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번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 중 쉐인 유먼이라는 선수가 있다. 등 번호는 42번이다.

유먼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생활을 했다가, 계약 만료 후 한화 이글스의 새 외국인 투수로 2015년부터 선발 투수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묘한 사연이 있다. 유먼은 과거 김태균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는데(물론 해설자 허구연의 발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한 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의미심장한 사실은 유먼의 등 번호가 42번이라는 점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주를 대표하는 궁극의 답으로 익숙할 수도 있지만, 골수 야구팬이라면,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MLB) 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번호다. MLB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이자 MLB 전 구단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은 재키 로빈슨의 등 번호이기 때문이다.

정말 오래된 이야기일지도, 어쩌면 최근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보수적인 야구계에서의 인종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태고적 이야기도 아니다. 재키 로빈슨 이전까지는 흑인 선수는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비수 중 내야수에 백인 선수가 많고, 반대로 외야수에는 흑인 선수가 많다는 점이 지적되기까지 한다. 강한 체력과 운동능력이 강조되는 포지션에는 흑인, 화려한 기술과 역량이 강조되는 포지션에는 백인이라는 공식이다. 심지어 흑인 포수는 거의 전멸에 가깝다(더욱 미국적이면서 보수적인 미식축구의 쿼터백 포지션을 살펴보면 이런 ‘은밀한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이 지독한 차별을 온몸으로 스스로 부딪쳐 이겨 낸 사람이 재키 로빈슨이다.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영화 <42>를 보면 정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한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괴로울 정도다. 그럼에도 영화는 로빈슨의 분노 표출을 단 한번만 보여주고, 그의 인내심, 평정심을 끝없이 다룬다. 단 한번, 온 세상을 부숴버릴 듯한 분노를 쏟아낼 때, 해리슨 포드가 열연한 다저스의 단장은 그것조차 참아야 한다며, 당신을 뽑은 이유가 그 인내심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한다. 마침내 로빈슨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견뎌내면서 오직 야구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했으며, 오늘날 MLB에서 우리는 수많은 비 백인 선수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업적을 기념하고자 MLB는 1997년에 이 번호를 전체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매년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해서 모든 선수와 코치들이 42번 유니폼만을 입고 경기를 치른다.

멀고 먼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은 유먼이 42번을 고른 것이 과연 우연일까? 유먼은 42번을 고른 이유를 묻자 대학 시절 처음 받았던 번호이자, 재키 로빈슨의 번호이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물론 이런 역사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참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이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국 프로야구는 인종별 쿼터를 지정한 것도 아니고, 차별적 제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나라에서 굳이 42라는 숫자 하나에 집착하거나, 그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왜 굳이 흑역사를 다시 들춰내서 ‘지나간 일’, ‘사소한 실수’를 자꾸 끄집어내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사과했으니 된 거 아니냐는 말도 할 수 있다. 이럴 때 항상 듣게 되는, 또한 하게 되는 말도 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

하지만, 야구도 인생을 배우는 길이자 하나의 커다란 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재키 로빈슨의 싸움을 끝까지 함께 한 아내 레이첼 로빈슨이 아직 살아있다고 들었는데,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또하나 42번을 기억할 만한 기념 사업이라도 하나쯤 한다면, 의미있는 일이 될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미국이 저질렀던 커다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행 학습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볼 카운트를 표시할 때 스트라이크를 먼저 표시할지, 볼을 먼저 표시할 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것 보다는 분명 의미가 더 있을 것이다.

뭘 할 수 있을까. MLB를 따라 한국 프로야구의 모든 구단이 4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까? 힘들 것이다. 최소한 리그 내의 일을 기념해야지, 밖의 일을 기념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지은 죄도 아닌데 뭘 그렇게 생색을 내고, 짓지도 않은 죄를 반성해야 하냐는 원성이 나올 것이다. 영구결번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며, 팬들과 선수들, 야구인 모두에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도 많다. 재키 로빈슨 데이인 4월 15일을 함께 기념할 수도 있고, 각 구단이 특별 유니폼으로 42번 유니폼을 인쇄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번호 42번의 의미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영화 <42>는 한국에서 개봉조차 못했고, 영화가 가장 많이 언급된 소식은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에 관한 일화다. <42> 개봉을 맞아 다저스 선수들이 단체 관람을 권했으나, 자막이 나오지 않아 거절했다는 소식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 먹기 힘들어도 당연히 봐야 할 영화를 왜 보러 가지 않았느냐고 류현진을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 영화조차도 한국에서 화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냐고 하는 것 만큼은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재키 로빈슨과 같은 사례가 과연 한국 프로야구에는 없었을까? 프로야구 초창기의 재일 동포(재일 교포, 자이니치, 재일 조선인 등 수많은 표현이 있지만, 학교에서 만났던 재일동포 스스로가 자신들을 재일동포로 표현하기에 그 표현을 존중하는 뜻에서 재일동포로 쓰겠다) 선수들을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선수들을 다룬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어디 대 히트를 기록하기라도 했었던가? 야구팬인 나조차 개봉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재일 동포 럭비 선수단을 다룬 다큐 영화 <60만의 트라이>를 봐도 ‘쟤들은 진짜 한국인 아니에요. 우리가 한국인이지’ 같은 말들을 한국 선수들이 버젓이 재일동포 선수들이 듣는 자리에서 하고 있고, 여전히 한국은 재일동포를 ‘반쪽바리’라는, 차마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말로 부르는 실정이다. 김성근 감독을 비난할 때 단골 메뉴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다. 단순히 흑인 문제, 재키 로빈슨, 쉐인 유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문제다. 상대에 대한 존중, 아니, 최소한 차별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문제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짜릿한 홈런, 시원한 중거리 슈팅의 골인, 덩크슛의 호쾌함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사람들이 정말 열광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기본 조건이 있다. 양 팀이 같은 수의 선수로 대결하며, 정정당당하게 규칙을 따르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점이다. 출발점이 평등하지 않은 스포츠는 성립하지 않는다. 피부색, 출신 지역 따위로 사람을 차별하는 스포츠가 평등할까? 훌륭한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기본’이 더욱 중요하다.

1992년부터 한화 이글스 팬인 내게 쉐인 유먼은 정말 소중한 선수다. 이제는 전체 야구팬에게까지 유명해지고 김성근 감독도 받고싶다고 하는 ‘남자네 남자’ 메달, 연이은 선발 등판시의 호투.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냥 즐기기에는 그의 등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42라는 번호가 너무나 무겁게 보인다. 이 등 번호를 자랑스럽게 느끼고, 볼 때마다 불편함이 아닌 뿌듯함이 느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1 thought on “42번

  1.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아니라)유먼 선수 등번호가 42번이라는 것도 그것의 의미가 뭔지도 잘 몰랐네요. 이것저것 모르는 게 많아서 짚어봐야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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