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13화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의문의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가로지르며 한 편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듯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비정규직으로 방송국에 글을 팔아 먹고사는 작가, 그 작가의 아이디어를 빨아먹고 사는 방송국 PD, 군수품 판매업자, 그로부터 대량의 물품을 사들이려는 의문의 사람들, 그리고 산 속 기도원까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사건은 뜻밖의 결말에 다다른다. 과연 우리의 상식 밖에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3막 2장. #기도원(실내/접견실)
조금은 에로틱하게 들리는 여자의 신음소리와 함께 무대 한 쪽에 핀 조명이 들어온다. 그 아래에는 1장에서 세일즈맨과 만나던 젊은 여인(딸)이 객성을 향해 서있다.

전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심판을 받아야하는지.

노파 목소리 죄가 없다니?

그들은 죄가 없어요. 단지 자신들이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무대 위에 또 하나의 조명이 켜지고 접견실 의자에 앉아있는 노파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가죽 파우치를 한 쪽으로 밀어 놓으며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노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래.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우릴 믿지 않았어.

(노파 쪽으로 돌아서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엄마, 엄마가 겪은 그런 일을 누구나 경험하는 건 아니잖아요?

노파 그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우 특별한 존재인거야. 또, 그렇기 때문에 다들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어야 하는 거고.

남들이 겪지 않은 일을 겪었다고 해서 특별해지는 건가요?

노파 넌 지금 모순에 빠져있어.

모순이요?

노파 그래.

뭐가 모순이죠?

노파 (테이블을 두 손으로 짚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래, 니 말대로 우리가 겪은 일은 우리가 특별해서 겪은 게 아니라고 하자.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누구에게나?

노파 그래. 그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어. 우리가 선택한 거라면 어떻게 우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말 할 수 있겠니? (사이) 오히려 그 반대지.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들을 만날 수 있었어. 또 누구라도 그렇게 난데없이 끌려갈 수 있었고. 우리처럼 끔찍한 실험을 당할 수도 있었지.

그런데요?

노파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든! (객석을 향해) 사람들은 겸손하게 우리의 증언에 귀 기울어야 했던 거야. 누구라도 자신의 선택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리가 겪은 일을 자기들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옳았어. 그런데 다들 어떻게 했지?

미친 사람 취급했죠.

노파 (손가락으로 딸을 가리키며) 그래! 도대체 왜들 그랬을까?

그건 이미 엄마가 수도 없이 얘기했잖아요.

노파 그래, 그랬지. 그래도 날 위해 한 번만 니 입으로 말해 주지 않겠니?

(잠시 주저하다) 우리가 겪은 일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리고 그 불안이 서서히 사람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를 미친 사람들 취급하는 게 자신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거다….

노파 그래!

하지만 우리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니었잖아요.

노파 (코웃음을 치며) 하!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우린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거다. 우리처럼 그런 일을 겪고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다른 사람들처럼.

그걸 엄마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요?

노파 (다시 객석을 향해) 넌 땅에 떨어져 죽은 새를 본 적이 있니?

네. 가끔….

노파 그렇게 땅에 떨어져 죽은 새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그냥….

노파 (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말이다 얘야, 땅에 떨어져 죽은 새를 보면 묻어주거나 하지 않아. 다들 모른 척 지나쳐 버리지. 그러면서 며칠 후면 그 죽은 새가 어디론가 사라져 있길 바랄 뿐이야. 들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든. 왜 그럴까?

딸, 조용히 고개만 가로 젓는다.

노파 새는 하늘을 날다 어디론가 사라져야 하니까. 새들은 하늘에서 죽는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단다. 아니, 그렇게들 믿고 싶어 하지. 그런 사람들에게 땅에 떨어져 죽어 있는 새는 불길한 거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죽어가는 것들로 가득 찬, 불안하고 추한 곳이라는 걸 알게 해 주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 그래서 심판 받아야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끔찍한 모습에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노파 진실을 마주보려고 하지 않는 것,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 무기력한 타성에 젖어 오늘 하루만 무사하길 바라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악에 동조하는 거란다.

하지만….

노파 자신에게 공포가 현실로 닥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심판 받기에 충분해.

무대 전체에 조명이 들어오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선다.

노파 (딸의 두 손을 잡으며) 모두들 우리가 겪은 일을 인정하지 않았어. 오히려 우릴 모욕하고 조롱했지. 우리가 보고, 겪은 일들이 착각이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들 말했어. 만약 그들 중 단 한명이라도 진지하게 우리가 겪을 일에 대해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다면, 우리 편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다면, (딸의 손을 놓고 객석을 향해 단호하게) 그랬다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거리로 뛰쳐나가 그들에게 곧 닥치게 될 일을 알려 줄 거야. 하지만 다 소용없지. 그렇게 한다면 난 당장 어디론가 끌려가게 될 테니까.

노파, 딸을 이끌어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힌다.

노파 얘야, 사람들에 대한 너의 동정심은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너의 그런 순결한 마음을 받을 가치가 없어.

세상에 순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노파 아니, 너만큼은, 내 아기 너만큼은 그렇지 않아. 넌 순결해. 완벽하고 순결해. 그래서 널 낳을 수 있었던 거야. 그게 내가 선택받은 이유고! (객석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너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고 불안이지.

엄마를 두고 떠날 순 없어요!

노파, 딸에게 다가와 뺨을 쓰다듬는다. 딸은 노파의 품에 안긴다.

노파 걱정마라. 방주는 안전할거야. 난 그곳에 남아있어야 한다. 내가 보았던 것을 보고, 내가 겪었던 것을 겪었던 사람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 기다려야해. 모든 심판이 끝날 때까지. 엉터리 역사를 써가며 살아온 인간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때까진 아무도 우릴 찾지 못할 거야.

노파, 의자에 앉아있는 딸을 조용히 바라본다. 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파는 가죽 파우치에서 고무줄을 꺼내 그녀의 팔에 묶는다. (암전)


무더운 날씨에 모두 심신 건강하시길 빕니다. 그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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