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탈을 쓴 이인자들

(*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발행하는 “더딴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기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 아무리 삼권분립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공화국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력은 행정부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해방직후 만들어진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의원내각제”의 형태로 초안이 만들어졌었다. 유진오, 조봉암 등이 설계한 대한민국의 형태는 모든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총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행정부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수장이며,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기만 하는 그런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임시정부 시절에도 어지간히 합의가 되었던 국가의 형태이며, 대통령 1인에게 심각한 권력 집중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고려가 포함되어 있는, 상당히 사려 깊은 안배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지만, 이 헌법에 담겨 있는 그들이 민주주의적 고려는 초장부터 뭉개지고 만다.

바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권력욕에 의해 제헌 헌법은 빛이 바래고, 국가의 형태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고 만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총리는 그저 대통령의 권력의 옆에 서서 보좌나 하는 자리로 전락하고 만다. 대통령중심제라고 보기에도 지나치게 권력의 집중이 심한 형태로 변질된 대한민국 초대 정부는 아니나 다를까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독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 전통은 이승만을 지나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지켜지게 된다. 한 번 권력을 잡은 자들이 스스로 권력을 축소시키는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또 한 편으로는 그리 훌륭하지 않은 제도라도 십 년 이상 긴 시간을 거쳐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그게 마치 무슨 “불변의 원칙”인 것처럼 인식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대한민국의 총리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이 되어 온 것이다.

그 시간이 장장 오십 년.

이제는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국무총리”라고 해 봐야 대통령 꼬붕에 따까리이며, 대통령이 그냥 자기 총알받이로 임명하는 자리이며, 대통령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자리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는 경지에 이르러 버렸다.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뭐 하러 총리 인준을 국회에서 동의해야 하며,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총리실을 운영하고 툭하면 국회로 총리를 불러 질문을 하고 책임지라고 다그치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권한도 주어지지 않은 총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여야 하는 것인가? 실제 결정을 내린 대통령을 불러다가 질문을 하고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심지어 총리의 역할을 규정하는 헌법 조문에조차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라는 조항이 있으니 총리가 뭘 알아서 해 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대통령 1인에게 행정부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한 발자국만 옆으로 가면 언제든지 독재적 통치가 가능한 그런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정권의 이인자로 불리는 총리들은 무수히 등장해서 무수히 허수아비 짓을 하고 사라지곤 했으나..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두 번의 대통령 임기 동안 이어진 “민주정부 10년”(이 네이밍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매우 마음에 든다.) 동안에는 뭔가 좀 다른 일들이 벌어지면서 과연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우리 헌정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총리의 역할과 대통령의 독점 권력의 분산”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이 글은 그 민주정부 10년간 대통령의 옆을 스쳐 지나간 이인자들, 그들과 연관된 가지각색 뻘짓을 모아보는 그런 글이 될 것임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이라고 본다.

 

국민의 정부 초대 총리 김종필

국민의 정부는 태생적으로 연합정권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DJP 연합을 통해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라는 강력한 상대를 물리치고 탄생했으니, 이제 그 전리품인 권력을 나누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IMF 직후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코앞에 두고서 출범을 했으면서도 이 문제로 인해 국민의 정부는 초장부터 심각한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임명한 총리에 대한 임명 동의를 해 주지 않은 것.

그 결과 국민의 정부 초대 총리는 정식 총리가 아니라 “서리” 딱지를 반 년 가까이 붙이고 있어야 했다. 그 총리가 바로,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력한 이인자 전문가 김종필.

한나라당은 왜 김종필 총리의 인준을 거부했을까?

IMF 사태를 초래해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 놓고 정권까지 빼앗긴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나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왜 한나라당이 이렇게 강력하게 저항을 했는지 당시 상황을 살짝 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96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아니 당시 신한국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했었다. 299석 중 157. 그러나 9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 지형에 변화가 생긴다. 이인제를 따라 한 무더기가 탈당을 해 버리고, 대신 꼬마민주당과 통추를 끌어들여 겨우겨우 150석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선에서 패배하자, 87년 그 난리를 겪고도 정권을 놓치지 않았던 권력형 정치인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고 그 여파로 줄줄이 이탈을 하게 된다. 정권도 빼앗기고, 의석도 줄줄 새는 상황이 오자 한나라당은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어쩔 수 없다. 대정부 강경 투쟁에 나서는 수 밖에. 그 첫걸음으로 총리 임명 동의안 통과를 무력을 써서라도 봉쇄하겠다는 투쟁의 흐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국회가 극한 대치로 치닫게 되고, 총리 임명 동의안 투표함을 개봉조차 못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김대중 정권이었다. 거의 최초로 야당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국가는 경제적으로 망한 상태이고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국회는 마비되고 겨우 허수아비 총리 하나 임명도 못하면서 무슨 국가를 이끌겠다고 하는가 하는 엉성하지만 감각적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비난이 일게 된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월이 되어서야 정식 총리로 임명된 김종필에게는 이 과정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 연합정권을 구성한 일원으로 자민련은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원래의 약속이었던 내각책임제 도입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각료 임명권을 엄청나게 얻어 가지게 되었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실권 총리로 자리를 잡게 된다.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은 국민의 정부 최악의 아킬레스건이었고, 한나라당은 이를 충분히 이용해서 잘 써먹기도 했으나, 결국 불안정한 연합 정권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국민의 정부 내부에서부터 도대체 언제까지 이 자민련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김종필은 특유의 몽니를 부리며 저항했으나 결국 물러나게 된다.

정국은 슬슬 총선 정국으로 전환되고 있었고, 김종필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인 자민련을 어떻게 해서든 부활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 전략의 연장선 상에서 자신의 후임 총리를 박태준으로 임명하고, 한나라당 출신 이한동을 자민련 총재로 세우는 등 현란한 스탭을 밟기 시작하는데, 아뿔싸, 결정적으로 총선에서 자민련은 17석을 얻는데 그쳐 원내 교섭단체도 못 만드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확실히 이런 정치적 전략에서는 김대중이 김종필보다 몇 수 위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박태준 총리 지명을 흔쾌히 받아주고, 총선기간 동안 김종필이 스스로 야당임을 자처하며 국민의 정부를 그렇게 비난을 했는데도 웃어 넘겨 주고, 심지어 총선 결과에 실망한 김종필을 위로하기 위해 한광옥 비서실장을 직접 보내기도 하는 등, 엄청난 고단수 전략을 구사한다.

정치 십 단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어차피 내리막길을 가고 있던 김종필과 굳이 싸우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해 달라는 것을 다 해주면서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부는 연합 정권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단독 정부로 자리잡게 되는 형국을 만들어 냈으니 과연 우리가 언제 또 김대중이라는 고단수 정치인을 또 가지게 될 것인가 하는 아쉬움까지 절로 들게 된다.

우야든동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총리를 거치면서 우리는 청문회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청문회법에 의해 임명된 최초의 총리는 바로 이한동. 물론 그 사이에 총리 권한대행을 했던 이헌재가 있기도 하지만 얘기할 거리는 없다. 재직 기간이 겨우 일주일이었는데 뭐.

 

배신자 이한동 총리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배신자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그저 김대중 정권과 자민련의 공조체제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자민련 출신으로 장관에 임명되었던 사람들까지 장관직을 버리고 모두 퇴각하는 상황에서 자민련을 배신하고 국민의 정부 총리로 남겠다고 결정을 한 사람이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한동이 배신자라는 것은 자민련의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한동은 이제 와서는 아무도 기억을 못하겠지만, 2002년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로 무척 긴 시간 동안 언급되던 거물급 정치인이며, 잠룡이라는 표현도 가장 많이 들었던 사람일 것 같다.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한동 대통령의 시대를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활동적이었으며 처신을 잘했던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 할 줄 아는 것은 공부밖에 없는 전형적인 수재였으며 서울대 법과 재학중에 제10회 사법고시에 합격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고시를 치르고 결과도 보지 못하고 입대를 했으나, 이등병 시절 합격이 발표되었고, 2차 면접에 합격한 뒤 이등병에서 바로 중위로 진급한 경우라는 것이다. 요즘에도 이렇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판사, 검사를 고루 거치고 민정당 소속 의원으로 11,12,13대 의원을 지낸 뒤, 6.29 선언 이후 이어지던 격변기의 과정에서 당 총무를 맡아 대화가 통하는 총무라는 평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둥글둥글한 스타일. 하지만 내무부 장관 시절에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경진압하는 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이 사람의 속은 참 알기도 힘들다.

3당 합당 이후에 김영삼과의 관계도 원만했으며 97년 대선에서는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도 출마했으나 이회창, 이인제에 이어 3등에 그치고, 김대중 정권 탄생 이후 한나라당 부총재, 총재 권한대행까지 한 상태에서 탈당해서 자민련으로 옮기게 된다. 배신자 맞네.

그러다가 김종필의 뜻에 따라 자민련 총재까지 역임한 뒤, 국민의 정부 최초로, 청문회법에 의거 김대중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명된 첫 총리가 된 사람이다.

자민련 출신 내각들이 일제히 떄려 치울 때, 스스로의 선택으로 총리직을 맡아 수행했으며 이 때부터 이미 차기 대선에 뜻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모두 옷 벗고 나오길 요구하는 김종필의 지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차기 대권을 꿈꾸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머물게 되고 만다. 노무현이 일으킨 엄청난 돌풍에 휘말려 날아가 버린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지만, 이한동 역시 대표적인 경우가 된다. 그 뒤로 정치인생은 거의 마무리 되고, 나중에 2007년도에 한나라당에 재입당해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정도. 이건 아마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간 노무현에 대한 원통함이 약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한동 총리 뒤에 따라오는 국민의 정부의 총리들은 별 건더기가 없다. 장상 총리서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명예를 얻기 직전에 청문회에서 드러난 각종 비리로 인해 결국 서리 딱지를 못 떼고 정식 총리로 임명되지는 못했고, 이미 이 뒤로는 국민의 정부가 말년으로 접어 들면서 대통령도 존재감이 없는 판에 총리 따위 알게 뭐냐는 식으로 정국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름만이라도 언급해 주자면, 장대환, 김석수 등의 총리가 뒤를 잇기도 했다. 장대환 역시 서리에 그쳤고, 김석수는 그래도 2002105일부터 2003226일까지, 국민의 정부 마감기를 감당해낸 정식 34대 대한민국 국무총리였다는 점만 얘기해 두기로 하자.

 

참여정부의 첫 총리, 총리 전문가 고건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고건 총리가 참여정부의 첫 총리였다.

고건은 참여정부 초대 총리, 35대 총리를 역임하기 한참 전에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 이미 30대 총리를 역임했던 경험자 총리였다.

사실 고건은 세간에 유명하기로는 총리보다 서울시장으로 더 유명했었다. 서울에 큰 눈이 오거나 큰 비가 내리기만 하면 관련 업계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한숨을 쉬면서 고건 시장 시절을 얘기할 정도로, 재해 예방 시스템에 총력을 기울였던 시장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고건 시장 시절 도입한 장비들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며, 후임자들 중에 어떤 사람도 고건 시장 이상으로 재해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평도 나올 정도다.

그만큼 행정에 능력이 있던 사람으로 보이며, 거기에 대한민국 총리가 흔히 겪기 힘든 경험까지 하게 된다.

다름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굳이 따지자면 처음은 아니다. 박정희가 암살당했을 때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에 취임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실권자는 최규하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는 소문까지 있던 전두환이었으니 허수아비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건은 실제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서 직무가 정지되었던 기간 동안 고건은 사실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총리를 하려면 이런 맛도 좀 있어야지.

물론 당시, 외국 정부들은 고건 대행을 대한민국의 정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탄핵 기간 동안에는 거의 모든 외교가 단절되는 상황까지 갔었다고 하지만 그건 고건의 책임은 아니다. 외국의 수상을 연상케 하는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만들어 두고서도 그걸 대통령 꼬붕 쯤으로 운용하는 대한민국의 제도가 이상했기 떄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외국에서도 대통령이 자리를 비워 총리가 대행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저 사람을 국가 정상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고 인식을 한 것일 터이다.

어찌 되었건 고건은 참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 할 얘기 거리가 없다.

 

실세총리 이해찬

고건이 총리직을 떠난 뒤 잠시의 기간 동안, 그러니까 약 한달 여 총리 권한대행을 수행한 사람이 있다. 또 이헌재다. 이 사람은 총리 땜빵 전문가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 뒤에 2004630일부터 2006315일까지, 꽤 긴 시간 동안 법으로 명시만 되어 있던 총리의 권한을 실제로 수행했던, 허수아비 총리는 절대 아니었던 사람이 바로 이해찬이다. 그것도 그 넘의 골프만 안 쳤더라면 한참을 더 했을 텐데, 역시 골프 중독은 무섭다는 사실까지 재삼 확인시켜 준다.

김종필은 연합정권의 성격상, 임명된 총리라고 보기에는 좀 그러기 때문인지, 세간에서 실세 총리, 그러니까 실제로 권한을 행사했던 총리는 이회창과 이해찬 둘 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총리직을 열심히 수행을 한다.

노무현은 선거 때부터 이미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걸었었고, 자신이 한 말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순박한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은 그걸 실제로 지킨 것이다. 이해찬은 유시민 복지부장관 임명 때에도 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이 나올 때에도 결사 반대를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의견에 반대를 하다니.. 실세를 넘어 권력형 총리 아닌가 하는 놀라움이 있을 정도이다.

언급되는 모든 이인자들이 총리직을 끝으로 정계에서 사라지곤 하는 것과는 달리 이해찬은 아직도 정치의 현장에 서 있다. 한 쪽에서는 충실히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해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중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당내 친노세력을 이끌며 상왕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물론 그 비판은 내가 한 비판이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당내 경선에 출마했으나, 정동영, 손학규에 이어 3위에 그치고, 2008년 총선에는 아예 불출마를 했었으나 201219대 총선에서는 새로 생긴 세종특별자치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 현장으로 복귀한 셈이다.

결국 이해찬은 이인자의 자리를 넘어 1.5인자 정도 까지는 갔었던 것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최초의 여성총리 한명숙

이해찬이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약 한달 여 기간을 한덕수 권한대행이 자리를 지키게 된다. 이 한덕수 대행은 나중에 다시 참여정부의 최후의 총리로 뒷 정리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임명된 총리는 이화여대 출신 한명숙 총리.

김대중 집권 이후 16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뒤 여성부 초대장관 역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환경부 장관 역임.

민주화 운동 세대로 사회운동에 열중하다가 김대중에게 발탁되어 여성 정치인으로 무탈한 직무 수행을 보여 성장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승진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비례초선으로 나왔다가 바로 장관이 되고, 바로 총리까지.

물론 사회운동 시절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제도권 경력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또한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명숙 총리의 총리직 수행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무난함”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말은 즉,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활동은 별로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 의견이 엇갈리고 이해가 엇갈리는 치열한 다툼의 과정을 조율할 줄 아는가, 혹은 반대파들의 공격이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에 찬 답을 하기 힘든 경우일 수도 있겠다.

결국 총리직 수행 이후, 2012년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대표를 맡아 지휘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그 “대체로 무난함”이라는 평가가 사라진다. 이명박의 거듭된 실정과 지지율 하락, 거기에 불을 지른 나꼼수의 열풍 등으로 인해 한껏 높아졌던 야권의 기대에 비해, 그다지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 총선 공천 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일어 책임지고 대표직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총선,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린 총선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 총선 과정에서 터져 나온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인한 부담도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역시나 또 한 번 “대체로 무난함”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러나 역사는 무심하다. 한명숙 총리는 아마 역사에 딱 한 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총리로 기록될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는 뭐라고 기록이 될까? 대체로 무능함?

 

기억에 없는 한덕수 총리

한명숙 총리가 물러난 뒤, 권오규 대행이 약 한 달간 직무를 수행하고 나서 임명된 총리는 한덕수인데, 200743일부터 2008228일까지 거의 일년 가까이를 재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는 총리이다. 무색무취 총리라고나 할까?

물론 정권의 임기 말이 되면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존재감까지 희미해지는 판국에 총리 따위를 기억할 여지가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덕수 총리(너무 낯설어서 이름만 부르기도 미안하다.)의 존재감은 없어도 너무 없다. 심한 사람은 이명박 정권의 초대 총리 한승수하고도 혼동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기고 서울대 라인이며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까지 한 사람이며, 행시보고 들어온 관료출신이라는 점에서 엘리트 관료로 구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행적은 진짜 별 것이 없다. 참여정부 초기에 경제수석 비서관을 역임했고,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실장이라는 장관급 직책을 수행한 것이 전부다.

거기에 참여정부가 목을 매고 추진했던 한미 FTA 에 관련해서 국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했으니, 참여정부를 위해 봉사를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노무현만 아니면 다 된다”를 외치던 이명박 정권에서 주미대사를 맡을 정도였으니, 정파성이 희미한 것도 사실이겠다.

어찌했거나, 정권 말기에 마무리 총리를 한 사람들이 대체로 무미건조한 것과 궤를 같이하여, 역시나 무미건조했던 마무리 총리로 기록될 것 같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도대체 이 사람을 한 단락을 빼서 기록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총리제도, 이대로 좋은가

총리는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이인자일 뿐이다. 애초에 헌법을 만들 때부터 생각했던 대로, 선출된 의원들이 다시 선출하는 수상, 혹은 말 그대로의 진짜 총리를 두지 않을 바에야 왜 이런 허수아비 같은 총리 제도를 그대로 가져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따져보면 이승만이 죽일 놈이다.

그러다 보니 전도 유망한 정치인들이 허수아비 소리 들으면서 총리직 하다가 정치 생명이 끊기기도 하고, 책임 총리는커녕, 의전 총리, 대독 총리, 같은 치욕적인 별명을 듣고 마음대로 그만두지도 못하는 꼴을 당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세운 정홍원 총리를 보시라. 아무 권한도 없고, 아무 하는 일도 없고, 괜히 욕만 먹고, 책임지고 그만두겠다고 사표 써서 그 사표가 수리되고 차기 지명까지 되었다가도 다시 와서 또 하라면 해야 되고.. 이렇게 불쌍한 캐릭터가 정치판에 등장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의 비웃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니 도움이 되는 건가?

이런 총리제도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총리제도가 지속되는 한, 이인자의 허울을 쓴 허수아비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고, 그 허수아비들이 제대로 일을 하려고 덤비면 정치적인 문제만 양산될 것이고, 하등 이익이 될 일이 없다.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해서 진짜 책임총리제를 수행하자.

아니라면 그냥 없애서 예산이라도 절약하는 게 남는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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