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적 소비세는 가능한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부의 불평등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붕괴하게 된다.

물론 백오십 년 전에도 자본주의는 붕괴할 거라는 얘기가 많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 세계의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고 이렇게 저렇게 변신해 가면서 살아 남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부의 불평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를 최근 정면으로 제기한 피케티의 주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2-3 세기 동안 전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은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는 것을 데이터에 근거해 밝혀낸 그의 업적은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이 “21세기 자본론”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논쟁을 촉발시킨 점은 아마 역사에 기록될 만한 기념비적인 업적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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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피케티의 책을 읽고 부의 불평등에 관해서라면 진짜로 한 쪽 끝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는 빌 게이츠가 직접 논평을 하기도 했다.

http://newspeppermint.com/2014/10/20/why-inequality-matters-capital-in-21st-century/

이 기사를 전해준 뉴스페퍼민트는 다양한 외신을 잘 골라내어 정말 깔끔하게 제공해 주는 곳이라는 점 또한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정말 괜찮은 사이트이다.

이 빌 게이츠의 의견 중에서 눈길을 끈 부분은 바로, 왜 피케티는 자산과 소득에만 집중을 하고 소비에는 관심을 주지 않냐는 빌 게이츠의 지적이었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이나 소득만큼이나 소비도 아주 중요한 경제활동임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을 제어하려는 관점에서 보자면 소비 역시 결코 등한시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국가 권력이 경제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 조세정책이라는 면을 생각한다면 자산이나 소득만큼 소비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소비세의 문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정부의 입장에서 하는 소비인 재정지출 문제도 중요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일단은 논외로 하자.

자산에 대해 물리는 세금인 보유세, 소득에 대해 물리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문제는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쉽게 누진세율 적용이 가능한 보유세나 소득세에 비해 소비세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가 무척 힘들다. 일단 소비라는 것이 파악하기 힘든 경제활동이며, 특정 개인의 소비의 총량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내 머리에 떠 오른 것이 바로 누진적 부가가치세라는 개념이었다. 이는 몇년 전에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발표된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의 제안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2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가가치세에 누진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교수의 제안은 세율 자체에 누진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세의 면제 기준선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즉, 기본적인 부가가치세율을 20% 정도로 인상하고, 일인당 소비 총량의 선을 그어서 그 이하의 소비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기준선이 일인당 연간 1200만원으로 설정된다면, 그 이하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냈던 부가세를 전액 환급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계층에서는 부가가치세율이 0%가 된다. 그 이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역시 1200만원의 소비 까지는 부가세를 내지 않게 되고, 그 이상의 소비에만 부가가치세를 내게 되는 것이며, 소비가 늘어날수록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기본 세율에 접근하게 된다. 예를 들어 2400만원의 소비를 한 사람은 1200만원에 대해서는 0%의 부가가치세를 내고, 나머지 1200만원에 대해서는 20%의 부가가치세를 내게 되니 전체 세율은 10%가 된다. 몇 억원의 소비를 하는 사람은 면제 효과가 거의 희박해져서 최종적으로 20%의 세율에 가까운 부가가치세를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부가가치세율이 누진적으로 적용되게 된다는 제안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신용카드 영수증이나 현금 영수증을 무조건 챙기려고 들 것이고, 연말이면 부가세 환급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1200만원 정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240만원의 부가세 환급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소비 활동이 좀 더 투명해지는 부수효과도 있다. 이렇게 영수증 챙기는 것이 활발해지면 숨어있는 세원이 발굴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최종 소비자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과연 이 제도의 도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자영업자들이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억 원어치 물건 사다가 일억 삼천에 팔아 삼천만원 벌던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인상된 부가가치세율로 인해 즉각적인 수입 감소의 효과가 발생한다. 임금소득을 올리던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유통업자들은 당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자산소득을 올리던 사람들의 대부분, 즉 임대사업자들 역시 당황하게 될 것이다. 모든 월세 세입자들이 환급 목적으로 부가가치세 계산서를 요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결국 이 조치는 아마도 최종 소비자 물가의 급속한 상승을 불러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월세부터 바로 인상될 것이며, 동네 수퍼에서도 가격표를 모두 새로 붙여야 할 것이다.

임금소득자의 비율이 높다면 또 모르겠지만, 기형적으로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고려할 때, 또 숨겨진 임대사업자들, 즉 부동산 부자들이 사실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제도가 도입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허망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야권에서 이런 주장을 공약으로 채택한다면, 야권을 지지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분노에 직면해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힘든 일이다.

만약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도 포기해야 한다면, 사실상 누진 소비세라는 개념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 여태껏 누진 소비세가 현실 자본주의에 도입되지 않았고 이런 개념을 얘기하는 사람조차 드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빌 게이츠의 얘기처럼 소비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좀 공허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공허함에 그치지 않고 누진율이 적용되지 않는, 그래서 흔히 역진세라 부르는 일반적인 소비세의 인상을 불러 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금 당장도 우리 사회에서는 조세 저항이 강력한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을 포기하고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나 소비세를 인상해서 그 재원으로 복지를 확충하자는 조금은 수상한 제안들이 차고 넘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우리 사회가 따르게 된다면 (지금 정권은 이렇게 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결국 피케티가 우려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걱정하는 모두가 우려하는 방향대로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사회의 안정성은 더욱 취약해져서 결국은 치명적인 붕괴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걱정은 내가 할 걱정이 아니다.

이 사회가 치명적인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붕괴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심초사 해야 마땅한 사람들은 바로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워렌 버핏 등의 쟁쟁한 부자들이 자꾸 증세를 얘기하고 정부에게 불평등을 제어할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다. 자신들이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은 그런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가진 거 진짜 쥐뿔도 없는 내가 당신들 걱정까지 대신해줘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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