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10화

미스테리 블랙코미디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의문의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가로지르며 한 편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듯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비정규직으로 방송국에 글을 팔아 먹고사는 작가, 그 작가의 아이디어를 빨아먹고 사는 방송국 PD, 군수품 판매업자, 그로부터 대량의 물품을 사들이려는 의문의 사람들, 그리고 산 속 기도원까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사건은 뜻밖의 결말에 다다른다. 과연 우리의 상식 밖에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작가] (USB를 노트북에 꼽으며) 이 폴더인가요? 외계인이라고 된?

[감독] 네. (손짓을 하며) 거기 보시면 외계인녀라고 된 파일이 있어요. 그게 방금 전에 말한….

[작가] 아, 여기 있네요. 그럼 잠시….

작가, 이어폰을 노트북에 연결하고 귀에 꼽자 무대에 어둠이 내린다. (암전)


2막 2장. #여인의 기억 속
조용한 배경음악이 어둠속에서 흐르는 가운데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최면사)만이 들려온다.

[최면사 목소리] 지금부터 다섯을 세겠습니다. 그다음 딱 소리가 들리면 당신은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될 겁니다. 알겠죠? 그럼 세겠습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낸다.)

딱 소리와 함께 핀 조명이 밝아지자 무대 한쪽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노파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전의 모습과 달리 허리를 쭉 펴고 반듯하게 서있다.

[최면사 목소리] 자, 이제 당신의 의식은 외계인을 만났던 순간에 와있습니다. 어떤 장면이 보이나요?

[노파] (여전히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매우 젊은 목소리와 말투로) 사람들, 사람들이 보여요.

나이에 걸맞지 않는 노파의 꼿꼿한 자세와 흡사 여대생 같은 목소리가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면사 목소리] 어떤 사람들이죠? 당신도 그들과 함께 있나요?

노파, 조명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으로 천천히 머리에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 던진다. 그러자 오십대 중반의 새치가 있는 검고 긴 머리가 흘러내린다.

[노파] 네. 저도 그들과 함께 있어요.

[최면사 목소리] 다른 거 뭐 보이는 건 없어요? 다시 한 번 주변을 잘 살펴보세요.

[노파] (다시 한 번 객석과 극장을 천천히 돌아본 뒤) 초록색 불빛이 보여요.

이때, 무대 뒤쪽으로 비상구를 표시하는 초록색 등이 켜진다. 등은 실제 크기보다 더 크다.

[최면사 목소리] 초록색 불빛이요?

[노파] 네.

[최면사 목소리] 그리고요?

[노파] 누가 불 빛 속에서 달리고 있어요.

[최면사 목소리] 누가? 사람?

[노파] (객석 한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잘 모르겠어요. 전체가 하나로 된 흰 색 옷인데…. 우주복인가?

[최면사 목소리] 무슨 소리는 안 들립니까?

[노파] 소리요?

[최면사 목소리] 네. 어떤 소리든지.

[노파] (눈을 감고) 음….

이때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하고, 개가 짖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노파] (눈을 뜨더니) 동물 소리 같은 게 들려요.

[최면사 목소리] 동물이요? 어떤…?

[노파] 개 짖는 소리. 컹컹 짖는 소리요.

[최면사 목소리]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요?

[노파] (객석을 돌아보고) 그냥 앉아있어요.

[최면사 목소리] 무슨 말 안 합니까?

[노파] (객석을 향해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어두워서 잘 안 보여요. 바로 옆 사람 얼굴조차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때 객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야’하고 소리를 확 지르며 벌떡 일어나 무대로 뛰어든다.

[남자] (무대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며) 이 씨발 뭐야! 여기 어디야 도대체. 여보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 어?, 야, 늬들 누구야, 뭐야 니들, 야!

[노파] 남자 하나가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욕을 해요.

씩씩 거리며 항의하던 남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양 팔이 팔짱을 끼워진 채로 끌려가는 시늉을 하며 계속 소리를 지른다.

[남자] (심하게 저항을 하며) 뭐야, 너희들! 누구야? 이거 놔, 이거, 놔!

이때 저항하던 남자, 뭔가에 배를 가격 당한 듯 허리를 굽히며 털썩 주저앉는다. 이어 집단 린치를 당하는 것처럼 머리를 두 팔로 감싼 채 비명을 질러댄다.

[남자] 으억, 으억, 억, 허억….

이 장면을 바라보던 노파가 공포에 몸을 떨자 최면사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최면사 목소리] 무슨 일이죠? 괜찮아요?

남자, 얻어맞는 걸 모면하기 위해 개처럼 벌벌 기어간다. 그러면서 한 번씩 옆구리를 걷어차이는 시늉과 함께 비명을 지른다. 너무 많이 맞아서인지 남자의 비명은 점차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두들겨 맞는 개가 짖는 소리처럼 변해간다. 이 소리는 앞서 노파가 말했던 동물 소리, 개가 컹컹 짖는 소리의 정체다. (남자, 기어서 퇴장)

[노파] 소리 지르던 아저씨가 어디론가 끌려가요. 두들겨 패면서 그들이 데려가요.

[최면사 목소리] 끌려간다고요?

노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이때 멀리서 아까 들었던 개 짖는 소리가 또 다시 들린다.

[최면사 목소리] 누구죠, 그들이?

[노파] (흥분한 목소리로) 보이지가 않아요. 모습이 보이지가 않아요.

[최면사 목소리] 자, 심호흡을 크게 하시고요, (사이) 마음이 좀 진정되었으면 기억 속으로의 여행을 조금 더 해봅시다. 다시 한 번 셋을 세고 딱 소리가 나면 당신은 기억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셋, 둘, 하나, (딱 소리를 낸 뒤) 이제 뭐가 보이죠? 아직도 사람들과 함께 있나요?

[노파]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최면사 목소리] 아무도?

[노파] 네.

[최면사 목소리] 혼자 있다는 얘긴가요?

[노파] (무대 반대쪽을 가리키며) 아뇨. 그게 저기, 저렇게 있잖아요.

[최면사 목소리] 그게? 그게 누구죠?

[노파] (굳은 표정으로) 모르겠어요. (점차 공포에 떨더니) 그, 그…. 이제 내 바로 앞에 있어요.

[최면사 목소리] 외계인인가요? 어떤 모습이죠?

[노파] 이상한 도구들을 펼쳐 놓고 있어요.

[최면사 목소리]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있나요?

[노파] 몰라요. 모르겠어요. (눈을 지그시 감고) 음~

[최면사 목소리] 왜 그러죠?

[노파] (여전히 눈을 감은채로) 저에게 뭐라고 속삭여요.

[최면사 목소리] 속삭인다고요?

[노파] 네.

[최면사 목소리] 혹시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노파] (눈을 번쩍 뜨며) 하늘의 군대, 자기들은 하늘의 군대래요. 높으신 분의 명을 받드는.

[최면사 목소리] 그게 다인가요? 다른 말은 없나요?

[노파] 절 해치지 않는대요. 전 선택받은 여자라 해치지 않을 거래요.

[최면사 목소리] 선택받은 여자?

[노파] 제 팔에 뭔가를 주입하고 있어요. (몸을 떤다)

[최면사 목소리] 뭘 넣고 있다고요?

[노파] 자신과 접촉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 대요. 안 그러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최면사 목소리] 고통스럽나요? 고통스러우면 말해요, 깨워줄게요.

[노파] (뭔가에 달뜬 목소리로) 아뇨, 기분이 좋아요. 아….

[최면사 목소리] 외계인인가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노파]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쓰다듬으며) 저에게 계속 말을 걸어요.

[최면사 목소리] 뭐라고 하죠?

[노파] (목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전 특별하다고, 아주 좋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최면사 목소리] 좋은 유전자?

[노파] (점차 가쁜 호흡으로) 네. 그래서 우린 하나로 합쳐야 된대요. 자길 받아들여야 한대요.

[최면사 목소리] 지금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노파, 뭔가를 말하려다 눈을 감고 신음소리를 낸다. 그러나 신음 소리가 격해지면서 갑자기 비명으로 바뀐다.

[노파]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안 돼, 안 돼!

[최면사 목소리] (다급한 목소리로) 자, 진정하고 지금부터 다섯을 거꾸로 세겠습니다. 다 세고 나면 당신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을 떠나 현재로 돌아옵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낸다.)

‘딱’ 소리와 동시에 무대는 단번에 어둠에 휩싸인다. (암전)


 

이것으로 노파(혹은 여인)의 기억 속 여행을 마칩니다. 현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