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은 없다

(* 이 글은 월간지 “주부생활”에 기고했던 글이며, 주부생활과의 협의에 의해 블로그에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사이버 망명은 없다

 

사건의 발단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였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입을 통해 나오자 검찰은 인터넷 전반에 걸친 모니터링을 시행하겠다고 서둘러 화답을 했다. 이에 사람들은 내가 카톡으로 나눈 얘기들까지도 사법권력이 감시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카톡이라는 인스턴트 메신저가 타격을 입게 되고 말았다. 최근 거대 포털 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즈와 합병을 해서 연일 주가를 올리던 다음카카오의 주력 서비스인 카톡의 사용자가 몇 주 만에 40만 명이 넘게 줄어 버린 것이다.

카톡뿐이 아니다. 전혀 관계도 없이 옆에서 구경만하던 네이버의 라인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9월 셋째 주 한 주 동안 국내 사용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나가 버렸다. 마이피플이나 기타 군소 메신저들 역시 사용자가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엉뚱하게 지나가던 텔레그램이 횡재를 한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의 두 형제가 만든 비상업적인 서비스이다. 또 다른 IT 비즈니스로 떼돈을 벌어 이미 갑부의 대열에 올라선 이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치지만 역시나 제일 중요한 것은 이들이 텔레그램이라는 서비스를 만든 이유 그 자체이다. 돈을 벌려는 목적은 전혀 없고, 개인간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이들의 주목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이 카톡 등의 메신저를 통해 서로 나눈 메시지를 누군가가 훔쳐볼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순간, 하필이면 그 사람들의 눈앞에 “우리는 당신의 비밀을 잘 지켜드립니다” 라고 얘기하는 텔레그램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텔레그램에는 귀찮은 광고도 없고 애니팡이 보내는 하트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래? 한 번 써 볼까?” 하면서 호기심을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여기서 카카오 측이 잘못된 대응으로 부채질을 한다. 오히려 사용자들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화가 난 수십 만의 사용자들은 다음카카오 측에 항의하는 의미로 아예 카카오톡의 계정을 없애고 탈퇴해 버린다.

이쯤 되면 이 상황은 이미 정치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 현상으로 발전하는 단계가 된다. 솔직히 카톡으로 반정부적인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배우자 몰래 애인하고 나눈 사랑의 메시지라거나,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업무상 기밀들이다. 텔레그램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증권사 직원들이라는 점, 심지어 조선일보 직원들이나 검사들까지도 텔레그램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 결과 벌어진 현상,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대거 텔레그램으로 옮겨 가 버리는 이 현상을 우리는 “사이버 망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텔레그램 말고도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는 애플의 아이메시지나 구글의 행아웃, 왓츠앱, 바이버 등을 진작부터 사용하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일찌감치 사이버 망명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이 사태를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문제를 삼고 개선해야 할 일이지, 해외에 기반을 둔 서비스로 옮기는 것이 그 해답이 되지도 않는다.

한 때 검찰이 국내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이메일 서비스를 수시로 감시한다는 얘기가 돌았을 때, 사용자들 일부가 구글이 제공하는 지메일 서비스로 옮겨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법적 절차에 따른 영장이 발부되면 구글이라 해도 그 내용을 검찰에 제출해야 한다. , 사이버 망명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고, 한다 하더라도 실효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진짜 중요한 핵심은 이제 우리 사회에도 나의 사생활에 관련된 비밀을 국가 권력이라 해도 함부로 들여다보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자면, 검찰 등으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의 문제 이전에 개인 상호간에도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 서로의 메신저를 훔쳐보는 경우가 흔하고 그로 인해 싸움도 쉽게 난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로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의 휴대폰을 함부로 들여다 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사생활이 남에게 노출 되는 것이 싫다면 나 또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텔레그램 측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우수한 보안을 설명하면서 이런 유머를 던지고 있다.

텔레그램은 강력하게 암호화된 데이터로 통신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유출이나 감청 같은 문제에도 무사합니다. 통신 자체는 철저하게 지켜드리지만 물리적으로 휴대폰에 접근이 가능한 애인이나 가족에게서는 지켜드릴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결국 프라이버시 보호의 가장 큰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좀 믿고 사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한편, 청소년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에게는 이 점이 오히려 텔레그램을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카톡과는 달리 텔레그램에서는 상대편이 언제 로그인했고, 언제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지금 온라인 상태인지 여부가 드러난다. , 아이의 텔레그램 계정을 보면 그 아이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유용한 기능인가!

하지만, 아이의 프라이버시도 지켜줘야 할 필요는 있다. 그 판단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님들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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