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확실히 말해두지만 나는 인터뷰 전문가가 아니다. 인터뷰라면 비디오와 오디오를 동반한 방송용 인터뷰가 있고, 방송 없이 녹취와 정리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터뷰가 있으며, 대면 자체를 하지 않는 서면인터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내 전문분야는 아니다.

단지, 딴지일보에 글을 쓰게 된 인연으로 유명인, 특히 정치인 위주의 인터뷰 기사를 몇 번 쓴 적이 있고, 딴지라디오에서 하던 팟캐스트 “딴지 이너뷰” 코너의 진행을 맡았던 경험이 있으니, 아마츄어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인터뷰 하면 무조건 떠오르는 지승호 작가 정도라면 전문가로 간주할 수 있겠다. 이 분은 딴지 총수 김어준을 상대로 한 인터뷰를 정리해 “닥치고 정치”라는 책을 만들어 엄청난 판매를 했으니 대중성도 겸비한 걸로 보인다. 그러나 지승호 작가의 인터뷰의 가치는 거기 있지 않다. 철저한 사전 준비로 인터뷰 대상, 즉 인터뷰이 보다 더 인터뷰이에 대해 잘 아는 수준까지 자신을 끌어 올린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를 만나는 것에 있다. 즉, 인터뷰이가 스스로도 잘 모르던 본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할 정도로 치열한 인터뷰를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난 그렇게 못한다.

지승호 작가의 인터뷰를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의 인터뷰라고 표현해 본다면, 김어준 총수의 인터뷰는 정확하게 그 대척점에 존재한다. 인터뷰이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바라본 인터뷰이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이끌어내어 대중들에게 감동적이며 자극적으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딴지총수 김어준(예전의 뽕빨 이너뷰 시리즈를 상기해 보자) 또한 인터뷰 계통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안희정 인터뷰가 기억이 난다. 어떤 인터뷰어가 정치인 인터뷰이로부터 눈물을 짜내고 그걸로 대박을 쳐서 광역단체장 선거에 영향까지 미칠 수가 있겠냐는 말이다. 어떨 때는 좀 지나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키곤 한다. 그런 뜨거운 인터뷰는 아마 그만이 할 수 있는 분야 아닐까 싶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주로 정치인 인터뷰를 해서 그런 습성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가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건, 아니면 자신을 숨기고 앞뒤 안 맞는 주장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치장하려고 하건, 아무 관계없다. 어차피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들은 독자에 의해 걸러지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그런 거짓말이라도 여과없이 하라고 판을 펼쳐주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터뷰어의 모습이다.

그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지승호의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장점이 있고, 김어준의 인터뷰는 인터뷰이를 바라보는 김어준의 관점이 드러나는 측면이 있지만, 내 인터뷰는 그냥 맹숭맹숭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얘길 하고 끝나는 경향이 생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아무런 필터없이 가공없이 인터뷰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원없이 하게 만들어 주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터뷰이의 실체가 훨씬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물뚝의 인터뷰는 도대체 날카로운 맛도 없고 (인터뷰이를 곤경에 빠트리는 질문, 모순을 지적하는 질문은 난 아예 하질 않는다.) 누가 나와도 그저 끄덕거리며 듣고만 있는 것 같아서 재미가 없다고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다. 난 그렇게 인터뷰를 하니까.

그러나 그런 인터뷰를 하고 녹취록을 정리해서 글을 쓰고 나면 오히려 더 잘 보인다. 내 인터뷰 글을 자세히 읽어본 독자들의 반응에서 나는 그런 내 의도가 잘 구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안심하게 되는데, 결국 내 인터뷰 기사에서는 물뚝은 사라지고, 인터뷰이의 말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저 난 이 인터뷰이가 하는 얘기는 이렇게 이해하는게 옳지 않을까? 하고 아주 짧고 간단한 코멘트만 인터뷰이 모르게 붙이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독자들은 이 글의 주인공, 즉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이며, 이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한다. 남들이 바라보는 자신과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좀더 속속들이 이해하려면 그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에게 자신의 어떤 면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이 가장 괜찮은 방법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조차 그 사람의 아주 중요한 특성이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준비도 제대로 안하는 게으름(사실 한다고 하긴 하지만 지승호 작가만큼은 죽었다 깨나도 못한다.)을 상시 장착하고 있고, 김어준 총수가 보여주는 날카로움(그런건 본능적으로 타고나야 되고, 심하게 무례하며 뻔뻔해야 가능한 일인데 난 점잖고 예의바른 신사(ㅎㅎ)이니까 그런건 못한다.)이 없다는 거, 애석하고 부럽긴 하다. 그런 장점이 없으니 이런 푸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니까.

거기다가 더 좋은 것은, 전적으로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무제한 하게 내버려 두면, 그 결과로 생성되는 인터뷰 기사의 품질 자체가 전적으로 인터뷰이의 수준과 비례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는 그저 녹취만 풀어도 대단히 훌륭한 기사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아무리 손질을 해서도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수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게 더 좋은 점이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인터뷰이가 만든 건데 뭐.. 이러면서 자기 합리화도 아주 쉽게 된다. 세상에 나처럼 인터뷰 쉽게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특히나 인터뷰라는 장르는 결국 어떤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기에 그 이야기에 가급적 인터뷰어는 빠져 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원론적인 얘기였을 뿐이고, 나는 그 원론을 믿는다. 그래서 가급적 인터뷰 현장에서 투명인간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뽑아 보자면..

지난 총선때 했던 김영춘 후보 인터뷰. 이건 진짜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경향이 있는데, 김영춘이라는 정치인의 정치적 가치 보다는 김영춘이라는 사람의 인생이 잘 드러나 있는 경우로 기억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김영춘 같은 사람은 학자를 해야지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느낌을 이 인터뷰 이후에 받았던 기억이 난다.

http://murutukus.kr/?p=4730

그리고 요즘 새정연 내부 문제로 거하게 욕을 드시고 계시는 박지원 의원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시나 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경험으로는 내가 만난 역대 정치인들 중에서 말, 그러니까 글 말고 리얼타임으로 쏟아지는 말에 대한 감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 때 남도 한정식 한 상 거하게 사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아직 안 사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일그람 불만이 있다.

http://murutukus.kr/?p=4752

끝으로 은수미 현 새정연 초선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은수미 의원을 칭송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은의원의 일생, 살아온 삶 자체에서는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뷰 하면서, 현장에서 녹음 뜨면서 인터뷰이의 말에 오히려 내가 감동을 먹고 울컥해졌던 느낌은 이 인터뷰가 처음이었다. 말은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한참 많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동안의 소유자답게 말투도 귀엽고 어린(윽.. 죄송합니다.) 그런 느낌이었는데..

내가 먹었던 감동의 십분지 일도 기사에 안 살아 있다는 거, 그건 어쩔 수 없는 내 능력의 한계일 거고, 하여간 그렇다. 정파를 떠나, 정치적 가치를 떠나, 정당을 떠나, 사회적 계층을 떠나, 난 이런 분이 진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뷰 하다 보면 진짜 많이 배운다는 것이 사실이다.

http://murutukus.kr/?p=6676

그리고 이건 보편적인 개인을 상대로하는 인터뷰는 아니지만 기본소득 관련해서 연작 인터뷰를 했던 것, 이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생소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서로 다른 여러사람에게 들어본다는 것, 오히려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던 귀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 것같아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수봉 인터뷰

금민 인터뷰

곽노완 인터뷰

앞으로는 인터뷰 글을 쓰게 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거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라서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 투입한 노동력에 비해 너무들 안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이런 힘든 일을 평생 계속하고 있는 지승호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다.

대략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뭔가 내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귀중한 기회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다시는 인터뷰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버리지도 못하겠다.

그래서 고민이다.

 

 

끝.







3 thoughts on “인터뷰

  1. 은수미 의원님 인터뷰는 읽으면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구요.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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