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아인슈타인 vs 닐스 보어

(*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발행하는 “더딴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기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자폭일수도 있겠다.

경험상 어떤 자리에서라도 말만 꺼내면 듣는 상대가 3분 이내에 인간의 능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초인간적인 수면욕구를 느끼게 된다는 물리학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감히 “재미”를 지상 최대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거대 미디어 그룹 딴지에서 발행하는 “더딴지”에 올릴 기사를 쓰겠다고 맘을 먹는 것 자체가 말이다.

거기다가 격도 맞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이라는 거대한 인류 문화의 진전을 일구어낸 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수소원자 나부랭이나 가지고 놀았을 것만 같은 덴마크의 듣보잡 물리 덕후 닐스 보어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물리학 이야기는 당신들이 흔히 생각하는 졸립기만 한 개소리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덕후들이 쌓아 놓은 거대한 금자탑이며, 역사적 잉여들의 환상적인 덕질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알려져 있는 것만큼 대단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닐스 보어라는 덴마크 물덕이 오히려 훨씬 더 강한 덕력을 보유한 인물임과 동시에 20세기 초 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20세기 초 눈부시게 발전한 양자역학의 정립을 뒷다리잡고 방해한 훼방꾼에 불과했다고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인즉슨,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은 오히려 아인슈타인에게 과분한 일이며 닐스 보어에게는 덕후로서의 자존심이 손상되는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물리학자였다는 점에는 물론 변함이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과대평가 된 부분이 있다는 정도일 뿐이다.

그 얘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흑체복사

흑체복사는 나같이 얼굴 시커먼 놈이 신도리코 복사기를 가지고 뭔가를 복사하고 있는 정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흑체라는 것은 Black body 라는 말을 말 그대로 옮긴 명칭이다. 어떤 물체가 검은색이라는 것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는 뜻. 어떤 파장의 빛을 쪼이게 되더라도 다 흡수하고 반사하지 않으면 검은 색으로 보이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파장의 빛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물질은 없다. 그냥 이상적으로 가정된 존재일 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와 유사한 물체를 만들어서 실험해 볼 수는 있다. 오차를 가정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흑체가 있다고 가정할 때, 거기에 빛을 쪼이게 되면 에너지를 흡수한다. 흡수된 에너지에 의해 흑체의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다시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방출하게 된다. 이게 바로 “복사”이다. 결국 흑체가 복사하는 것은 “흑체복사”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흑체복사라는 현상이 당시의 물리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괴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기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물리 덕후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판판이 나가 떨어졌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1862년의 구스타프 키르히호프였는데, 그는 복사법칙이라는 것을 제안한다.

물리학계에서의 덕질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1. 어떤 이상한 현상을 누군가가 찾아낸다. : 흑체 비스무리한 것이 복사를 한다.
  2. 그런데 그 현상에 있어 어떤 일관된 규칙이 있는 것 같다. : 키르히호프의 복사법칙 제안.
  3. 도대체 이런 규칙이 가능하게 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 모두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
  4. 이렇게 이렇게 설명하면 해결이 된다. : 에브리바디 경악. 패닉.
  5. 4번의 설명은 기존의 물리학 법칙에 위배된다. : 보수와 진보로 갈려서 개싸움 시작.
  6. 1,2,3,4가 다 맞는거 보니.. 기존의 물리학 법칙이 틀렸다. : 물리학의 변화와 발전.

흑체복사 문제도 정확하게 이런 수순을 따르기 시작했다.

키르히호프가 찾아낸 복사법칙은 이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찾아낸 규칙이었던 것이다. 바로 흑체 복사가 흑체의 형태와 종류, 흑체를 이루는 물질과 전혀 관계가 없이 흑체의 온도와 빛의 주파수에만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고 다들 뭔가 설명이 되는 것 같긴 한데 일그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역사적인 막스 플랑크가 세운 플랑크의 복사법칙이 등장할 때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고 말았다.

플랑크는 이 흑체복사 에너지는 그저 어떤 단순한 상수(h : 플랑크 상수, 물리학계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서 울다 잠들만한 기념비적인 상수)와 빛의 진동수를 곱한 값의 “정수배”에만 의존한다는 파격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맞았다.

여기에 향후 백 년간 물리학 무림을 피로 물들게 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정수배라는 말.

흑체복사 에너지도 에너지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상수(말 그대로 변하지 않는 값이다.)와 진동수를 곱한 어떤 값의 정수배라는 사실. 에너지가 부드럽게 연속적으로 늘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불연속하게 증가하는 계단 형태의 값을 가진다는 사실.

이는 자연계가 연속성을 보이는 아날로그적인 구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당대의 물리덕후들의 기본적인 신념을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이단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자연계가 불연속이라니.. 기본 에너지 단위가 있고 그것의 정수배로 구성된 에너지 체계라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법칙을 알아낸 플랑크 본인도 죽을 때 까지 자신의 발견이 불러 일으킨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배척하게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라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플랑크는 본인의 태도와 관계없이 물리학의 구파일방 정파들을 일제히 잠재우고 무림을 일통해 버린 “양자역학”이라는 사파스러운 거대 정파의 탄생을 가져온 시조의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플랑크는 바로 스위스의 듣보잡 공무원이었던 물리학 천재 한 명을 발굴해서 물리학계에 입문시켜준 업적이 있다.

그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 상대성 이론이다.

개나 소나 다 안다. 상대성 이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 제목이 주는 어감과는 달리 특수 상대성 이론이 훨씬 먼저 나왔고 훨씬 더 쉬운 이론이다. 삼각함수와 루트 계산 정도만 할 줄 알면 특수 상대성 이론의 도출 과정을 따라 해 볼 수도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일반 상대론은 사실상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이론이다.

물론 상대성 이론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기이한 결과를 도출해 준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둥, 길이가 줄어든다는 둥, 마법 같은 수작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게 왜 그러냐면 원래 상대성 이론의 기본 가정 자체가 일반인들의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은 그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을 아무 생각없이 맞다고 생각하고 믿어 버렸던 순진무구함에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 이전에 물리학계에는 상대성 원리가 있었다. 흔히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라고 부르는데 이 내용은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 아는 내용이다. 갈릴레이 당시에는 이것도 상식은 아니었겠지만..

류현진이 평지에서 던진 야구공의 속도가 시속 150km 였다면, 그가 시속 100km 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기차의 진행방향으로 던진 야구공의 속도는 250km 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게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는 상대속도 개념이다. 어려워하지 말자. 당신들 이거 중학교 물상시간에 다 배웠다. 물론 쉬는 시간에 도시락 까먹고 조느라 들었던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야구공이 아니라 빛을 쏘면 어떻게 될까? 평지에서 레이저 총을 쐈더니 빛이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나갔다. 그러면 초속 5만 킬로미터로 날아가는 우주선에서 진행방향으로 레이저를 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초속 35만킬로미터로 날아가야 정상이잖아.

그런데 우리의 순진무구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땅 위에서 쏘건 날아가는 우주선에서 쏘건 빛의 속도는 항상 초속 30만키로미터일 뿐이라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왜 그랬냐고? 뭐 이러저러한 구구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공무원 생활 하면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니 자연계가 이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감 맛이 나서 감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 기괴한 가정에서 출발을 하니까 특수 상대성 이론 같은 기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게 그냥 기괴한 생각뿐이었다면, 별 미친놈이 개수작 하고 있네~ 하면서 끝이 나버렸겠지만, 아인슈타인의 기괴한 가정, 빛의 속도는 상대적인 운동에 관계없이 변함이 없다는 가정은 동시대 미국에서 그야말로 최강의 덕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아무런 이득도 못 내고 실패해 버린, 마이켈슨몰리라는 두 명의 양덕들의 돈지랄 실험에 의해 사실로 입증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하게 되고, 덩달아 거액을 써서 추진한 실험이 적나라하게 실패해 버려 실의에 빠져 있던 마이켈슨과 몰리는 사상 최초로 “실패한 실험” 덕분에 노벨상을 타게 된다.

눈치 챘겠지만, 마이켈슨과 몰리는 빛이 상황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이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하게 된다. 당시의 물리학계에서 이 상대성 이론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대성 이론의 결과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특수 상대론 같이 간단한 이론에 대해서도 워낙에 빠른 속도와 짧은 시간들을 다루는 문제라서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데에는 수십 년 이상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인슈타인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상대성 이론이지만, 실제로 그가 했던 더욱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심각하게 모순을 유발해서 사람들을 패닉에 빠트렸던 것은 바로 광전효과에 대한 해석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이 광전효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게 된다.

당시의 노벨상은 물리 덕후 계열에서는 거의 덕후 인증서 수준으로 취급을 받았다는 것도 생각해 주자.

 

광전효과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법칙을 이해했다. 그리고 금속물질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 나온다는 이 광전효과에 대해 플랑크의 법칙을 이용해서 해석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문제는 이게 앞으로 물리학 무림에 닥쳐올 피비린내나는 혈겁의 시초였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스승이었던 플랑크도 그것을 몰랐고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몰랐다.

이 광전효과는 뜻밖에 매우 간단한 실험이고, 매우 간단하게 풀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바로 이 광전효과 실험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것이다. 빛을 쪼이면 에너지가 전달이 되니까 금속원자가 전자를 방출하는 거겠지. 여기까지는 쉽다.

빛의 에너지는 두 가지에 관련이 있다. 하나는 주파수, 하나는 광량. , 광자 한 개가 가지는 에너지는 주파수가 높을수록 크다. 주파수가 아주 높은 빛(예를 들어 방사선)의 경우 에너지가 쎄다는 것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주파수가 낮은 광자를 여러 개(광량) 쏘이면 에너지가 많이 전달된다. 맞잖아. 한 놈이 쎌 수도 있고, 약한 놈이 여럿이 몰려오면 그것도 쎼잖아.

그런데 금속물질에 빛을 쏘일 때, 특정한 주파수 이하의 빛을 아무리 많이(광량) 쏘여도 전자는 나오지 않는다. 왜지? 왜 이러지?

또 빛을 파동으로 생각한다면, 이 광전효과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있었다.

이 의문들을 모두 다 아인슈타인이 해결해 버린 것이다. 아까 앞에 나왔던 플랑크의 법칙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해결해 놓고 보니 더 심각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 진짜로 자연계의 에너지가 계단 형태로 불연속한거란 말인가? 플랑크 법칙이 나왔을 때 겪게 된 사람들의 당황이 더 증폭되기 시작한다. 플랑크의 법칙도 맞고,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해석도 맞는 걸 보니 진짜 자연계가 불연속인 모양이네.. 이런 줸장..

거기다가, 막스웰이 정립한 전자기파 이론에 의해 빛은 파동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빛의 입자설이 대두되어 버렸다. 막스웰도 틀린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무림에 등장하자 마자, 상대성 이론이라는 기괴한 주장을 펼쳐 명성을 사해에 떨치는 것도 모자라서, 기존의 물리학의 심대한 결점이 있음을 만방의 덕후들에게 설파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세상에는 양자역학이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원했던 바가 아니었다. 왜냐면 아인슈타인 본인 역시 플랑크와 함께 죽을 때 까지 양자역학을 믿지 않았다.

 

수소원자 모델

닐스 보어는 전자를 발견한 톰슨 밑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했었다. 그런데 짤린다. 짤린 이유는 영어를 못해서. 예나 지금이나 영어는 물리 덕질의 기본이다. 아니 사회생활의 기본인가?

그리고 러더포드 밑에서 또 수소 원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기존의 원자모델들이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 착안하기 시작한다. 이 때 보어는 과거의 물리학으로는 이런 원자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13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보어는 역사적인 “보어의 수소원자 모델”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모델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언급이 될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업적들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이해해보시길 권한다.

이 때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수소원자 모델을 “이도 저도 아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짬뽕”이라는 식으로 비웃었던 적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전체 물리학계가 갑자기 근본도 없이 유행을 따라 양자역학적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막스 폰 라우에 같은 물리학자는 보어의 이론이 옳다면 자신이 물리학을 관두겠다는 선언까지 하고 나선다. 그래서 우리는 라우에 같은 사람의 이름을 우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거다.

보어의 발견이 파급력이 컸던 만큼 보어는 코펜하겐에 연구소(라고 해 봐야 3층 건물 수준)를 차리게 되고 당시 양자역학의 거두들이 이 연구소에 모이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과도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가며 양자역학적인 개념들에 대한 토론을 지속해간다.

한편, 보어의 연구에 상당한 후원을 했던 기업이 바로 칼스버그 재단이기도 했다. 맥주를 많이 마셔주는 것은 물리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물리학자들이 맥주를 많이 먹기도 하고..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나는 소주가 더 좋음.)

이 수소원자 모델은 지속적으로 개선과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수소원자 모델을 둘러싼 양자역학적 개념들 역시 함께 발전하게 되면서 닐스 보어를 양자역학을 발전시킨 핵심인물로 자리잡게 만들어 주게 된다.

양자역학 얘기라면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물리학자, 독일의 하이젠베르크 역시 보어와 함께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1926년 근처의 시점에서 말이다.

도대체 뭔 개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양자역학적 개념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질적인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 역시 이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기도 했다. 이른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다.

이 해석은 지금은 물론 많이 변화되고 개선되었지만, 당시의 상당시간 동안 양자역학의 주된 해석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그 해석에 동의하는가 아닌가 하는 여부로 물리학자들 사이에 편가름이 벌어지기도 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에 바로 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 간에는 서로의 관점을 비교해 가면서 매우 다양한 사고실험이 전개되어 가며 피튀기는 비무를 했다고 전해진다.

 

<피튀기고 있는 보어와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vs 닐스보어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덴마크에 있는 라이든이라는 곳에 자리잡은 파울 에렌페스트의 집에서 한동안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이미 이 때 벌써, 두 사람간의 논쟁은 양자역학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수학공식들에 대해 논하는 수준을 벗어나, 양자역학의 기본이 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써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는 표현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양자역학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광전효과에 대한 해석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작품이었음을 다시 생각해 보자.

단지 아인슈타인이 불만을 품었던 것은 양자역학의 발전에 함께 했던 당대 최강의 물리학자들이 보여주는 비결정론적인 사고였던 것 같다. 사실 양자역학적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면 이 학문의 특징은 모든 것은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는 비결정론적인 입장에 빠지게 되기 쉽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당시 양자역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중슬릿 사고실험”인데 이는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결국 결정론적 관점과 비결정론적 관점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 낼 것인 것 하는 질문을 양자역학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양자역학자들이 주장했던, 대표적으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깨트릴 수도 있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댔다. 그리고 닐스 보어와 그의 동료들은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문제를 양자역학적인 관점에 모순되지 않게 해석하는 방법을 찾아 응수하곤 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공격은 양자역학의 논리적 완결성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여주게 된다. 질문에 답하고 양자역학적 관점의 옳음을 보호하기 위한 보어나 하이젠베르크 등의 고민이 양자역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물론 코펜하겐 해석이 다 옳지는 않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천재 물리학자 바인버그 역시 코펜하겐 해석에 포함된 모순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바인버그는 1933년 뉴욕출신인데, 프린스턴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1957년이다. 이게 인간의 입장에서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바인버그는 외계인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이렇게 생긴 외계인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거나, 20세기 초반에 출현하여 우리 사회의 첨단과학의 수준을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초고속으로 발전시켰던 양자역학의 발전의 배경에는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이 두 사람의 논쟁이 깔려 있다는 점.

이 두 거인의 논쟁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각종 전자제품의 초고밀도 집적회로 같은 것의 생산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 (현대적인 반도체의 생산공정에는 원자레벨의 양자역학적인 현상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들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의 부역

그러나 이들 거인들에게도 어두운 점은 존재한다.

거의 관계도 없지만, 원자폭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언제나 아인슈타인의 E=MC제곱(수식으로 표현해 주길..) 이라는 공식이 언급되기 마련이다. 그거 사실 별로 관계도 없다.

20세기 초반에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이 화려하게 발전을 하던 시절, 인류에게는 메가톤급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2차 세계대전. 거의 모든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압력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모든 국가의 초미의 관심사는 어느 나라가 가장 먼저 핵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로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옮긴 뒤,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에 관련이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 시달리게 된다. 닐스 보어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하이젠베르크 같은 경우는 고향 독일로 돌아가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도록 히틀러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받게 되기도 한다.

닐스 보어는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과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게 되기도 한다.

세상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물리학자들 역시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이 어쩌고 하는 세월 좋은 소리 하면서, 물리학 덕질 하면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는 법이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저 덕질이나 하면서 놀게 내버려 두면 이들은 인간의 정신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위대한 이론들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 정부가 이들에게 밥값을 하라며 일을 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하면 이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 수십만의 인명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 괴물을 만들어 낸다.

물론 개인차이는 있었다. 어떤 이는 강제로 참여하면서도 태업을 하게 되고, 어떤 이는 항의하고 반대하는 투쟁의 길에 나서기도 한다. 어떤 심약한 물리학자는 실전에 사용된 핵무기의 위력을 보고 자살해 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정부간의 이해를 조절하며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능력 있는 자 모두는 언제나 부역을 하게 되어 있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물리학자들의 가치 중립성? 다 개소리일 뿐이다. 사회가 미쳐 돌아가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부역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제나 내가 안 한다면 누군가 다른 이가 먼저 하겠지.. 하는 공포가 살아남은 모든 물리학자의 머리 속을 채우게 된다.

닐스 보어의 중재도,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에게 직접 보낸 핵개발에 반대하는 편지도 인류가 맞닥뜨리게 된 거대한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별다른 업적 없이 노년을 맞게 되었고, 닐스 보어 역시 코펜하겐에서 평화적인 핵에너지 사용에 관한 노력을 하다가 잠이 들게 된다.

이 두 거인들이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과연 그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세계적인 수준의 위대한 물리학자, 노벨상 수상자로 대접을 받던 좋았던 시절이 떠올랐을까? 아니면 꾀죄죄한 차림으로 허름한 골방에 앉아 비결정론적인 관점의 취약성에 대해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며 토론하던 덕질의 추억을 떠올렸을까?

그들에게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광활한 우주와 미세한 아원자 레벨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서로의 천재적인 발상에 놀라가며 토론하던 시절이 훨씬 더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들은 인류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물리학 덕후로 덕질을 하던 시절을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다.

 

 

덕후들에게 덕질을 허하라. 그러면 세상은 평화롭고 풍요로와 질 것이다.

덕후들에게 시대적 사명을 요구하고 부역을 시켜라. 그러면 세상은 지옥이 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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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알버트 아인슈타인 vs 닐스 보어

  1. 파토님에게 환빠 소설 창작 부역을 시키는것도 재미있겠군요.
    조수로 이용 붙이고
    생체실험 당하는 느낌이겠네요.

  2. 맞아요… 덕질하고 놀라고 해야, 세계 평화가 옴. 과학자는 정치인의 하수인이 되는 순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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