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부실한 대한민국을 결산한다

(* 딴지일보에 기고한 이 글로, 물뚝심송 블로그의 2014년 결산을 갈음하겠습니다. 올 한해동안 변변찮은 제 글들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국가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일정한 영토 안에서 배타적인 지배권을 가진 정부가 조직되어 있고, 그 정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일련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고 다들 배웠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졸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오래 전에 있었던 아주 원시적인 왕국조차 이러한 정의에는 부합한다.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일정한 영토를 통치하는 왕과 그 왕이 이끄는 정부는 영토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왕의 성격과 능력에 따라 삶의 질이 큰 폭으로 변하는 그런 상황의 국가이긴 했어도 말이다. 그것도 국가는 국가다.

세월이 흘러 인류의 문명은 발전했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가 자신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무력에 기반한 왕조를 무너트리기 위해 수많은 피가 흘렀지만 인류는 해낸 것이다.

국가를 형성하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정부를 조직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 권리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을 시민이라 불렀으며, 시민에 의해 조직된 정부와, 그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를 우리는 보통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권리는 시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과 바로 그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개념이 보편화 되었고, 그런 체제를 갖춘 국가를 민주공화국이라 불렀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의 1항과 2항에는 바로 이 내용이 담겨 있다.

1조 1항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조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있건 기억하고 있건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관장하는 국가, 우리가 속해있는 국가는 민주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왜냐고? 헌법에 그렇게 적혀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적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자동으로 이 헌법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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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형성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부는 두 가지 의무를 갖게 된다. 하나는 현재의 의무이며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의무다.

현재의 의무라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 정부의 주인인 그 사람들, 바로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고, 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해야 하며,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 마음껏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이 보장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범죄로 정의되어야 하며 규제되어야 할 일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정된 법률을 지키며,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률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도 내에서는 그 사람이 본인이 원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예상하지 못한 불행을 겪지 않도록 능력이 허용되는 한 최대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며,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가 최선을 다해 이룩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사항인 것이다.

또한 정부는 미래에 대한 의무도 가지고 있다. 이 국가 내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운명 공동체가 된다. 국가의 미래에 따라 그 구성원들의 미래도 상당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국가의 미래가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최대한 열어 두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사상의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이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 이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국가가 살아남아 구성원들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외교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거대한 어젠다들을 다루는 것이 다양한 사상의 시장 말고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즉, 국가 구성원들 사이에 다양한 사상에 입각한 주장이 튀어 나오고 그 주장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지고 그 토론의 결과들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사상의 자유는 괜히 폼잡으려고 헌법에 명시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원칙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는 점을 확인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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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지나온 2014년을 보자.

연말이 되면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기사나 방송들이 모두 결산을 외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물론 다 중요하고 충격적이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건들이었다.

그 중에 단 두 가지를 뽑고자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 이 거대한 배에 탑승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이 사회의 현재 수준을 보여주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 두 가지가 바로 올해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수장시켜 버린 세월호 사건이며, 또 하나는 헌법 재판소가 나서서 상당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대중 정당을 해산시켜 버린 사건이다.

 

부실한 대한민국의 현실

세월호 사건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부실한 헛점 투성이의 국가 공동체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다. 차마 사실로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이 사회는 부실했다.

국가 구성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이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지도 못했고, 사건 발생 이후 대처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이 사건이 벌어진 뒤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이 그저 규모가 조금 큰 교통사고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얼마나 잔인하게 칼을 꽂는 얘기인지 하는 점은 뒤로 제쳐 놓더라도, 수백 명의 승객이 타고 다니는 거대한 여객선이 태풍이나 해일 등의 별다른 자연 재해도 없는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그렇게 침몰해 버린 끔찍한 사고를 일개 교통사고로 간주하는 그 무신경함은 놀랍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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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해양 여객운송 사업이라는 것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이런 종류의 사고는 발생해서는 안될 후진국형 사고이기도 하다. 일단 사고 자체의 발생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여객선 운항의 기본 수칙들이 존재하고 그 수칙들만 정확하게 지켜졌더라도 이런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천재지변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승객 전원을 무사히 탈출시켜 구조할 수 있는 백업 플랜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 3중 4중의 안전장치들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아야 겨우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결국 사고의 발생 자체가 무리한 화물 운송을 통해 수익을 늘리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그런 회사측의 탐욕을 사전에 적발하고 통제했어야 하는 감독기관의 부실함이 더해진다. 이 또한 회사와 관청 간의 탐욕에 기반한 거래에서 유발된 일일 것이다. 화물의 양을 속이기 위해 홀수선을 조작하고, 평형수의 양을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이 그 시작이다.

정상적인 관리감독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승무원들의 자격 문제나, 정기적인 교육의 부재도 지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작동했어야 할 안전장치들이 단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도대체 이 회사는 도대체 무슨 빽이 있어서 이렇게 감독기관으로부터 자유롭게 전횡을 저질렀는가 하는 의문이 따라 나오게 되고, 최고 권력의 정보기관과 모종의 관계에 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혹은 전혀 풀리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 이후의 뒤처리 과정은 더욱 더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다. 배가 순식간에 침몰해 버린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무선 연락 이후 승무원들이 거의 전원 탈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여행 중인 학생들이었던 승객들을 전혀 구조하지 않았다는 점, 일부 선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스스로 갑판으로 나온 최소한의 승객만 구조했다는 점이 또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시스템에 의한 구조는 없었다. 오히려 시스템을 무시한 사람들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극단적인 불신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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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이다.

OECD 가입국이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현란한 한류 문화의 수출국이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초단기 성장 국가인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한 국가였지, 한 꺼풀만 벗겨보면 전혀 사회적인 시스템이 확보되지 못한 속 빈 강정 같은 국가였다는 점이 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우리 사회는 그렇게 만천하에 드러난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사후 대책은 전무했으며, 대책은 커녕 진상조사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모든 책임은 승무원들과 회사가 뒤집어 썼고, 회사의 소유자는 어느날 갑자기, 그야말로 느닷없이 다 썩어버린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감독관청의 관리 부실이나 해양 수송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사고 발생 이후 연락체계, 인명 구조 시스템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부실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저 해경을 해체한다는 터무니없는 발표가 있었고, 그나마 해경은 해체되지도 않고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이다.

부실할 뿐더러 이미 발생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을 리얼타임 다큐멘터리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줬던 것이다. 그게 2014년의 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처절한 외침과 장기간에 걸친 싸움은 경찰봉 아래 깔려 버리고, 청와대는 단 한 마디의 인간적인 답변도 하지 않고 외면해 버렸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그게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보여준 우리의 현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살아있는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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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대한민국의 미래

현실이 부실하다면, 미래라도 있어야 한다.

부족한 현실을 어떻게 수정보완해 나갈 것인가, 부족한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부족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성장해 나갈 것인가 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비전이 있다면 우리는 부족한 현실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참고서라도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전 방향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지금 당장 벌어진 현실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예측하고 거기에 대응할 미래의 계획은 고정될 수가 없다. 수많은 각계 각층의 경험있는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견해를 내 놓아야 하고, 그걸 총체적으로 모아 사회적인 어젠다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거시적인 대안들은 모두 국민적 토론에 회부되어 서로의 장단점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러한 토론이 원천봉쇄된다. 그렇게 토론을 금지하는 대한민국의 실체가 또 한번 현실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바로 연말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다.

통합진보당의 주장에 담긴 내용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터무니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들의 행동을 다루지 않고, 그들이 가진 생각과 주장을 이유로 그들이 만든 정당을 해산시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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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로운 아이디어와 주장도 처음에는 소수 주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소수의 의견이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관심법을 동원해 그 주장이 우리 사회의 주류의 주장과 맞는지 살펴보고 그게 맞지 않을 경우, 그 이유로 묵살하고 그런 주장을 공유하는 정당을 해산시켜 버릴 것인가? 그게 우리의 수준인가?

어떤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경우는 딱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그들이 그 주장을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고, 그 행동이 이 사회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이다. 통합진보당이 무슨 행동을 했는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헌재의 판결이 나기 전에 이미 나온 고등법원의 판결에서도 그들이 내란을 모의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었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헌재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는가?

두 번째, 특별한 행동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주장이 하나 있기는 하다. 다른 주장을 억압하겠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회를 제정일치의 사회로 만들어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주장이나 모든 사회적 의견을 단일한 것으로 뭉쳐 전쟁이라도 일으켜야 한다는 파시즘적 주장은 우리 사회가 용납하기 힘들다. 통합진보당이 이런 식의 주장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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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통합진보당의 행동도 따라붙지 않은 구시대적 주장을,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과장하면서 해산시켜 버린 헌재의 태도, 그런 헌법재판관의 태도와 결정을 용납하고, 오히려 권장하는 이 사회의 주류 권력층의 입장이 오히려 이런 파시즘적 주장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반공제일주의의 원칙에 맞지 않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하면 못견뎌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이 사회에서 그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헌법 재판소의 8명의 판관들이 가진 생각과 그들을 임명한 권력자들의 생각이 오히려 해체되어야 하는 파시즘이라는 얘기이다.

법리도 무시한다. 도대체 왜 통합진보당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어서는 안되는지, 그들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산되어야 하는지 최소한의 법리적 설명도 붙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관들 역시 고시를 패스한 법조인들이고 인생을 법에 바친 법 전문가임을 상기시키며 그들이 법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만 가지고 있어도 절대 해산 판결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다. 법을 수호해야 할 당사자들이 법치주의를 부정해 버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8:1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통과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그나마 이 사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인 법치주의를 산산조각 내면서 이 사회를 수십 년 퇴보 시켜 버렸고, 사상의 자유 시장에 굴러 다니던 허접한 주장 하나를 단지 반공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살시켜 버리면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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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2014년의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우리의 미래이다.

이 사회의 주류인 반공세력, 정권을 장악한 수구세력이 원하는 우리의 미래이며, 토론도 없고, 사상의 자유도 없는, 그저 자신들의 권력과 자본만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그러한 미래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나라야 망하건 말건, 수많은 이 국가의 구성원들이야 일자리가 있건 말건, 돈을 벌건 말건, 병에 걸려 쓰러지건 말건, 나이 팔십에 빈병과 폐지를 주워 파는 노인들의 수입에서조차 세금을 떼어가겠다고 주장하는 그런 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후손만 번창하기를 기대하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이 그리는 미래만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

이게 2014년의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부실한 미래이다.

 

운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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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언제나 현실은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대처할 방법이 없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실한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어떠한 미래도 결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지금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유동적인 것일 뿐이다. 보이는 미래가 부실하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비록 힘들고 어렵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미래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2014년은 지나가 버렸다. 현실을 지나 과거로 가 버린 것이다.

이제 2015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미래를 얘기해야 할 때가 왔다.

먼저 과거를 복기하자. 우리는 왜 이런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부실한 현실을 맞이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실수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몰랐던 것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나누어 보자. 해야 할 일은 좀 더 부지런히 서둘러 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은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생각할 줄 아는 머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텍스트가 있다. 역사가 있고 사상이 있고 과학이 있으며 그걸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받아 들이고, 우리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유연한 사고를 견지하며, 배타적이기 보다는 수용적이어야 할 것이며, 논쟁보다는 토론을, 주장보다는 이해와 타협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정파적 이익에 얽매여 근시안적인 시각을 유지해서는 안될 것이며 동시에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부당한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배격이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하는 만큼, 바로 그런 일을 해 나가는 우리의 수준에 걸맞는 미래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듯이, 공짜 미래가 주어질 리가 없다.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2015년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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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홀짝







5 thoughts on “2014 부실한 대한민국을 결산한다

  1. 잘 읽고 갑니다. 특히 현실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괴물이지만 미래는 바꿀 수, 바꿔볼 여지가 있다는 말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갑니다….
    얼마 전 Into the storm 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십대 아이들 두 명이 물에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갔을 떄 각자의 부모에게 음성메세지를 남기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구조되었지만 구조되기는 커녕 맥없이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저랬겠지 싶어 하루종일 먹먹하고 죄스러웠습니다. 물뚝님이 잘 정리해주신 것처럼 세월호 사건은 발생 이후에 아무런 제대로된 조치도 없이, 또 그에 대한 해결의지도 없이 그렇게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네요… 점점 이 나라에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쓸데없이 여기에 이렇게 주절주절 썰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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