 진정한 정치평론가는 거의 없다. 물론 어딘가에 훌륭한 평론가가 있으며 그가 훌륭한 평론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 사회가 심하게 기울어진 상황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불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정치평론이 나오기 힘들다. 상식도 안 지켜지는 사회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킨다고 해서 제대로 된 평론도 아니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이 사회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제대로 된 평론가를 가지기 힘든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 사회에 속해 살고 있는 정상적인 평론가라면 선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정치평론의 불모지인 셈이다. 참으로 암담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평론은 이렇게 말라 죽어 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런 끔찍한 정치평론의 불모지 같은 사회에서 최근 혜성같이 위대한 정치평론가가 하나 등장했다. 

 

Man-in-Spotlight.jpg

팟~!

이번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에 관해 이 신인 정치평론가는 이번 호우가 비록 기습적인 집중호우였지만, 무엇보다도 사전 대비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원인과 문제점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 기상이변에 대한 근본적인 방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복구 인력과 장비를 조속히 투입해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는 재난지원금과 긴급구호물품 등을 지원해 주민들의 조속한 생활안정이 가능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과옥조다. 하나도 버릴 말이 없다. 원래 정치평론이라는 것이 지당한 말씀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놈들이 지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지 찾아내고 그들에게 너희들 그러지 말고 이렇게 제대로 하라고 지당한 말씀만 늘어 놓는 것이 정치평론의 기본 아니었던가? 이 신인 정치평론가는 지당 분야의 세계 챔피언급이며, 기네스북 지당한 말씀 항목에 올라야 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신인의 정치평론 실력은 일단 먹어주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부산 수해에 관해 멋진 정치평론을 한 이 신인 정치평론가가 과거에는 어떤 평론을 했는지도 찾아 봤다. 바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군 내부의 가혹행위 사건에 대해 논평도 했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며, 귀한 자녀를 잃은 부모님과 유가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참담하다고 언급을 한다. 정치평론가 역시 사람이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을 평할 때, 그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필수적이다. 이 신인 정치평론가는 일단 공감은 매우 잘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에서 이런 사고가 계속 발생해 왔고, 그 때마다 바로 잡겠다고 했지만 또 반복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렇다. 우리 사회가 이 모양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런 사회의 문제를 지적해서 정치인들이 고칠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평론의 정석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부 여당을 상대로 단호한 주문을 날린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또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021033048.jpg

한여름 반쯤 언 생맥주 500cc를 원샷 했을 때처럼 속이 시원하고 뻥 뚫린다. 이래야 한다. 정치 평론이란 이래야 한다. 정부 여당이 되었건 야당이 되었건 이 평론가의 말에 귀를 좀 기울였으면 좋겠다. 나 역시 평론 비스무리한 것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지당한 얘기를 해 본 기억은 별로 없으며, 괜히 복잡한 헛소리나 했던 것 같다. 정말 반성한다. 

남북문제에 관해서도 평론을 한다. 남북한이 신뢰를 구축하고 함께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뭐 하나 버릴 말이 없다. 지당 그 자체이며, 이렇게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특정 정치세력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건전하기 짝이 없고 지고지순지당의 극치에 달한 평론은 내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정치평론계를 일거에 휩쓸어 버릴 만한 대형 신인이 등장한 것이다.

거기다가 이 신인 정치평론가는 평론의 원칙인 ‘행동하지 않는다’는 기준 역시 충실히 만족시키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정치평론가들도 살금살금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기 위해서 무슨 선언도 하고, 하다못해 얼음물도 뒤집어 쓰고 하지만, 이 평론가는 절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말만 한다. 평론가의 덕목을 너무나 잘 지키고 있다. 이 대목에서 너거들은 기립박수 한 번 쎄려줘야 한다. 

slow_clap_citizen_kane.gif

 

우리는 지금 한 위대한 정치평론가의 탄생을 목전에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왜 언론들은 이런 위대한 정치평론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발탁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초 거대 다국적 오리발 미디어 기업이자 민족정론지인 딴지일보라도 나서서 이 정치평론가를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딴지일보 정치부장으로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이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정치평론가의 이름은…

 

박근혜.jpg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당연히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론만 한다. 그야말로 위대한 평론가다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청와대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서 그 답답한 곳에서 떨치고 나와 몸을 일으켜 대학로 딴지일보 사옥으로 자리를 옮겨 앞으로도 계속 역사에 길이 빛날 정치평론을 생산해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리는 바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평론가로 묘사하는 아이디어는 허핑턴포스트에 게재된 노정태 작가의 글에서 차용했음을 밝혀둔다.)

 

끝.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꾸물







11 thoughts on “신인 정치평론가의 등장

  1.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왜 저 고생을 하려고 대통령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무도 원치 않는 가시밭길로 기꺼이 들어가서는 혈혈단신 고생하는 모습이 애처롭다는 말씀인 듯 했습니다. 그렇다면 동향의 상대후보를 뽑아 그 짐을 지게 하면 됐을 것을… 우리 부모님들 어떡하죠?
    (참. 약소하나마 원고료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2. 정치 평론가가 아니라 낭독가 입니다 .
    평론 마저 보고 잃는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했죠 . 창조 평론 .

  3. 이런 짧은글에 재미와 반전이 .. ㄷㄷㄷ

    그리고 하하 잼있네 하고, 가만 생각해보니 100프로 사실이자나 …

    소름돋네…

  4. 트윗 계정이 없어서 여기에 그앓실 피드백 남깁니다.
    얼불노편에서 타가리엔가문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데너리스 한 명뿐이라고 하셨는데,
    북쪽에 아직 아에몬이 살아있지 않나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